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2
제692화. 작은 불길
“이런…….”
회의실에 모인 관료들이 난감한 신음을 흘려댔다. 이안이 카렌나에 다녀와서 올린 보고서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로는 바리엘 곳곳에 토올룬의 마수가 깊이 자리 잡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그의 어머니가 습격으로 인해 운명을 다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히엘로와 접한 변경의 방어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것.
“이안 경.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진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보고서만 찬찬히 살폈다. 필리아의 죽음을 이르는 글자들이 명명백백했으나, 아무리 보아도 실감나지 않았다. 진은 아직도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웃던 필리아를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트웰러 장관이 손을 들며 물었다.
“하면, 이안 경. 현재 대사막의 천려는 거의 전멸이라고 봐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전사가 있지만, 이전과 같은 전력은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제 누이인 로엘이 사막으로 건너가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는 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엘 동쪽의 경계는 클리포포드 쪽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겠군요. 루스웨나 뒷정리도 그쪽이 하고 있다 하였으니까요.”
“네. 지금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을 듯합니다.”
클리포포드의 도움이 절실했다. 루스웨나를 완전히 누르고, 하완에게서 동쪽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특히 하완이 어떤 상황인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내란으로 상황이 어수선한 것과 더불어 토올룬의 마수에 엮인 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또 어느 자리에 있을지 파악된 게 하나 없습니다.”
이안의 대답에 트웰러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시선은 ‘화총’이라는 새로운 변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잘하면 시간 싸움이 되겠습니다.”
본대는 이미 버고스에 결집하여 토올룬으로 올라갈 틈만 엿보고 있다. 마법사들이 여기 결집해 있는 동안, 토올룬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 있겠는가?
“상대측에 화총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나타난 지금, 토올룬에서는 바리엘을 물리기 위해 하완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대하려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히엘로의 전력이 무너졌으니, 그들에게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움직이기 전에 저희가 먼저 치는 수밖에요.”
“동의합니다. 토올룬 왕에게 부작용이 가해졌다 하셨지요. 서둘러 올라가심이 좋겠습니다.”
관료들은 진 쪽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리고 사실상, 아스타나의 카티마코의 증언이 불필요해진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게다가 이미 루스웨나 전쟁으로 토올룬은 민낯을 보였습니다.”
카티마코의 증언이란, 필리아의 납치 사건 수사 과정 중 토올룬 인형술사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토올룬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그들의 대지를 허락 없이 넘어갈 명분으로 작용할 터였다.
한데, 놈들이 필리아를 아예 죽여 버렸고, 그걸 마법사들이 목격하였다. 굳이 중앙에서 서신이 날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게다.
“이안 경.”
어찌하면 좋겠나?
진이 그리 묻자, 트웰러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오로지, 맞은편에 앉은 이안만이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을 뿐.
“저도 서둘러 올라가는 편이 좋다 여겨집니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는 굳건한 동맹국이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의 목적과 이득을 기반으로 한 관계지요. 현재 토올룬에서 오수(汚水)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동쪽 방어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겁니다.”
오수를 서둘러 처리해 주는 대신, 클리포포드는 바리엘 동쪽의 방어에 집중한다. 서로를 보완하는 아주 훌륭한 선택지다.
“그렇군. 알겠다. 하면 서둘러 출정 날짜를 잡도록 하지. 트웰러 장관은 현재 병사들의 상태와 보급품 등을 확인하여 적당한 시일을 제안하도록 하라.”
“예, 폐하.”
“그리고 마법부는 출정 전까지 최대한 마력을 회복하여 전투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명 받들겠습니다.”
이안은 그리 이르며 속으로 살짝 웃었다. 푹 쉬라는 것이 황제의 명이니, 마법사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몸과 마음을 추슬러라.”
“…예, 폐하.”
진은 혹여 이안이 잘못 알아들었을까 봐 서둘러 덧붙여 설명했다.
황제께서 마음이 많이 쓰이시는가 보군. 하긴, 폐하도 어릴 적부터 보았던 관계 아닌가. 관료들은 헛기침을 하며 남은 보고서 뒷장을 뒤적거렸다.
“그래도 아예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렌나에서 새로운 마검사를 발견했다고요.”
“아직 어려서 실전 투입은 불가하겠지만, 괄목할 만한 일입니다. 황궁친위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까?”
황제의 뒤에 서 있던 제이럿 대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렇습니다. 마력 감응 확인을 해보니, 상당히 기대가 되는 인재입니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선발 시험을 통한 다음 황궁친위대에 소속되는 것입니다만,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전담 교육을 도맡아 하려고 합니다.”
“마검사면 예외를 둘 수밖에 없지요.”
“이번 기회에 황궁친위대에도 긍정적인 기세가 깃들었으면 좋겠군요.”
그들의 말에, 제이럿은 꽤 복잡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아는 진과 이안 만이 시선을 돌려 모른 척하였다.
“예, 뭐. 이미 황궁친위대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 * *
“베릭, 저 냉정하고 성격 더러운 새끼. 지금 몇 바퀴째 돌리고 있는 거람.”
“몰라. 내가 마지막에 센 게 스무 바퀴였나?”
“애 뒈지는 거 아닌가 몰라.”
웃옷을 훌러덩 벗은 채 그늘에서 쉬고 있는 황궁친위대원들. 한 시간 동안 전력으로 훈련한 터라 온몸이 땀으로 번질번질했다. 제아무리 초인적인 그들이라 하더라도, 고강도 훈련이 힘든 것은 당연지사다.
“허억, 허억…….”
따라서 땡볕에서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세드릭에게 연민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막내, 게다가 이제 겨우 열 몇 살 먹은 어린애지 않나.
친위대원이 베릭에게 소리쳤다.
“애 죽겠다, 새꺄! 적당히 해!”
“닥쳐. 네가 사수하든가.”
하지만 베릭은 일갈하며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그늘에서 시원한 음료 쪽쪽 마셔대는 것 아닌가.
친위대원들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려댔다. 그러는 그들도 곧이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지만 말이다.
“허억, 헉…….”
“어쭈. 발걸음 느려진다. 얼렁 뛰어라. 이거 다 황궁에서 하는 기초 훈련이거덩? 이거 못 따라오면 황궁 가서도 할 거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거대한 물 항아리까지 지고 뛰었으니까.
세드릭은 짜증스럽게 베릭을 쳐다보더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 또한 보란 듯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투욱. 툭.
그러가 결국 도착 지점을 앞두고서 털썩 쓰러졌다.
베릭은 육포를 질겅거리며 아이를 가만 쳐다봤다. 황궁친위대원들도 숨 죽이며 둘을 지켜봤다. 1분, 2분, 3분… 시간이 속절 없이 흐르고-
스윽.
그렇게 10분 이상 지났을 때, 세드릭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기어가 손끝으로 목표 지점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베릭은 시원한 물통을 이고 가 아이를 내려다봤다.
“…….”
거의 죽을 것 같은 상태임에도 활활 타오르는 눈빛. 독기와 분노 따위를 태워 삶의 의지로 사용하는 눈빛이다. 아아, 이거 재수 없게 어딘가 익숙하네.
촤아악.
베릭은 세드릭에게 물을 부어주며 지시했다.
“일어나.”
“…원래 황궁친위대원들은 이런 훈련을 하나요?”
“그래. 안 믿겨?”
내가 너 괴롭히려고 괜히 지랄하는 것 같아? 솔직히 뭐, 귀찮은 일을 맡아가지고 심술 나는 것도 좀 있긴 한데…….
“아니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드릭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래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구나, 싶어요.”
“어쭈. 입에 기름칠 좀 하는데? 거기까지 올라가서 뭐 하려고? 그 병사인가 뭔가 하는 놈 패려고?”
세드릭이 시선만 올려 베릭을 쳐다봤다. 힘들어서 일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
“이것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합니까?”
“구라 칠 필요도 없잖아?”
“…….”
세드릭이 베릭을 빤히 쳐다봤다. 그 뜻을 알아챈 베릭이 황당하게 웃었다.
“나 패려고?”
“안 될까요?”
푸하하하!
갑자기 터져나온 큰 웃음에 황궁친위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저 미친놈은 또 뭐가 그리 재밌어서…. 그러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
“베릭! 인마!”
지이잉! 지잉!
촤악!
베릭이 마력검을 생성해낸 것이다.
화염처럼 타오르는 거대한 검날.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세드릭의 동공이 커졌다.
“되지. 안 될 거 뭐 있어? 그러자고 다 이 짓거리하는 건데.”
“이, 이게 뭡니까?”
“마력검. 마검사라면 모두 고유의 무기를 갖고 있지. 너도 있을 거다. 아마도.”
“저도요?”
“앙. 근데 얻는 법은 알아서 찾아야 해!”
촤아악!
베릭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그 끝에서 불길이 치솟앗다. 세드릭은 몸을 옆으로 굴려 겨우 피했고, 이내 사그라지는 불꽃을 보며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나 죽이려면 이런 게 있어야 하거든.”
“죽인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패고 싶다고 그랬지.”
“그랬어? 나한테는 그 말이 그 말이라서!”
촤악! 촤악!
베릭은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말리려던 황궁친위대원들은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멈칫했는데, 베릭의 공격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심이 아니라, 그저 세드릭을 이리저리 굴리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아이고, 저, 무식한 놈.”
“제이럿 대장님은 왜 저놈한테 막내를 맡긴 거람. 안 그래도 신입 귀한데 도망가면 어쩌려고.”
“도망가면 거기까지인 거지. 그런 정신머리로 황제 폐하 옆을 어떻게 지켜?”
“그것도 그런데, 아직 어리잖아.”
“괜찮아. 검 앞에는 나이 같은 거 없어.”
촤아악! 솨악!
세드릭도 베릭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규칙적인 패턴을 통해서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다.
그때, 누군가 세드릭에게 나무 막대기를 던졌다.
“세드릭! 너도 가능하면 반격해 봐!”
타앗!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나무 막대기는 너무 하찮은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도.
베릭은 이쯤 하자는 생각으로 검을 아이의 이마 쪽으로 밀어 넣었다.
“……!”
“……!”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세드릭이 쥐고 있던 나무 막대기가 타오르더니, 마력검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작지만, 확실한 마검사의 증표였다.
베릭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고 있던 황궁친위대원들도 놀란 채 입을 벌렸다.
“아니…….”
저게 말이나 되나? 이제 겨우 정체성을 자각한 어린아이가, 스스로 마력검을 구현해 낸다는 것이? 보통은 훈련장에서 죽도록 굴러도 1년 넘게 걸리는 과정이었다.
세드릭은 헉헉거리며 마력검을 세워 베릭의 검을 맞받아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촤아악!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검. 동시에 세드릭 또한 눈을 뒤집으며 뒤로 넘어졌다.
베릭은 놀라서 아이의 멱살을 잡아 붙들어 주었고, 황당하다는 듯 굳어버렸다.
“이…….”
그리고 이어서 눈빛에 감도는 흥미. 잘만 굴리고 다듬으면 세상이 놀랄 만한 검사가 될 게 분명했다.
베릭은 멱살을 툭, 하고 놓아버리더니 쪼그려 앉아 세드릭을 오밀조밀 살폈다.
“이거 아주 재밌는 새끼네.”
왕궁 난간, 제이럿과 이안도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견 없이 아주 상성이 좋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드릭도 세드릭이지만, 베릭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자신이 담당한 후배가 자신보다 강해지는 걸 어디 가만 지켜볼 위인이던가?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더욱 성장을 갈망하게 될 터.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 둘은 상당히 잘 맞는 관계다.
“그런데 이안 경.”
제이럿은 이안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아까 회의장에서 말입니다. 혹, 트웰러 장관님과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희미하게 일그러지던 미간을, 이안만 봤던 게 아니었다. 이에 이안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