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6
제696화. 술 대결
실라스크.
이안은 베릭의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 확 개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디서 맡았던 건가 싶었는데, 바로 그것이다. 붉은 꽃.
대사막에 가기 전, 어머니가 자신에게 주었던 화분이었고, 윈첸 부족장을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과거 서자 이안이 러더포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 흔적이자,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환상.
“킁. 킁킁…. 맞는데. 아무리 봐도.”
맡으면 맡을수록 베릭은 확신했다. 실라스크에 대한 각인이 아주 제대로 되어 있었던 게다.
그도 그럴 게, 러더포드와의 마지막 전투가 바로 라로메디아 보금자리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뭉근하게 풍겨 오는 실라스크의 달짝지근한 냄새를, 그는 잊을 수 없었다.
“베릭, 뭔 개소리를 자꾸 해대?”
“똥 빠지게 고생했던 그거. 음.”
“취했나? 고작 두어 잔 먹고?”
“나가 떨어질 놈은 디비져서 자라. 술값 아깝다.”
냄새의 근원은 분명히 타오마였다. 이안은 그에게 잔을 채워주며 은근히 물었다.
“타오마. 그대에게서 실라스크 향이 풍깁니다.”
“아아, 어찌 실라스크를 아십니까?”
타오마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매와 팔 쪽을 킁킁거리며 웃었다.
“최근에 취급하였던 물건인데, 향이 깊어 오래 가는가 봅니다. 뭐, 좋지요. 씻지 않아도 되고.”
“우에에엑. 지금 내가 뭘 들은 거람?”
“저기, 타오마 씨. 맛있는 거 먹는데 우리 위생적인 얘기만 합시다.”
이안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로엘을 떠올렸다. 부족장 윈첸의 뒤를 이어 부족의 지도자가 되고, 언젠가 그녀와 같은 운명을 걸어갈 아이.
윈첸은 실라스크의 부족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로엘은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실라스크만 풍족하다면, 언제고 아이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을 터.
“흥미가 있으십니까?”
씨익. 술에 취한 타오마의 눈매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가늘어졌다. 그의 본능이 상대의 욕망을 감지한 것이다.
무언가를 원할수록, 그 물건의 값어치는 끝도 없이 올라가는 법. 마력 그림을 이르는 이안의 눈빛과 실라스크를 이르는 이안의 눈빛은 확연히 달랐다. 술에 잔뜩 취한 타오마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예. 있습니다.”
이안은 자신의 속내를 들켰음을 알아챘다. 그래서 순순히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실라스크에 대한 주도권은 분명히 타오마가 쥐고 있으니, 이럴 때 괜히 자극한다면 거래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시원시원하십니다그려.”
“다만, 하나 아실 것이 있습니다. 실라스크는 제 개인적인 흥미이지만, 이를 가꾸며 살아가는 라로메디아라는 요정들은 범국가적인 사안이라는 것을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술에 너무 취했나?”
라로메디아, 환각을 부리는 요정.
이들은 토올룬의 인형술에 사용되는 ‘재료’ 중 하나였고, 요정의 군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실라스크였다. 즉, 둘의 관계는 떼어낼 수 없었다.
또한 라로메디아는 토올룬과 밀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바리엘에서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사안. 그러니까 한마디로-
‘장사질 하지 말라, 이거군. 쩝.’
타오마는 코를 긁적거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뇌가 술에 절어가고 있었지만, 이안의 경고는 아주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실라스크 거래는 주로 남국에서 진행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요정 서식지가 굉장히 드물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요. 무엇보다 워낙 위험한 놈들이기도 하고 해서, 가격이 상당합니다.”
요정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찰나에도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변덕을 부려 댔고, 예상치 못하게 저주와 축복을 내렸으며, 저 작은 머리통에 뇌라는 게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가끔은 멍청하면서도, 또 가끔은 초월적인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신비를 부렸기 때문이다.
“가격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안은 웃으며 단박에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찌 이안 앞에서 가격을 논한단 말인가?
마법부 장관이자, 히엘로의 주인인 그에게 가격이라는 것은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리엘의 미래와 견주는 일. 그 값이 얼마든 하찮은 대가가 아니겠나.
옆에서 듣고 있던 마법사들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맞소! 이안 님 앞에서 비싸다는 말은 꺼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이안 님 얼마나 부자인데. 안 그렇습니까?”
“여기 먹성 좋은 베릭 한 놈 거두어 먹여 살리는 거 보면 모르겠습니까? 어지간한 능력자도 하기 힘듭니다. 황궁 요리사들도 버거워하는데!”
“아니지, 아니야. 이안 님까지 갈 것도 없어. 우리 선에서 정리 가능하지.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아, 잠깐만. 아까 금화가…….”
“주인장! 거스름돈 주세요!”
“됐어, 가져! 푼돈으로 뭘 쩨쩨하게!”
베릭 보고 취했다 뭐라 하더니, 마법사들이야말로 정신이 반쯤 나간 듯싶다.
하긴, 나절 푹 자고 일어났다 해도 아직 체력 회복이 덜 되었고, 무엇보다 빈속 아닌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마법사들이라 하더라도 몸뚱이는 인간이다. 술 앞에 장사 없다.
“그럼 실라스크만 필요하신 겁니까?”
“라로메디아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방금 말했던 대로 국가적인 사안인지라.”
“뭐, 여기 사는 놈이나 저기 사는 놈이나 다 똑같겠지요. 알겠습니다. 내 그러면 실라스크 좀 떼 오면서 정보도 가져오겠습니다.”
식물의 경우 무한 재배가 가능하므로, 최초 거래가 제일 비싼 편이다. 타오마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며 조언했지만, 이안은 손만 내저었다.
“오늘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군요. 타오마와 같은 귀인을 만났으니까요.”
“저를 귀인이라 하시는 분이니, 저도 그리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으하핫! 안 그래도 적적한 술자리, 시끌벅적 재밌어져서 저도 좋습니다.”
로엘은 살겠구나. 윈첸의 옷은 입었지만 조금은 다른 길을 걷겠구나. 이안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남은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참. 그런데 듣자 하니, 동방의 한 나라가 하완 쪽으로 물건을 떼다 주고 있다던데. 그게 맞습니까?”
타오마의 물음에 안주를 와구와구 퍼먹던 베릭이 멈칫거렸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동시에 머릿속으로 화총을 떠올린 참이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타오마가 머쓱하게 웃었다.
“들리는 정보가 그러한데, 확인할 길이 없어서요.”
그걸 확인하려면 하완 수뇌부와 접촉하든지, 아니면 유혈이 낭자한 루스웨나 전쟁터 한복판에 있어야 하지 않나. 장사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베릭은 먹던 것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왜? 동방 쪽이랑도 어떻게 꼼지락꼼지락하시려고?”
“뭐든지 길이 열려 있으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더군. 듣자 하니, 동방은 좀 희한한 곳이라서.”
“뭐가?”
“음.”
이걸 말해 줘, 말아? 정보가 곧 돈인 세상인데. 타오마가 우물대자, 베릭이 안 되겠다며 주인장에게 소리쳤다.
“여기서 제-일 독하고 비싼 술 갖고와!”
“제일 독한 거요?”
“그래. 이게 술인지 독극물인지 모를 만큼 독한 걸로! 입 대면 바로 주인장 욕 나오는 걸로!”
주인장이 후다닥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잘됐다! 마침 재고 처리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던 게 하나 있었는데, 제발로 갖고 오라 하니 말이다.
이윽고 주인장은 묵직한 항아리를 째로 가져와 테이블 옆에 놓았다.
쿠웅!
“당부드리지만, 마시고 죽어도 저희 가게는 잘못 없습니다.”
“걱정 집어치우셔. 우리가 어떤 놈들인데.”
처억! 베릭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마법사들도 뒤따라 그의 손목에 주먹을 교차하며 호응했다.
배때기에 구멍이 뚫려도! 마력을 모두 쥐어짜내도! 금기의 마법사와 맞서도! 거대하고 포악한 마물과 싸워도! 죽지 않고 살아온 정예들이다. 그런데 이깟 술?
“돌아가면서 한 잔씩 마시자. 콜?”
“콜!”
타오마는 테이블 위를 쓸어버리더니, 빈 잔을 들어 항아리 속에 푹 담가 양껏 퍼냈다. 그러곤 꿀꺽꿀꺽. 안주 따위 없이 진검승부를 내자는 뜻이다.
베릭이 씨익 웃으며 그를 따라 마셨다.
“커헉! 아이고, 시발, 주인장 새끼! 뭐 이딴 술을… 꾸에에엑-!”
“커헉, 조, 좀 독하긴 하군.”
“계속 가?”
“당연하지!”
타오마와 베릭은 주거니 받거니, 계속해서 술을 퍼마셔 댔다. 마법사들은 턱을 괸 채 이를 구경했고, 이안도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기다렸다. 냄새가 독한 게, 얼마 안 가 승자가 정해질 것이다.
“커억!”
콰앙! 일곱 잔째 퍼마시던 베릭이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 댔다. 타오마는 앉은 채로 비틀거리더니, 꺽꺽 웃어 젖혔다.
“감히 이 몸에게 덤벼들더니, 꼴좋다!”
“다음은 나다!”
“오호?”
이어서 마법사들이 나섰다. 머릿수가 다섯이나 되니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타오마는 이미 술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다. 이안 님, 이 한 몸 바쳐서 거래에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 오겠나이다.
마법사들이 의지를 불태우며 소리쳤다.
“으라차찻! 가자!”
“가자아아!”
쿠웅!
하지만 가끔은, 아무리 맹렬한 의지도 몸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그러했다. 마법사들은 도미노처럼 머리를 테이블에 쾅쾅 박아 댔다.
“크흣, 크흐흐. 이 자식들, 그래도 먹을 줄은 아는구우먼. 아이고, 대가리 땡겨. 오랜만에 재밌게 먹어서 좋아아. 으흠.”
이안은 마법사들을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타오마를 돌아봤다. 그 역시 이제는 무리인지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었다. 발음도 한껏 어눌해진 상태. 그는 눈을 치켜뜬 채로 이안에게 물었다.
“마지막, 장관께서도 하시이련지?”
“뭐.”
앞에서 저리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뒤에서 안 받아주면 그것도 도리가 아니지. 일대일이라 뒤로 못 버린다는 게 아쉽지만…….
스윽.
“마시자고.”
“키, 키키, 좋아요. 좋아아.”
타오마가 비틀거리며 술을 퍼 마셨다. 그것도 한 가득. 이안 역시 타오마를 따라서 술잔을 깊이 담갔다 퍼 올렸고,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뜨겁고 쓰라린 느낌. 하지만 잔을 내렸을 때, 이안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한 잔 더!”
콰앙!
“으억, 가, 가자아.”
콰앙!
“우, 우엑…….”
타오마의 눈앞이 흐려졌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정신이 끊어지리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은 한계였다. 점차 몸이 옆으로 기울었고, 이내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타오마의 의식은 완전히 암전됐다.
“…….”
후우. 이안은 전멸한 부하들을 슥- 둘러보고는 주인장을 불렀다.
“여기 종이랑 펜 그리고 인주 좀.”
“아, 잠시만요.”
그러고는 뭔가를 적어내더니, 타오마의 손가락 지장까지 알뜰살뜰 찍는 게 아닌가.
주인장은 텅 비어 버린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코를 막아 댔다. 이안이라는 저자도 참으로 대단하다. 어지간한 주당도 두어 잔 마시면 바로 가는 술인데.
끼이익.
“잘 마셨소.”
“아, 일행 분들은 어찌할까요?”
“사람을 보낼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이안은 그리 말하며 홀연히 가게 밖으로 나가 버렸다. 주인장은 당황하여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불을 모두 꺼 버렸다. 돈도 왕창 벌었으니, 내일 문 닫고서 치워야지.
드르륵!
* * *
“커억!”
타오마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일어났다. 텅 빈 주점, 사람이라고는 자기 혼자다. 두개골이 깨질 것 같은 느낌과 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고통에 괴로워 미칠 것 같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아, 마법부 장관을 만나서 거래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우에에엑. 우엑.”
타오마는 옆에 놓인 텅 빈 항아리에다 속을 게워내며 얼굴을 문질러 댔다. 그러자 테이블에 놓여 있던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그의 옆에 떨어졌다.
“이, 이게 뭐야.”
-타오마는 실라스크 한 줄기를 금화 한 닢에 매매해 줄 것을 약속하고, 라로메디아에 대한 정보를 가감 없이 황궁과 공유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사흘 안에 마력석 그림 장부에 관한 내용을 바리엘 황궁과 논의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사형에 처해지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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