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7
제687화. 한 줄기의 사랑
“마법사다!”
누군가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카렌나로 몰려온 피난민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이내 얼굴마다 떠오르는 두려운 기색. 아주 찰나였지만 그것은 지옥을 경험한 자들의 얼굴이었다.
반면, 카렌나 주민들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마법사라는 존재에 조금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마법의 힘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두려운지 직접 보았다면 저런 눈빛을 내지 못하였을 터.
“바리엘 황궁 마법사인 것 같습니다!”
“오, 세상에! 마법사라니!”
로브에 새겨진 금박의 황금 무늬가 그들의 신원을 말해 주었다. 피난민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손날로 그늘을 만들어 누구인지 살폈다. 이안 님인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나이가 많고, 머리색이 짙다.
타앗!
헤일과 토미는 사람들이 모인 한가운데에 가볍게 착지했다. 이어 황궁 소속 마법사임을 알리기 위해 신분증을 꺼냈고, 거두절미, 본론을 일렀다.
“황궁 마법부 소속, 헤일 대장입니다.”
“토미입니다.”
“카렌나 시장의 저택이 어디입니까?”
“시장님의 저택이요?”
전쟁은 어찌 되었는지, 히엘로의 상황은 괜찮은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허락되지 않을 듯했다. 마법사들의 단호한 얼굴에 한 주민이 손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큰 저택입니다. 그런데 시장님은 지금 안 계세요. 요 인근에 도착한 중앙 지원군 마중 나가셨거든요.”
“오히려 잘되었군요.”
헤일과 토미는 저택 내부, 토올룬 술사들이 사용하는 마력 그림 통로를 파괴하는 것을 첫 번째 임무로 삼았다.
그다음은.
‘인형으로 전락한 시장 일가 몰살.’
시장이 없다면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제아무리 상황을 설명한다고 한들, 시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겹지 않겠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을 나누던 가족인데, 인형이 어쩌고 지배가 저쩌고…. 곤란했다. 수습은 일단 임무를 수행한 다음이다.
우우웅!
헤일과 토미가 저택 방향으로 날아가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주민들도 바삐 움직였다. 황궁 마법사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택의 주인인 시장이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은 연기를 피웠고, 멀리 나간 시장이 알아볼 수 있게끔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한편-
“어머, 누구십니까?”
“황궁 마법사다. 별채가 어디지?”
“자, 잠시만요!”
저택 정원. 시장의 사용인들이 반사적으로 마법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법사든 아니든, 시장 저택에서 이게 무슨 행패란 말인가? 그들이 잠시 기다려 달라며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잉!
헤일이 마력을 풀어내어 금안을 개방했다. 순식간에 사람의 눈동자가 짐승의 것과 같이 변하니, 사용인들은 압도되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마법부 장관님의 명이다. 나아가 황궁의 뜻이기도 하지. 괜히 훼방을 놓았다가는 목숨을 보전치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별채는 어디지?”
“저, 저쪽입니다.”
“토미.”
“네, 대장.”
별채로 들어온 토미는 어렵지 않게 과일 정물화를 발견했다. 복도에 떡하니 걸린 술사들의 통로. 토미는 불씨를 만들어 그림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사사삭!
그리고 동시에 헤일은 시장의 가족을 찾았다. 부인과 자식들, 모두 그가 돌아오기 전 정리하리라.
하지만 저택 어디에도 주인 일가는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인 소란에 내다볼 법도 한데, 뭔가 이상했다.
“시장의 가족은?”
“지원군 마중 가신 시장님과 동행 중이십니다. 그, 금방 돌아오실 것입니다.”
이런. 헤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막 그림을 태우고 나온 토미에게 손짓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토미. 우리가 그쪽으로 간다. 중앙 지원군에게 허튼수작 부리기 전, 처리하자.”
“예, 대장!”
촤아악!
로브를 휘날리며 나는 모습은 가히 장엄하여 말문이 막히는 수준이었다. 세상에, 인간이 어찌 저리 자유롭게 하늘을 누빈단 말인가?
사용인들은 멍하니 그들을 보고 있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바, 방금 마법사들이 처리한다고 말했지?”
“서둘러 따라가자!”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람…….”
얼마 후.
헤일과 토미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마차와 중앙 지원군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아했다. 아무리 선발대라고는 하나 그 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헤일이 인상을 찌푸리자, 토미 역시 미심쩍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장,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게. 선발대 중에서도 기동대만 따로 추려 내려왔나 보군.”
“그게 아니라요, 저 마차요.”
“마차?”
토미의 말대로, 중간에서 달리는 마차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부 또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마중 나갔던 시장 일행이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혹시?
촤아아악!
인형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걸 수도!
헤일이 빠르게 하강하여 마차 앞을 가로막았고, 마부는 화들짝 놀라 고삐를 잡아당겼다. 부관들 역시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려다 황궁 마법사임을 알아보고는 말 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히이잉!
“워워.”
“마법사님들 아니십니까?”
“어쩐-”
달리는 것을 멈추자 삐거덕거리던 바퀴가 잠잠해졌고, 말들의 헐떡임도 잦아들었으며, 덩달아 바람마저 고요해졌다. 그제야 그들은 마차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신음과 울음을 인지했다.
“흐, 흐윽, 흐윽…….”
“아아…….”
헤일은 망설이지 않고 마차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러자 풍겨오는 비릿한 피 냄새. 이어서 보이는 것은-
“필리아 부인!”
“로엘!”
필리아와 한 여자가 피범벅이 된 채 마차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로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여자를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지, 무력감과 공포에 짓눌러 같이 엉겨 붙은 자세다.
헤일은 당장에 여자를 끌어내리려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이내 범상치 않은 괴력에 당황했다.
“이, 시발!”
인형이다. 그렇지 않고서 평범한 여인이 이런 손아귀 힘을 낼 수는 없다.
사태를 파악한 토미가 반대쪽 마차 문을 열어젖혀 여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아아아악!”
퍼엉!
마력을 터트려 그대로 여자의 숨을 끊어냈다.
동시에 사지 힘이 풀리며 필리아 위로 시체가 털썩 주저앉았고, 로엘은 울부짖으며 그를 받치려 했다.
“자, 잡아주세요. 잡아주세요. 제발요. 엄마 배에…….”
“부인! 괜찮으십니까?”
“이것 좀 내려주십시오. 세상에, 부인!”
“무슨 일입니까? 피는 또 무슨… 헉! 여보!”
오닉스 시장과 장병들이 달려와 상황을 보고서 기함했다. 처참하여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현장이다.
한때 ‘오닉스 부인이었던 것’을 바닥에 팽개치자, 신음을 앓는 필리아가 드러났다. 드레스는 피로 젖어 있었고, 보이는 살갗은 모조리 베였다.
“로…엘…….”
“엄마, 엄마.”
“…괜찮니?”
필리아는 겨우 손을 들어 로엘의 어깨를 보듬었다. 단검을 손으로 막았던 것인지,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그녀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찢긴 로엘의 어깨.
“미안해.”
막을 수 있었는데, 마차가 너무 흔들려서 빗겨갔나 봐.
필리아는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었지만, 로엘은 말없이 이마를 어미의 가슴팍에 묻었다. 뜨겁고, 또 뜨겁다. 숨이 오르고 내리는 게 너무 힘겨워, 자신 또한 숨을 내쉴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누구에게 비는 것일까.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법사와 장병들에게 비는 것일까, 아니면 저 드넓은 하늘로 자신을 품고 있는 신께 비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함께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살려달라 애원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필리아의 숨이 점점 옅어지고 있음을 인지한 헤일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부인. 실례합니다. 토미, 내가 붙들고 있을 터이니, 마을로 가 의사를 데려와.”
“아, 아아! 네!”
너절해진 손마디가 애처롭다.
헤일은 쿵쿵 뛰는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히고서 마력을 개방했다. 치유 마법사가 아니기에 그의 마력이 필리아에게 어떤 효과와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지이이잉! 지잉!
헤일의 마력이 필리아에게로 조금씩 흘러 들어가자,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부인?”
…제발, 제발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헤일은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중앙에 있어야 할 필리아가 어찌하여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차 문을 열었을 때 보았던 그 잔혹한 광경마저 환상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필리아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아. 따뜻하네요.”
좋아요. 이것이 여섯 번째 감각일까요. 이를 공유하는 분들이시니… 이안도 이러한 따뜻함을 느꼈겠네요.
“…고마워요.”
그녀의 인사에, 헤일은 문득 북쪽 평원에서 이안과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법사들이 나눠준 마력을 따뜻하다 이르며 웃던 그 모습을.
필리아와 이안의 외모가 너무 닮아서일까, 아니면 따뜻하다 이르는 음정이 더없이 평안해서일까. 헤일은 자신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살려내겠습니다.”
필리아는 눈을 감은 채 빙긋 웃었고, 로엘은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려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다른 손은 계속해서 딸아이의 손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로엘. 내 말이 들리니?”
“말하지 마세요. 제발요. 미안해요. 제가-”
“미안해하지 말렴.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나는… 오히려 신께 감사해. 너와 이안이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셨으니까.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해.”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괜찮아.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란다.”
필리아, 저의 죽음이 두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그녀는 확신에 차 있었으며, 거짓 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면.
“저기, 헤일 대장님. 몸이 점점 추워지는데, 더 따뜻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세상에, 부인.”
죽음을 앞둔 자의 부탁이었다. 마력을 이렇게나 넣고 있는데도 별다른 차도가 없는 것이다.
헤일은 계속해서 마력을 넣으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종이와 펜을 주시오! 어서!”
“아, 자, 자, 잠시만요!”
서둘러 이안 님께 알려야 했다. 칼라마트에는 치유 마법사도 있고, 황궁의도 있으니, 그쪽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가장 좋다.
다만, 문제라면-
“부인. 주무시면 안 됩니다. 눈 뜨십시오.”
필리아의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것. 계속해서 미친 듯이 마력을 넣고 있기에 겨우 버텨내는 중이라는 것.
조금이라도 힘을 줄였다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뭘 어찌할 수 없었다.
“대장! 여기 의사입니다!”
토미가 잡아끌다시피 데려온 의사가 휘청거리며 착지했다. 하지만 왕진 가방을 품에 들고 있음에도, 그는 필리아의 상태를 보고서 멈칫거릴 뿐이다.
“어쩌다 이리…….”
한눈에 봐도 여기저기 찢기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손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토미, 포탈 열어서 이안 님께 연락한다. 나는 필리아 님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어.”
“하지만 저 혼자서는 마력이 부족합니다.”
“쪽지 한 장, 그만한 크기면 된다. 전하기만 하면 거기서 다시 포탈 열어 올 거니까. 거긴 아코렐라 대장이 있잖아.”
필리아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조금만 버티면 이안이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진짜 조금만…….
“…하아, 하아.”
이제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청명한 하늘이 점점 환해지며, 온 세상이 백색으로 물드는 것 같다.
점점 아득해지는 시야 속, 무언가 아른거린다.
“아.”
이안이니?
손을 뻗어 보았지만, 마치 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필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안에게 웃으며 속삭였다.
“고마워, 이안아. 그리고 사랑한단다. 언제나…. 내 아들이 되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 말렴. 어디에서나…….”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필리아는 희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네르사른 님을 못 뵙고 가서 아쉽구나. 내 사랑들. 부디… 웃어주렴.”
* * *
검붉은 피와 흰 피부는,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
이안은 툭, 떨어지는 필리아의 손을 붙잡고서 한참이나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꼭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잠든 것 같다.
필리아는 영원의 잠 속에서 웃고 있었지만, 이안은 영겁의 침묵 속에 갇힌 사람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저의 어미를 내려다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