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6
제706화. 서북서
칼라마트에 발 딛고 있을 때는 쉽게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곳은 버고스의 중심을 담당하기에 참으로 알맞은 위치였다. 젖줄이 흐르고, 대지가 비교적 고르며, 바람이 세차지 않고 알맞게 불었으니까. 북진한 지 고작 며칠 만에, 바리엘 모두는 칼라마트가 꽤 살기 편한 곳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우리도 북쪽, 아기아르에서 내려왔는데요. 어찌하여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요.”
한 마법사의 중얼거림에, 이안은 정면에서 날아드는 바람을 감각으로 느꼈다. 이유야 여럿일 터다. 정말로 바람이 변했든, 아니면 이를 맞는 우리가 변했든.
하늘 위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마법사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이안 님! 베릭인 것 같습니다!”
“동행이 있는가?”
“에, 베릭까지 합하여 총 넷입니다.”
“딱 맞는군.”
오수 조사차 보냈던 선발 병사들 중 클라크와 에이린은 없었다. 그러니 베릭과 세드릭을 제외한 두 사람은 필시 그들일 터다. 이는 또한 타오마가 무사히 남국으로 돌아갔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이안은 말고삐를 잡아당겨 황제의 마차 옆으로 나란히 섰다.
“폐하.”
“무슨 일인가?”
진이 커튼을 가볍게 젖혀 창문 빈틈으로 모습을 보였다. 안에서 각종 문서를 읽는 중이었던지 손에는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베릭이 돌아왔습니다.”
“무사해 보이는가?”
“예, 마법사의 전언에 특별한 덧붙임이 없으니, 그러한 듯합니다.”
“기특하군. 그대의 말대로 베릭은 제 역할을 잘 해내는 자로다.”
진은 해가 서서히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쯤 하여 행군을 멈추고 병사들을 쉬게 하라. 길목이 좁아 하룻밤 보내기에는 여의치 않으니, 따뜻한 차 한 잔씩 나눠 마시며 다리의 피로를 푸는 정도로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예, 폐하.”
황제의 지시에 트웰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장교들이 일제히 그의 신호를 따라 움직였고, 점차 말과 사람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마법사들이 물을 데우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동안, 이안은 황제와 함께 베릭 일행의 보고를 기다리기 위해 천막 앞으로 나섰다.
“베릭.”
…꼬질이가 따로 없군. 이안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오수로 목욕이라도 한 것인가. 온몸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무사한가?”
“상태가 좀 거지 같긴 한데, 예. 무사합니다. 타오마도 그림 속으로 잘 들어간 것 같고, 신전 위치 파악도 했습니다. 아 참, 여기 타오마와 바누사가 남긴 서신입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먹으면서 보고하는 건-”
스읍. 황제 뒤에 서 있던 제이럿이 눈빛을 번뜩이며 경고했다.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진은 그를 측은하게 여겨 시종들에게 고갯짓했다.
“간단히 요기할 것을 내오도록 하라.”
“예, 폐하.”
이안은 더러운 종이를 대신 받아 진에게 먼저 읽어 드리겠노라 청하였고, 황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글자를 읽어내리는 동안, 트웰러가 베릭에게 물었다.
“강의 수위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던데.”
“신전 결계를 박살 냈수다. 그래서 바누사가 오수로 벽을 새로이 쳤는데, 그래서 그럴 겁니다.”
“…잘했군.”
웬 칭찬? 어울리지 않게. 베릭은 흥, 하고 가볍게 콧방귀를 치며 트웰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마침 서신을 모두 읽어내린 이안은 황제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폐하. 바누사의 가문에 무언가 일이 생겼나 봅니다.”
“일이라 하면?”
“바리엘에 대적하기 위해 용병 마법사를 구하려는 듯싶은데, 아시다시피 인형술사라는 것들은 꺼려지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용병 마법사들에겐 바리엘과 대적할 연유가 없습니다. 하여 모집이 쉽지 않겠지요.”
“그 일을 바누사 가문에게 전담하였다?”
“정확히는 정령술사 가문들에게입니다. 개중 바누사의 가문은 이를 거부하여 왕궁과 갈등을 빚고 있는 듯합니다. 이에 급히 연락하여 도움을 청한바, 바누사는 가문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 바누사가 에이린에게 그런 식으로 언질 줬더라고.”
베릭은 그가 보고 들은 걸 하나도 빠짐없이 주군께 보고했다. 그 형식과 내용이 너무 거칠어 보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흠이었지만, 오수를 뒤집어쓰고 돌아온 개를 꾸짖을 수는 없지 않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모두가 머리를 굴렸다. 제이럿 또한 그저 상황을 가늠하며 머릿속으로 짐작했다.
침묵이 길어지려는 때, 제일 먼저 답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은 이안이었다.
“하면-”
아이는 마치 토올룬을 제 손 위에 두고 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토올룬에서는 지금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로구나.”
토올룬에서 정령술사들은 마법사와 같은 위치였다. 신이한 힘으로 나라의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는 자들.
한데, 신전까지 나와 있는 바누사에게 연락하여 도와달라 할 정도라면, 그 균열이 얼마나 크게 일었는지 안 봐도 훤했다.
“뭐, 그런 말이겠지?”
“폐하. 바누사 또한 수도로 돌아가고 싶어 하나, 토올룬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왕의 허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문의 수장이 돌아온다면 왕궁에서는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터. 더하여 우리가 신전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수도에서는 없는 술사라도 만들어 보낼 판이다.”
잘만 하면, 신전 내부 바누사의 도움을 받아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다. 신전이 몰락하면 바누사는 자연스럽게 수도로 돌아가 가문의 일을 수습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바누사가 현재의 왕을 마음에서 도려내고자 한다면?”
트웰러가 나지막이 짚었다.
그들이 아는 만큼 바누사도 알 것이다. 마산타르 신전이 토올룬과 왕궁에 어떤 의미인지.
한데 적국인 바리엘에 이런 서신을 증좌로 보낼 정도라 하면, 그 마음가짐이 어디에 가닿아 있겠는가?
“경의 말은, 지금 바누사가 왕궁을 무너트리고 싶어 한다는 뜻인가?”
“정황이 그러하고, 그자의 행동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바누사는 토올룬에서 오래도록 자리한 정령술사입니다. 고작 가문에 대한 압박만으로 그런 결심을 했을 리 없습니다.”
“예, 그리고 그들의 관계, 그러니까 왕이 인형술로 술사를 조종하는 등의 기이한 관계는 이미 그들의 나라에서는 당연시되는 문화 아닙니까. 갑작스레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관료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수 대에 걸쳐 왕에게 충성하던 바누사가 어찌하여 마음속에 반기를 품게 되었는가? 필시 납득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터다.
베릭은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더니, 넌지시 덧붙였다.
“수원지가 신전 안에 있습니다. 보니까 오수 흘리는데 바누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던데. 일하다 뭐, 빡치는 일이 있었나 보지요.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금방 알게 될 겁니다.”
여기서 왈가왈부 떠들어 대 봤자 확인과 확신은 불가한 일이었다. 우선 신전을 무너트릴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누사와 맞서게 된다면, 그녀가 새로이 주는 단서를 통하여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폐하.”
그때였다. 질문 이후 한참이나 침묵하던 트웰러가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낮아져 있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현재 토올룬의 지원군이 신전으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바리엘군은 이제 막 칼라마트 북쪽에 닿았을뿐더러, 지금껏 보냈던 선발대 병사들은 모두 오수 조사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옳다. 나도 아는 내용이다.”
“하나 반대로, 토올룬은 바리엘 본대가 신전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신하들이 모두 신전 출신이라 하니, 아무리 왕이라도 이를 외면하긴 어렵겠지요. 특히 그 사악한 힘의 근원이 신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지금 트웰러 경은, 토올룬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다 말하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마법부는 전진하여 신전으로 올라가고, 황제 폐하와 제국방위부는 좌측으로 길을 틀어 토올룬 선발대가 내려오는 길목을 미리 선점, 밀고 올라가야 함을 아뢰는 것입니다.”
진의 손끝이 지도에 난 길을 따라 움직였다. 토올룬의 수도에서 신전으로 이어진 길은 많지만, 대규모 군대가 움직일 만한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잠복하기에 시기도 적당하고.
“신전은 기이한 장소. 일반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한들 의미 없는 희생만 남기겠지요. 소수 정예인 마법사들이 이를 해결하고, 일반 병사들에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임무를 내리심이 좋겠습니다.”
“흐음. 일리는 있다.”
일리는 있으나,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구나.
그러자 트웰러의 음성이 조금 단호해졌다. 말투가 제안에서 권유로 바뀌었다. 그만큼 그의 생각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적의 증원군을 잘라내는 것도 전쟁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일단 그들을 막아내면, 토올룬 수도까지 밀고 들어가기 쉬워지니, 부디 결단하시어 영광의 첫걸음을 디디시길, 간청합니다.”
호소는 황제에게 하고 있으나, 트웰러의 시선은 이안에게 가 있었다. 다만 온건하고 정중한 눈빛이었으니, 이안은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전쟁의 공로를 온전히 황제에게 돌리기 위함이로다.’
트웰러의 주장에는 거짓이 없다. 황제와 일반 병사들이 신전으로 간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황제가 적의 지원군을 무찌르고, 왕궁까지 직접 진격해 올라간다면?
‘이미 버고스 전쟁, 루스웨나 전쟁에서 마법부의 존재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모든 게 황제의 명령 아래 이루어진 업적이라 알렸지만, 과연 백성 모두가 그리 생각할까? 특히 루스웨나 전쟁은 히엘로령이 기폭제였는데.’
황제의 빛이 너무 희미하다. 전장에서 제일 높게 서 계실 분 위에 마법사들이 날고 있으니.
“이안 장관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예, 트웰러 장관.”
트웰러는 좌측으로 길을 틀어 지원군을 상대하는 것이 적절한 기회라 판단했다. 이에 이안은 싱긋 웃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옳으신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아마 이번 전쟁의 핵심은 토올룬 왕궁이 될 터. 황제가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승리라는 그림 위에 방점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모두의 기억에, 황제의 업적이 선명히 새겨지겠지.
“바누사의 전언이 옳다면, 토올룬에서 보낼 수 있는 지원군 전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정령술사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바리엘 병사들만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황궁친위대원들도 함께하지 않습니까. 일당백, 아니 일당만에 다다른 전사들이니 사실상 상대의 머릿수가 얼마나 되든 문제없습니다. 설령 정령술사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일례로, 베릭이 토올룬 수도에서 바누사를 제압했던 적 있으니까 말이다.
이안이 트웰러의 제안에 동의하자, 다른 신하들도 차례로 동의한다며 나섰다.
“폐하. 두려울 것 없이 나아가십시오. 뒤는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진도 어렴풋이 트웰러의 의중을 느꼈다. 거절할 명분도 그럴 이유도 없으니, 그는 그저 알겠노라 이르는 수밖에.
“좋다. 하면, 트웰러 장관은 적의 지원군의 이동 경로를 짐작하여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라. 그리고 마찬가지, 선발대원을 차출하고 마법부에게 내어줄 보급품을 정리하도록. 어디쯤의 갈림길이 좋겠는가?”
“서북서 방면에 길이 나 있습니다.”
“적당하군. 오늘 행군의 목적지는 이곳이다.”
트웰러는 이안에게 무언의 인사를 하였다. 뜻대로 따라주어 고맙다는 듯이.
하지만 이건 특별히 트웰러 장관을 위한 게 아니었기에, 이안은 인사를 받지 않았다. 대신, 다음 서신을 펼쳐 들며 일렀다.
“아직 한 장이 더 남아 있습니다, 폐하. 타오마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데, 출정 전에 미리 알아두시면 좋을 내용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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