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4
제684화. 신과 그녀의 뜻
“어서 오십시오!”
카렌나 시장의 환대에 병사들이 안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도시에 당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이나 분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장교가 가볍게 고갯짓을 하며 물었다.
“카렌나의 오닉스 시장이시오?”
“예예, 그렇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지원군 본대는 뒤따라오는 중이겠지요?”
“물론이오. 우리는 선발대입니다. 도시 상황은 어떻습니까? 히엘로, 메렐로프와 관련하여.”
“어우, 말도 마십시오!”
시장은 아주 치가 떨린다는 듯 손을 내둘렀다. 메렐로프의 생존자들이 카렌나와 그를 중심으로 한 소도시로 피난 온 터라, 그날의 상황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다.
“히엘로는 완전히 궤멸했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열댓이 안 된다고 하네요. 그것도 모두 저택 지하 공간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고, 사실상 다른 생존자는 없다 합니다. 건물이고 뭐 길이고… 멀쩡한 게 없어서 완전히 평지나 다름없이 변했다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장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피해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히엘로는 변경이긴 하지만 유서 깊은 터라 인구수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죽다니, 쯧쯧.
장교는 슬쩍, 로엘이 탄 마차 쪽을 힐끔거리며 덧붙였다.
“다른 소식은? 예를 들어, 천려라든가.”
“그 미친 마법사가 쳐들어왔을 때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고 하던데, 거기까집니다. 그쪽도 거의 죽은 것 같더라고요. 히엘로 쪽은 사실상…….”
죽어버린 땅. 카렌나 시장은 그리 이르고 있었다.
장교는 작게 한숨 쉬며 서둘러 이동하자 손짓했다. 히엘로는 이미 무너졌지만, 아직 밀려들어 올 적들이 남아 있었다.
바로 하완과 루스웨나.
“그래도 바리엘 마법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주어 적들을 몰아냈다고는 합니다. 이것도 며칠 전의 소식이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요.”
“이안 장관님 말씀이시지요?”
“예예. 히엘로령의 주인이신 분. 저도 예-전에 그분은 한번 뵌 적이 있는데, 허허. 참으로 대단하신 분 아닙니까? 지금은 더더욱 장성하셨겠지요.”
카렌나 시장의 말에, 그의 부인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마차 안에는 누가 계십니까?”
“아, 예. 귀한 분이 계십니다.”
“어머. 귀한 분이라 하시면, 마법사?”
“아니요. 이안 히엘로 경의 동생이자 천려인인 분이지요. 우선 서둘러서 도시로 들어갑시다. 뒤따르는 본대에 연락부터 전하고, 가서 더욱 자세한 얘기를 듣는 게 좋겠습니다. 생존자들은 무사하지요?”
“네네, 그럼요. 다들 임시 피난처에 모여 있습니다.”
카렌나 시장이 사람들에 말을 돌리라 명할 때였다. 그의 부인이 장교에게 물었다.
“혹, 어린 여자아이입니까?”
“그렇습니다만.”
“하면, 마차를 옮기시는 건 어떻습니까? 군용 마차보다야 훨씬 나을 것입니다. 시중들도 함께하니 편리하기도 할 테고요. 시장기를 가실 간단한 음식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흐음. 좋습니다. 안 그래도 거친 여정 탓에 바퀴가 크게 삐거덕거립니다. 여쭈어 보도록 하지요.”
“직접 인사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장교가 로엘의 마차로 가서 창문을 두드리려는 순간이었다. 싱긋빙긋 웃고 있던 시장 부인이 낯선 기척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봤다.
이는 장교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뒤를 살피니 저 멀리, 그들이 내달렸던 길을 따라 누군가 오고 있었다.
“누구지?”
“확인해 보아라!”
지원군 본대 소속은 아닌 것 같건만, 전력으로 말을 달려 다가오는 게 미심쩍다. 부관은 신원 파악을 위해 쌍안경을 집어 들었다.
한편, 막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로엘의 눈동자는 점점 커졌다. 마치 한껏 움츠러들었던 이파리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어머니?”
로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장교가 당황하며 아이를 돌아봤다. 어머니? 필리아 부인을 말하는 것인가?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가 어찌하여 이곳에?
깜짝 놀란 것은 카렌나 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눈빛이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다는 것.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끼이익! 타앗!
“어머니!”
로엘은 필리아의 금빛 머리칼을 확인하자마자 마차에서 내려 달려나갔다. 다급하게 두 손을 흔들며 고개까지 내젓는 모습이 퍽 절박해 보였다.
“안 됩니다! 오시면 안 됩니다!”
자신이 보았던 어머니의 마지막. 그 광경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발 멈춰달라 애원했다.
“멈추십시오! 이, 이보게! 어머니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로엘 영애, 잠시 진정을-”
“당장 가서 어머니를 막아야 합니다! 히엘로와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로엘-!”
하지만 울음 섞인 어미의 부름은, 그런 로엘조차 멈칫하게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나의 사랑, 어머니…. 눈물을 머금은 채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결국 아이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외치고 말았다.
“더 다가오시면 죽게 됩니다!”
그러니 제발 돌아가시라. 다시 중앙으로 가 살아 계시라. 그리하면 운명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졌을 때, 다시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알고 있단다, 로엘!”
“……!”
필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고 있노라, 그리 일렀다.
로만드로의 저택에서 서신을 남길 때, 새벽을 기다리다 잠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누군가가 속삭여 주었기 때문이다.
“필리아.”
아아- 그것은 구슬처럼 맑고, 햇볕처럼 따스한 목소리.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제 이름을 불러대던 아들의 것이었다.
필리아는 자연스럽게 팔을 뻗었고, 이내 그녀의 품 안으로 안기는 누군가를 꼬옥 끌어안았다.
“필리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로엘의 뜻을 따르거나, 나의 뜻을 따르거나.”
“…알고 있어, 로엘!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너를 따라올 수밖에 없었단다!”
타앗!
말에서 내린 필리아는 로엘을 향해 달렸다. 결국 어미는 딸아이를 품 깊이 안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결에 끌어안았던 어린 이안의 온기 그대로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로엘. 너에게는 너의 뜻이 있고, 신께는 신의 뜻이 있으셔. 그리고-”
운명의 교차점에 서 있는 자 중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그 자리에 대신 설 수밖에 없지 않겠나.
로엘을 깊이 껴안은 채, 필리아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뜻이 있지. 이것이 내 뜻이란다.”
“어머니!”
“괜찮아, 로엘. 두려워할 것 없어.”
필리아는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장교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 갑작스러운 만남을 이해해 달라며 말이다.
장교는 두 사람을 부축해 일으켰고, 주위를 돌아봤다.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일단 마을로 이동하시지요.”
“예, 장교님. 그리고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부디 흘려듣지 말아 주세요. 위협이 닥칠 것입니다. 로엘을 노리는 위협이 너무도 선명하여, 제가 이리 올 수밖에 없었어요.”
“부인?”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라서 신비한 능력이 있는 걸까? 장교는 의아해하면서도 문제없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치 마십시오. 경계를 단단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동은-”
장교는 군용 마차의 상태를 스윽 살피고는 곧 마을 사람들이 갖고 온 마차를 가리켰다. 여인 두 사람이 타기에는 저것이 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리아의 말마따나 숨은 위협이 있다 하지 않나? 군용 마차는 적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저쪽 마차로 하심이 어떠십니까?”
“알겠습니다. 로엘, 이리 오렴. 엄마가 지켜줄게.”
모녀는 손을 꼭 붙잡으며 마차에 올랐다. 카렌나 시장이 뒤따라 올라타려 하자, 그의 부인이 제지했다.
“불편하시게, 무슨.”
“아니, 그래도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이신데 내가 옆에서-”
“제가 할게요. 걱정 붙들어 매시고 호위나 잘 서라 하세요.”
어딜! 부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카렌나 시장은 헛기침만 큼큼 해대며 마을 사람들을 돌아봤다.
“자자, 다들 돌아가지!”
“예, 시장님! 마침 마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연기? 신호인가?”
“네! 히엘로 쪽에서 누가 왔다 하는 것 같은데요.”
시장은 쌍안경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히엘로에서 마법사들이 온 것인가? 지원군 도착 신호잖아, 저거.”
중앙에서 오는 자들은 모두 시장이 있는 길목을 지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쪽에서 올 만한 지원군이 마법사 말고 또 있겠나? 여러모로 반가운 손님들이 몰려드는 터라, 시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보, 두 분을 잘 모시도록 해.”
“물론이에요.”
부인은 생긋 웃으며 마차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마치 한 몸처럼 딱 붙어 있는 로엘과 필리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붙든 채로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뭐라도 좀 드시겠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끼이익. 끽!
시장 부인은 두 번이나 더 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했고, 이내 마부에게 내달리라 명령하듯 천장을 쳐댔다. 그녀의 동공은 꺼져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알아채는 자가 없었다.
타닥타닥!
거칠게 흔들리는 마차 안. 카렌나 시장 부인은 턱을 괸 채 왼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이어 아주 예리하고 작은 단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
“응?”
문득 입을 뗀 로엘 탓에, 다시 소매 속으로 숨어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아까 신의 뜻이라고 하셨던 말씀 말인데요. 정확히 일러주실 수 있으세요? 저는 이해되질 않아서요. 분명히, 그분께서는 저에게…….”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여줌으로 뜻을 전했다 생각했는데요.
로엘이 뒷말을 흐리자, 필리아는 인자하게 아이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나중에 분명히 알게 되겠지.”
“저와 같은 것을 보셨나요?”
“그래. 그리고 훗날의 미래도.”
필리아는 로엘에게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나도 드디어 보았어. 이안의 본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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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베로시온. 100년 후의 황제. 서늘한 눈매의 벽안과 흘러내리는 금빛 머리칼.
로엘의 신비로운 녹안처럼, 필리아의 녹안 또한 미래를 엿보았다. 이는 스스로 선택한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었다.
‘…너무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어. 내가 오지 않아 로엘이 위험 속으로 내던져졌다면, 미래는 분명 그리 이어지겠지.’
필리아의 선택은 단순히 로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이의 손을 꽉 잡은 채로 창밖을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창에 비친 카렌나 시장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스윽.
돌연 피어오르는 기시감.
저 눈빛, 어디서 봤더라? 필리아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갑자기 부인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웃었다.
“……!”
그제야 떠올랐다. 인형술사, 한밤중의 거리에서 자신을 납치했던 그 인형술사들!
그 순간 시장 부인이 있는 힘껏 필리아에게 덤벼들었다. 마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타닥타닥!
“아아아악!”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찢어지게 울렸지만,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점차 피로 물드는 커튼 또한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왜 하필 오늘따라 마부의 귀는 어두운 것인지, 커튼은 붉은색 벨벳인 건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마부의 코 훌쩍이는 소리와 멀찍이 뒤따르며 ‘저 마차도 바퀴가 이상하군’ 중얼거리는 병사들의 말소리만이 흐를 뿐.
* * *
“이안 님?”
루스웨나 왕궁.
칼라마트로 돌아가기 위해 포탈을 연 이안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섬찟한 기운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가 히엘로령 방향을 바라보자, 마법사들이 웃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괜찮습니다! 헤일 대장이랑 토미가 잘 마무리할 거니까요.”
“…그래.”
잘 하겠지. 그림 통로를 없애고, 인형 몇몇을 처치하는 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은 괜한 기운을 털어내며 등을 돌렸다.
“돌아가자, 칼라마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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