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1
제691화. 싸가지
칼라마트 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식재료와 생필품 따위를 팔기 위해 왕궁을 방문한 주민들만 제외하고.
“…….”
그들은 거대한 샹들리에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을 보고서 멈칫거렸다.
길게 늘어진 로브로 봐서 말단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저기서 저러고 있나? 혹시 바리엘에서 행하는 일종의 처형식 같은 건가?
“안녕들 하십니까. 매입 담당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밀과 보리를 팔러 오셨다고?”
“네. 각각 50상자씩인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요즘 들어 밀 구하는 게 조금 어렵더라고요. 시세는 칼라마트 왕궁 장부에 기록된 값 평균치를 내어 줄 것입니다. 현금으로 수령도 가능하고… 뭘 보십니까?”
매입 담당관이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마법사입니다.”
“마법사요?”
마법사가 왜 저기 매달려 있습니까? 괜찮은 거 맞나요? 당황한 주민들과 달리, 매입 담당관은 익숙하다는 듯 거래 명세서를 작성했다.
“물건 보러 가 볼까요?”
“아, 예예. 이쪽입니다.”
콰아앙! 쾅!
퍼어어엉!
등을 돌린 주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왕궁이 무너질 것만 같은 충격이다. 혹시 알 수 없는 상대와 전쟁이라도 터진 걸까?
하지만 이번에도 매입 담당관은 대수롭지 않게 앞장섰다.
“임시 마법부에서 일어나는 소란입니다. 해가 뜨면 온종일 저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이러다 왕궁 무너지겠습니다.”
“에이, 폐하께서 머무시는 공간입니다. 어련히 알아서들 하실까.”
왕궁 자체가 높은 고지대에 지어졌다 보니, 주민들은 이런 소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아, 수백 년 동안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칼라마트 성이여! 전쟁의 패배로 참으로 고통스럽겠구나! 주민들은 눈물을 찍어내며 물건 내린 앞뜰로 이동했다.
‘헉, 저기에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건만, 도중에 별별 희한한 광경을 다 마주했다.
높다란 성벽에 떡하니 붙어 있는 마법사, 지나가는 사람마다 끔찍한 액체를 마셔보라 권하는 마법사, 피곤에 절었는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는 마법사 등등.
보다 못한 담당관이 민망하여 덧붙였다.
“크흠. 며칠 전부터 유독 더 이렇습니다, 하하.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고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제가 생각한 마법사와는 너무도 다른지라.”
“뭐, 마법부 장관께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는 들었는데, 자세히는 저도…….”
그들이 밀과 보리 상자를 열려는 순간이었다. 창공에서 갑작스러운 바람이 들이닥치더니, 이내 검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주민들은 경악했다. 몇 번 보았던 것이지만 이리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왕궁 한번 왔다고, 정말 별별 것을…….
“비켜!”
촤아악!
“흐익!”
“비키라고오!”
타닥타닥!
미친 듯한 속도로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마법사들. 며칠 굶은 개도 밥그릇 짤랑거리는 소리에 저리 반응하지는 않을 게다.
여기저기 널려 있던 마법사들이 일순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는 걸 보며, 담당관이 중얼거렸다.
“어이고, 장관님 오셨나 보네.”
촤아아악!
마법사들은 숨을 헉헉거리며 포탈 열린 곳 아래에 모여들었다. 몇몇은 자고 있었는지 얼굴에 배게 자국이 선명했고, 누군가는 옷을 거꾸로 입었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침을 꼴깍 삼키며, 포탈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이길 기다렸다.
“저기! 이안 님이다!”
“오, 오신다!”
“이안 님! 헤일 대장! 토미 새꺄!”
“어서 오십시오!”
“어라?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누구지?”
마법사들은 손을 흔들며 방방 뛰어대다가 멈칫거렸다.
치유 마법사 외에 낯선 아이 한 명이 섞여 있다. 언뜻 로엘인가 싶었지만, 아니다. 남자아이다.
타앗.
이안은 가볍게 착지하여 로브를 정돈했다. 그 뒤를 따르는 헤일과 토미. 마법사들은 조심스레 몰려들어 이안의 낯과 헤일의 눈치 그리고 토미의 신호를 살폈다.
“저기, 이안 님. 필리아 님은……?”
이안이 쓴 미소를 지었다. 헤일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토미는 안 된다며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그것들의 의미를 마법사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위독하다고 했을 때만 하여도 희망이 있었는데, 결국 운명을 다하셨구나.
“아, 이런.”
마법사들은 울상을 지으며 이안을 껴안았다. 하나둘, 이안을 감싸안은 마법사들이 안타까운 신음을 흘려댔다. 그런 그들에게, 오히려 이안은 괜찮다며 등을 다독였다.
“자세한 것은 차차 이르마. 내가 없는 동안 별문제는 없었고?”
“예, 그럼요. 저희 모두 본분을 다하여 황제 폐하와 칼라마트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게 각자의 방식이라는 게 조금 그렇겠지만요.
이안은 성 외곽을 살핀 다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별일 없어 보이는구나.
“베릭은?”
“제이럿 대장이랑 지하 수련장 들어갔습니다. 기척 느꼈을 건데 안 보이는 걸 보니 제대로 잡혔나 봅니다. 근데 그놈은 좀 그럴 필요가 있어요. 아니, 이 미친놈이 며칠 전에 창고를 또 털었지 뭡니까?”
“요즘 좀 참나 싶었는데, 그간 못 처먹은 게 아쉬워서 그런지 이번에는 피해가 좀 큽니다.”
“진짜 야생으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놈 먹성을 감히 저희 같은 인간 따위가 감당하려 했던 게 오만이었지요. 자연으로 돌려보내서, 그쪽에 맡깁시다.”
이안이 피식 웃었다. 필리아의 비보를 조금이나마 지워주기 위해, 마법사들이 농담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 진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알겠다. 우선 폐하를 뵙겠다. 제이럿 대장에게 올라와 달라 일러 다오.”
“제이럿 대장을요? 트웰러 장관님 말고요?”
“그래.”
흐으음. 문득 마법사들의 시선이 이안 뒤에 서 있는 낯선 아이에게 집중되었다.
‘얜 뭐람.’
‘뭔데 이렇게 차분해?’
누군지 모르겠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아이는 포탈을 처음 타 봤을 것이고, 버고스의 왕성에도 처음 온 걸 게다. 그뿐인가? 이리 많은 마법사와 만난 적도 없었을 터.
그런데도 아이는 놀라거나 두려운 기색 없이 담담했다. 범상치 않은 아이다.
“견습 마검사다.”
“마검사요?”
“오잉? 어디서 만나셨습니까?”
“멍청아, 당연히 카렌나겠지.”
세드릭은 마법사들을 찬찬히 올려다봤다. 신의 힘에 가까운 자들이라 들었는데, 하나같이 뭔가 회까닥 돈 것 같다.
“안녕하세요, 세드릭입니다.”
“어어, 그래. 반갑다.”
“인사성 좋네. 이안 님, 세드릭이랑 같이 올라가십니까?”
“그래. 이쪽으로.”
끼이익.
이안은 세드릭에게 고갯짓하여 자신을 따라오라 일렀다. 난생처음 보는 궁이 황궁이 아니라 칼라마트 궁이라니. 이건 이거대로 귀한 경험이지 싶다.
아이는 거대한 문 앞에 멈춘 이안을 쳐다봤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거라.”
“안에 황제 폐하가 계신 건가요?”
이안은 침묵으로 긍정하며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그 문틈 사이로, 세드릭은 보았다. 은발의 벽안, 크게 가로지르는 안면의 상처를.
쿠웅!
문이 닫히자, 아이는 이안이 지시한 대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문 옆의 시종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아 사람이 맞는가 싶다.
그래, 벽지 무늬나 세자. 하나, 둘, 셋…….
“넌 뭐여. 이안이는?”
그때, 땀범벅인 베릭이 제이럿과 함께 나타났다. 호출받은 제이럿보다 한참이나 앞선 걸음으로.
멍하니 숫자를 세던 세드릭이 자신도 모르게 대꾸했다.
“…이십팔.”
“엥?”
이 씨발? 덜컥 욕을 얻어먹은 베릭이 황당한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붉은 머리칼과 적안. 그리고 뭔가 날카롭게 찢긴 입매. 인상이 좋은 사람은 아니군. 세드릭은 베릭을 가만히 살피더니 덧붙였다.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뒤따라 도착한 제이럿은 세드릭을 보자마자 뭔가 희미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어서 왜 이안 장관이 자신을 호출했는지도.
‘신입이군.’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황궁친위대의 자격 요건은 오로지 강함. 마검사가 아니어도 들어올 수는 있다만, 마검사 아닌 자가 인간의 신체 한계를 넘어 강해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마검사는 중요했다.
하지만 너무 귀했다. 제이럿은 그들이 얼마나 귀한지, 나아가 황궁친위대 신입으로 들어오는 마검사는 얼마나 더 귀한지 잘 알았다.
그럼에도 마검사 수급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금은 물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더더욱.
끼익.
마침, 안쪽에서 신호를 받은 시종이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안내했다.
“황제 폐하와 이안 장관님의 독대가 끝났다고 하십니다. 알현을 청하시겠습니까?”
“이르시게.”
“폐하, 제이럿 대장이 들었습니다.”
진과 이안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착 가라앉아 있다는 걸 제이럿 대장을 발을 떼자마자 알아챘다. 그리고 놀랍게도 베릭도.
“이안. 필리아는?”
세드릭은 그를 힐끔 올려다봤다. 서슴없이 뻗어대던 시선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안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가볍게 손짓으로 저지했다.
“베릭. 나중에.”
진과 베릭 모두 필리아와 인연이 있지만, 이건 사사로운 개인적 슬픔에 불과했다. 물론, 토올룬의 소행이라는 사안이긴 했지만-
“제이럿 대장. 카렌나에서 있었던 일은 보고서로 확인해 주십시오. 토올룬의 마수가 생각보다 바리엘 곳곳에 뻗쳐 있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것은 회의실에서 할 얘기다.
이안은 세드릭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했다.
“폐하. 이 아이입니다.”
세드릭은 처음으로 한 박자 숨을 고른 다음 허리를 숙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이지 않나. 바리엘의 정점이자 세상의 주인이신 분. 아이는 감히 쳐다볼 생각도 못 한 채 낮은 시선을 유지했다.
“세드릭이라고 합니다, 폐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개를 들라.”
진은 다리를 꼰 채로 아이를 훑었다. 그러고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짓더니, 이안에게 속삭였다.
“경의 말대로군. 눈빛이 좋아.”
“바리엘의 미래가 밝습니다, 폐하.”
뭔데? 뭐기에 이래? 혼자서만 상황 파악 못 한 베릭이 귀를 긁적거렸다.
이안은 세드릭에게 제이럿 대장을 소개하며 당부했다.
“이분이 황궁친위대의 삼대장 중 한 명이신 제이럿 대장이다. 많은 것을 배워 바리엘과 황제 폐하께 보탬이 되도록 하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이럿 대장. 이미 아시겠지만, 잘 부탁합니다.”
“예, 귀한 인재를 데려와 주시어 고맙습니다.”
제이럿은 인사치레 겸 세드릭에게 물었다.
“혹 황궁친위대원이 되면, 제일 먼저 이루고 싶은 게 있는가.”
의례적인 물음이었으나, 아이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진실로 말씀드립니까?”
“그럼. 폐하 앞에서는 한 치의 거짓도 용납되지 않는다.”
진은 찻잔을 홀짝거리며 세드릭을 유심히 지켜봤다. 필리아의 죽음을 전해 들은 직후라 마음이 무거울 터인데도, 이안은 이 아이를 데려왔다. 그 이유가 무언지 곧 알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세드릭은 한참이나 망설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레만이라는 자를 때려눕히고 싶습니다.”
“누구?”
제이럿의 눈이 동그래졌다. 살면서 처음 듣는 답변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며 싱긋 웃었고, 뒤늦게 상황을 대충 파악한 제이럿이 베릭을 돌아봤다.
“베릭.”
“뭐요.”
“세드릭은 네가 맡아라.”
“엥?”
아주 훌륭하신 결정입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진 또한 긍정했다. 본래 뭐든 상성끼리 붙여놓으면 되레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법.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게다.
다른 이들도 모두 동의하는 눈치였다. 베릭만 빼고.
“내가?”
“그래. 들었겠지, 세드릭? 앞으로 네 사수는 베릭이다.”
“아니, 내가 이런 짬 처리할 급은 아닌데?”
“시끄럽다. 토 달지 마.”
“싫어! 귀찮아!”
베릭이 질색하며 손날로 X자를 그렸다.
황제 앞에서 저딴 망발이라니. 미친 망나니인가? 세드릭은 베릭에 대한 평가를 그리 내리며 꾸벅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드릭입니다.”
“아니- 싫다고, 인마.”
“왜요.”
방금 베릭이 ‘뭐요’라며 툭툭댄 말투랑 똑같다.
그러자 말문이 턱 하고 막힌 베릭. 제이럿이 어째서 자신에게 저 자식을 맡겼는지 어렴풋이 느낀 참이다. 베릭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싸-가지가 없잖아!”
그러자 진과 이안 그리고 제이럿이 동시에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는 되어 있구나, 싶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