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0
제680화. 다르시의 눈알
“하, 시발. 끔찍해.”
“살아 있는 거 맞지?”
“맞는 듯. 잘 움직이잖아.”
마법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유리병 속 투명한 액체. 그리고 눈알 한 개. 전투 중 녹아내린 다르시 부인의 잔해가 분명해 보였다.
마법사들은 이 괴이하고 난해한 생명체를 대체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바라봤다.
“다, 다른 부위는?”
“몰라. X 같아서 만지기도 싫어.”
“아나, 이거 어떡함. 돌아버리겠네.”
액체화된 부분은 끈적하고 진득해 보였다. 천금을 줘도 손대기 싫게 생겼으니, 마법사들은 다시금 침묵을 유지한 채로 다르시 부인을 노려봤다.
똑똑.
“다들 뭐 해?”
“대장! 으아앙!”
“헤일 대장, 잘 왔어요!”
“이것 좀 보세요!”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있자, 헤일이 문을 두드리며 주의를 환기했다. 할 일이 태산이건만, 꼼짝 않는 마법사들이 의아한 눈치다.
그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헤일의 옷을 잡아끌었다.
“이게-”
“그 미친 인형술사 같은데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뭐, 뭘 어찌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서요.”
헤일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유리병을 집어 들어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서랍에 그걸 부어버렸다.
마법사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헤일에게 소리쳤다.
“아아아악! 으악!”
“꺄아아, 징그러워! 시발!”
“헤일 대장, 갑자기 왜, 왜 그래요? 미쳤어요?”
“그걸 열면 어떡해요?”
“자세히 봐야 해결책이 생기지.”
헤일은 쪼그려 앉아 다르시 부인의 눈알을 가만 지켜봤다. 동공의 움직임이 확인된다. 확실히 살아 있다. 자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살아 있으면, 신호를 보내봐라.”
그 말에 다르시 부인의 눈알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우연인가?
“오른쪽으로 돌리면 긍정, 왼쪽으로 돌리면 부정으로 알겠다. 들리는가?”
도르륵. 눈알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굴러갔다.
“다르시 부인인가?”
“대장, 지금 쟤랑 의사소통이 가능해요?”
“남자인가?”
도르륵, 왼쪽.
헤일은 서랍째로 빼내어 책상 위에 올렸다.
“잘 들리고, 정신머리도 멀쩡한 것 같군.”
다행이라 하기에는 너무 처참한 모습이지만.
마법사들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걱정스레 물었다.
“아직 살아 있는 거라면… 토올룬 왕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예, 바르사베 대원의 경우도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자아를 앗지 않아도 감각 공유는 얼마든지 가능한 자들입니다.”
“바로 터트려 버리시지요.”
“우엑, 잔인한 새끼.”
“아니, 그럼 뭐 어쩌라고?”
도르륵! 도르륵! 다르시 부인을 죽이자는 제안에, 부인의 눈알이 계속해서 왼쪽으로 굴러갔다. 토올룬 왕은 이미 그녀와 연결된 실을 끊어버린 상태였다. 시각적인 정보가 새어 나갈 일 없다는 걸 알리고 싶었지만, 수단에 한계가 있었다. 다르시 부인은 필사적으로 왼쪽으로 돌며 살려달라 애원 중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헤일은 지시했다.
“…문자판을 만들어오도록.”
가이아 공용어 문자판이 있다면 다르시 부인과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으리라.
이에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마법사들. 이를 발견한 노아 왕자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들 저러지?”
“글쎄요. 위층에 일이 있나 봅니다.”
하루 이틀이어야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메이의 반응에, 노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 병사들을 모두 데리고 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로가 워낙에 좁고 물자 이동까지 있어서요. 아, 그리고 왕자님. 이건 루스웨나 서부로 발송된 전서구입니다. 전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노아는 쿵쿵대는 위쪽을 무시하며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급격하게 구기며 이안을 찾아 나섰다.
“이안 경! 이안 경 위에 있는가?”
“어, 왕자님. 금방 오셨네요.”
“무슨 일이십니까? 이안 님은 베릭 찾으러-”
“오셨네. 저기 들어오십니다.”
마법사들이 난간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정문 쪽을 가리켰다.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이안이 베릭과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노아 왕자는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어라, 크림포도 왕국 왕자님이네. 반가요.”
“이안 경. 지금 버고스와 이어진 강물에서 독성이 발견되고 있다 하던데, 어찌 된 일인지 아는가?”
“근데 왜 여기 있어요?”
“버고스의 젖이 칼라마트를 지나는데, 거기에는 폐하가 계시지 않는가.”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아도, 서로의 말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이안은 노아와 베릭을 번갈아 보다 나지막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도 마법사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상류인 토올룬에서 무슨 수작을 벌인 듯한데, 마법사들이 강물에 포탈을 열어 일정 시간 루스웨나로 틀었다 합니다. 하나 보시다시피 지금은 닫혔고, 결국 클리포포드까지 흘러간 것 같군요.”
“토. 토올룬에서? 저번에는 아예 물을 잠그더니?”
이제는 독을 풀어? 진짜 제대로 정신 나간 것들 아닌가? 어지간한 독이 아닌지라, 물길이 닿은 땅이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이안은 진정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칼라마트에 있는 폐하께서 최선으로 조처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홀린가에서도 지지를 얻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으니 서둘러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터, 그들에게도 이번 사태는 예삿일이 아닙니다.”
“클리포포드의 작물이 죽어가고 있네.”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노아 왕자는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쌌다. 이전에는 버고스가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그 위의 토올룬이 난리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안은 다시 한번 그를 안심시켰다.
“클리포포드는 이미 바리엘의 중요한 우방입니다. 작물 생산 저하가 심각해진다면, 이는 바리엘의 부담이기도 하지요. 최대한 이르게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루스웨나를 무너트렸지만, 작물 생산에 대한 보충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법사의 숲 쪽으로 오수가 스며들었고, 바깥의 금빛 대지는 계속 타오르고 있었으며, 농작하던 농민들은 전쟁에 나섰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었으니까. 지금까지 루스웨나에게 주어졌던 비옥한 지대가 미래에도 유효한 일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 바로 칼라마트로 돌아가는 것인가?”
“당장 오늘은 아닙니다만, 최대한 서두를 것입니다. 폐하 곁을 너무 오래 비워두면 안 될 일인지라.”
“알겠네. 그럼 우리 쪽 인원도 현장으로 바로 투입하도록 하지. 메이!”
“네, 알겠습니다!”
루스웨나를 일찍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마법사들의 귀환이 빨라진다. 이는 곧 오수를 한시라도 빠르게 멈출 수 있다는 뜻. 메이는 부관들과 함께 왕궁 밖으로 나서며 명령했다.
“루스웨나 패잔병들의 신병을 확보하라. 드래곤과 흑갑옷 입은 자들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되, 엘바사 중심가를 기점으로 하여 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전언할 것이다.”
“장벽이 모두 허물어진 상태입니다. 이탈자가 많습니다.”
“크게 연연할 것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이 무너졌지 않나. 지방 영주들은 필시 이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을 터다. 마법사들이 있다는 걸 아는데, 그 누가 감히…….”
바쁜 걸음으로 멀어지는 노아와 메이를 보며, 이안은 작게 한숨 쉬었다.
시기가 참으로 적절했다. 혹여 저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바리엘 본대를 기다리느라 보름 가까이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르겠다.
타닥타닥!
쿠웅!
“앞에 잘 좀 봐!”
“아니, 지는?”
계단 위, 베릭의 윽박지름에도 마법사는 제 갈 길 가느라 바빴다. 그제야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마다 희한한 것을 들고 있었는데, 거대한 나무판, 펜, 장갑 등등 종류가 다양했다.
이안과 베릭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따라 올라갔고, 이내 엘더트의 집무실 안, 와글와글 모여 있는 마법사들을 발견했다. 무얼 보고 그리 집중하고 있는지, 이안이 온 것도 모를 정도였다.
“순서대로 써. 간격 좀 넉넉하게 해서.”
“너무 넓으면 눈알 구르다가 힘 빠지는 거 아냐?”
“그래도, 오도독하는 것보다는 낫지. 지 힘 좀 빠지는 게 대수인가?”
“하긴 그래.”
가이아 공용어를 또박또박 써넣은 오목한 나무판. 그 안에 서랍 속 액체를 부었다. 다르시 부인이다. 베릭은 역겹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고, 이안은 문틀에 기대어 마법사들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마! 지금부터 잘해라. 아니면 터트려버린다. 여기, 장갑 보이지?”
데구루루! 데굴!
“그 위에 긍정이랑 부정도 적어. 반대쪽에서 보니까 이게 왼쪽으로 도는 건지 오른쪽으로 도는 건지도 헷갈린다.”
“오케이. 자자, 질문 들어갑니다.”
“너 토올룬 왕이랑 연결 끊어진 거 맞지?”
다르시 부인이 힘차게 ‘긍정’ 쪽으로 굴러들었다. 그러더니 문자 하나하나 힘겹게 움직이며 문장을 만들었다. 마법사들은 수첩을 꺼내 다르시 부인이 머물렀던 문자들을 조합했다.
“…완전히… 끊어짐… 그쪽에서 실을 잘랐다?”
“어어. 그렇게 말하는 듯.”
“상태가 이러니까 팽당했나 봐.”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어떻게 확인 못 하나?”
그러자 다시 데구루루!
“…내 몸이 무너졌다. 거짓말할 힘 없어. 구르기도 벅차다.”
“흐음. 이렇게 된 건 금기의 마법 부작용 때문인 거지?”
“아씨, 또 생각하니까 개빡치네. 헤일 대장, 그냥 이거 죽여버립시다. 눈알 굴러다니는 것도 혐오스럽고, 그 마법사 놈들 생각나니까 울화통이 치미는데요.”
데구루루! 쿵!
“미안! 미안! 이 지랄.”
“사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토올룬의… 왕, 쿠마샤의 명령을 따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는 결코 내 의자가… 아니었더?”
“이 새끼 급했네. 오타까지 내고.”
눈물샘이라도 있다면 억울함을 증명해 보일 터인데! 다르시 부인은 애처로이 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으로 몸부림을 대신했다. 이를 지켜보는 마법사들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수상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인형술사의 지배 아래 있다. 이는 나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수상이면, 관료를 말하는 것 같지?”
“아아, 기억난다. 쿠마샤는 관료들이 올리는 선출직 왕이잖아. 근데 어째서 수상과 그쪽 사람들은 가만둬? 내가 쿠마샤면 바로 그쪽부터 작업 들어갈 건데.”
“맞아. 토올룬에는 정령술사들도 있다더만. 그쪽도 왕의 명령 아래 절대 복종인가? 임기가 긴 것 같지 않아 보이던데, 어째서?”
“정령술사? 아아, 베릭이랑 싸웠다던?”
“내가 봤을 때는 걔 발렸어. 적당히 치고 빠졌다곤 하지만 베릭 성격상 그게 돼?”
“크큭. 나도 그 생각 하긴 했었는데.”
“뭐, 인마? 내가 뭐 어쨌다고?”
듣다못한 베릭이 끼어들자, 마법사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다르시 부인 눈알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뒤집힐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베릭은 그렇다 쳐도, 이안 님은 대체 언제부터?
“허, 허억.”
혹시 우리, 이안 님 뒷말한 건 없지? 마법사들이 찰나 동안 시선을 주고받았고, 일시에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오셨어요?”
“계속하지.”
이안이 손짓하자, 베릭이 자연스럽게 의자를 가져다줬다. 마법사들도 좌우로 갈라지며 이안이 문자판을 편히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켰다.
데구루루, 열심히 구르던 다르시 부인이 멈칫거리며 이안을 올려다보자, 이안은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다르시 부인. 신중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대가 이르는 정보에 따라 그대의 운명이 정해질 터. 모든 감각이 없어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일 테니.”
죽이겠다는 경고가 아니다. 그녀에게 남은 두 가지 감각, 시각과 청각을 앗아낸 다음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유기하겠노라 이르는 말이었다.
다르시 부인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댔고, 연신 ‘긍정’ 쪽을 맴돌았다.
“좋아. 잘 들리는 것 같군. 그럼 계속 이어봐. 토올룬의 왕에 대하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