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2
제682화. 카렌나로 향하는 사람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지, 진정해요. 필리아.”
“비비안나,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비비안나는 쩔쩔매며 필리아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두 손을 모았다. 로엘이 어미 몰래, 혼자 히엘로로 떠났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력자 중 비비안나와 로만드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분노로 파르르 몸을 떠는 필리아. 오래도록 알고 지냈으나 저리 크게 화내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비비안나는 연신 필리아에게 사죄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저로서도, 그리고 로만드로 님으로서도 방법이 없었어요. 필리아, 알잖아요. 로엘은 하고자 한다면 한사코 해내고야 마는 아이라는 걸. 지원군과 함께 보내지 않았더라면 혼자서라도 내려갔을 것인데, 그것보다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게 말씀을 해주셨어야지요! 비비안나! 로엘은 이제 겨우 열 살이란 말입니다! 아이의 보호자는 저예요. 그런데 어찌, 어찌-!”
“필리아…. 정말 미안합니다.”
“황궁도 너무하십니다! 로엘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네, 언젠가 천려를 이끌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입니다. 아직 네르사른 님도 있고, 수많은 전사들이 히엘로를 지키고 있는데 어찌 그 어린것을 보낼 수가 있습니까?”
필리아가 네르사른을 언급하자 비비안나가 몸을 굳혔다. 천려 대부분을 비롯하여, 그가 사막의 별이 되었다는 걸 비비안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차마 그 사실까지 필리아에게 전할 수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일 것이고, 지금은 그녀의 날 선 분노를 감당하기에도 벅찼으니까.
비비안나가 제발 진정하라며, 필리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미안해요, 필리아.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비비안나, 당신도 비비의 어머니이면서 어찌, 어찌 저를 이리 힘들게 하십니까. 제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전쟁터에 가 있는데 저 혼자 중앙에서 호의호식하며 살라는 말씀이신가요? 비비안나가 보시기에는 제가 그리도 쓸모없는 인간이던가요?”
“필리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저는 그대를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저를 위했더라면 로엘을 그리 보내지 마셨어야지요.”
“오, 필리아…….”
“되었습니다. 비비안나.”
“잠시만요-”
“아니요! 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필리아는 대화를 거부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2층으로 올라와 문을 잠그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문 너머로 걱정스레 서성이는 비비안나의 인기척이 들렸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내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지? 로엘이 떠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이번에는 정말 크게 혼날 줄 알아, 로엘. 어떻게 엄마 몰래 거기 갈 생각을 해?’
필리아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로만드로 님도 묵인한 일이라 하니 황궁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장신구를 팔아 여비를 마련할 수밖에.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로엘은 중앙군과 함께 변경에 가까워지고 있을 터. 그 전에 찾아 데려오리라. 전쟁에 휘말리는 건 네르사른과 이안만으로도 충분했다.
‘로엘은 이제 겨우 열 살인데… 정말.’
모두가 이리도 무심할 수는 없다.
필리아는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비비안나와 로만드로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로엘을 자신 몰래 홀로 떠나보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란 걸.
하지만…….
‘나는 허락 못 해.’
브라츠에서 이안을 지키지 못했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제 품에서 벗어난 이안이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얼마나 마음 졸이며 바라보았던가?
그때처럼 두 손 놓을 수는 없었다. 로엘은 이안과 상황이 달랐다.
‘이안에게는 마법이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황궁의 일원이잖아. 하지만 로엘은? 미래를 단편적으로 보는 것 외, 스스로 지킬 힘이 있던가?’
게다가 황궁의 일원도 아니다. 그 작은 아이가, 제국의 영광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나?
사각사각.
필리아는 펜을 휘갈겼다. 비비안나와 로만드로에게 남기는 짤막한 편지였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미안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차오른 터라 펜을 움직이는 손이 마구 떨려왔다.
내용은 장황했으나 이르는 바는 한 가지다. 로엘을 다시 중앙으로 데려오겠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아이를 만나서 깊은 대화 후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리겠노라는 것.
* * *
“이, 이안 님?”
“지금 다르시 부인 대답이……!”
문자판을 읽은 마법사들이 당황해서는 멈칫거렸다.
이안 또한 낯빛이 싸늘하게 식은 채로 눈알을 내려다봤다. 카렌나 시장이 인형인지를 물었건만, 대답은 뜻밖이었다.
“카렌나 시장 제외…라고 한 것 같은데요.”
“예, 부, 분명 그리 일렀습니다.”
“다르시, 다시금 움직여 보아. 지금 ‘카렌나 시장 제외’라고 한 것이 맞아?”
긍정! 긍정!
소도시라지만 인구수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의 주민들이 모두 인형화되었다면, 이는 실로 경악할 만한 상황이다. 인형이 아닌 자를 구분하는 것도 일이고, 무엇보다 토올룬의 병력이 바리엘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르시 부인은 열심히 문자판을 구르며 문장을 완성했다.
“카렌나 시장, 오닉스의 가족들이 인형이다.”
“아, 시장을 제외한다는 게 저택 한정이었군.”
휴, 그럼 그렇지. 오해했음을 깨달은 마법사들이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의문점.
“어째서 시장이 아니라 그 가족을 노린 거지?”
“…시장은 중앙과 어떤 식으로든 접점이 있을 것 같아서. 이를 숨기기 위해.”
시장직은 중앙에서 임명하는 자리. 중앙군과 접했을 때 금방 탄로 날 수 있다.
하나 그의 가족들은 시장에게 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중앙군과 마주할 일이 없을 터,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첩자 목적인 것이다.
마법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이안을 돌아봤다.
“카렌나 시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저택 정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곧 있으면 중앙군이 내려올 것인데 괜히 일 벌이기 전에 저희가 나서는 게 좋겠군요.”
“가능하면 줄을 자르는 쪽으로, 아니라면-”
“쩝, 어쩔 수 없지. 눈알 할멈. 혹시 주민들도 손댄 거 아니야?”
부정! 부정!
하완으로 넘어가느라고 그럴 시간 없었다며, 다르시 부인은 온 눈알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고는 일말의 기회를 눈치챘는지, 슬금슬금 제안했다.
“인형 스스로 실 끊기는 어렵다. 인형술사라면 가능. 자신에게 몸을… 주면 너희도 좋아. 실 끊고… 조용히 사라지겠다?”
“이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네.”
“우리가 너한테 몸을 왜 줘?”
“그래. 설령 준다 해도 또 어떤 식으로 뒤통수 후려칠지 압니까? 무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차라리 방법을 알려주면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는 게 낫지. 아니면 마법으로 파훼할 방법을 찾고.”
한목소리를 내는 마법사들.
이에 베릭이 툭 내뱉었다.
“에잇. 귀찮은데 싹 다 죽여버려.”
거 쓰레기통 좀 비워라, 하는 듯한 심드렁한 태도다. 이에 마법사들이 질겁했다.
“저, 저!”
“야, 베릭! 우리가 다 너같이 비인간적인 줄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리엘 주민들이라고. 얼마나 안타까워?”
“제일 깔끔하고 편한 방법인데 자꾸만 빙빙 돌아가려고만 하니까 그렇지. 걔들이 눈치채고서 이리저리 흩어지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 아님?”
“그래도 당장 흩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중앙에서 지원군 오는 중인 거 그쪽도 알고 있을 테니까, 전력 확인 위해서라도 돌발 행동은 안 할 거야.”
“그건 우리가 놈들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가정하에서고.”
이안은 지도를 찬찬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카렌나에 모여 있기만 한다면 문제없겠지만, 그들이 정보가 새어 나간 걸 눈치채어 사라진다면 참으로 곤란했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정신없는데, 놈들을 뒤쫓을 시간과 수고까지 더할 수는 없잖은가.
마법사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토올룬 왕이 생각하기에, 다르시 부인을 술술 다 털어낼 작자라 생각할까?”
“뭔가 딱 보니까 인성이 그렇긴 한데…. 근데 토올룬 왕이 먼저 다르시와 이어진 실을 끊어버렸다며? 술술 다 털어낼 자라 생각했으면 계속 유지하면서 감시했을 것 같은데.”
“아니면 싹 녹아버렸으니까 실토 못 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음. 그것도 일리가 있어.”
다르시 부인이 눈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마법사들이 소통하기 위해 문자판을 만들어냈을 거라 어찌 예상했겠는가.
이안은 칼라마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헤일, 토미.”
“예, 이안 님.”
“둘이 카렌나로 가서 상황을 정리한다. 인형술에 꿰인 자들을 색출하고 결박, 파훼해. 혹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단호히 처단하라.”
“…알겠습니다.”
“타국으로 이어지는 그림들도 모두 찾아내어 그 자리에서 없앨 것이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면, 바리엘 지원군이 클리포포드군과 합류하는 것을 확인한 뒤 칼라마트로 복귀하라.”
에리카는 하완이 바리엘과 함께할 것이라 일렀지만, 그녀는 이미 죽었다. 방향키를 잃어버린 거대한 함선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는 오로지 바람만이 아는 법.
이안은 다르시 부인에게 재차 질문했다.
“하완의 반란 수뇌부 중, 에리카와 부관 한 명이 인형화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 외에 다른 인형이 있는가?”
부정! 부정!
“그럼 되었다. 하완의 정리는 바리엘 지원군과 클리포포드에 맡기면 된다. 협상이든 전쟁이든, 이는 황궁의 명을 받고 온 자들이 판단할 일이지. 여기서 마법사들이 할 일은 끝났어.”
히엘로의 재건 또한 훗날 전쟁이 끝난 다음에야 할 일. 마법사들은 서둘러 칼라마트, 진 황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토올룬의 왕은 지금 진이 혼자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안 님, 한데 토미와 저 둘이서는 포탈을 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중앙까지는 어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칼라마트까지 단번에 길을 열 수는 없었다.
“일주일 정도 후에 칼라마트에서 포탈을 열어주는 건 어떠십니까?”
“좋다. 루스웨나 왕궁 위로 열 것이니, 일주일 후 저녁까지 준비를 끝내놓도록.”
이안이 눈짓으로 다르시의 눈알을 힐끗거렸다. 카렌나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면, 저자도 완전히 죽여버리라는 신호다. 이를 알아들은 헤일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리저리 문자판을 구르던 다르시 부인은 저를 두고서 은밀한 지시가 오갔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어찌하면 ‘몸’에 준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눈치다.
“그럼-”
헤일은 유리병을 들어, 다르시의 눈알과 젤리처럼 진득한 액체를 담았다. 다르시가 화들짝 놀라서 이리저리 돌아봤지만, 꽉 막힌 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중에 다시 궁금한 게 생기면 열어주겠다. 일이 잘 마무리되면, 그때는 그대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
이는 다르시 부인이 되돌려 받아야 할 벌이었다. 말만 잘 들으면 인형 줄을 끊어주겠노라 일렀던, 그 간악하고 오만하며 건방진 거짓말에 대한 벌 말이다.
다르시 부인은 걱정하지 말라며 연신 병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이안 님. 한데 지원군 말입니다. 누가 올 것 같습니까?”
“제국방위부 중 한 명이지 않겠나.”
“저는 혹 로만드로 님이 오실까 싶어서요.”
“로만드로 님이?”
“예. 히엘로령이니까 로만드로 님이 적임자지요. 물론, 군사적인 지원 외적으로 말입니다.”
거주했던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 마법부 장관의 직속 영지였다. 그러니 로만드로가 대신해서 가는 것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궁의 판단이 어떨지, 변경에 있는 이안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는 헤일에게 서류를 툭 내밀며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바리엘 지원군 틈에 누가 함께하고 있을지, 이안은 알지 못했다.
“혹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된다면 안부 전해주게. 우리는 모두 무사하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