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7
제707화. 생존자를 찾아서
“아나, 저 천둥벌거숭이 놈 같으니라고.”
타오마는 재빠르게 사라지는 베릭과 그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저 혼자 여기 남겨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그림 찾아서 남국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 제 임무면서. 타오마는 투덜거리며 쌍절곤을 품에 챙겨 넣었고, 다시금 마을을 찬찬히 살폈다.
“허.”
참 나. 날벼락이 따로 없다. 작긴 해도 언제나 활기가 가득했던 곳인데.
그는 쓰러진 신관들의 멱살을 가볍게 잡아 흔들었으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자그마한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이보시오, 마부. 숨어 있지 말고 마을 좀 같이 뒤져 보세. 붉은 꽃이 그려진 그림을 찾으면 된다네.”
“예? 저, 저도요?”
“그럼 여기서 손가락 빨고 있을래?”
타오마는 마부를 닦달하며 먼저 촌장의 집으로 들어섰다. 소박하고 정갈했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으며, 사람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림을 갖고 도망쳤으면 단서를 남겼을 것이고, 그럴 정신이 없었다면 그림을 챙기지 못했겠지. 단서든 그림이든 마을에 남아 있을 거다.’
그는 마부와 함께 마을 곳곳을 탐색했다. 가급적이면 타오마는 전자이길 바랐다. 차라리 어디론가 도망가서 모두가 살아 있었으면…….
“저기, 혹 이것 아닙니까?”
“아.”
하지만 마부가 찾은 그림을 보고서, 타오마의 바람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림만 멍하니 살폈다.
그때였다. 뒤에서 슬쩍 훔쳐보고 있던 마부의 눈에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어? 이, 이거 그림 속……?”
속에 뭐가 움직이는데요?
이에 타오마는 눈을 띠용,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그림 속으로 고개를 쑥 넣어버렸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광경에 마부가 뒷걸음질 쳤지만, 타오마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아예 허리까지 그림 속으로 집어넣었다.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스으윽!
“종이랑 펜!”
“예?”
“갖고 오라고!”
타오마는 왼팔을 그림에 걸친 채로 마부를 재촉했다.
마력석 그림은 무엇으로 제작되는가에 따라 통행 방법과 횟수가 정해진다. 그리고 한번 발끝까지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으니, 이처럼 애매하게 걸친 채로 베릭과 그 일행에게 쪽지를 남기는 수밖에.
스윽.
-망아지 같은 베릭에게 남기는 타오마의 전언이올시다.
신전의 오수 방류로 인하여 이곳 마을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워낙 사람 수가 적고, 마을 자체가 외진 곳에 있는지라 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던 것 같군. 그것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말이지.
하지만 다행일세. 몇몇이 그림 속으로 피신하여 남국으로 가 있어. 이들의 증언을 정리하여 전서구 보낼 터이니, 황궁에서는 놀라지 말고 낯선 새를 받으라 하시게.
“저기, 타오마 님. 저도 같이 갑니까?”
“그럼? 자네 몇 년 치 삯을 미리 타 가지 않았나? 허튼소리 말고, 저쪽 집 가서 주방 상부 장에 있는 나무 상자 좀 가져오게. 그리고 저 큰 나무 집에서는 침대 밑을 살펴보아. 천으로 싼 짐이 있을 거다.”
“아, 예예.”
마을 생존자들이 피신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었다. 타오마의 지시에 마부가 이리저리 바쁘게 오갔고, 그러는 동안 그는 서신을 계속 써 내려갔다.
-이 그림은 오로지 버고스에서 남국으로 가는 길로만 열리는 것이니,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군. 하지만 최대한 서둘러 바리엘에 내 성의를 보일 것이다. 실라스크와 관련한 정보 또한 전서구와 함께 보내지.
그리고 부디 간청하건대, 매매가에 대해서는 이안 경께 깊이 헤아려 달라 전해주어. 내가 보니까 합리적인 계산법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아, 베릭 너에게 부탁한다.
가끔은 논리 없는 고집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게 세상살이 아니겠니? 도와준다면, 날 이리 내팽개치고 가 버린 너를 기꺼이 용서하마.
“다 옮겼습니다!”
“그럼 그림 안으로 던지지! 혹 신전에서 사람이 더 내려올 수 있으니 서두르자고!”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겠네. 토올룬 수도와 이어진 길은 여럿이지만, 큰길은 몇 되지 않아. 개중에서도 통행이 가능한 건, 서북서의 란다린 마을과 이어진 길일세. 나머지는 다리가 무너지거나, 산사태 등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게 생존 주민들의 정보일세. 란다린 마을엔 토올룬 토착 부족이 사는데, 상당히 음습하고 말의 앞과 뒤가 다르기로 유명하니 조심하는 게 좋아.
그럼, 이만 줄이겠네. 다음에 만나면 또 술 한잔하자고. 그때는 내 절대 지지 않겠어.
타오마는 마지막 장에 서명을 그려 넣은 다음, 곱게 접어 액자 뒤쪽에 서신을 숨겼다. 그러고는 마부를 끌어당기며 쑤욱!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그림 한 점. 그리고 마차. 마을은 다시금 쓸쓸한 적막에 잠겨 들었다.
* * *
“이상입니다.”
이안은 타오마의 서신을 진에게 건네주며 일렀다. 한 치의 다름도 없는 그대로다.
내용을 함께 들은 트웰러와 제이럿의 시선이 동시에 번뜩였다. 아주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는 듯.
“타오마가 생각보다 쓸모 있는 자로군.”
“예, 폐하. 참으로 일이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황궁으로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남국의 전서구라고 하니, 타오마 말대로 미리 언질하는 것이 혼란 방지에 좋을 것입니다.”
“뜻대로 하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은 건조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소문을 퍼트리거라.”
마산타르 신전은 토올룬 정치인들의 요람과 같은 곳이다. 한데 그곳에서 대지를 죽이는 오수가 흘러나온 것도 모자라,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국민을 죽였다? 이를 토올룬 백성들이 알면,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안 그래도 바리엘과 토올룬 간의 전쟁에 불만 품은 자들이 많을 터입니다. 당장 정령술사 가문들이 그러했지요. 전쟁 대비를 위해 용병 마법사를 구하라는 압박도 있고, 무엇보다 전쟁의 불씨가 바로 이안 경의 어머니이지 않습니까.”
사실상 토올룬은 필리아를 납치함으로써 바리엘에게 명분을 내준 것이었다. 어떻게 따져도 명명백백 자신들의 실책으로밖에 볼 수 없으니.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와 백성들의 원성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한데 그런 와중에 신전에서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내부의 균열은 더욱 깊어지겠지요.”
“맞습니다. 생존자가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남국으로 도망쳤다곤 하나, 타오마를 통해 증언 확보가 가능할 테니 문제없어 보입니다.”
“지하신이니 신의 그림자니 아무리 일러봤자 백성들은 믿지 않을 것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이런 자극적인 사건 하나가 그들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을 터. 바리엘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토올룬 왕궁에 대한 진실을 남김없이 흘리겠습니다.”
“옳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니 이것 또한 신의 축복이다.”
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다 되었는가? 더 보고할 것은 없어? 진의 시선에, 베릭이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웅얼웅얼거렸다.
“그리고 저기, 그, 뭐냐. 하나 더 있긴 함니다.”
“무엇이지?”
“오수 조사단의 에이린 병사 말입니다.”
에이린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다들 시선을 도르륵 흘렸다. 누군가는 슬쩍 진을 살폈고, 또 누군가는 베릭처럼 아예 다른 곳을 쳐다봤다.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오수 정화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부작용이 좀 있어요. 몸에 얼룩덜룩 반점이 올라와 가지고…. 뭐, 다행히 통증은 없어 보이긴 한데, 조치는 필요할 거 같슴다.”
진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고갯짓과 함께 명했다.
“…이리로 데려오라.”
“안 됩니다, 폐하.”
하지만 트웰러와 제이럿이 동시에 막아섰다.
“오수 정화 이후에 올라온 반점이라 하지 않습니까. 오수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니, 이는 독을 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트웰러 장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에이린에게 성기사의 힘이 흐르고, 반점 외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는 하나, 괜히 사람들과 섞이게 했다간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황제의 앞에서는 가벼운 기침조차 불가하건만, 이곳이 어디라고 그런 자를 데려온단 말인가?
진의 시선이 이안 쪽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바리엘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자다. 황제가 치하하지 않으면 그 누가 치하한단 말인가? 더하여 베릭이 그자와 동행하여 긴 거리를 달려왔으니, 그리 따지자면 베릭도 격리 대상이다.”
“엥? 저요?”
갑자기 저는 왜?
“폐하.”
이안은 달래듯 덧붙였다. 진의 심경은 잘 알겠으나 신하들의 주장에는 그릇된 것이 없으니, 적절한 절충안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마법부에서 에이린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오수를 정화했다고 하니 분명 큰 가치를 가진 자입니다. 운이 좋다면 조사 과정에서 오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도 있겠지요. 또한 바리엘을 위해 희생한 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없다면 멀게 보아 바리엘에 대한 충심이 희미해질 테니, 폐하의 말씀처럼 본보기로도 좋지 못할 것입니다. 마법부가 책임지고 치료하여 폐하께 직접 치하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으시겠지요? 이안의 웃음은 진뿐만 아니라, 트웰러와 제이럿에게도 전달되었다. 두 사람은 본대로부터 완전 격리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합의를 보는 게 좋았다. 인간으로서의 진을 위해, 그리고 황제로서의 진을 위해서 말이다.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혹 전염이라도 된다면…….”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수로 인한 현상 아닙니까. 그리되면 칼라마트에서 지냈던 지난날들을 모두 걱정하시어야지요.”
강물 대신 우물을 길어 썼다만, 필시 땅 깊숙한 곳, 지하수까지 오수가 스며들었을 터. 그 물을 음용한 바리엘 병사들이 안전할 것인가 역시 확신할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낫지 못하는 병이란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인간이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지요. 에이린에게 통증이 없다고 하니, 저는 희망적이라 봅니다.”
게다가 에이린이 ‘성기사’라서 정화가 가능했던 거라면, 이는 희소식 중 희소식이었다. 가이아 곳곳에는 수많은 신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신전이 마산타르와 같진 않겠지만.
“아무튼, 에이린의 일은 마법부가 담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신전 안까지 다녀온 자이니, 어차피 마법부와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갔다 왔는데?”
“그래. 베릭, 너도 그러하지.”
이안은 진을 공손히 돌아보며 물었다.
“황궁친위대원인 베릭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베릭만큼 이번 임무에 적격인 자가 없어. 제이럿 대장,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폐하. 그리고 세드릭도 함께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세드릭을?”
그자는 아직 수습이고, 유의미한 전력이 못 되지 않나? 진이 의아하게 돌아보자, 제이럿은 온갖 검댕으로 꼬질꼬질한 베릭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마법사들이 전투에 나서 있을 때, 에이린을 옆에서 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일반 병사보다는 뛰어나지만 본대 전력 손실이라 할 정도는 아닌 자가 적격일 것인데, 마침 세드릭이 그러합니다. 마법부 쪽으로 충원하는 게 좋겠습니다.”
또한 세드릭은 에이린의 반점을 제일 먼저 보았고, 가장 오래 함께했던 자다. 혹시 모를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에, 베릭을 제외한 모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냉정하기는.’
옳은 말이긴 하나,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지 않나? 냉정해도 너무 냉정하단 말이지, 쯧.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전장에서 냉정하고 냉철한 결정은 필수였으니까.
“그렇다면 하명하겠다. 베릭과 세드릭 그리고 에이린은 마법부 전원과 함께 신전 쪽으로 이동하라.”
“예, 폐하.”
“…연락을 꼭 달라, 이안 경.”
진은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서 아주 작게 그리고 은밀히 속삭였고, 이안은 싱긋 웃으며 알겠노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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