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5
제695화. 화랑 주인
화랑 주인은 눈이 반쯤 풀린 채로 이안을 쳐다봤다.
이국적인 이목구비. 꽤 덩치가 있는 편이었고, 촘촘하게 땋은 수염이 개성 있는 자였다. 단언하건대, 버고스인이 아니다.
이안은 그의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아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낯익은 무언가가 희미하게 풍겼다. 분명히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데, 단번에 기억나지는 않는…….
“아.”
반면, 화랑 주인은 이안을 단번에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술잔을 든 채로 손끝을 까딱거렸다.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님 아니시오?”
“바리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알아보시니 대단합니다.”
“원, 별말씀을요! 이제 가이아에서 바리엘 마법부 장관 모르면 등신 중의 상 등신 아닙니까?”
주인장은 못 알아보던데. 아. 술 마시느라 소란을 못 봤나? 이안은 사내를 유심히 살폈다. 적의나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고, 확실히 취한 자의 태도다.
“그럴 것까지야.”
“아니지요. 등신이지요!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심미안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니 더 볼 것도 없습니다. 내가 괜히 장관님 앞이라서 이러는 건 아니고요! 진짜 이안 히엘로 장관 모르면 일단 경비대에 신고부터 넣고 봅니다. 예! 한잔하시겠습니까?”
쫑알쫑알, 술을 먹어서 말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많은 자인지 모르겠다. 이안은 술잔 입구를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며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마실 수 없거든요.”
“에이,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주인장 법에는 있더군요.”
으잉? 화랑 주인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 그는 빗자루 쥔 베릭과 연신 무언가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챈 사실, 대여섯의 사람들이 구석에 앉아 여길 노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이안은 신경 쓰지 말라며 손짓으로 그의 주의를 환기했다.
“제 식구입니다.”
“아이고, 부모님 금슬이 좋았나 봅니다. 잠깐만, 한데 마법부 장관에게 형제가 있었던가?”
밑바닥 서자부터 시작했던 그의 인생은, 이제는 골목길 꼬마들도 다 아는 이야기였다.
화랑 주인이 수염을 배배 꼬며 말끝을 흐리자, 이안이 그의 술병을 가져와 따라주었다. 대작(對酌)하지는 못하지만, 술을 채워줄 수는 있지 않나.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는 것 같으니 각설하고, 본론만 이르겠습니다.”
“예예, 뭐. 사실 느긋합니다. 밤은 길고, 술도 한가득하니.”
“화랑에서 마력석 그림이 나왔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깨진 문과 창문 수리한다고 돈 좀 들었습니다. 껄껄!”
“10년 전에는 버고스 왕궁에 그림을 납품했다고 하던데, 그럼 왕궁에서도 마력석 그림이 유통되는지요. 되었다면 그 수는 어느 정도인지, 어디서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중한 말투였지만, 은근한 압박이 존재했다. 말을 헛되게 하거나 태도가 불손하면 당장이라도 너의 인생이 고달파질 것이라는.
화랑 주인은 술을 입에 머금더니 우물우물 씹어대기 시작했다. 절어버린 뇌로 생각이라는 걸 하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력석 그림의 전반적인 유통 체계를 알고 싶군요. 바리엘 외, 타지에는 마법사들이 많지 않음에도 이를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황궁에서는 황제의 비밀 통로로 은밀히 사용하는 것이 다였지만, 이미 10년도 전에 러더포드가 사용했었고, 지금은 발리주아드 등 일반 상단들까지 널리 퍼져 있으니.
화랑 주인은 킬킬 웃으며 입에 머금었던 술을 삼켰다.
“그건, 제가 바로 답해드릴 수 있겠군요. 말씀하신 대로, ‘마법사들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마법사들이 있다면 마력석 그림을 사용할 필요가 무엇 있나? 저 멀리 떨어진 곳을 단숨에 가거나, 몸을 숨길 때 마법을 사용하면 될 일.
바리엘 외, 다른 곳에서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열광적으로 마력석 그림을 받아들인 것은, 그들에게 ‘마법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고스 왕궁에 그림을 납품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화랑 안에 화가를 두고 있었던 건 아니고, 어디선가 나타난 작품을 선별하여 왕궁에 제안하는 정도였지요. 다행히 작품들이 다몬 왕의 취향과 어느 정도 맞아서 말입니다.”
스윽.
그가 안주머니로 손을 넣자,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눈을 부릅뜨며 경계했다. 품 안에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않나!
하지만 맥 빠지게도 품에서 나온 것은 명함이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망해버린 나라에 계속 머물 필요는 없지요. 저는 그림을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 떼다 파는 장사치니까요. 아,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질 주십시오. 저도 황궁이랑 거래 트면, 인생 편해지고 좋잖아요.”
화랑 주인의 이름은 타오마였다.
이안은 네모반듯한 명함을 앞뒤로 살폈다. 특이한 질감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이는 이자의 정체성을 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을 손에 쥐고 있노라. 바리엘의 황제였던 이안마저 뭔지 모를 것으로 만들었으니, 그 위용이 대단했다.
투욱.
“황궁이랑 거래를 트고 싶습니까?”
“그럼요. 모든 장사치들의 꿈이기도 하지요.”
“양심이 투철하거나 아예 없는 자들만 꾸는 꿈 같은데.”
“원래 장사치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상대에 따라 이리저리 변할 뿐.”
외모와 달리 언변이 수려한 자이군. 이안은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오마께서는?”
“저는, 하하하! 글쎄요.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심이 좋겠습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엎드리려면, 등에 진 것을 모두 내려놓으셔야 할 것인데요.”
혹 바리엘에 마력석 그림을 유통한 적이 있다면, 찾아내어 거두는 게 좋을 거라는 경고였다. 국경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물건은 무조건 폐기함이 마땅했다. 그것을 유통한 자 또한.
타오마는 연신 어깨만 으쓱거렸다.
“제가 무엇을 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이리 마주한 이안 장관님조차도.”
짜안-!
타오마는 빈 이안의 잔에 보란 듯이 건배하고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에 마법사들이 다리를 반쯤 뺀 채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달려올 기세다.
“한번 보여주십시오. 그 등에 무얼 지고 있는지.”
“흠. 사실 저는 이게 가업입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일들인데, 감히 건방지게 주장하자면 저희 가문에서 밟지 않은 땅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요?”
“보아하니, 지금 마력석 그림을 우려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촤르륵. 타오마는 두 손바닥을 마주하더니, 책 펼치는 손짓을 해 보였다.
이안은 그 뜻을 바로 알아채었다.
‘장부.’
그러니까, 본인이 유통했던 마력석 그림에 대한 이전 정보를 팔겠다는 건가?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풍 같았다.
“불가능해 보이는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 그게 바로 제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랍니다. 껄껄껄! 방금 말발 좋았다. 그치요?”
이안은 팔짱을 끼고서 타오마를 차분히 살폈다. 거짓말을 이르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자리를 피하기 위한 모면책?
“별로인가요?”
“별로였으면 바로 거절했겠지요.”
“뭐, 그것도 그렇네요. 차차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더 좋고 즐거운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안도 장부 하나로 마력석 그림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다만-
‘사고판 지점을 알면 추적하여 마력석 그림을 일부 회수할 수 있고, 불순 무리 또한 적발할 수 있다.’
평범한 제국민이 마력석 그림을 구입했겠는가? 그랬다면 필시 배후가 있을 터였다. 저의를 숨긴 개인, 어쩌면 발리주아드 상단 혹은 토올룬 같은 거대 집단을 특정할 수 있을 터였다.
어찌 되었든 장부를 얻음으로 인해 조사 과정이 단순화되기만 하면, 바리엘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솔직히!”
콰앙!
타오마가 잔을 거칠게 내려놨다. 그러자 마법사들이 앞니를 드러내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 새끼가 누구 앞이라고 힘자랑을 해? 진짜 힘 자랑이 뭔지 보여줘? 마!
“저희 화랑 덕에 히엘로가 살아난 것도 있지 않습니까.”
화랑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발리주아드 상단이 히엘로의 비상 상황을 그리 빠르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금기의 마법사와 루스웨나는 변경의 접경지를 넘어 쭉쭉 올라왔을 것이고, 토올룬으로 향하던 바리엘 본대는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을 터.
이안은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건 또 어찌 알았지?”
“저 같은 놈에게는 정보가 목숨줄입니다. 발리주아드 상단이 타고 온 그림은 사실 원래부터 계속 화랑에 걸려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는지, 상단주가 매년 일정 금액을 낼 테니 장소를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화랑은 놀고 있는 공간이었고, 발리주아드 상단은 안전하고 일정한 장소가 필요했으니까.
“장부를 보시면 원주인이 누군지 알게 될 것입니다.”
“흥정과 호객을 동시에 하는 편이군.”
“바쁜 사회 아닙니까. 팔이 두 개 달린 이유랑 같지요.”
“좋다. 그쪽에서 바라는 대가는?”
황궁과 접점이 생기는 건 부가적인 이득이다. 장사치에게 대금이 없을 수 있나? 타오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빈 잔을 까딱거렸다.
“우선 진득하게 취한 다음, 계산기 두드려 볼까요?”
“숫자 잘못 세어서 손해 보면 어쩌시려고?”
“그것도 제 실력인 게지요. 대신, 잘못 세어서 제게 이득 될 수도 있습니다?”
어이없긴 하지만, 타오마의 장사법인가 보다 싶었다.
이안은 빈 잔을 만지작거렸고,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주인장이 이쪽을 바라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대체 마법부 장관이란 사람이, 화랑 주인과 나눌 대화가 무엇 있나 하는 표정으로.
“주인장.”
이안이 술잔을 들어 올리자, 술집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드십시오! 마음껏 드셔요! 제가 뭐라고 마법부 장관님 하시는 일을, 허헛.”
“그럼 실례하네. 한 잔 주시게.”
“이안아아! 너 술 먹어?”
“이안 님! 술 드시려고요?!”
베릭과 마법사들이 동시에 기함하며 달려왔다. 가끔 포도주 한 잔씩 하는 건 봤는데, 이런 자리에서 그것도 낯선 자와 마시는 건 처음이다.
이안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렀다.
“오늘 쉬는 날 아닌가?”
“아, 그, 그렇기는 한데요.”
“너 마시면 나도 마실래! 주인자아앙! 한 잔 더!”
“으어어, 저도요. 저도요!”
베릭과 마법사들이 빈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이안은 타오마에게 괜찮은지 묻는 시선을 보냈고, 그는 오히려 좋다며 호탕하게 껄껄댔다. 원래 자고로 술이란, 함께 즐기는 자가 많을수록 달콤해지는 법.
“좋아. 그럼 마지막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 사람이 계산기 두드리는 걸로! 으하핫! 재밌겠군, 재밌겠어!”
“아뵤, 덤벼!”
“안주발 세우기 없음. 중간에 꺾어 마시기 없음.”
“당연한 걸 말로 해? 입 마르게.”
“적셔, 적셔. 이안 님. 이거 이기면 이득인 거 맞죠?”
술잔 가득 따른 맥주가 출렁이며 흘러내렸다. 타오마와 베릭 그리고 마법사들이 잔을 들자, 이안도 손잡이를 잡았다.
짜안-!
잔이 깨질 듯 부딪치고, 하나같이 고개를 잔뜩 꺾어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 이내 마시는 척하더니, 어깨 뒤로 술을 촤아악, 흘려보냈다.
“꺼어억! 아따 맛있다!”
“바로 가! 한 잔 더!”
이미 얼큰하게 취한 타오마는 당연지사 알아채지 못했고, 베릭은 술맛에 감탄해 호들갑 떠느라 몰랐으며, 마법사들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차가움에 눈을 뜨지 못했다.
짜안-!
한 잔, 두 잔, 세 잔…. 빈 술통이 계속해서 쌓여 갔고, 술 냄새 또한 짙어졌다. 흥건해진 바닥은 주인장이 눈치껏 계속해서 닦아냈다.
그러던 중, 베릭이 멈칫했다.
“어, 근데 이안아-”
“음?”
…술 버리는 거 알았나? 이안은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혹 타오마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눈으로 신호하면서.
하지만 베릭의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디서 실라스크 냄새 안 나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