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3
제683화. 지원군을 따라가다
‘마산타르 신전은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이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울창한 수풀에 사려진 신전 입구는, 인근에서 수십 년 동안 산 자들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산짐승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주위만 맴돌 뿐이다.
토올룬 왕궁에서 나온 관료가 숲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봤다. 걸음이 익숙했다. 졸졸졸 작게 흐르는 강물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평생을 살았던 신전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사아악.
신전은 백색의 네모난 건물이었다. 창문 하나 나지 않아 바깥에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전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서로의 신원을 확인했다.
너무나 적막하여, 그 어떤 사사로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곳답다. 관료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개울의 수원지에 서 있는 자를 발견했다.
“바누사 님.”
물의 정령술사 바누사였다.
그녀는 토올룬 왕궁이 어찌하여 이안 히엘로의 어미를 납치하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마산타르 신전에 와 있었다. 그녀의 곁을 이리저리 오가는 작은 정령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 보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때 국무회의 이후로는 처음 뵙는군요.”
“그날 이후 저는 계속 마산타르 신전에 와 있었으니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수도에 일이라도?”
“아아, 아닙니다. 걱정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바누사 님의 가문은 수도에서 소방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답니다. 다들 바누사 님을 그리워하는 것 외엔 모든 게 안정적입니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바누사는 대답 대신 다시 개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러 갈래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물줄기. 문득 경이로웠다. 끊임없이 흐르는 이것들이 한데 모여, 끝끝내 거대한 버고스의 젖을 이루는 것이다.
“예.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전하께서 바누사 님의 능력을 참으로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전하께서는 흡족하신데, 바누사 님께서도 그러십니까?”
왕궁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확인하셨습니까? 관료는 그리 묻고 있었다.
이에 바누사는 신전 위로 펄럭이는 신호기를 보며, 정령의 볼을 톡 두드렸다.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 여긴 너무 버거운 곳이더군요.”
“그러시다면 이해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다 아신 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들어가십시오.”
“예, 그럼 이만. 수도에서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바누사는 정령과 함께 물 위로 뛰어들었다. 온몸이 물방울처럼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버고스로 쏟아내는 물이 더욱 높아져야 했으니.
끼이익.
관료는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은 햇빛 하나 들지 않는 터라 대낮임에도 등불 없이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신관들의 안내에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계속 내려가, 숨 쉬는 게 조금 힘들다 싶어졌을 때였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하십시오.”
“좀 심하군.”
신관의 경고에, 관료가 흰 천을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썩어가는 마물의 사체를 한데 모아 뭉근하게 끓이고 있었으니 악취가 상당했다.
차마 견딜 수 없는지라 관료는 서둘러 등을 돌렸고, 신관들은 푹 끓인 마물 독을 흐르는 물길에다 쏟아부었다. 신전 밖으로 흘러나가는 물길이었다.
“한데, 인근에는 마물 독의 피해가 없는 것 같던데.”
“바누사 님 덕분입니다. 마물 독이 토올룬 국경지 밖으로 나갈 때까지 퍼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역시.”
콜록콜록! 관료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목을 가다듬었다. 대신관을 만나기 전, 몸가짐을 바로 하려는 게다.
이내 그가 되었다는 듯 고갯짓하자, 신관들이 거대한 문을 좌우로 열었다. 날카롭고 습한 열기가 화악 올라왔으나, 그는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하임에도 대신관의 뒤에는 창문이 나 있었다. 푸른빛 물이 가득 일렁여, 마치 물속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때, 창밖을 살펴보던 대신관이 고개를 돌렸고, 관료는 한껏 예를 보였다.
“라주 대신관님.”
“예, 오랜만입니다. 왕궁 생활은 할 만하십니까?”
“대신관님 덕분에 나라에는 평안함이 가득합니다.”
라주 대신관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관료는 유년 시절부터 신전 생활을 해왔으나, 대신관은 정말이지 변한 게 없었다.
“평안이 가득하다고 하기에는 주위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대의 잘못은 아니지요. 고개를 드십시오. 그래요, 왕께서 제게 전할 말이 무엇입니까?”
라주의 물음에, 관료가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이를 읽어내린 라주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왕께는 그저 걱정하지 마시라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침 신탁이 내려왔는데-”
투욱. 라주가 왕의 서신을 책상 위에 대충 던지자, 신관들이 물 담은 그릇을 갖고 왔다. 마치 부정한 걸 만졌다는 듯, 그는 손을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적합한 제물에 대한 신탁입니다.”
“적합한 제물이라 하시면, 왕가의 그것들 말씀이십니까?”
왕가의 그것들. 신과 같이 믿음을 근원으로 하는 자들이다.
계승한 자들을 바치는 게 제일이긴 하지만,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나. 하여 반쪽짜리 핏줄을 수급하며 기회를 노렸었다.
‘바리엘의 황가는 아쉽게도 실패.’
검은 씨앗, 아르센이 노렸던 그 황실의 계승자만 있었더라도 이리 일이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터.
지금은 어엿한 제국의 황제가 되어버린지라 이전과 같이 노릴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전쟁에서의 승리, 그것 외에 황제의 목을 가져올 방법이 있던가?
‘버고스 쪽은 다몬 왕이 잡혀가며 끊어졌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남은 것은 신의 현신, 그 자체다.
이안 히엘로, 신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나타난 자. 그림자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그 자체이니, 이자의 숨과 피만큼 그림자를 성장시키는 건 또 없을 게다.
하지만 이안 히엘로는 황제만큼이나 까다로운 자다. 마법이라는 기적을 방패 삼아 서 있었으니, 아쉽지만 당장은 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남은 것은…….
“왕가의 그것들과… 필리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필리아, 이안 히엘로와 육신을 함께 하는 여인이다. 신탁에 의하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 누구도 꺾지 못할 믿음이 존재했다.
신의 현신과 피를 나눈 것으로도 모자라 내면의 강함 또한 지닌 여인이라니. 제물로 이만큼 적합한 자를 찾기도 어려울 터.
“필리아에게 자식이 하나 더 있지요.”
“예, 여식이라 들었습니다.”
“피가 섞이긴 하였으나, 그 아이 또한 이안 히엘로와 육신을 함께하는 자입니다. 운명대로 움직였으니 마지막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겠군요. 왕께 긴장을 늦추지 말라 일러주십시오. 설령 제물로 바치지 못하더라도, 그자들이 가이아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 우리의 신께 상당한 도움이랍니다. 이해되시었나요?”
“예, 대신관님. 분명히 전언토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돌아가세요. 그대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내 간절히 기도합니다.”
관료는 넙죽 엎드리며 인사한 다음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 창문으로 보이는 물 너머로, 거대한 무언가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끼이익.
등 뒤로 문이 닫히자, 관료는 옷을 정리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필리아와 그 여식이 이동을 한다라. 지금 움직일 만한 경로는 히엘로 쪽밖에 없는데. 그쪽에 있는 왕의 인형은 카렌나…. 흐음.’
우선적인 목적은 그들의 죽음이요, 그다음은 시체를 회수하여 신전의 제물로 사용하는 것이다.
관료는 굳게 닫힌 문에 대고서 깊이 예를 보였다. 왕궁의 쿠마샤에게도 행하지 않는 마무리 인사였다.
그는 서둘러 나가자며 신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독한 마물들의 독내로 인하여 눈앞이 어지러웠으니까.
* * *
톡톡.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바리엘 장교가 마차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로엘은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채,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이안 히엘로의 동생 아니랄까 봐, 자세나 몸짓이 올곧았다.
로엘은 고개를 짤막하게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힘들게 이동하는 것은 제국의 병사들이지요. 걱정 거두시고 일 보십시오.”
“참으로 의젓하십니다.”
“히엘로의 동맹, 천려를 위한 걸음입니다. 하나 그 이전에 바리엘을 위한 걸음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로엘은 중앙에서 출발한 지원군 중 선발대에 속해 있었다. 마차를 탔다곤 해도 기동성을 위해 편의성을 상당히 포기한 상태. 게다가 오랜 강행군 중이니, 열 살 남짓한 아이가 견디기 힘든 게 당연하지 않나?
로엘은 마법부 장관의 동생이었고, 동시에 천려의 후계자라 들었다.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그래도 혹여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바로 일러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타닥타닥!
“속도를 더 내라!”
장교는 로엘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앞쪽에 명령을 내렸다. 마차가 옆으로 넘어질 듯 크게 흔들렸지만 병사들은 노련했다.
히엘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절대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타닥타닥!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한 무리. 발리주아드의 움직임이었다.
마력석 그림을 이용하여 그 누구보다 빠르게 물건을 전달해준다는 하완의 상단. 그들은 마법사의 공격이 히엘로에 닿자마자 중앙 쪽으로 대피했다.
“부인, 몸은 어떻습니까?”
국경을 허락 없이 넘나드는 자들인지라, 당국의 환영을 받지 못할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여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뜻밖의 돌파구가 나타났다.
바로, 필리아가 뒷골목에서 자신을 급하게 이동시켜줄 만한 자를 찾은 것.
“괜찮습니다! 더, 더 빠르게 달려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꽉 잡으십시오.”
필리아는 이안 히엘로의 어미이지 않나? 그녀를 도와주면 분명 언젠가 황궁의 자비를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부인, 하나만 묻겠습니다! 어째서 히엘로가 아닌 지원군의 뒤를 쫓는 것입니까? 이제는 말씀해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변경으로 가는 것이면 메렐로프로 이어지는 그림이 있었는데요!”
“제 아이를 찾아가려는 것입니다!”
“아이요?”
이안 히엘로에게 형제자매가 있었나?
그들은 메렐로프가 아니라, 중간 지점의 작은 마을로 이동하며 지원군의 흔적을 쫓는 중이었다.
“예. 제가 그리로 간다면 분명히 모두가 걱정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들, 나아가 마법사들에게도 폐를 끼치겠지요. 그러니 그쪽에 당도하기 전에 로엘을 만나야 해요!”
“흐음. 무슨 사정인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겠습니다. 지금 속도면 아마… 카렌나쯤에서는 지원군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카렌나요?”
다행이다. 히엘로에 넘어가기 전에 로엘을 잡을 수 있겠어. 필리아는 말고삐를 꽉 잡으며 안도했다. 그녀의 금빛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
한편, 로엘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이 지나온 길에는 흙먼지만이 자욱했다.
아이가 의아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본 것도 잠시, 저 앞으로 낯선 깃발이 크게 흔들렸다.
“장교님! 앞에-!
”카렌나 깃발입니다! 마중 나온 것 같습니다!”
카렌나의 경비병들이 그들의 깃발을 흔들며 신호했다. 이곳은 아직 괜찮으며,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노라!
멀리서 쌍안경으로 지켜보던 시장이 짧고 통통한 다리로 뛰어다니며 아내를 껴안았다.
“온다! 바리엘의 지원군이다! 우리는 이제 살았어, 여보!”
“어서 와라! 빨리!”
사람들이 환호하며 두 손을 흔들었다.
시장의 식구들 또한 마찬가지, 진심으로 지원군의 도착을 반겼다. 아주 진심으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