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1
제701화. 홀린의 칼라마트
이안은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찻잔을 들었다. 베릭이 잘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북쪽과 가까워질수록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건 분명했다.
진은 그런 이안을 가만히 살피더니, 넌지시 물었다.
“이안 경. 몸 상태는 좀 괜찮은가?”
“…예, 폐하.”
이안의 대답이 살짝 느렸다. 루스웨나 전쟁에서 바닥난 마력을 회복했는지, 아니면 숙취로 인한 몸 상태를 묻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둘 다일 것이리라.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싱긋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신은 지난밤, 별일 없었노라고.
똑똑.
“폐하. 홀린 가문의 다니트 부인과 카일라 영애가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라.”
진의 허락에 천천히 문이 열렸다. 출정 날짜가 정해지면서 바리엘의 본대 이동이 확실시되었으니, 홀린 가문의 모녀가 상황을 전달받기 위해 온 것이다.
잠시 후 다니트 부인은 벨벳 드레스 자락을 끌며 안으로 들어섰고, 카일라 영애는 휠체어에 앉은 채 모습을 보였다.
“어서 오시게나. 부인과 영애를 함께 보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군.”
다니트 부인과 카일라 영애, 두 사람은 바리엘의 귀족이자 버고스 왕가의 핏줄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여 바리엘의 지지를 등에 업고 버고스 왕당파를 숙청, 새로운 왕조를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중이었다.
카일라 영애는 휠체어가 익숙해졌는지, 능숙하게 스스로 바퀴를 굴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송구합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서요.”
“송구할 것은 없지. 들었겠지만 본대의 출정 날짜가 정해졌소. 이제 칼라마트에 주둔 중인 바리엘 병사들도 철수할 것인데, 그대들은 준비되었는가?”
바리엘의 도움 없이도 칼라마트를 지배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홀린 가문은 칼라마트 주민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음식과 생필품을 나누었고, 자신들만이 진정한 적통이며 바리엘과의 교가 역할을 할 수 있노라고 선전했다.
“예. 다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현재 버고스의 젖이 완전히 오염되어 토올룬에 대한 주민들의 적의가 가득합니다. 오직 바리엘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병사들이 철수하여도 저희 선에서 왕궁을 지킬 수 있습니다.”
카일라 영애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들어서 있었다. 이에 황제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바리엘은 그대들에게 뒤를 맡기어 마음 놓고 북진하겠다. 트웰러 장관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마력석을 두고 갈 것이니 사용하도록.”
“아, 마력석이라 말씀하시니 보고드릴 것이 또 있습니다.”
다니트 부인은 부하에게 손짓하여 서류 더미를 가져오게 했다.
“아코렐라 대장과 함께 광산지에 있었을 때 들은 소문입니다만-”
거동이 불편한 카일라 영애를 대신하여, 그간 여기저기 이동하며 일 보는 건 다니트 부인의 몫이었다.
그러다가 현재, 그녀는 아코렐라와 함께 마력석 채광 현장에 나갔다가 황제의 철수 명령으로 다시 돌아온 상황. 이는 토올룬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었는데, 되레 바리엘이 먼저 진군한다고 하니 그녀 또한 다시 광산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무엇인가?”
“아주 오래전, 동쪽 마법사들이 광산을 방문했었노라 이르는 노인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저 구전이고 헛소문에 불과하다 여겼는데, 공식 문서가 남아 있더군요.”
진은 흥미로워하며 서류를 찬찬히 넘겼다. 하도 오래된 것이라 곧 바스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동쪽의 대마법사가 제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들은 긴 로브를 허리띠로 고정한 특이한 옷차림이었는데, 사내고 여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검고 긴 머리였다…….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들은 영주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내 광산을 둘러보다가 생각했다. 저곳에 자신들이 필요한 마력석이 있노라고.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를 떠났고, 일반 돌과 마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영주는 광산 개발을 잠시 미루었다…….
“언제 기록된 일이지?”
“날짜가 정확하다면, 78년 전의 일입니다.”
다니트 부인은 테이블 위에 다른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기 전, 아코렐라와 마법부가 채굴한 마력석 종류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진은 바로 이안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아마 이것들 중 하나가 동쪽의 마법사들이 원하는 물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로니옴, 아와엘, 스티자톤, 크로듐, 노타르…. 상급 마력석만 있는 게 아니다. 하급과 중급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데, 이것들 중 무엇이 동쪽 마법사들이 찾았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률적으로…….
“크로듐과 노타르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이것들은 지금이나 미래나 버고스에서만 발견되는 상급 마력석으로, 희귀도가 상당한 것들입니다.”
“황궁에서도 보유한 것이 없나?”
“예.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마법부 별채를 짓는 데 필수적인 물질들이었다. 이안이 없던 지난 10년간 마법부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제일 큰 요인. 버고스의 내란 탓에 공급되지 않은 주요 마력석들이기도 하고.
“이것들은 버고스가 아니라 바리엘 황궁으로 옮겨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쪽 마법사들이 하완과 접촉한 사실이 있으니, 기회가 있다면 저희 쪽에도 접선을 시도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이 이걸 필요로 한다면, 분명히 좋은 협상 카드가 될 것이다.
진 역시 동의한다는 뜻으로 보고서를 툭툭 두드렸다.
“홀린 가문에서는 책임지고 해당 상급 마력석을 바리엘 황궁으로 전달하도록.”
“예, 폐하.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만.”
“무엇인가?”
“클로이 영애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클로이 다비온, 카일라와 함께 유력 황후 후보였지만, 아코렐라의 마법 실험으로 여차저차 일이 많았던지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클로이 영애가 전쟁에 참전한 것은 황후 자격을 득하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여, 바리엘로 돌려보내실 것이라면 상급 마력석을 운반할 때 함께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미 내란으로 기운 상태였던 버고스와 달리, 토올룬은 위험도가 남달랐다. 괜히 클로이를 데리고 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다비온 가문과의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그녀의 참전은 일종의 합의된 시험 같은 것이었으니까.
“영애는 가지 않겠노라고 울고불고 난리지만요.”
카일라 영애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희한하다. 바리엘에 있을 때는 오로지 황후 자리만이 그들 목표의 전부였는데. 지금 카일라 자신은 버고스의 왕좌를, 그리고 클로이는 다른 사내의 옆자리를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진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잠시 고민했다.
“홀린 가문은 클로이 다비온 영애의 친필 서신 또한 황궁으로 함께 전하라. 본인의 의지로 남았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어.”
“예, 폐하.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일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 눈짓으로 진과 이안은 클로이 영애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혹여 부득부득 자신을 바리엘로 보내려 한다면, 결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달려 들어와 넙죽 엎드릴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논의가 필요한 보고 내용은 이것이 다입니다. 그럼, 저희도 출정 준비에 힘을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부디 바라옵건대, 온전한 승리만을 누리시고, 무사 귀환하십시오. 마음 깊이 기도하겠습니다.”
“…카일라, 그대도. 잘 지내시오.”
진이 칼라마트를 떠난다면, 두 사람은 이제 만날 길이 없을 터였다. 언젠가 그녀가 버고스의 왕위에 오른다면 기회가 있으려나? 글쎄. 사절단을 통해서, 공식적인 인사말 외에 안부를 나눌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게다. 거동이 불편한 왕이라면 더더욱.
카일라는 황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희게 웃었다.
“예, 폐하.”
연정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날 그대를 만나 참으로 좋았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저 또한 존재하게 되었으니까요.
카일라는 진에게 손등을 내밀었고, 이내 황제의 입술이 와 닿았다.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끼이익.
알현실을 나온 뒤, 카일라는 두 손을 모은 채 벽에 붙어 서 있는 클로이와 눈 마주쳤다. 어찌 되었어? 클로이의 간절한 눈빛에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카일라는 휠체어를 밀어 그녀를 지나쳤다.
“친필 서신 준비해. 우리 쪽에서 전달할 거니까.”
“하, 하아.”
그러자 클로이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고, 고마워.”
“그런 인사치레보단 다비온가의 지지 서명문이 훨씬 더 필요하단 걸 알아주면 좋겠네.”
이에 클로이의 눈매가 비죽, 날카로워졌다. 한때 머리채 잡고 싸웠던 이유가 불쑥 떠오른 것이다. …싸가지 없기는.
“그건 걱정하지 마. 약조한 것은 분명히 지키니까.”
“그럼 됐고. 그런데 클로이. 너도 어지간하다. 어떻게 남자 따라 전쟁 나갈 생각을 다 하니?”
“어머, 그 사이 머리가 나빠졌구나? 지금 네 얘기 하는 거지? 황후 자리 때문에 참전하겠다고 난리 피웠던 게 누구더라?”
파지직. 카일라와 클로이가 서로 질린다는 듯 노려봤다. 다니트 부인이 부채로 둘 사이를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서로 덤벼들었을 게다.
“아무튼, 클로이 영애. 무운을 빌어요. 부디 무사히 돌아와서 다비온가와 버고스 간의 돈독한지지 관계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다비온가는 지금도 황궁을 주름잡고 있는 관료 가문이나, 나중에 클로이와 시아오시가 정식으로 혼인을 맺는다면 그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할 터였다. 견제하는 관계가 아닌, 진정으로 황제와 뜻을 함께하는 가문으로 말이다.
그러한 가문의 지지 서명을 받아내는 것이 이제 막 왕조를 새로이 열 홀린 가문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라.
“예, 부인. 꼭 살아 돌아올 겁니다. 그래서 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지요. 카일라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에 올랐는지.”
“지금 봐두는 게 좋을 건데. 그때 되면 눈도 못 마주칠 거라서. 어머니, 그만 가요. 괜한 데 시간 낭비할 것 없습니다.”
‘재수 없는 년.’
‘응, 미친년.’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욕을 퍼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니트 부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카일라의 휠체어를 밀었다. 본인들은 자각 못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친밀한 관계’로 정의할 수 있지 않겠나.
* * *
타닥타닥!
히이잉!
버고스 북단으로 내달리는 타오마의 마차 안.
베릭은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찬 바람을 쐬니 속이 좀 덜 울렁거리는 것 같다. 타오마 저 미친놈은 전생에 술 못 처먹고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칼라마트를 나오면서부터 밥 처먹듯 술을 부어대고 있었다.
“베릭, 한 잔 안 해?”
“그쪽이나 처마셔. 진짜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징글징글하다.”
“크하하핫! 이거 영광이로군!”
타오마는 세드릭에게도 잔을 들이밀었으나, 아이는 단호하고도 공손하게 거절했다.
베릭은 지루하다는 듯 지도를 펼쳐 살폈다.
“그래서, 남국으로 이어진 마력석 그림이 어디 있다고?”
“버고스 국경선 넘으면 알타르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 주민 수가 백여 명이 채 안 되는 곳이지. 거기까지만 가면 되니까, 음. 쉬지 않고 달리면 사흘 정도 걸리겠군.”
“벌써 하루 종일 달렸으니까 이틀 남았다고 보면 되나?”
“…선배님.”
“뭐.”
“지도 거꾸로 들었습니다.”
세드릭의 말에 베릭이 멈칫거렸다. …여기 징글징글한 새끼가 하나 더 있었네. 베릭이 뭐라고 대꾸하려는 차, 마부석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전방에 바리엘 제국기를 든 무리가 있습니다! 병사들인 것 같은데, 어쩔까요?”
“어, 멈춰 세워. 오수 조사단일 수도 있겠네.”
베릭은 세드릭에게 지도를 넘긴 다음, 창밖으로 상체를 길게 빼 앞쪽을 쳐다봤다. 터덜터덜, 힘없이 내려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하나, 둘, 서이, 너이…….
“어라.”
오수 조사단은 맞는 것 같은데, 왜 안 보이지?
‘클라크가 없네. 그, 폐하가 좋아하는 성기사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