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8
제688화.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법
이안의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필리아의 시신을 수습하고 혼절한 로엘을 안아 들어 시장 저택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단 한 음절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반듯한 자세로 앉아 노을 지는 바깥에 시선을 고정하고만 있을 뿐.
헤일과 토미는 걱정스레 눈빛을 주고받았으나,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헤일, 토미.”
한참 만에 입을 뗀 이안의 목소리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바삭거렸다. 눈물 한 방울 바깥으로 내지 않았음에도, 온몸의 물기가 증발하여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헤일은 즉각 반응하여 이안 쪽으로 몸을 틀었다.
“예, 이안 님.”
“칼라마트로 돌아가지.”
“저만 말씀입니까?”
“아니, 우리 모두.”
헤일과 토미의 임무는 끝났다.
이안 역시 카렌나에 계속 있을 이유는 없다. 중앙의 지원군이 순차적으로 당도하여 루스웨나 쪽을 수습할 터이니, 그들은 칼라마트로 돌아가서 본대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는 게 맞았다. 그것이 원래 계획이지 않나.
“하지만 이안 님-”
토미가 안타까운 투로 덧붙였다.
“조금 더 계셔도 됩니다.”
미래의 황제라 밝혀진 이안의 정체.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들은 이안의 마법부원이었고, 필리아는 이안의 어미였던 게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그러했다. 어미가, 그리고 아비가 떠난 마당에 어떤 자식이 마음을 쉬이 추스를 수 있단 말인가.
“칼라마트로 돌아가면 정신없으실 겁니다. 차라리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마차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와 인형이 함께 엉켜 있었다고 했지. 그리고 토미, 자네가 인형을 먼저 터트려 죽였고.”
“예? 아, 예예. 그렇습니다.”
느닷없는 물음에 토미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이안은 혼자 중얼거리듯,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토올룬에서는 어머니의 시신 혹은 죽음이 필요했다. 아마 죽음보다는 시신 쪽이 더 간절했으리라. 그러하였으니 납치라는 수단을 먼저 사용했던 것이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차라리 없애 버리는 걸 선택했다. 이안과 마법부가 루스웨나에서 칼라마트로 이동하는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저들이 어찌하여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놈들은 인형으로 어머니, 혹은 로엘을 해하려고 했어. 하나 완전히 숨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는지 채 확인하기도 전에 연결이 끊어졌다.”
“…필리아 님의 생사를 모를 거란 뜻이군요.”
이안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니 놈들은 내 움직임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죽었다면 칼라마트에 있던 나는 다시금 이쪽으로 이동했을 것이고, 죽지 않았다면 다른 식의 움직임을 보였을 테니. 토올룬은 이를 확인하느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게다.”
이안이 필리아를 보러 갔다면, 다시금 칼라마트에는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닌가. 아마 토올룬 왕의 부작용과 여러 사안이 맞물려 쉬이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자신의 어미와 관련이 있었구나. 실로 헤아리지 못할 변수다.
“그러니 이제 되었다. 이걸 칼라마트와 중앙에 알려 다음 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잠시만요, 이안 님.”
헤일이 조심스럽게 이안의 팔을 붙잡았다. 그런 것 말고, 칼라마트와 토올룬이 이러고 자시고를 떠나서,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눈앞의 이안이었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정말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째앵!
“꺄아아악!”
그때였다. 바깥 복도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놀란 헤일과 토미가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이안이 그들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소란이 들린 곳은 로엘의 침소.
벌컥!
“……!”
문을 열어젖힌 이안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흰색의 침대보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던 것이다.
로엘은 두 손으로 눈을 감싼 채 어깨를 들썩였고, 바닥에는 주전자와 그릇 따위가 깨져 있었다. 놀란 시종이 떨군 것 같다.
“로엘.”
이안이 달려가 아이를 살폈다. 로엘의 턱을 타고 피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서는 아니 된다, 아가.
이안은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듯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들리는 것은 로엘의 흐느낌뿐이다.
“로엘. 나를 봐라. 토미, 치유 마법사와 의사를 호출해.”
“아, 예예!”
하지만 로엘은 힘을 강하게 주며 손을 떼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하며, 너무도 서글퍼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 로엘.”
“제가 이런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죽는 일은 없었겠지요. 없어 마땅합니다. 부모를 죽이는 이런 눈 따위.”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저 보임으로 인하여 떠난 것인데, 어미가 죽었다. 아비의 죽음을 보았을 때도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렸다. 당최 도움이라고는 하나 안 되는, 보고 싶지 않은 것만 보여주는 눈 따위…….
“저주의 씨앗입니다. 불행의 근원이에요.”
“그렇지 않아. 로엘.”
이안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다시금 그의 옷이 피로 더러워졌다. 필리아의 피를 지나, 이번에는 로엘의 피까지.
이안은 이 지긋지긋한 비린내에 대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제발 그만 떠나가라고, 꼭 흘러야겠다면 눈물로 지워질 만큼만 흘러 달라고.
“어머니는 너와 나를 위해 선택하신 거다. 너의 눈과는 무관한 일이니, 자책하지 말아 다오.”
이안은 넋이 나간 것처럼 허공을 바라보다가, 로엘을 으스러지듯 껴안았다.
“…제발.”
버티지 못하면, 아니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모든 게 터지고 무너질 것 같은 고통이다.
이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차마 토해내지 못할 울분이 목구멍 아래에서 뜨겁게 요동치며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댔다.
그는 울고 있었다.
제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없이.
“오라버니.”
품에 안긴 로엘이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보입니다. 계속해서 보입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눈 감는 것으로는 외면할 수 없나 봅니다.”
“로엘, 진정해.”
“어머니는 이미 없는데, 이런 걸 보여줘서 무엇 하겠다고!”
깊은 어둠 속에서 단편적인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필리아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로엘이 죽었더라면?
“아아아악!”
사막의 전사들이 영원토록 모래 속에 잠겨 역사에 묻히고, 히엘로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요, 이름을 비롯한 모든 게 바뀌고, 필리아는 네르사른의 죽음을 알고서 슬픔에 자신을 놓을 것이며, 주인 잃은 시체는 토올룬으로 흘러가 갈기갈기 찢긴 채 신전…….
“신전.”
발작하던 로엘이 우뚝 멈추었다. 번개처럼 휘몰아치던 어둠이 잠잠해졌다. 고요 속, 아이는 이안의 품에 안긴 채로 서늘한 목소리를 내었다.
“신전, 그것을 메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의 죽음은 의미를 잃어요.”
이안은 어렵지 않게 그것이 마산타르 신전임을 알아챘다. 지하신의 근거지이자, 회귀의 단서가 깃들어 있는 장소.
서로를 붙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타닥타닥!
콰앙!
“이쪽입니다, 의사 선생!”
“이런, 이런!”
그때, 토미가 의료진과 함께 들이닥쳤다. 스스로 눈에 흠집을 낸 아이라니. 의사는 아연실색하며 재빨리 로엘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이안이 뒤로 물러나자, 스르륵, 로엘의 손 또한 떨구어졌다.
“실례합니다. 가림막을 쳐 주십시오!”
촤아악!
의사의 말에 시종들이 천을 갖고 와 로엘을 가려주었다. 다들 다급하건만, 정작 아이는 평온했다. 로엘은 뭔가를 깨달은 듯 조소를 띠었다.
‘윈첸 님도 이랬던 걸까요.’
앞이 보이지 않았던 사막의 지도자, 윈첸. 그녀가 걸어왔던 과거에도 눈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 아픈 순간이 있었을까.
로엘은 천 뒤에 서 있을 이안에게 일렀다.
“오라버니는 칼라마트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대사막으로 가겠습니다.”
“…….”
“사막으로 가서, 전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천려를 재건하는 게 저의 임무이자 운명임을 압니다. 다들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나이임에도 감당할 것이 너무 많아 버거웠던 그 어린 시절 말이다. 가능하다면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 이르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안은 침묵했다.
“히엘로의 혈맹, 그 맥을 이어받아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터이니 오라버니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할 수 있습니다.”
잘할 수 있다. 해내야만 한다. 아비가 지키려 했던 것이고, 어미가 희생하여 일구어 준 기회다.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로엘을 살피던 의사가 멈칫거리며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계속해서 흐르는 피눈물 탓에 치료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으로 턱 끝을 꾹꾹 눌러줄 뿐, 의사는 감히 눈물을 거두어 달라 이르지 못했다.
* * *
“…하아.”
이에 헤일은 궐련을 잘근잘근 깨물며 한숨 쉬었다.
자신이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필리아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차 문을 열었을 때 보았던 광경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 괴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건-
“이안 님은?”
“그대로 앉아 계십니다.”
생기 잃은 이안의 모습이었다.
로엘의 회복은 지지부진했고, 아이는 정신을 차렸다가도 다시 혼절하여 까무룩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이안은 멀지 않은 창가에 앉아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다행이다. 차라리 울고, 소리치고, 분노하며 무언가 반응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저, 저기.”
헤일과 토미가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카렌나 시장이다.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안 장관님이랑 그, 동생분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좋지 않소.”
시장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얼굴로 난감하다는 듯 목덜미를 문질러댔다.
지금 그를 옥죄는 건 아내가 죽었다는 슬픔보다 두려움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내가 장관의 어미를 죽이고 말았으니. 당장 그의 목 역시 떨어진다 한들 이상할 게 없다.
“다시 한번 소, 송구합니다. 제가 집안일을 잘 살피지 못하여 일어난 불찰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이놈의 미련함을-”
“됐고, 용건은?”
치이익. 헤일은 난간에 대충 궐련을 비벼 끄며 물었다. 시답잖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 예예, 문제의 그 그림 말인데요. 워낙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선물이 많다 보니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찾아보니까, 카렌나를 지나던 한 상단이 선물로 내준 것이었습니다. 몇 년 된 것 같네요.”
“상단 이름은?”
“그것까지는 기억하는 자가 없습니다.”
헤일은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마력 그림을 이용한 상단이라 하면 사실 몇 안 되기 때문에 특정하기 쉬웠다. 정 알고자 한다면 다르시 부인을 족치면 될 일.
헤일이 물러가라 일렀으나, 시장은 허리를 굽히며 틈을 노렸다.
“용건이 더 있나?”
“다름이 아니오라…….”
그는 바깥을 괜히 힐끔거렸다. 저택 안쪽이 워낙 정신없었던 터라 인지하지 못했는데, 꽤 시끄러운 소란이 일고 있었다. 시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로엘 님을 모시고 왔던 선발대 병사들이 카렌나를 뒤집고 있습니다. 혹여 남은 자, 그러니까 잔당들이 있는 건 아닌가 하여 색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좀 과격하여 원성이 있으니… 하, 한 번만 함께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