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6
제676화. 파훼법
데엥! 데에엥-!
적막에 가까운 토올룬의 기도 시간.
시종들은 신발을 벗고서 대리석 바닥을 맨발로 뛰었다. 인기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움직임이 굉장히 일사불란했지만, 옷자락 비벼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잰걸음으로 왕의 처소에 들어가, 고개를 바닥에 고정한 채로 젖은 수건을 옮겼다.
“커억, 어억…….”
토올룬의 왕, 쿠마샤가 목덜미를 계속 긁어내며 숨을 토해냈다. 목 가운데 가시가 걸린 듯 괴로워하는 신음에, 시종들은 더더욱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십니까.”
“왜, 왜 이런지 모르겠다.”
방 안에 수십 명이 함께 있건만, 말을 붙여주는 건 오로지 수상 한 명밖에 없다. 쿠마샤는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금 옆으로 쓰러졌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이 아닐는지요.”
수상의 물음에 쿠마샤는 잠시 침묵했다. 이안 히엘로. 인형의 눈동자 너머로, 그자는 분명 자신을 바라보았다.
“토올룬의 왕이시여. 다 했는가?”
“젠장!”
쿠마샤가 인상을 찌푸리며 연식 바닥을 긁어댔다. 이어 미친 듯이 악을 내질렀지만, 그 누구도 고개 드는 자가 없다.
인형술의 거의 유일한 파훼법을, 이안 히엘로가 이행한 것이다. 인지하고서 행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인형 너머에 누가 있는지 바로 직시하는 것.’
그리하면 인형에게 가해지는 공격이 주인에게까지 닿을 수 있다. 위력은 상당히 절하되지만, 아이의 몸인 쿠마샤에게는 그조차 견딜 수 없는 부담이었다.
아이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몸을 문질러댔다. 흰 피부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마검사 바르사베의 경우에는 전하께서 조종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만, 공격받은 적이 없으니 문제없었던 것입니다. 그 외 다른 인형술사들도 마찬가지, 신원이 밝혀지지만 않으면 사실상 신경 쓸 필요 없는 부분인데…….”
“알아! 나도 안다고!”
다르시 부인이 그리되고서부터 확실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금기의 마법도 그렇고, 중간에 완충 작용을 해줄 존재가 사라졌으니.
쿠마샤는 짜증스럽게 수상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그저 가만히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주제에 잘난 듯 주절거리는 꼴이라니.
그때, 밖에서 차분한 안내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이 도착했습니다.”
루스웨나에서 포탈을 열어 도망쳤던 마법사들이 토올룬 왕궁 인근으로 도착하여 들어선 것이다. 쿠마샤는 잘 되었다는 듯, 카랑카랑하게 소리쳤다.
“인형술사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예, 전하.”
다르시 부인 덕분에 알았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명이 아닌 두 명, 가능하다면 그 이상의 인형술사를 가운데 세워두어 힘의 파급력이 자신에게 닿지 않게 하겠노라.
“그런데 전하, 하완 왕국의 에리카 말입니다. 샤티마 수상을 죽일 때 그녀에게서 파훼법을 전해 들은 것 같다 하셨지요. 그 이후 별다른 반응은 없는지요?”
수상은 미지근한 물을 아이에게 건네며 물었다. 쿠마샤는 거칠게 숨을 씩씩대면서도, 애써 한 모금 들이켰다.
“아직은.”
“…아직이라.”
인형술에 대항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외부를 통하는 법과 내부에서 스스로 끊어내는 법. 이안 히엘로의 경우가 전자였다.
그리고 에리카의 경우는 후자. 샤티마 수상이 이를 어찌 알고서 일러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드문드문 끊어져 있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리카에게 잠깐의 의지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혹여 방심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전하.”
수상의 당부에 쿠마샤는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만 치켜세울 뿐이다.
이어서 마법사와 인형술사가 준비되었다는 말이 들려오자, 아이는 비틀거리며 상체를 세웠다. 망할 이안 히엘로 같으니라고.
“마법사를 금기화하여 다시 루스웨나로, 아니 이안 히엘로에게 보낼 것이다. 혹시 모르니 인형술사도 두엇 선발하여 함께하도록 하지. 그리고 다르시 부인은-”
쿠마샤가 손짓으로 가위를 가져오라 명했다. 이내 한 손에 작은 쪽가위를 쥔 아이는, 이리저리 엉킨 실타래를 손끝으로 살폈다.
“잘라내고.”
투욱.
실이 완전히 끊어지자, 그 끄트머리에서 작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신체적 반응이 거의 없는 데다, 엘더트 왕이 서랍 안에 넣어두어 장식용으로도 쓸모없어졌다. 괜히 정신을 어지럽게 할 바에 끊어내는 게 나았다.
“루스웨나 마법사들과 인형술사를 데리고 와.”
“예, 전하. 현명하신 처사이옵니다.”
차가운 대리석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 쿠마샤는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작게 한숨 쉬었다. 보이는 세상은 이리도 평화로운데, 그 안은 너무도 시끄럽다.
쿠마샤는 두 눈을 가볍게 감고는 지하신께 기도했다. 부디, 이번에는 이안 히엘로의 목숨을 앗아올 수 있기를.
* * *
“에리카 님, 아무래도 마지막 공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심지가 젖지 않게끔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손 틈으로 새어드는 물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부관은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라 보고하며 에리카의 명령을 기다렸다. 마력 탄환으로 마법사들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위험에 처한 루스웨나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마법사들을 교란하는 것.
“이제 슬슬 정리하여 뒤쪽으로 물러나심이 어떠십니까?”
“국경을 넘어 히엘로로 들어서는 게 좋겠습니다. 메렐로프 인근에 병력이 대기 중이니, 신호만 터트린다면 진입할 것입니다.”
“히엘로는 모르겠지만, 메렐로프에는 생존자가 상당하지 않습니까. 그들을 끼고 싸운다면 마법사들도 쉬이 공격하지 못할 테지요.”
“그때 되면 심지도 깨끗이 마를 테니 다시 기용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이 후퇴할 적기입니다. 에리카.”
“어서 명령을…….”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건 아니었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바리엘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힘을 합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몹시 힘들어 보이긴 하나, 루스웨나가 여기서 무너진다면 그 여파는 하완 쪽으로 온전히 틀어지게 될 테니.
“에리카?”
하지만 에리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창공의 마법사들을 올려다볼 뿐.
그때, 마지막 탄환이 격발되었다.
타앙! 탕!
“와라! 엥?”
이를 기다리고 있던 베릭이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처럼 팔을 까딱거렸으나, 탄환은 자신을 지나쳐 휘잉 날아갔다. 이에 베릭은 탄환을 쫓아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다.
“똑바로 안 던지냐아!”
그리고 이를 본 에리카의 부관.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결정이 늦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에리카! 결정하셔야 합니다!”
부관이 어깨를 잡고 흔들자, 그제야 에리카는 영혼 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러자. 모두 퇴각하라 명해.”
“예, 알겠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바리엘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마법사를 만난 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다.
뒤늦은 부관의 신호에, 하완군 지휘관들은 있는 힘껏 깃발을 흔들며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부우우- 부우!
한편, 이안은 하완 병사들의 움직임을 보고서 잠시 손을 들어 올렸다. 추격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최대한 마법사들의 이목을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지 않나.
“히엘로와 메렐로프로 들어가겠다는 것 같은데, 무시해라. 당장은 루스웨나를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잠시 영지를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다. 중앙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으며, 루스웨나가 전력을 상실해야 완전히 안심하고 뒤쪽을 비워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엘로와 메렐로프에 마법사들이 나타난다면 희망을 얻은 영지민들이 나서서 영지를 지키겠노라 버틸 수도 있다. 기특한 마음이긴 하나 이안은 그들의 피까지 바라지 않았다.
‘영지민들이 전쟁에 휘말리면 마법사들이라 해도 피해 없이 막아내기는 힘들 터. 하완군이 영지에 도달하기 전에 피신시키는 게 옳다.’
이안이 그리 이르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탄환을 쫓아 끝까지 뛰어가던 베릭이 결국 크게 뛰어올라 따라잡았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까앙!
눕힌 대검을 휘둘러 탄도(彈道)를 꺾어버렸다.
대지 가까이까지 낙하하던 탄환이 힘을 받아 일직선으로 쭈욱 날아갔다. 드래곤들 사이를 날고, 루스웨나 병사들의 머리를 지나쳐, 굳건하게 서 있는 장벽까지.
콰아아앙! 쾅! 쾅!
퍼어엉!
“호오.”
베릭이 손날로 빗물을 가리며 장벽 쪽을 지켜봤다. 뭐가 하나 제대로 들어맞았던 것인지, 거대한 먼지 연기와 함께 벽돌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르르-!
“피, 피해라!”
“장벽이 무너진다! 피해!”
비 덕분에 먼지는 금방 가라앉았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돌무더기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마치 도미노처럼 끝도 없이 쓰러지며 일대를 붕괴시켰다. 이는, 하완이 발사한 마지막 마력 탄환의 특성 탓이었다.
“계, 계속 폭발이!”
“진동이 이어진다! 도망쳐라!”
“하완, 이 미친것들아! 제발 그만 좀 해! 이러다 우리 다 죽어어!”
끝없이 이어지는 충격파. 힘을 전달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폭발이 이어졌다. 이는 헤일이 구사했던「난종(亂鐘)」 마법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베릭은 ‘엥?’ 하는 얼굴로 무너지는 장벽들을 바라봤고, 마법사들은 황당한 낯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장벽에서 이드갈 화살을 쏘아대던 궁수들도 어느새 먼지 구덩이 속으로 잠겨버려 잠잠해졌다.
“베릭, 너 뭐냐?”
“좀 쳤네. 응. 이번에는 좀 잘 쳤어.”
“쟤는 이렇게 한 건 할 때마다 고평가받는 게 진짜 웃겨. 자만하지 마! 얻어걸린 거니까, 인마!”
“얻어걸리는 것도 실력이거든?!”
“봐봐, 벌써부터 목에 힘 들어갔네. 젠장.”
“아, 마법사들 뭐 하냐? 한 방이면 될 거를 이제껏 장벽 하나 못 부수고! 캬캬캬! 이것들 놀고 있었네! 마! 월급들 반환해라!”
“누가 너처럼 무식하게 그딴 식으로-”
“네네, 이상 장벽 하나 못 부순 마법사 변명 잘 들었고요! 푸하하핫!”
마법사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은 손을 모아 마력을 끌어모았고, 이어서 루스웨나 대지 곳곳으로 살아 숨 쉬는 줄기가 뻗어났다.
“…저 새끼도 같이 죽여.”
“콜.”
촤아아악!
세계수 줄기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대지 위를 강타했다. 분명히 베릭을 노린 것인데 당사자인 베릭은 요리조리 잘만 도망쳤고, 대신 루스웨나 병사들의 곡소리만 계속해서 터졌다.
콰앙! 쾅!
“으아아악! 으악!”
“전하! 전하!”
엘더트 쪽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대지 위에 발 딛고 서 있을 수 없는 터라, 엘더트는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타며 활을 챙겼다.
쿠구궁, 쿠궁!
“장벽이 모두 무너졌다!”
진동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뒤쪽 장벽을 향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잔해가 워낙 거대한 탓에 쉬이 넘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좌우로 흩어졌고, 진영은 걷잡을 수 없이 와해되고 말았다.
엘더트는 참담한 시선으로 그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봤다.
“엘더트!”
하지만 이내, 마법사들의 부름에 정신을 번쩍 차리며 드래곤 안장 줄을 꽉 붙들었다. 아직 루스웨나에는 두 개의 장벽이 더 남아 있다. 그리고…….
촤아악!
엘더트는 잡념을 떨쳐냈다. 그러고는 자신을 뒤쫓는 마법사들을 향해 활을 쏘아대며 거리를 벌렸고, 도망치듯 왕궁 쪽으로 날아갔다. 헤일이 그를 쫓으라며 손짓했다.
“잡아라! 산 채로 잡아서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한편, 어수선한 전장 한구석. 국경선 밖으로 물러나려던 에리카는,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거렸다.
-가면 안 돼.
쿠마샤의 명령이다.
에리카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굳어버렸다. 그녀가 없다면 루스웨나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파악 불가했으니. 몸은 당장이라도 되돌아가 전선을 지키고자 하지만, 무언가…….
-자리를 지켜.
이게 맞나? 하완의 병사들을 계속 여기에 두는 것이, 진정으로 맞나?
투둑. 툭.
빗물 속에서, 에리카는 다시금 샤티마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리고 살얼음이 깨지듯 이내 그녀의 당부 또한.
“의지를 지켜, 너 자신을 보아. 알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