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7
제677화. 찾아
에리카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파편처럼 조각나다 못해 완전히 으깨어지는 기분이다. 몸 구석구석 이어져 있는 신경 감각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네가 이르고자 하는 그 의지, 거기에 도달하면 완전한 죽음만이 기다릴 것이라고.
“에, 에리카!”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이봐, 여기 들것을-”
“아니!”
부관들이 그녀를 부축하려고 하자, 에리카가 거칠게 거부했다. 그 누구도 건들지 말라. 지금 자신에게 집중하기에도 벅차니, 그 어떤 신경 분산도 용납지 않을 것이라.
그때, 다시 한번 귓가에 울리는 명령에 에리카는 몸을 움찔거렸다.
-돌아가.
백색을 떠올리게 하는 청아한 음성. 이를 따르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고 깊게 스며든 불안감이 사그라들리라는 걸 에리카는 잘 알았다. 굴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값싼 평화 같은 것이겠지.
-에리카.
에리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기억이 또렷해질수록, 그날의 죽음도 선명해졌다.
‘샤티마…….’
피에 절었던 그녀의 옷, 흐트러졌던 머리칼,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눈동자…. 하완을 위해 살았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자다.
그런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으아아아! 으아아!”
“무, 물러서!”
에리카가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발작하자, 주위에 있던 부관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계속, 두근대는 가슴 부근을 움켜쥐었다. 간질간질 속삭이는 명령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괜찮아질 것이지만, 글쎄. 자신이 그렇게까지 해서 살 필요가 있나?
-아니.
그녀는 고개를 겨우 틀어 부관들을 올려다봤다. 무슨 상황인지 알 턱이 없는 자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 당장 철수하고 마법사들에게 전언할, 것이다.”
-에리카!
“하완이 갈 길은 이게 아니야. 혹여 내가 방금 이른 말을 스스로 어기려 한다면-”
에리카는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잠깐 스친 고통이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점점 크게 울리는 귓가의 목소리.
-안 된다고!
“…나를 죽여도 좋아.”
피잉!
그때,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깨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작 느껴지는 것은 후련함이다.
에리카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다시금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죽어도, 하완의 길은 계속 이어진다.”
피잉!
백색의 목소리가 무언가를 외쳤지만, 웅웅거리며 뭉개져 들릴 뿐이다. 마치 실이 끊어지는 듯한 기이한 느낌.
이내 세상을 담는 에리카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뭔가 깨어난 게다.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투명한 장막 같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에리카의 세상이 다시 완전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에, 에리카.”
“아.”
에리카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는 후퇴하는 병사들을 지켜본 다음,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괜찮다. 후퇴를 이어가라. 대신 히엘로령이나 메렐로프령 쪽으로는 신호를 주지 말고 대사막에서 대기해.”
“알겠습니다.”
“그대들도 마찬가지, 먼저 국경을 넘어라. 나는 이안 히엘로를 만나야겠다.”
“예? 그게 무슨, 에리카!”
타앗!
에리카는 부관들이 말리는 것도 뒤로하고 바로 말에 올라탔다. 최대한 서둘러서 오해를 풀어야 했다. 하완이 어찌하여 루스웨나 편에 서서 그대들을 공격했던 것인지, 그리고 하완의 정세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말이다.
샤티마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하완은 바리엘과 등져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바리엘의 황궁 조사단장 출신으로서 이를 손 놓고 볼 수 없다.
타닥타닥!
히이잉!
국경선 쪽으로 후퇴하는 병사들을 헤치며, 에리카는 홀로 전장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하완의 국기를 크게 흔들어 마법사들을 불렀으나, 너무 멀고 시끄러운 탓에 쉬이 가 닿지 않았다. 저들이 하완을 추격했더라면 문제없었을 것인데.
“이안 히엘로! 마법사들은 들으시오!”
“와아아아!”
“제발, 이쪽을 좀 봐주시오!”
“후퇴하라! 후퇴!”
콰앙! 콰아앙!
에리카의 외침은 너무도 쉽게 묻혔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말에 상체를 바짝 붙였고, 옆구리를 힘차게 차댔다. 속도를 더 내고자 한 것이다.
타닥타닥!
그리고 그때, 에리카는 뒤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을 감지했다. 부관 중 한 명이 그녀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에리카를 걱정하여 따라붙는 듯했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형이로구나.’
하완에 숨어 있던, 자신과 같이 이지(理智)를 빼앗긴 인형. 인형술로부터 스스로 벗어난 자신이 그 파훼법을 전파하기 전에 죽이려 드는 것이다.
에리카는 마른침을 삼키며 소리쳤다.
“모두 들으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면 된다! 이는 속임수다!”
“와아아아!”
“두려워하여 굴복하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의지를-!”
병사들은 에리카가 무어라 외치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기합을 내지르며 퇴각했다.
부관의 추격이 점차 빨라진다. 에리카는 검을 빼 들고서 공격에 대비했고, 계속해서 마법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내달렸다.
“부서질 것이라는 건 허상이야!”
타닥타닥!
촤아악! 채앵!
결국 바로 옆까지 쫓아온 부관이 그녀를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에리카는 있는 힘껏 쳐냈지만,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했다. 두어 번의 합이 더 이어졌다.
채앵! 챙!
“이봐, 듣고 있나? 무서워하지 말고 명령을 거역해! 그리하면-”
“…….”
“그리하면 깨어날 수 있다!”
“…닥쳐라!”
“멍청아! 씨바알!”
촤아악!
에리카의 검이 부관의 왼팔을 베어냄과 동시에, 그의 검이 에리카의 등을 찢었다.
병사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후퇴하는 흐름에 밀려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힐끗힐끗 돌리며 바라볼 뿐.
에리카는 몸이 크게 휘청거렸지만, 말고삐를 붙잡아 중심을 바로 잡았다.
“이럇!”
타닥타닥!
히이잉!
조금만 더 가면, 마법사들에게 닿을 수 있다.
* * *
에리카가 루스웨나 장벽 쪽으로 내달리는 와중, 마법사들은 정신없는 전쟁터를 날아다니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첫 번째 대상은 드래곤과 흑갑옷 기사, 그리고 이드갈 화살을 쏘아대는 궁병들이었다.
마법사들의 세계수가 미친 듯이 회오리치며 이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베릭은 무너진 장벽 위에 제일 먼저 올라섰다.
“크햐핫! 내가 1등!”
“베릭, 까불지 말고 다음 장벽까지 밀고 들어가! 여기서 보니까 왕궁까지 적어도 두 개는 남았다.”
“뭐? 그렇게나 많아? 근데 우리 병사들 없잖아? 굳이 밀 필요 있나?”
“중앙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까, 나중을 대비해서! 그리고 뭐, 쟤들은 이유 있어서 히엘로 개박살 냈나?”
“하긴, 그렇네!”
“토미, 쟝! 나랑 같이 엘더트 뒤로 붙는다.”
“예, 헤일 대장!”
“나머지는 확실히 정리하고 들어와!”
헤일은 마법사들에게 그리 지시하며 두 번째 장벽을 날아서 넘어갔다. 이드갈 화살이 무자비하게 쏟아졌지만,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영차영차 벽을 기어 올라간 베릭이 막 화살을 쏘려던 병사 멱살을 잡아 아래로 내던졌다.
“으, 으아악!”
“살고 싶으면 알아서 뛰어내려라!”
“마검사다! 동쪽 제2장벽, 마검사가 올라왔다!”
“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죽여! 마검사도 마력 쓰니까 이드갈 무기가 먹혀들 것이다! 다 같이 덤벼라!”
“와, 와아아아!”
용기는 가상했으나 현실은 처참했다. 베릭은 쥐 떼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몸을 놀리며 병사들을 장벽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고는 걸쇠가 단단히 걸린 문 쪽을 보며 마법사들에게 신호했다.
“나 아래로 내려가서 문 좀 박살 낼게!”
“조심해! 여기서 안 보인다!”
“오케이! 걱정은 밥 말아 드시라!”
승기가 기운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루스웨나 병사들은 마법사들에 맞선다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이안은 마법사들을 따라 장벽 위를 넘어가려다 무언가 기척을 느끼고는 멈칫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이안 님?”
“…아니다.”
하완군은 무사히 국경을 넘어 전장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서둘러 루스웨나를 정리하고 저쪽을 쫓는 게 좋을 것이다. 이안은 더 높게 날아올랐고, 멀리 보이는 루스웨나 왕궁을 발견했다.
“왕궁이 보입니다!”
“그래.”
지이잉! 지잉!
왕궁과 일직선으로 선 이안은 두 손을 모아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왕궁 정문 쪽으로 흰 빛줄기를 쏘았다.
촤아악!
하지만 곧게 나아가던 공격은 마지막 장벽 인근에서 가로막혀 굴절되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막이 생성되어 있던 것이다.
보아하니 루스웨나 마법사들의 힘은 아니고, 국경선과 같이 마력석으로 유지되는 보호막 같다. 이안은 판단했다.
“왕궁 쪽에도 비슷한 게 있을 터. 보호막을 깨기보다 그 아래 마력석을 파괴하는 쪽이 쉬울 것이다.”
“예, 이안 님!”
“베릭, 정리 잘 하고 쫓아와.”
“오케이! 왕궁에서 보자, 이안아!”
이안은 대답 대신 빠르게 날아올라 마지막 장벽 쪽으로 접근했다.
한편, 마지막 장벽 안쪽으로 피신했던 엘더트는 문득 뒤쪽을 돌아봤다. 거대한 빛줄기가 금방이라도 때려 박을 듯이 떨어지더니, 보호막에 가로막혀 사그라졌다.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한 기분이다.
“서둘러 왕궁으로 가자!”
“예, 알겠습니다. 전하!”
장벽 아래로 보이는 루스웨나의 수도 중심지. 백성들이 혼비백산하여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던 본대의 병사들이 국경조차 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정말이지 큰 충격일 것이었다.
엘더트는 입술을 꽉 깨물고서 시선을 바로 했다.
촤아악!
드래곤이 왕궁 안뜰에 착지하자, 엘더트는 빠르게 내달려 궁 안으로 들어갔다.
“전하, 이쪽입니다!”
루스웨나 수도인 엘바사에서 서쪽 외곽으로 통하는 마력석 그림이 한 점 있다. 이를 통해 먼저 몸을 피한 다음,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망할 토올룬에서 앗아간 마법사가 돌아올지, 그리고 하완에서 어떤 식으로 도와줄지 등등.
엘더트는 수뇌부들과 왕궁 지하로 내려가 창고 깊숙이 들어섰다.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하.”
그림과 이어진 곳이 안전한지, 관료가 먼저 그림 속으로 손을 뻗었다.
콰아앙! 쾅!
그때, 왕궁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마법사들이 바깥 장벽을 부수고 여기까지 들이닥친 게 분명했다. 초조해진 엘더트는 관료만 빤히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것인가?”
“그, 그러게 말입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서쪽 외곽에서 무슨-!”
“전하!”
마침, 먼저 들어갔던 관료가 허둥지둥 그림 밖으로 뛰쳐나왔다. 안색이 파리한 것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 안 될 것 같습니다.”
“안 되다니?”
“크, 클리포포드군입니다. 서쪽 외곽 지역을 침략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사방이 시끄러워 들어섰다가는…….”
“뭐?”
엘더트는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그래, 왜 클리포포드를 잊고 있었을까. 애초부터 바리엘의 진정한 우군이 서쪽에 접경하고 있었거늘. 하완이 밀고 내려온 것과 같이, 클리포포드 또한 루스웨나를 압박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이-”
젠장! 엘더트는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바리엘 마법사들이 보호막을 깨트리려는 공격이 계속 이어질수록, 머릿속이 희게 변하는 기분이었으니.
그때, 왕궁 바깥에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촤아악!
“헤일 대장! 마지막!”
“깨버려!”
지이잉! 퍼엉!
헤일과 토미가 동시에 마력을 쏟아내자, 투명한 막이 와장창 깨졌다. 고풍스러운 왕궁이 맨살을 드러낸 것이다.
헤일은 거의 다 왔다며, 궐련을 꺼내 물고는 고갯짓했다.
“왕궁 안팎으로 색출한다. 엘더트, 찾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