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축하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이안 님이 새로운 영주가 되신다고!”
“축하합니다! 이안 님!”
“축하해요, 이봐! 천려족! 그러지 말고 한잔해.”
“앞으로는 자작님이라고 불러야겠구먼. 하하!”
이안의 영주 임명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영지민들이 한달음에 몰려온 것이었다. 일순 축제 같은 분위기에 밤이 길어졌다. 이안은 창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치엘로니아는 결국 몰린과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저 함께 해온 세월로 해석할 수 있는 눈빛만 오갔을 뿐이다.
“허, 참나!”
이안을 비롯한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 로만드로만 마냥 웃지 못한 채 와인을 땄다. 뽕, 하는 소리와 함께 로만드로가 병을 흔들었다.
“자작인 것까지는 내 이해를 함세. 아무래도 영지 규모로 보아 남작은 모자란 것 같고, 그렇다 하여 백작을 주기에는 조금 과하다 싶었던 거지.”
게다가 사실상 변경은 작위와 상관없이 대부분 백작의 권한을 받고 있었다. 황족인 공작과 후작 바로 아래 계급. 자치권 인정을 위한 최소한의 커트라인이었다.
“변경 자작이라, 참으로 낯선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금화 1만 닢을 1년 안에? 브라츠에서 나는 조세 보고서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계산일 터인데.”
알고도 그리 한 것이지.
허락한 황제의 의중은 모르겠다만, 아마 이를 처음 제안한 자는 변제 실패를 상정해 두고 제안했을 터다.
그리고 그건… 게일일 확률이 높다.
“브라츠에서 걷는 1년 치 세금이 1만이지 않나? 거기에 다시 1만이라니! 상황이 이리하거늘, 어찌 바로 두 배의 세금을 내라 한단 말인가. 황제 폐하도 무심하시지, 알력다툼 이전에 브라츠 영지민이 있음을 어찌 모르실까.”
로만드로가 분통을 터트려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안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바깥의 영지민들은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1년 동안 단맛만 보고서 노예로 전락할 운명과 같았다.
차라리 영주로 떵떵거리며 지내면 원이라도 없지!
그뿐만 아니다. 분명 임명식을 하기 위해 올라가면, 마력운용자 등록과 함께 마법사로서의 관리도 진행될 것이다.
“서너 달 되겠나? 영지에서 안락하게 지낼 시간이.”
“신년까지 그 정도 남긴 했습니다.”
“아니지! 서너 달이 무언가? 지금 영지 재건하느라 쌔가 빠지게 구르고 있는데! 눈 내리고 난 이후에 한 달이나 놀 수 있음 모르겠네!”
“어찌 로만드로 님이 그리 열을 내십니까.”
이안은 진정하라는 뜻으로 그의 와인을 채워주었다.
“어쨌거나, 이곳의 영주가 되겠다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즐길 때는 즐겨야 하는 법입니다.”
콰앙!
“이안!”
그때, 베릭이 문을 확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상기된 얼굴이 즐거워서 그런 것인지, 술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베릭은 천려족 몇 명과 몸을 부딪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돼지! 돼지 잡자!”
“허락 안 해주신다니까, 베릭!”
“아 좀! 물어나 보는 거지!”
“그래. 기분이다. 잡아 보아라.”
“오예! 이것 봐! 날이 날인데에!”
우당탕탕!
베릭이 소리치며 내달려 나가자, 카칸티르와 네르사른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한껏 환하게 웃으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축하하네, 이안 경.”
“고맙습니다. 모두 천려의 도움 덕분입니다.”
“아아. 정말 잘 되었어.”
“예상 밖으로요?”
“그래. 굳이 말하자면, 그러하네. 하하하!”
데르가를 젖히고 이안을 밀어준 것이 완벽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한 날이었다. 이제 그들은 변방의 야만족이 아닌 하나의 우방국으로 대접받을 것이며, 그에 걸맞은 경제와 문화의 성장을 이루어 낼 것이다. 바로 이곳이, 바리엘로 통하는 환영문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황제의 서신을 구경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이안은 치엘로니아가 하사한 두루마기를 펼쳐 보였다. 맨 아래, 반듯하게 적혀있는 현시대 황제의 이름, 클라이 베로시온.
‘잘 모르겠단 말이지.’
이안은 선대의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지만, 딱히 특별하게 떠오르는 정보가 없었다. 혼란의 시대였다. 한 세기 사이에 수많은 황제가 왔다 갔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안 본인만 해도 고작 3년만 채우고 내려오지 않았던가.
“음?”
“왜 그러지?”
“…아닙니다.”
이안의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황제의 직인이었다. 평소 그가 썼던 것과 크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착각인가 싶어 손끝으로 쓰다듬어 봤지만, 그럴수록 촉각은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매일매일 찍어댔던 직인이다.
이안은 눈 감고도 그 자체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으므로, 이 미묘한 차이가 심히 거슬렸다.
‘직인이 다른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황제의 직인은 개국과 동시에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었다. 중간에 소실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혹여 그리했다 한들…….
‘내가 모를 리 없다.’
이안은 의아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인장을 살폈다. 그럴수록 확신과 의구심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결론은 하나다.
중간에 인장이 바뀐다는 것.
하지만 대체 왜? 어떠한 일로?
로만드로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닳겠네그려.”
“어디 불편하십니까?”
“그게, 흠. 이제 자작으로 임명되면 내가 그, 호칭을…….”
로만드로가 카칸티르를 힐끔거리며 웅얼거렸다. 둘이 있을 때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외부인을 보자 현실감이 확 살아난 것이다. 자작 이안은 어느 면으로 보나 로만드로보다 위쪽 사람이다.
“아직 정식이 아니니 편하게 하십시오.”
“그, 그래도 되려나?”
“당연하지요. 성(姓)이 없지 않습니까.”
“하, 하핫! 빨리 겨울이 오면 좋겠군. 신년회 전에 중앙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아내에게 편지를 써야겠어.”
로만드로는 생각만 해도 들뜬 목소리였다. 해를 넘어서 겨우 가려나 싶었는데, 그 전에 임무가 끝난다고 하니 기쁜 게 당연했다. 카칸티르 역시 복귀의 의사를 보였다.
“우리도 서서히 천려의 전사 수를 줄이려고 하네. 날이 추워지는 것도 있고, 전사들이 대사막을 그리워해서 말이야.”
“아, 돌아가신단 말씀이군요.”
“나는 이른 시일 내로 그리할 것이고, 네르사른은 여기 남아 있다 올 것이네.”
하지만 미리 합의가 안 된 내용 같다. 뒤에 서 있던 네르사른이 기겁하다 못해 기절할 것처럼 표정을 굳혔으니까 말이다. 추위에 워낙 약한 자들이라 ‘눈’이라는 계절 현상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중앙에서 금화 1만 닢을 요구했다던데.”
“그렇습니다.”
“마련할 수 있겠나? 도와주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우리 능력 밖이라서 말이지. 차라리 적군의 모가지 1만 개라면 몰라.”
농담이지만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영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이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와인 잔을 들었다.
“문제없습니다. 당장 임명식 때 내라는 것도 아니고, 1년이라는 시간을 주셨으니까요, 제가 대사막에서 영주 자리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두어 달입니다.”
하루아침에도 뒤집히는 게 인생이거늘, 그깟 1만 닢. 1년이면 충분히 할 만했다. 무엇보다 이안은 황궁에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않나.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건 곧 걱정할 이유도 없다는 거다.
“확실히, 신께서는 답 없는 문제를 안 내신다네. 중앙으로 가면 거기서 또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걸세.”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안은 와인 잔을 비운 다음 창밖을 힐끔거렸다. 여전히 영지민들의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늦은 밤인데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아무래도 황폐해진 영지에 활기를 더해줄 이벤트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다들 저리 신나서 놀다니…….
“참, 이안. 영주임명장을 받았으니 인근에 희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겠나?”
인근이라. 로만드로의 말에 이안이 카칸티르를 쳐다봤다. 제일 가까운 쪽은 여기 있고.
그 다음은…….
“아아. 그렇네요.”
남은 것은 메렐로프. 암살 시도에 대한 항의서를 보냈으나 답이 없던 참이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무대응이다.
“메렐로프에 서신을 써야겠습니다. 공식으로 영주임명장이 왔으니, 이번에는 답신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 * *
“뭐? 그자가 작위를 받아?”
“방금 서신이 올라왔습니다.”
메렐로프는 집사의 손에서 서신을 뺏다시피 낚아챘다. 그리고 연말에 정식으로 임명을 앞두고 있으며, 그가 자작에 봉해질 것이라는 자필 편지를 읽어냈다. 아래에는 ‘친애하는 메렐로프 백작님 덕분입니다’라는 마음에도 없는 감사 인사까지 적혀있었다.
“참나. 세상 말세군. 사창가 출신 천것이 귀족 행세나 하고 다니니 말이야.”
“축하의 답신을 보내야 하는데, 일전에 받았던 서신 답장이 밀려있는 바람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로만드로의 이름으로 올라왔던, 이안의 습격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메렐로프는 당시 콧방귀만 꼈더랬다. 혹여 이안이 직접 보냈으면 어딜 메렐로프 영지민을 죽였냐면서 당장 뒤집어엎었겠지만, 발신인이 로만드로라 차마 그러질 못하고 무시로 응대했다.
“그럴 것 있나? 그저 시종에게 말을 전하라 하거라. 종이와 잉크가 아까우니.”
“네. 주인님.”
철저하게 오만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식으로 귀족임명이 되었으면 이웃 영지 대접은 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서로 견제하는 사이기도 했지만, 변방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의지하는 건 결국에 둘밖에 없었다.
집사는 어쩔 수 없이 저가 대필하여 써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렐로프 백작은 서신을 한쪽으로 휙 던져 버리고서는 서류를 마저 읽어내렸다. 겨울을 앞두고 영지의 수익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사.”
메렐로프 백작은 문득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브라츠 쪽이 식량 보급에 관해서는 말이 없던가?”
“네. 그와 관련된 서신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군. 작년보다 흉작인지라, 그나마 대비했던 메렐로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그나마 날이 추워지면 외국 상단이 꽤 길게 거주한다고 하여 다행이지만, 이안이라는 놈은 어떻게 하려고 대응이 없나 모르겠다.
“시체 뜯어먹을 생각인가? 쯧쯧.”
메렐로프 백작은 비웃음을 삼키며 서류를 휙휙 넘겨댔다. 집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복도로 나가자, 끝에서 부인이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잠시 이쪽으로 오라는 신호였다.
“마님. 무슨 일이십니까?”
“브라츠에서 서신이 왔다며?”
“그렇습니다. 이안 경이 정식으로 자작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오호.”
부인은 의외라는 듯 감탄사를 작게 내뱉었다.
“백작님은 무어라 하시던가?”
“어떤…….”
“답신 말일세.”
집사는 난감하여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대신 적어서 낼 생각이었기에. 백작 부인은 의중을 알아채고는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잘 부탁하지.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말이야. 선물을 하나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전유물 창고를 열어두시게나.”
“백작님 허락은…….”
집사의 말에 메렐로프 부인이 부채를 빠르게 접었다. 하늘하늘, 의미 없이 흘리는 웃음이 단박에 굳어버렸다.
“지금 허락 맡으러 가는 길일세.”
“꼭, 그렇게까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님.”
집사가 서둘러 그녀를 말렸다. 어차피 백작이 답신 쓰는 것도 포기한 상대. 그에게 줄 선물 따위로 엄한 일을 당할 순 없었다. 하지만 부인은 단호하게 집사를 쳐냈다.
타악!
“그리해야 하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부인은 집무실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