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5
제685화. 임무 보고
무심하게 서류를 넘겨대던 진의 손짓이 멈칫거렸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자들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가 싶어 목을 움츠렸다. 자그마한 실수도 놓치지 않으시고, 앞과 뒤가 다른 것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다. 언성을 높이는 것보다 차분한 질책이 무서우신 분.
“폐하, 혹 무슨 문제라도…….”
신하가 걱정스레 물은 것이 무색하게도 진의 낯은 온화했다. 서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그저 조용히, 창밖을 돌아봤다.
“기척이 느껴지는데.”
“기척이요?”
별안간 무슨? 신하들의 시선이 진을 따라 움직였으나, 그 누구도 ‘기척’이라 이를 만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은 확신하는 듯 보였다. 펜을 완전히 놓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 게다.
똑똑.
그때였다. 바깥에서 시종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어지간한 일로는 인기척을 내지 않건만, 이는 무언가 중대한 일이 생겼음을 바로 짐작게 했다.
“폐하. 엘바사에서 마법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어이쿠. 중대한 일, 맞는군. 신하들은 고개를 숙이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엘바사라 하면 루스웨나의 수도. 갑작스러운 히엘로령 공격에 맞서 떠난 마법사들이 국경을 넘어 엘바사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폐하. 이안 경이 큰일을 해내었습니다.”
“엘바사에서 바로 올라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전쟁의 보고와 황제의 호위를 모두 아우르는 귀환이다. 진은 옷깃을 가볍게 매만지더니, 서둘러 가겠노라 일렀다.
“응접실에서 대기하라 하도록.”
“예, 폐하.”
“경들도 여기까지 하고 일어납시다. 마법사들이 돌아왔다고 하니, 우리끼리의 의논은 더 이상 무의미하오.”
“옳은 말씀입니다, 폐하.”
“서류는 대강 갈무리하여 정리하도록.”
진은 그리 이르고서 먼저 회의장을 나섰다. 발걸음에 반가움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은, 비단 한 명만 느끼는 착각이 아니었다. 신하들이 웅성대며 종이를 그러모으는 동안, 트웰러는 가만히 서서 진의 뒷모습만 지켜봤다.
“왜 그러십니까, 트웰러 장관?”
“…아닙니다.”
눈빛에 스쳐 간 무언가가 있는데, 트웰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지워냈다. 그는 벌써 저만치 멀어진 황제의 뒤를 따라, 응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앗!
응접실은 그리 멀지 않았다. 칼라마트 성 자체가 바리엘 황궁에 비하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착각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반가운 마음에 정신이 빼앗겨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응접실로 들이닥치는 발걸음은 황제의 것만이 아니었다.
“폐하!”
“아코렐라 대장.”
“이안 님 오셨다고 해서. 나하핫. 들어가시지요!”
바로, 광산엘 다녀온 아코렐라와 그 부하들. 헐레벌떡 로브를 휘날리며 뛰어오던 아코렐라가 황제를 발견하고서 침착하게 멈춰 섰다. 뒤집힌 머리와 로브는 손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진의 눈짓에, 시종이 응접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꽤 초췌한 몰골의 마법사들과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베이고 긁힌 상처는 기본이요, 씻어낼 수 없는 피곤과 혈향(血香)에 절어 전쟁의 흔적을 은근히 풍기었다.
“이안 경.”
“폐하.”
진이 들어섬과 동시에 이안과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진은 되었다는 듯 손짓하여 그들에게 편히 있으라 지시했다.
“어찌 되었던가?”
히엘로는? 대사막의 전사들은 무사해? 엘바사에서 온 것이라 하니 루스웨나는 짐작되건만, 하완은? 그 방종한 왕, 엘더트는? 물어볼 게 산더미인 터라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이안은 잠시 시선을 내리더니, 진에게 보고했다.
“…생존자가 몇 있긴 하지만, 히엘로는 궤멸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대사막의 전사들이 막아내기에는 금기의 마법사의 힘이 너무 아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진이 멈칫거렸다. 오래전, 마리브와 게일의 내란 당시 포탈을 통해 날아들던 전사들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누군가는 야만족이라 이르지만, 의리와 긍지를 아는 강인한 전사들.
스윽.
모두 숙연하게 침묵하는 와중, 베릭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쓸어 만졌다. 사막의 별을 온전히 담고 있던 네르사른의 마지막이 생각난 게다.
그에, 진 역시 기억했다. 약혼식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베릭과 우스꽝스레 춤추던 모습까지.
“…안타까운 일이로다.”
“금기의 마법사는 루스웨나 왕궁 마법사 소속임을 확인하였고, 이에 히엘로는 변경 자치권에 따라 루스웨나에 정식으로 항의했습니다. 다만 원활한 소통이 불가했던지라, 히엘로는 루스웨나 국경을 넘어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보고는 마법부 장관이 아니라, 히엘로령의 영주로서 이르는 말이었다. 제 사람과 땅을 짓밟은 루스웨나에게 그 잘못을 직접 묻고 왔노라고.
“하면?”
“주인 잃은 왕궁 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왔습니다.”
엘더트는 죽었다. 그리고 루스웨나의 수도 엘바사는 함락되었다. 고작 며칠에 불과했지만, 모두에게 파괴적인 전쟁이었다. 이안은 그 결과를 이 한 문장으로 일렀다.
“수도 외 다른 영지는?”
“입장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모두 현명한 선택을 할 것입니다. 현재 엘바사의 뒷정리는 클리포포드 왕국의 노아 왕자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엘바사 지하에 마력석 그림이 있는데, 그게 클리포포드와 맞닿은 남부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클리포포드.”
가이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에 서 있는 말들이 제각각 움직이는 기분이다. 토올룬에서 내려오는 오수(汚水)가 지금쯤이면 클리포포드에 닿고도 남았으리라.
“그쪽도 난감하긴 하지. 본진에서는 버고스의 젖을 따라 조사단을 파견했다. 오수의 근원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조처 시일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 중에는 클라크가 섞여 있어.”
“클라크가요?”
“하도 히엘로로 보내달라 성화라, 내 기회를 주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신분을 내리겠노라고 말이다. 그 외 조사단에는 성기사 에이린도 함께였지만, 진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셨습니까.”
이안은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클라크가 선택한 길이니 그가 무어라 하겠는가? 메렐로프도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이다. 그저 기왕 떠난 거,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 여길 뿐.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폐하, 하완 쪽 말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하다니?”
“동쪽 끝, 블라스터해(海) 너머의 나라와 연이 닿아, 마법사에 대적할 만한 신무기를 손에 넣었더군요.”
“무어라?”
마력봉인석과 이드갈 외, 마법사에게 대적할 만한 무기라는 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신의 힘을 이은 자들이지 않나?
“화총이라는 것입니다.”
이안은 전투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것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 사정거리, 파급력 등. 이미 미래에서 한번 보았던 무기인지라, 그것이 초기 형태라는 것까지 더하여.
“버티 에리카의 말에 따르면, 수뇌부들이 그쪽 마법사들과 접촉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인형술사의 공격에 말을 잇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로써 하완에도 토올룬의 마수(魔手)가 깊이 자리 잡았다는 걸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하완뿐이겠는가? 당장 바리엘의 지방 소도시 카렌나에도 인형술사의 마수가 뻗쳐 있었다.
하나둘, 머릿수를 세어보던 아코렐라가 손을 번쩍 들어 물었다.
“이안 님. 헤일 대장과 토미가 안 보이네요? 설마 죽었습니까?”
“허억, 아코렐라 대장! 그 무슨 불경한……!”
“아니, 왜요. 그냥 질문이잖아요, 질문!”
두 눈 똑바로 뜨고서 떵떵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코렐라다. 이안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렌나에 인형술사가 숨어 있다는 첩보가 있어, 정리하고자 파견했다. 나중에 복귀할 것이다. 별일이 없다면 아마 사흘 내로.”
“아하.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아코렐라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안도했다.
다소 살벌하긴 했지만 아주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었다. 무려 금기의 마법사들과 대적하였으니, 사실상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라 할 정도 아니겠나.
“대단들 합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금기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지 멀쩡히 돌아왔는지… 진짜 궁금합니다.”
“히엘로를 공격했던 마법사 외, 나머지는 모두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몰락한 자들이었다. 토올룬 왕의 지시 아래에서 움직이는 터라 기회가 있었어.”
“왕의 신경과 연결된 것도 확인되셨고요?”
“그래. 마주했다.”
“아하.”
시발 것. 아코렐라는 싱긋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광산 개발 잘 하다 칼라마트로 불려 온 게 바로 그 망할 토올룬 왕 때문이지 않나.
“그런데 이안 님. 예상외로 토올룬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금방이라도 밀고 내려올 줄 알았는데요.”
인형으로 감각을 공유한 토올룬은 전황을 분명히 파악했다. 마법사들 대부분이 히엘로에 있다는 것, 칼라마트에 있는 황제의 호위가 비어 있다는 것까지.
기회라 하면 다시없을 기회였는데-
“정찰병도 그렇고, 저희도 계속 교대로 북쪽을 정찰했습니다만, 특이 사항이 없습니다. 오수 조사를 위해 올라간 조사단에서도 연락이 없고요.”
토올룬은 조용했다. 광산 개발 때려치우고서 칼라마트로 돌아온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아코렐라의 전언에, 이안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그래?”
아직 놈들이 당도하지 못한 것일까? 일반적이라면 그게 당연했다. 토올룬 수도에서 칼라마트까지는 꽤 먼 거리였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토올룬이다.
‘카렌나처럼 작은 소도시에도 인형이 있는 판국에, 버고스의 수도인 칼라마트에 인형이 없다? 이상하다. 우리가 엘바사를 정리하고서 여기로 넘어오는 그 잠깐의 틈. 그것이 두 번 없을 기회라는 걸 토올룬 왕은 알았을 게다.’
이미 토올룬과 바리엘 사이에 전운(戰雲)이 짙어진 터라, 정세 때문에 망설였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실패하든 성공하든, 진의 목숨을 노리기 위한 시도가 있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
‘인형들이 아니더라도 정령술사들이 있지. 바람의 정령술사라면 기동력도 상당히 우수할 터인데.’
필시 ‘움직이지 못할’ 사정이 토올룬 내에서 있었으리라. 이안이 그리 판단을 내리고는 진에게 제안했다.
“우선은 저희가 돌아왔으니 토올룬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스타나의 증언이 공식으로 황궁에 도달하면, 그때 움직여도 문제없습니다.”
필리아의 납치에 토올룬이 엮여 있음을 증언하는, 카티마코의 공식 문서 말이다.
물론 토올룬에서는 전면으로 부인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곳곳에 놈들의 눈과 귀가 숨어 있으니 이를 쳐내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구분이 가능한가?”
“쉽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조력자가 있습니다. 너무 괴이하여 폐하께 보여드릴 수 없음이 송구합니다.”
뭔데? 아코렐라가 눈짓으로 물었으나, 마법사들은 고개만 설레설레 저어댔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다르시 부인을 아코렐라가 본다면 반응이 어떨지는 불 보듯 빤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정돈된다면 황궁에 알리시어 대대적인 수색을 하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폐하.”
“물론일세, 이안 경. 사특한 것들이 인두겁을 뒤집어쓰고서 바리엘에 숨어 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모두 애써 주시게.”
“예, 폐하.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진의 음성이 단호하고 지엄했다. 나름의 큰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음에도, 마법부에게는 쉴 여유 따위 없었다.
이에 밖에서 일렬로 선 채 대화를 듣고 있던 신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지금 고작 열댓에 달하는 수로…….
“마법부가 다른 도움 없이 루스웨나를 저, 정리하고 왔다는 말인가?”
“지금 들리는 말로는 그런 것 같은데…….”
“허어. 허허.”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 굉장한 사안을 어찌하여 이안과 마법부는 대수롭지 않게 전언하는 것인지. 그리고 폐하께서는 왜 그리 놀라지 않는 것인지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