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1
제681화. 토울룬이라는 나라는
토올룬을 이루는 권력 집단은 세 곳이다. 왕, 왕을 추대하는 관료들, 그리고 정령술사 가문들이다.
왕은 인형술사를 거느려 그 힘을 견고히 했고, 원소를 다루는 정령술사들은 국방, 소방, 치안 등 실무적인 나라 운영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관료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지만, 고대부터 이어온 전통을 받들어 왕을 발굴하고, 추대하는 자들이었다.
“이해가 안 되네.”
베릭이 코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정령술사들은 그렇다 쳐도, 관료라는 인간들이 대체 무슨 수로 왕과 겨룰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마검사였던 바르사베는 물론, 신과 가까운 자들이라는 마법사들도 실 한 번 잘못 꿰여 개고생했다. 그런데 인간들이 대체 무슨 힘으로?
“…신전. 마산타르 신전.”
마법사들이 다르시의 눈알을 따라 문자를 읽었다.
“…토올룬의 믿음은 모두 마산타르 신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지나며… 믿음의 대상은 조금씩 변했지만… 마산타르 신전만큼은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문장 끝났습니다.”
“이안 님. 마산타르 신전이라 하면, 거기 아닙니까?”
“러더포드가 버고스 왕가의 혈족들을 보냈던 곳이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다르시 부인도 그 신전을 알고 있나 봅니다. 지도상에 없어서 정말 극비리에만 알려진 곳인 줄 알았는데요.”
“다르시 부인 정도면 왕의 최측근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안 님.”
마산타르 신전. 러더포드가 다몬 왕의 반쪽짜리 혈족들을 보낸 곳이자, 그들의 회귀와 연관된 미지의 신전이다. 이안은 계속 일러보라며, 다르시 부인의 눈알을 내려다봤다.
“신전과 관료들이 연관 있음을 이르고자 하는 것인가, 다르시 부인?”
긍정! 긍정! 이안이 눈치 빠르게 알아채자, 다르시 부인이 신나서는 굴러댔다.
“관료들은 모두 마산타르 신전 출신, 그곳에서 온 자들은…….”
문자를 읽어가던 마법사들이 멈칫거렸다.
“인형술사의 지배에서 벗어납니다, 신의 축복으로. 문장 끝났습니다.”
“이안 님, 뭔가 익숙한데요.”
“토올룬 말입니다. 이거 완전히 바리엘이지 않습니까?”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는 술사들은 마법사들과 같았고, 사실상 권력의 정점에 있는 관료들은 신전의 축복을 받아 인형술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마법사의 말마나따, 바리엘 황가의 축복과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황실의 피를 잇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축복 말이다.
“…지하신답군.”
그림자란 자고로 대상자를 흉내 내는 존재. 지하신은 신을 따라서 토올룬을 차근차근 만들었던 게다.
그런데 이걸 왜 이제 깨달았을까?
신은 믿음으로 존재한다. 바리엘이 신의 중심이라면, 그래. 지하신의 중심인 토올룬도 바리엘을 따라 할 수밖에 없다. 모방에는 결국 한계가 있을 것이지만.
“그리되면 이해가 되지. 쿠마샤는 왕이라고 하지만, 결국 왕이 아닌 게다. 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신전 출신 관료들이 바로 토올룬의 정점이다.”
“관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모두 인형으로 만들면 될 일 아닐까요? 왕을 추대하고 올리는 자들이라 해도 한낱 인간이지 않습니까. 죽이면 될 일 같은데.”
몇몇 마법사들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토올룬은 이미 오래전부터 왕 선출 방식이 정해진 나라다. 어린 나이에 아무런 뒷배 없이 입성한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임기 또한 상당히 짧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통 성인이 되기 전에 내려옵니다! 죽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지요.
다르시 부인이 눈알을 굴리자, 이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성인이 되기 전에 폐위라. 이안 베로시온의 인생이 스쳐 지나가듯 떠오른 게다.
“아무튼, 왕이 근간과 체계를 뒤흔드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일 터. 이를 뒤집어엎고자 한다면 다른 수단을 통하여 관료들을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번 왕은 좀 다르십니다. 쿠마샤께서는 인형술사 전부와 정령술사 일부를 꿰었습니다. 관료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하는 듯했지만,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왕은 쓸모가 있으면서도 나라에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인형술 거는 것에 제한이 없다면 이놈 저놈 싹 다 걸어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관료들이 콧방귀 좀 세게 뀐다고 해도 결국에는 못 버틸 것 같은데요.”
“지하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하신이요?”
“인형술에 걸려 자아를 잃어버린 자들은 유용한 무기지만, 이는 동시에 지하신 자체를 이루는 힘이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까.”
인형에게 믿음이 있는가? 인형에게 지하신의 존재가 의미 있는가? 없다. 이는 제 살 파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왕으로서는 관료들을 처리하고 싶겠지만, 신전의 축복 탓에 인형술이 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력으로 처리하자니 백성들이 지켜보고 있다.”
지하신의 염원으로 바리엘 쪽에 마수를 뻗치는 듯 보이나, 여기엔 쿠마샤 왕의 개인적인 염원도 담겨 있다. 전쟁으로 외세와 격돌하게 되면 관료들에게 명분 있는 죽음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
이렇듯 토올룬의 내부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대외적인 것과 다르게, 그들은 그들만의 사정으로 어지러울 게 분명했다.
데구루루! 데굴!
“왕궁 지하에 거대한, 수도 전체를 아우르는 인형들의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외세의 그 누구도 수도에 접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형술사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 잘 아시지요?”
“안다, 시발. 존나 잘 알지. 아기아르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제대로 잘 봤거든.”
“맞아, 여기 베릭 옆구리에 빵꾸 뚫린 거!”
“아, 이건 인형술사 때문이 아닌디.”
마법사들이 보란 듯이 베릭의 웃옷을 들추며 왁왁거렸고, 베릭은 상처 옆을 머쓱하게 긁어댔다.
상대를 조종하는 것 외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려면 ‘무대’가 있어야 하니 짐작은 했다만, 그 범위가 수도 전체라니…. 참으로 놀랍다.
“마산타르 신전은?”
“그쪽은 왕의 권한 밖입니다. 최근 정령술사 한 명이 신전 쪽으로 내려갔다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확인 불가입니다. 이것이 그저 헛된 소문일지, 아니면 신전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일지…….”
“그 정령술사, 누군지 아는가?”
부정! 부정! 다르시 부인은 거기까진 모르겠다는 듯 열심히 눈알을 굴려댔다.
그때, 러더포드의 부하들을 심문했던 마법사가 나섰다.
“그래도 신전 위치는 대략 가늠해볼 수 있겠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주민들이 버고스의 젖이라 부르는 강의 수원지 쪽인 것 같습니다. 그 근방에 마산타르 신전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해 볼 만한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이에 다른 마법사들이 나무판 옆에 지도를 펼쳐 확인했다. 역시나 마찬가지, 이 지도에도 마산타르의 정확한 위치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저 러더포드 부하의 증언을 토대로 이쯤이구나 싶은 부분에 동그라미가 처져 있을 뿐.
‘지하신, 신전, 독…….’
오수의 성분이 일반적인 독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안이 침묵하자, 다르시 부인은 안달 나서는 더욱 열심히 나무판을 굴러다녔다.
“토올룬 왕은 붉은 눈동자와 흰 머리칼 그리고 흰 피부를 지닌 여자아이라고 하네요. 원래 천민굴에 있었을 때 사용한 이름은… 아마리.”
천민굴에 살며 인형술을 사용하던 아이, 아마리. 지하신의 부름을 받은 뒤 관료들에 의해 발견되어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겠으나-
이전의 왕들과는 다른 부류의 자임이 분명했다. 신의 몸을 빌려 태어난 이안 히엘로와 시대를 함께하는 자니까 말이다. 아마 지하신에게 그 아이는, 이안과 같은 역할로써 사용되겠지.
“좋다. 좋아. 이런 식으로 다 술술 털어내라고, 눈깔 할멈. 토올룬에서 너 혼자 여기까지 왔어? 보니까 데리고 다니는 애들도 없는 것 같더만.”
“왕한테는 어쩌다 실 꿰인 건데? 이것도 인형술사들끼리의 유대, 뭐 그딴 건가? 우리 마법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금기의 마법 사용할 생각은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거고?”
질문이 쏟아지자, 눈알이 빠르게 움직였다. 신속하고 정확한 답변! 그것만이 살길이었으니까.
“그림을 이용했다.”
“…그림. 이거 러더포드가 처음 사용했던 거 맞지?”
“글쎄, 최초가 누군진 알기 어려울걸? 왜, 예전에는 바리엘 황궁에서 썼다는 소문도 있어서.”
10년 전에는 마력석으로 만든 그림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그 때문에 진의 아버지였던 선황도 대피로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전파되었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하여도 히엘로와 칼라마트를 이어주었던 발리주아드 상단과 루스웨나 왕궁 지하 등이 있으니.
“그럼 하완에도 있다는 거네. 그림 통로가.”
“당연하지. 발리주아드 상단도 하완에 있다가 메렐로프로 피난 간 거였잖아. 왕궁 차원에서 분명히 갖고 있는 게 있겠지.”
“하아, 이렇게 포탈 마법의 시대가 져버리는 것인가. 낭만이 없구먼, 젠장. 자고로 먼 거리 이동할 때는 눈물, 콧물, 피 토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바야흐로 마력석 그림의 시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림에는 포탈과 달리 이동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착지는 고정이며, 마력석 종류에 따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과 횟수 또한 정해져 있으니까.
루스웨나 지하에 있는 것은 왕궁 최후의 비상 탈출구 같은 것인지라, 상급 중의 상급 마력석으로 만들어진 그림일 터. 덕분에 클리포포드 왕궁의 병사들이 수월하게 넘어올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하완 어디로 통해서 왔는데? 너, 그러지 말고 아예 이동 경로를 다 말해봐. 그리고 버티 에리카 꿴 것도 네놈 짓인가?”
긍정! 긍정! 하지만 마지막에는 부정! 에리카의 자아를 앗은 건 자신이지만, 결국 배후에는 토올룬의 왕이 있다는 말이다. 눈알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쳐 죽일 것. 왕을 쳐 죽여라?”
“어허, 지금 와서 주둥이 털어도 변하는 건 없어요. 아니지, 눈깔 턴다고 해야 하나?”
“다르시 저거, 계속 움직인다. 봐봐. 토올룬 수도에서 바리엘, 바리엘에서 하완…….”
“어어, 잠깐만. 바리엘에도 네놈들이 사용하는 그림이 있다고?”
“당연하다. 다만 아주 하급 마력석.”
국경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물건이다. 이안은 전쟁이 마무리되면 마력석 그림을 제재하는 방안을 만들어야겠노라 생각했다.
“바리엘, 어디?”
하급이라도 토올룬과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은 끊어내는 게 옳다. 다르시 부인은 문자판 위를 구르며 답을 알려줬다.
“카…렌나?”
“카렌나?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베릭. 우리가 브라츠에서 중앙으로 갈 때 잠시 들렀던 소도시다. 카렌나, 론긴, 자일쿠프. 이 세 곳을 중심으로 강도가 들끓었던-”
“아하, 하샤 만났던 곳!”
베릭이 생각났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반면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처음 듣는 지명인지라, 지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네요. 마차로 일주일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저희가 가면 뭐, 하루 이틀까지도 가능할 것 같고요.”
“이만 정리할까요?”
“다르시 눈알 할멈, 그림은 어디 있는데?”
도르륵! 도륵!
“카렌나, 시장의 저택 별채 창고, 과일 정물화…….”
“오!”
베릭은 또 생각났다는 듯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카렌나 시장,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맞을까?
베릭이 흥분해서 눈을 반짝이자, 이안이 잠시 기다리라며 손짓했다.
“아직. 다르시 부인과 대화를 전부 마친 다음 결정할 사안이다, 베릭.”
버고스, 바리엘, 하완 그리고 루스웨나까지. 토올룬에서 보낸 인형술사들이 너무 곳곳에 숨어들어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좀 먹는 벌레처럼.
베릭이 서둘러 달려 나갈 것처럼 서 있자, 이안은 그를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금방 끝나니 기다려. 카렌나는 바리엘 중앙군이 지나갈 요지이기도 하니 그 전에 정리해두는 것이 맞겠지. 하나 더 묻겠다, 다르시 부인.”
긍정! 긍정! 그러고는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눈알. 이에 이안은 자신의 의심을 입 밖으로 꺼냈다.
“카렌나 시장도 인형이 되었는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