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89
제689화. 누가 첩자인가
‘X 됐다.’
필리아의 시신을 보자마자 발리주아드 상단원들과 선발대 병사들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들은 마법사들이 충격에 빠져 애도하고 이안이 한참이나 필리아를 끌어안은 채 굳어 있는 것을 눈여겨볼 새가 없었다.
‘어떡하지?’
먼저 발리주아드 상단.
그들은 하완의 내란을 피해 메렐로프로 흘러 들어온 자들이었다. 입국 절차를 밟지 않은 채로 위험을 피해 단숨에 중앙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마력 그림을 통해 국경을 자유로이 오가는 세력인 바, 이에 대한 황궁의 눈총을 무마시키려면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필리아의 이동을 돕는 일이었거늘.
‘필리아 부인을 여기까지 데려온 게 우리 발리주아드 상단인 게 밝혀지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마법부 장관의 어머니잖아. 젠장! 보니까 은밀히 나온 것 같던데, 괜히 잘못 엮였나?’
공적 좀 쌓으려다 한순간에 다 말아먹게 생겼다.
발리주아드 상단원이 어질거리며 머리를 굴리는 한편, 선발대 병사들도 몸을 떨어댔다.
‘로엘 님의 몸에 상처가!’
로엘은 천려의 후손이었으며, 이안 히엘로의 동생이다. 변경의 방어 측면에서 대사막 전사들은 중요한 존재였고, 이는 황궁에서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여, 그들로 하여금 로엘을 빠르게 변경으로 인도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찰나의 방심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크, 큰일이다.’
로엘을 호위하지 못한 것. 그리하여 그 대가를 필리아가 대신 짊어지게 한 것. 모든 게 그들의 잘못이었고, 죄였다.
심지어 필리아는 앞서 경고까지 하지 않았나. 로엘을 노리는 무언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노라고.
“제기랄!”
전쟁에서 공 좀 세워 출세하려 했는데, 발 내딛기도 전에 모든 게 끝장났다.
병사들은 저마다 난감한 눈치로 서로를 살폈다. 누가 이 일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로엘 님!”
로엘이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그들은 무겁고 불편한 상황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필리아를 품고 있던 이안이 로엘을 안아 들자, 그제야 마법사들과 주민들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제, 제 저택으로 먼저 모시겠습니다. 이안 님.”
“…….”
“이안 님, 로엘 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
“…뭣들 합니까? 마차부터 움직이시오. 마을로 돌아가 수습할 것입니다.”
헤일의 지시에 발리주아드 상단과 선발대 병사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특히 발리주아드는 이걸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 보였다.
도망칠 기회라면 어수선한 지금밖엔 없지 않나? 이안 히엘로 장관이 정신을 차리면, 분명 사건 경과를 확인하려 할 터.
타앗!
마법사들이 먼저 마을 쪽으로 날아가자, 상단원들은 이때다 싶어 바로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비슷한 고민을 하던 병사들도 이를 알아채고 단박에 반응했다.
“뭐지?”
“필리아 님을 호위하던 놈들입니다. 도, 도망가는 것 같은데요?”
“이런, 젠장! 잡아라! 놓쳐서는 안 된다!”
여차하면 필리아의 죽음을 오롯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시체라도 좋으니 무조건 놈들을 옆에 묶어 두어야 했다.
히이잉!
장교의 지시에 선발대 병사들이 후다닥 말 옆구리를 쳐 댔다. 아무리 발리주아드가 이리저리 떠도는 상단이라곤 해도, 대부분 마력 그림을 통한 여정이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병사들을 따돌릴 순 없었다. 붙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촤아악!
그럼에도 상단은 쉽게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에 선발대 병사들은 결국 검을 꺼내 들었고, 달아나는 상단원의 등을 시원하게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아악!”
낙마한 사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자, 장교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잘만 하면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면할 수도 있겠다. 그는 병사들에게 손짓하여 지시했다.
“마을로 들어가자. 혹여 불손한 잔당이 숨어 있는지 색출하고, 있다면 우리가 처단한다.”
* * *
“일렬로 서십시오!”
병사들의 위압적인 말투에 주민들은 몸을 움츠렸다. 중앙에서 지원군이 온다 하여 마음 깊이 기뻐했건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원.
마법부 장관의 가족이 습격당한 것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심지어 시장의 부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데.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날카로운 검 앞에서는 말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웃기는 놈들일세그려. 들어 보니까 세뇌 같은 거라고 하더만, 일개 병사들이 그걸 무슨 수로 알아본다고 저 지랄들이람?”
“듣겠습니다.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시장 저택이나 탈탈 털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자들은 지금 그쪽으로 오줌도 못 눕니다. 마법부 장관이 동생과 함께 있다면서요.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질책당하면 어째요?”
“질책당하든 말든, 알 바인가!”
“아이고, 어르신. 목소리 낮추시라니까. 저자들은 황궁에서 나온 군인이에요, 군인! 여기 마을 경비대가 아니라고요.”
말마따나, 병사들은 인형화된 자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다. 그 위대하다는 마법사들조차 다르시 부인에게 제보를 받고서 안 것인데, 그들이라고 방도가 있겠는가?
그저 신분증을 검사하고, 바리엘 국가를 부르게 하는 등. 영 미심쩍고 비전문적인 검사만 진행해 댔다.
“그런데 왜 저쪽은 안 해요?”
“히엘로에서 온 피난민들이잖아.”
“그게 왜요?”
“몰라서 물어? 히엘로 장관 영지민들이니까 아예 안 건드리는 거지!”
장관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생지랄들을 하고 있는 건데, 미쳤다고 그쪽 사람을 잡아?
카렌나 주민들은 팔짱 낀 채 짜증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안 그래도 피난민들 때문에 먹을 것도 많이 줄고 불편하건만,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다.
“다음!”
노인이 한 아이의 손을 단단히 붙들며 병사 앞에 나섰다. 골골대는 숨소리가 유독 거친 자였다. 첩자는 무슨, 내일 살아 눈뜨면 다행인 노인이다.
병사는 대충 넘기려고 하다가, 신분증에 적힌 특이 사항을 읽어냈다.
“하완 출신이네?”
“…예?”
“귀화했는지 물었다.”
“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벌써 수십 년도 더 되어서, 이놈 어미가 어릴 때라…….”
아이는 또랑또랑한 눈매를 날카롭게 뜨며 병사를 올려다봤다. 다 안다는, 투명한 눈동자다. 장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를 덜고자 애먼 주민들을 닦달하고 있다는 걸.
병사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고 저도 모르게 아이의 어깨를 붙잡아 당겼다.
“두 사람은 이쪽으로! 나중에 상세히 조사할 것이다!”
“아니, 이보십시오. 저희는 정말 바리엘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해친단 말입니까. 저는 늙었고, 이것은 어린아이인데…….”
“토 달지 마라! 죄만 더 무거워질 것이다.”
“아이고, 제발 자비를…….”
“죄라 하면, 무슨 죄를 말하십니까?”
“뭐?”
나선 것은 아이였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팔을 단단히 붙잡은 채 물었다.
“대체 저희에게 무슨 죄가 있어 무거워진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 묻는 것입니다.”
“어허, 이것 봐라?”
병사가 아이의 멱살을 확 잡아챘다. 깜짝 놀란 노인이 달려들며 놓아 달라 애원했으나, 병사는 거칠게 뿌리칠 뿐이다.
“지금 우리는 대제국 바리엘의 황실 명을 따라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런 우리를 방해하는 자는 곧 황명을 방해하는 것. 똑똑한 척 눈알 그만 부라리고, 순순히 명을 따라라.”
“할아버지가 하완 출신이긴 하지만 하완인으로 산 것보다 바리엘인으로 산 시간이 더 깁니다. 저 또한 카렌나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요.”
“그런데 어디서 자꾸 또박또박 말대꾸를-!”
짜악!
병사가 가볍게 아이의 볼을 내려쳤다. 건방진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이인 걸 감안해서 겁만 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어쭈?”
아이는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더 쳐 보라는 듯 병사를 노려봤다. 아직 어려서 긁어 부스럼이란 말을 모르나 보다.
화난 병사는 계속해서 아이의 볼을 후려쳤고, 노인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엎드려 바들바들 떨어댔다.
“이 자식이 그래도 끝까지? 네놈 할아버지보다 먼저 가고 싶은 게냐?”
“…….”
아이는 입을 앙다물더니, 있는 힘껏 병사의 턱에 박치기를 밀어 넣었다.
빠악!
“아아악!”
돌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병사가 나뒹굴었고, 다른 쪽에서 검문하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몰려들었다. 코를 감싸 쥔 사내의 손가락 틈으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딱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진 게다.
“너, 너, 이 새끼!”
“덤벼! 너 같은 놈은 내가-!”
퍼억!
아이가 호기롭게 덤볐으나, 장정, 그것도 군인들을 어찌 당하겠나. 흙먼지가 일 정도로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그러자 보다 못한 주민들이 나서서 병사들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하세요! 애가 뭘 몰라서 그랬던 거예요.”
“예, 워낙 성격이 희한한 아이라 마을에서도 유명합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고, 애 잡겠네!”
“아니, 다들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보여주기식이라는 거 저희도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도 군말 없이 협조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도 곤란하지요!”
“옳소! 히엘로에서 온 피난민들도 다 민가에서 재워주고, 먹여주고, 얼마나 성심성의껏 보살피고 있는데!”
“중앙 지원군이라는 사람들이 적군 잡을 생각은 안 하고, 왜 애먼 아이를 잡습니까?”
안 그래도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주민들이 하나둘 소리를 질러댔다. 일순간에 소란스러워진 일대. 당황한 병사들이 검을 크게 휘두르며 일갈했다.
“입 닥쳐! 조용히들 하시오! 이중에 토올룬 첩자가 숨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네놈이 제일 첩자 같아아아!”
퍼억!
바닥에 쓰러졌던 아이가 기어코 일어나 병사의 복부에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어지간한 아이라면 두려워서 싹싹 빌었을 건데, 성질머리 하나 참 고약하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날을 세우는 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이 자식이!”
병사가 위협용으로 검을 크게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타앗.
앞을 막아선 헤일이 손끝으로 그의 검을 고정했다. 지이잉! 마력이 개방되자 그의 검 끝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헉!”
“무슨 소란인가.”
“헤, 헤일 대장님.”
“호,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토올룬의 첩자를 색출 중이었습니다.”
헤일은 주민들과 병사들을 번갈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하는 꼬라지는 네놈들이 토올룬 첩자 같은데.”
“무슨 그런 말을!”
“그렇지 않고서 어찌 카렌나 주민들에게 이리 대한단 말인가?”
카렌나는 바리엘 영토 내에서도 최전선에 속했고, 지금은 피난민들의 유일한 거처였다. 이들의 도움이 히엘로 영지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
헤일은 쓰러진 아이를 힐끔 살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제대로 주시했다.
“음?”
퉤! 걸쭉한 침과 함께 부러진 치아를 뱉어내는 모습이 영 어린아이답지 않았던 게다. 거기다 어딘가 익숙하기까지 하다. 저 모습을 어디서 보았더라? 헤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니?”
“예, 뭐. 저승길 문턱까지 구경하고 온 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어허? 말본새도?
헤일은 혹시나 싶어 슬쩍,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 하지만 마법사의 것은 아니다.
“너-”
“예?”
“세드릭!”
노인은 엉금엉금 기어와 손주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디서 솟아났는지도 모를 기력으로.
그에 헤일은 살짝 옆으로 밀려났지만, 시선을 세드릭에게서 떼지 않았다. 더러운 성질머리, 희미하지만 또렷이 느껴지는 마력. 그리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본새.
“…너, 마검사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