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7
제697화. 새벽 4시의 괴담
“음?”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교대병이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원래라면 다들 졸려 죽겠다며 서둘러 정리하고 들어가기 바쁜데, 둘러앉아 뭔가를 속닥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어찌나 몰입했던지 교대병이 온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가 스윽 다가가서 고개를 들이밀자, 다들 화들짝 놀라 뒤집혔다.
“이봐.”
“으, 으아아악!”
“다들 뭐 해? 안 들어가?”
“버, 벌써 교대 시간이로군.”
“무슨 일 있어? 왜들 얼굴이 희게 질렸대?”
병사들은 쪼그려 앉은 채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도 여기 끼어서 좀 들어보라는 듯이. 그들은 초췌한 몰골로 속삭였다.
“밤사이 왕궁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
“무슨? 잠만 잘 잤는데.”
비상 상황이 있었다면 그가 지난밤 통잠을 어찌 잤겠는가? 이에 병사들은 조용히 하라며 쉬쉬거리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게 낮췄다.
“그러니까, 아마 새벽 4시쯤이었어.”
보초병에게 너무 가혹한 그 시간, 새벽 4시. 몰려오는 잠을 의지로 꺾을 수 없는 순간이 가끔 있다. 한 병사는 머리를 벅벅 문지르며 지난 새벽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졸았나 봐. 갑자기 귓가에 뭔가가 느껴지더니…….”
“느껴지더니?”
“누군가 속삭였어.”
“뭐라고?”
병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 스산한 음성, 차갑게 흐르던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면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자-”
꿀꺽. 병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사형!”
“뭐?”
교대병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지만, 밤사이 보초 섰던 병사들은 질색하며 몸을 떨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꾸벅꾸벅 졸았던 자들이 모두 저 음성을 들었던 게다.
“미쳤나, 다들.”
“진짜라니까! 화들짝 놀라서 깼는데, 아무도 없었어.”
“북문이랑 남문에 선 병사들도 들었다니까?”
“에이, 다들 왜 그래? 정말.”
“여기서 끝나지 않아.”
진짜는 지금부터다. 병사들은 위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임시 마법부가 들어서 있는 난간을 조심스레 살폈다.
“…마법부.”
쿠구궁!
그때, 갑자기 마법부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칼라마트 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진동이다.
병사들이 놀라서 서로를 얼싸안자, 교대병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매번 있는 진동인데 뭘 그리 놀라? 아카펠라인가 아코디언인가 하는 마법사가 실험 같은 걸 한다며.”
“짜식아!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했던 적 있어?!”
“어, 어, 어제 병사들이 동시에 그 의문스러운 소릴 듣고서 작게 소란이 일었거든? 당연히 마법부 쪽으로 보고하러 갔지!”
“근데?”
“아니, 세상에나. 마법사들이 모두 널브러져서는 일어나지도 못하더군!”
“뭐,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새벽 4시였다며.”
“그런 게 아니었다니까. 답답하네, 정말!”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거랑 모종의 연유로 기절한 거랑 어찌 구분을 못 하겠는가? 병사는 새벽의 광경이 떠올랐는지, 코를 틀어막았다.
“어디선가 악취도 심하게 났고.”
“악취라…….”
“독극물에 당했는가 싶더라고. 그래서 바로 장관실로 달려갔지!”
타닥타닥!
빈 복도를 내달리던 병사의 두려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조금 거칠게 장관실 문을 두드렸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묵묵부답. 병사들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모두가 잠들어도, 단 한 명, 마법부 장관만큼은 잠들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혹자는 마법의 힘이라 하였고, 또 누군가는 어려서 체력이 좋다 하였다.
무엇이 되었든, 마법부 장관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실례합니다, 이안 장관님. 남문 보초병인데, 마법부의 마법사님들이 모두 일어나질 않으셔서요.”
끼이익.
“방금 병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신원미상의 음성을 들은 사건도 있어서, 확인을 해보심이 좋을 것 같아…….”
사각사각사각.
불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어두컴컴한 방 안. 소름 끼치는 펜촉 소리…….
병사들은 기겁하며 내적 비명을 질러댔다. 이안 장관이 넋 나간 눈빛으로 무언가를 미친 듯이 적어 내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모습이 퍽 기이하여,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켜댔다.
“저기, 이안 장관님?”
“…그대들은 남문 보초병이라 하였지.”
“아, 예예. 그렇습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건 북문인데, 어찌하여 그대들이 보고하는가.”
“아, 그, 그것이…….”
멈칫. 빠르게 움직이던 이안의 펜촉이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가 들렸다. 짐승의 무엇인가와 같이 번뜩이는 화사한 금안.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니 병사들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도르르륵.
그들의 앞으로 굴러들어온 무언가.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그것은-
“으, 으아아악! 으악!”
“꺼, 꺼어억…….”
눈알이었다.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뒤로 널브러졌고, 줄곧 그리 방치되다가 해가 뜬 이후에나 지나가던 시종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얘기를 듣던 교대병이 이제 좀 알겠다는 듯 몸을 떨어댔다.
“장관실에서 기절을? 무서운 사건 맞는구만.”
“아니! 그게 아니다!”
병사들이 단숨에 반박하여 덧붙였다.
“이안 장관님은 어젯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으셨대. 그러니까 우리가 해 뜰 때까지 장관실에서 기절해 있었지.”
“…헉.”
“생각해 봐. 장관님이었으면 쓰러진 우리를 그대로 뒀을까? 당연지사 사람을 불렀을 터.”
그렇겠구나! 교대병은 그제야 입을 살짝 벌리며 당황해했다.
그럼 그들이 어제 본 이안 장관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법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던 건 왜 그런 것이고? 무엇보다, 병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었던 음성은?
주위가 숙연해졌다. 아침 해가 따사로웠으나,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것 같다.
“이보게.”
“으아아악!”
시아오시였다.
옹기종기 모여서 떠들어대던 탓에,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잡고 우당탕 넘어졌다. 시아오시는 뭣들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교대할 시간이 지났는데.”
“아, 죄, 죄송합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가서 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아오시는 그리 이르며 몸을 돌렸다.
지난밤의 소란으로 여기저기 뒤숭숭한 말들이 많이 들려왔다. 유령의 소행이니, 칼라마트의 설움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시아오시가 작게 한숨 쉬며 마법부 계단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아악!”
듣는 사람이나, 지르는 사람이나,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드르륵! 시아오시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어젖혔고, 이내 올라오는 악취에 코를 가렸다.
“일어나셨습니까.”
“아아악! 아아악! 대가리 깨질 것 같아!”
“우, 우에엑. 우엑. 누, 누가 나 등이라도 좀…….”
“아니, 미친 새끼야 여기서 토하지 말라… 우웁!”
“하. 진짜. 차라리 죽여주세요.”
“으윽, 마법, 마법! 이럴 때 쓸 만한 거 뭐 없나?”
“…서로 숨통 끊어주기 어때.”
숙취에 절은 마법사들이 개 헛소리를 해대며 빌빌댔다. 대체 밖에서 무슨 술을 먹었기에 이리 난리란 말인가? 그것도 마법사라는 자들이, 신분을 망각하고서 이런 추태라니.
시아오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창문을 모조리 열었다.
“냄새가 심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맡으면 독극물이라 오해할 정도로요.”
“에이, 설마요. 그 정도는 아닐걸요?”
“다들 이미 오해하고 있습니다.”
“농담도 차암. 저기, 있잖아. 나 어제 기억이 없다.”
“나도. 술집에서 타오마 만난 것까지가 다야.”
시아오시는 마법사들을 가만 내려다봤다. 배경이 왕궁 내 마법부실이라 저 정도지, 길바닥에서 마주했으면 거지가 따로 없는 몰골이다.
멍하니 정신 놓은 마법사들이 시아오시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마주했다.
“저희, 어제 어떻게 된 겁니까?”
“이안 경께서 연락하여 제 부하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마법사들의 체면과 품위를 위하여, 아주 은밀하게.
마른입을 쩝쩝거리던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안 님은요? 타오마, 그 자식이랑 결판을 내셨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시아오시는 전날 밤 이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하들을 데려와 달라 부탁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홍조가 살짝 오르고, 끝 발음이 조금 뭉개지는 것 외엔.
“그런데 혹시나 해서 묻는다.”
“뭐?”
“누가 나 자는 사이에 두개골 쪼갠 건 아니지?”
“어제 넘어진 거 아니야?”
“베릭일 수도.”
이안 걱정할 것 없다는 말에, 마법사들은 다시 발라당 누우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자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아코렐라가 들이닥쳤다.
“어이, 말썽쟁이 새끼들! 술 처먹고 자빠져 자니까 즐겁지?”
“아, 대장.”
“이 몸이 트윽-별히 네놈들 생각해서 숙취 해소제 만들어 왔으니까, 주둥이 벌려라.”
“우, 우웁! 됐어요! 진짜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어이구, 착하지.”
숙취에 절은 마법사들이 아코렐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리저리 구르다 결국 덜미가 잡힌 한 마법사. 그는 사지를 휘두르며 반항했다.
“이, 이안 님께도 드릴 수 있는 거면 먹을게요!”
“이안 님은 안 먹어도 돼.”
“네?”
“멀쩡하시던데?”
아직 주무시지만, 네놈들처럼 엉망인 꼴이 아니다, 이 말씀! 단정하게 누워서 이불도 잘 덮고, 뽀송뽀송한 피부에 뭔지 모를 향기까지 가득했다.
시아오시는 더 이상 못 보겠다며, 문밖으로 걸어갔다.
“그럼, 뒷수습 잘 해주십시오. 마도구 사용 건은 둘러댈 방도가 없어서 이안 경이 아예 성에 없었노라 일렀습니다. 대충 말 맞추면 될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아오시 경! 그냥 가지 마시고,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아아악! 악! 와라라랅!”
“아이고, 예뻐! 잘 먹는다!”
끼이익! 쿵!
절규하는 마법사들의 비명을 뒤로하고, 시아오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슬쩍, 이안의 침실 쪽을 쳐다봤다. 곱게 닫힌 문 너머는 어떤 소음도 없이 고요했다.
사락.
한편 그 시각.
이안은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잠에서 깼다. 쨍한 햇살, 살랑거리는 쉬폰 커튼, 그리고 깨끗한 침구. 모든 게 완벽한 아침이었다.
조금 지끈거리는 두통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
이안은 천장을 바라보다 슬쩍 옆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음성 확장형 마도구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꼬질꼬질, 술에 젖은 흔적이 여실한, 타오마와의 계약서였다.
“……?”
실라스크와 라로메디아, 그리고 마력석 그림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사형?’
…이게 뭐람. 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으나, 중간중간 얼룩진 것처럼 온전치 않았다.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장관실에서 놀라 자빠지던 병사들. 도와주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힘들어서 다르시 부인 눈알만 줍고 말았다. 그 뒤로 눈뜨니까 지금, 침대 위인 것이다.
스윽.
이안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살피며 눈을 깜빡였다. 마감일이 뒤로 밀려 있던 결재들이 모두 처리되어 있었다. 혹여 문제 되는 부분이 있나 싶어 확인해 봤지만, 놀랍도록 완벽했다.
이안은 의아해하면서도 애써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밤, 취한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게다.
“…뭐.”
실라스크 한 줄기에 금화 한 닢이라. 나쁘지는 않았네. 내용 자체가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제정신 아닌 채로 쓴 것치고는 분명히 도움 되는 것들이었다.
이안은 계약서를 곱게 접어 옆으로 치운 다음 다시 눈 감았다. 아래층에서 쿵쿵 뭔가 소란이 일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다들 무사히 성으로 돌아왔다는 증거였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