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2
제702화. 기도
신관들이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곳은 외부와 고립된 곳. 어지간해서는 소란이 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끔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방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닥타닥!
콰앙!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소란이 큽니다.”
“외부인이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라주 대신관은 큼지막한 소파에 앉아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이파리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잘라내던 그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되물었다.
“외부인이요?”
“예, 강가 아래쪽 의문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돌멩이 같은 것이 쌓여 있더군요. 아무래도 물길을 막아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오수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으로 보면 분명 외부인의 소행입니다.”
“어리석습니다. 어찌 그런 것으로 물길을 막을 수 있다고.”
“바로 수색을 나서겠습니다.”
“인근 마을의 주민일 가능성은 없겠지요.”
“예, 그쪽은 애초에 정리된 지 오래고, 신전 결계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버고스나 바리엘 측의 능력자이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그렇군요. 하긴, 칼라마트에서 사람을 보내도 진작 보냈을 시간이긴 합니다. 오수의 흐름은?”
“문제없습니다. 바누사 님이 계속해서 강물의 흐름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훌륭합니다.”
토옥. 라주 대신관은 꽃을 마저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성한 신전에 침입한 자가 있다는데, 대신관 된 자로서 어찌 가만히 있겠나? 그의 움직임을 따라 옷깃이 차르륵, 부드럽게 떨어졌다.
“기도하겠습니다. 신관들은 모두 침입자의 뒤를 쫓으세요. 생포하여야 합니다. 어떤 삿된 마음으로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결계를 뚫었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바누사 님께도 전해 주십시오.”
라주 대신관의 눈매가 깊어졌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는데, 그의 눈동자는 차가웠다.
“지하로 내려오시라고요.”
“예? 지하로요?”
라주 대신관은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를 같이할까 합니다.”
신관은 멈칫했다. 신전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바누사에게 직접 보여준 적은 없었다. 대신관의 의중을 모르겠다.
하나 일개 신관일 뿐인 자가 무어라 토를 달겠나? 그는 알겠노라 이르며 재빠르게 밖으로 뛰어갔다.
“다들 모여! 침입자다!”
“강을 따라 내려가며 수색한다! 생포하는 것이 목적이나, 여의찮다면 숨만 붙여 놓아도 괜찮다.”
“이쪽으로! 서둘러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게다!”
“여기 흔적이 있습니다! 돌을 옮기면서 몸이 젖었나 봅니다. 누운 풀을 따라가면 금방 발견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바누사는 신관들이 수풀 쪽으로 내달리는 걸 보며 본관에 들어섰다. 라주 대신관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은근한 불안감이 깃들었다.
실로 연결된 왕의 시선은 피했을지언정, 대신관의 시선까진 피하지 못했나? 아마 침입자와 자신이 접촉했다는 걸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겠지.
‘안 그랬더라면 나에게 수색 지원을 요청했을 터.’
하지만 대신관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수색 명령에서 자신을 제외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리라.
바누사는 어두컴컴한 신전 내부로 들어서며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어쩌겠어. 바리엘 본대는 곧 여기 당도할 것이고, 나는 의도했든 아니든 왕께서 보낸 사람인데.’
지하로 내려갈수록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끈적하고 더러운 오수의 근원답게.
그때, 어둠 속에서 나타난 신관들이 라주 대신관의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바누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
“어서 오십시오, 바누사 님. 여기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라주 대신관 뒤에서 수족관처럼 일렁이는 검푸른 물결. 인근에 호수 따위 없다는 걸, 바누사도 알고 있다. 책에서나 봐 오던 ‘바다’일 리는 더더욱 없지.
그렇다면 저게 바로…….
“무슨 생각입니까. 저에게 균열을 다 보여 주시고.”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호기심은 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법이지요. 저는 그것이 우려스럽답니다. 우리 바누사 님께서는 토올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신데, 혹여-”
스으윽. 그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물속의 거대한 무언가가 유리 가까이 다가온 까닭이다.
바누사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실로 오랜만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라주 대신관은 다 안다는 듯, 바누사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잘못된 생각을 하실까 봐.”
* * *
“하, 하아, 하-!”
에이린의 감각이 곤두섰다. 도망쳐 나올 때 추격자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갈수록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도망치는 행위 탓에 그런 것일까? 그녀는 틈만 나면 뒤를 돌아보며 인기척을 살폈다.
‘가능하다면 동쪽이나 서쪽으로 가로질러 추격자를 피하고 싶지만…….’
여기는 토올룬. 민가의 주민들조차 바리엘 병사인 그녀를 적대시할 것이고, 무엇보다 길 잃을 위험이 너무 컸다. 나침반은 클라크가 갖고 있으며, 자신은 토올룬 지형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지 못하니.
강줄기를 따라 움직이면 쉬이 위치가 노출될 것임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할 길이었다. 그저, 속도를 더 내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버고스로 넘어가기만 하면 돼.’
기억상으로는 한나절 정도. 쉬지 않고 내려가면 해가 지기 전에는 국경선 인근에 도달할 것이다.
무성한 덤불 가시에 자꾸만 볼이 찢겼지만, 에이린은 더욱 빠르게 내달렸다.
“이쪽이다! 여기로 발자국이 이어진다!”
“헉!”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추격자의 고함. 에이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품속에 지닌 바누사의 서신을 움켜쥐며 몸을 좌측으로 틀었다.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면, 더 이상 강을 따라 도망칠 수 없음이다.
‘젠장.’
이제는 신께 자신의 운명을 맡길 때. 제발 아무런 문제 없이 안전한 장소로, 저를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 서신만큼이라도 허락하시어 황궁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에이린은 수풀에 몸을 던져 굴렀다.
“윽!”
데구루루, 한참을 구른 에이린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잘못 굴렀는지 옆구리의 고통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깟 아픔, 신경 쓸 틈 따위 없다.
뭐지? 어디지?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이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을이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하나, 둘, 셋…….”
민가 수도 적었다. 기껏해야 한 손에 꼽을 만큼.
에이린은 연신 뒤쪽을 힐끔거리며 마을 곳곳을 살폈다. 인기척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마치 버려진 마을처럼.
‘뭐지?’
절뚝거리며 마을을 가로질렀다. 담벼락과 문 따위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붙잡히면 죽음이나 다름없었기에.
에이린은 우선 몸 숨길 곳을 찾기 위해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버려진 마을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추격자들을 따돌린 다음, 다시-
히이잉!
“……!”
하지만 이어서 바로 들려오는 마차 소리. 에이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고는 상황을 살폈다.
작고 버려진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마차였다. 신전에서 나온 추격자인가? 에이린은 검을 다잡으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니! 마을이 왜 이래? 제대로 온 거 맞아?”
“마, 맞습니다. 분명히 제대로 찾아왔는데요.”
“이봐! 아무도 없어? 나일세, 타오마!”
그때, 풍채 있는 남자가 어이없어하며 마차에서 내리는 것 아닌가. 마부 역시 당황해하며 기웃거려 봤지만, 개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뭔데? 여기 진짜 맞아?”
“마, 맞긴 해. 맞는데, 분명히…….”
“됐고. 그럼 그림부터 찾아봐. 사람이 있든 없든 뭔 상관? 남국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되지.”
“그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엥? 그걸 왜 이제 말함? 여보쇼! 아무도 없냐아!”
순간, 엄습하던 공포가 사라지고 숨이 트였다. 에이린은 저 껄렁하고 멍청하며 시끄러운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바리엘 북쪽 지대에서 대마물의 습격과 마주했을 때, 자신을 구해 주었던 마검사의 음성 아니던가? 그는 분명히 바리엘 황제 곁을 모시는 황궁친위대원이다.
“사실 아까 내가 지도 제대로 들었던 거 아님?”
“그건 아닙니다. 선배님.”
그의 옆에는 낯선 남자아이도 함께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신께서 베푸신 행운이 틀림없다. 에이린이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났다.
“이보십시오-!”
“억, 깜짝이야.”
“저, 저 바리엘 본대 소속 병사, 에이린입니다!”
에이린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녀가 막 뛰쳐나왔던 수풀에서 신관들이 모습을 보였다.
“저기다!”
“저 여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
하지만 베릭과 달리, 세드릭은 에이린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걸 보고 담담하게 상황을 가늠했다.
“선배님. 바리엘 병사라고 하는데 도와주는 게 맞지 않습니까?”
“어? 그럼. 당연하지. 저 여자, 저번에 만났던 오수 조사단, 그중 한 명이다. 근데 메렐로프 남친은 어디 가고 혼자 있대?”
“메렐로프 남친은 또 누구입니까?”
“있어. 클라크라고.”
“아하. 그럼 저 여자는요?”
“에이린? 황제 폐하가 좋아하는 여자.”
“아하.”
그 말을 듣자마자 세드릭이 마력을 개방하며 에이린 쪽으로 달려들었다. 황제가 좋아하는 여자? 무조건 지켜야지. 출세라는 열매가 코앞에 있다 못해 굴러들어 오고 있지 않나.
그걸 지켜본 베릭이 질린다는 듯 혀를 차 댔다.
“하여간, 저 쪼꼬만 새끼. 야망 그득한 것 보소. 너도 곱게 뒤지기는 글렀다, 인마.”
“흐아아압-!”
채앵! 챙!
촤아아악!
“이건 또 뭐야?!”
세드릭이 마력검을 휘두르자, 신관들이 가볍게 받아쳤다. 마력 자체의 힘은 강하나 이를 다루는 이는 아직 애송이. 신관들을 압도하기엔 아직 무리였다. 그래도 마력은 마력이기에 일 대 다수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합이 이루어졌다.
그 틈에 에이린이 마차 가까이 다가왔고, 베릭은 코를 틀어막았다.
“악, 냄새.”
“이, 이거, 마산타르 신전 안의 바누사라는 자가 황제 폐하께 전하는 것입니다.”
“바누사? 어디서 들어 봤는데?”
“자신을 물의 정령술사라 소개하더군요.”
“아아. 기억난다. 토올룬 왕궁에서 만났던 걔구나.”
베릭은 에이린에게서 서신을 건네받았다. 토올룬어로 쓰여 있어서 뭔 말인지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 같아 보이니 접수. 베릭은 뒤로 물러나 있으라며 고갯짓했다.
그때, 타오마가 끼어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간단하게 설명 가능한가?”
“예. 마산타르 신전이 바로 오수의 근원입니다. 그곳에서 오수를 방류하고 있었어요. 이에 도망치다 추격자가 붙은 것입니다.”
그 말에 타오마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주위를 둘러봤다. 인근의 강물이 썩어 드니 마을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되어 떠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분명 자신에게 연락이나 흔적을 남겨 주었을 터. 때마침 타오마는 흙먼지에 가려져 있던 핏자국을 발견했다.
“이, 이, 미친……!”
오수를 흘려보내는 신전. 그와 가까운 마을의 몰살. 정황상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타오마는 마차 안에서 줄에 달린 기다란 막대기를 꺼내 들어 흔들었다.
“저건 또 뭐여?”
“하뵤오!”
이름하여, 쌍절곤!
세상에는 별별 희한한 무기가 다 있구나. 베릭은 타오마를 애써 무시하고는, 세드릭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 겁대가리 없는 꼬맹이에게 실전 경험 심어 주기에는 딱 괜찮은 상대들이다. 머릿수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촤아악!
“옳지. 새끼. 방금은 좀 쳤네. 그런 식으로 자세가 낮아졌을 때는 허리 힘을 실어서 쳐 올려라!”
“선배님은 안 싸우십니까?”
“원래 잔바리들은 잔바리가 처리해야 하는 법.”
잔바리라는 말에 세드릭이 힐끗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그 틈을 노려 아이의 뒤통수로 날아드는 신관의 검.
베릭이 도와줄까 고민하는 찰나, 타오마가 육중한 몸을 날려 신관의 검을 쌍절곤으로 때려 맞혔다.
티잉! 탕!
그러고는 두 손을 모으더니,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중얼거렸다.
“…잔바리 추가.”
“예, 잔바리 추가요.”
“그대들이 인근 마산타르 신전 소속 신관들인가?”
엄중한 물음에 신관들이 멈칫거렸다. 희한한 무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참으로 기이한 몸놀림이지 않나?
신관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자, 타오마가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이놈들아아! 내 그림 어쨌어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