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08
제708화. 신전 지하
다그닥다그닥!
히이잉!
세드릭은 말의 거친 움직임을 따라 몸을 바짝 낮추고는 위쪽을 힐끔거렸다.
마법사들이 로브를 휘날리며 부드럽게 하늘을 유영했다. 목적지가 분명한 철새 떼처럼,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흐트러짐이 없었다.
“문제 있습니까?”
“…아닙니다.”
옆에서 달리던 에이린이 세드릭에게 물었다.
하나로 대충 묶은 갈색 머리칼이 꽤 멋들어지게 흔들렸다. 얼룩덜룩, 흰 피부를 더럽히는 검은 반점이 아니었다면 더더욱 그랬겠지. 세드릭은 에이린에게 넌지시 일렀다.
“저는 에이린 님의 호위를 위해 온 자이니 말씀 편히 하십시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일개 병사고 그쪽은 마검사인데요. 제가 할 말을 되레 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
“그래 봤자 수습생입니다. 어렵게 대하실 것 없습니다.”
세드릭은 그리 이르며 앞서 달리는 베릭을 쳐다봤다. 미친 인간.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게 뛰고 있지 않나.
언젠가 자신도 저리될까? 정말로? 아무래도 베릭이 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은데. 그 시선을 눈치챈 에이린이 물어왔다.
“대단하지요?”
“예, 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전장에서 더욱 빛나는 분들이랍니다. 세드릭, 황궁친위대에 들어가게 된 걸 진정으로 축하드려요.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예요.”
영광?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베릭이 신전 결계를 때려 부술 때 조금 놀라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경외와 놀라움.
영광은, 분명 다른 영역일 거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요?”
“하하하. 예, 물론입니다.”
에이린은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보고, 듣고, 느꼈다. 북쪽 평원에서 저들이 어떻게 마물을 베었고, 막다른 길에서 어찌 틈을 찾았으며, 그로 인해 존재 자체만으로도 바리엘에게 축복이 됨을 말이다.
앞서 달리던 베릭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소리쳤다.
“이안아아! 다 왔다!”
“그래. 보인다.”
그의 부름에 이안이 손짓으로 답했다.
저 멀리, 바누사의 물기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끝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은 그것은, 한 자리에 고요히 머무는 용오름을 떠올리게 했다.
“이안 님. 어찌할까요.”
“베릭을 선두로 진입한다.”
“베릭! 네가 먼저 가라!”
“나? 왜?”
마법 쓰는 놈들이 산더미구만, 내가 왜?
그의 반문에 마법사들이 짜증스럽게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저놈이 요즘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네?
“네가 저거 베어 왔다며! 우리보다 잘 알 거 아녀!”
“이안 님 지시다, 등신아!”
“아하.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 그런 거군? 알았다! 바짝 붙어서 따라와라잉!”
촤아악!
지이잉! 퍼엉!
베릭은 다시금 마력을 개방하여 발돋움했다. 그러자 그 주위로 거센 불길이 휘몰아쳤다. 그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불씨가 붙었고, 이내 강렬한 열기가 주위를 덮쳤다.
무방비 상태였던 세드릭과 에이린은 거리를 벌린 채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뭐 해?!”
“어라.”
베릭의 불길에도 바누사의 장벽은 단단했다. 화염과 맞닿은 곳이 수증기로 변하여 연기를 만들어 냈지만, 그게 다였다.
촤아악! 촥!
신전 안까지 진입하기에는 모자란 깊이였고, 베였다 한들 순식간에 원상 복구되어 틈이 없다.
베릭이 연달아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동안, 마법사들이 가볍게 착지하여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이거 생각보다 질긴데? 마! 이것들아! 손님 왔다! 손님 받아라아아!”
“힘 좀 써 봐.”
“그러면 네가 해보든가.”
깊긴 하지만 고작 물줄기다. 마법사들도 하나둘씩 소매를 걷어올리고선 장벽을 파훼하기 위해 마력을 개방했다.
퍼어엉! 펑!
강한 힘에 의해 물줄기가 흐트러지긴 했으나, 순식간에 원 상태를 복구했다. 거기다-
“두께가 해 봤자 10미터 정도 되려나? 벨 것 없이 그냥 통과하면 안 될까?”
“장난하십니까? 정체 모를 오수입니다. 게다가 안쪽을 유심히 보십시오. 물이 탁해서 더 잘 보입니다.”
“오. 소용돌이네.”
“여차했다가는 선 채로 익사할 판이란 말입니다.”
“흐음. 그럼 어쩐담.”
그들은 그리 중얼거리며 이안을 돌아봤다. 아이는 가만히 서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물줄기를 올려다봤다. 잠깐의 고민 끝에, 이안이 헤일에게 지시했다.
“…보호막을 생성하라.”
“어디까지 말씀입니까?”
“우리 머리 위까지. 에이린과 세드릭도 이쪽으로 오게 해.”
헤일이 손을 뻗어 보호막을 펼치자,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에이린, 세드릭 그리고 베릭까지. 이안이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보호막을 펼치라고 했으니 이 안에 있는 게 현명했다.
스윽.
이안은 손끝을 가볍게 들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금빛의 선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법진이란 걸 처음 가까이서 본 세드릭의 눈동자가 조금씩 커졌다. 반사된 금빛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인다.
「결빙(結氷)」.
토옥. 이안이 손끝으로 오수 장벽을 아주 살짝 건드리자, 그 부분을 기점으로 하여 물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어 갔다.
베릭 탓에 뜨거웠던 일대가 순식간에 식어 내렸고, 에이린은 저도 모르게 소매를 붙들며 몸을 움츠렸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기(氣)였다.
촤아아악!
물이 꽝꽝 얼자, 소용돌이가 멈췄다. 마법사들은 이안이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챘고, 헤일은 머리 위 보호막을 더욱 견고히 세웠다.
“이안아, 나머지는 내가-”
“됐다.”
지이잉!
나서려는 베릭을 제지하고는, 이안은 주먹에 마력을 실어 있는 힘껏 내려쳤다.
빠아아악!
쩌어억! 쩍!
그러자 꽉 얼어 있던 오수 덩어리가 균열음을 내었고, 이내 날카로운 송곳과 같은 것들이 후두둑 비처럼 떨어졌다. 이는 헤일이 만든 머리 위 보호막으로 시원하게 내려꽂혔다.
푸욱! 푹!
마법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 위를 지켜만 봤다. 혹시 보호막 부서지는 건 아니겠지요? 다들 걱정스레 헤일을 쳐다봤으나, 그는 말린 궐련을 문 채로 어깨만 으쓱거렸다.
“이안 님 먼저 가신다.”
“아! 이안 님! 같이 가요!”
결빙되지 않은 수원지의 물이 계속해서 밀려와 빈틈을 메운다. 한번 깨졌을 때 서둘러 진입해야 한다는 뜻. 마법사들은 총총거리며 이안의 뒤를 쫓았고, 에이린과 세드릭도 재빨리 물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다시금 보호막이 닫혔다.
“바누사가 힘을 거두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군요. 이안 님, 저기! 입구입니다.”
“베릭. 네가 마지막으로 본 자들이 저쪽으로 들어갔나?”
“어. 그 라주라는 놈이랑 부하들 전부 절로 들어갔어. 바누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데. 같이 있겠지?”
이안의 시선을 따라 마법사들도 입구 쪽을 주시했다.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신전 입구는 텅 비어 있었으며, 그 어떠한 장애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들어서면 된다는 듯.
“함정이네.”
“시발, 함정이야.”
눈이 뒤통수에 달려 있어도 저것이 함정이라는 걸 알아챌 터였다. 마법사들은 혀를 끌끌 차며 조심조심 주위를 둘러봤다.
“이안 님. 근데 조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확 다 때려 부술까요? 행패 좀 부리면 알아서 기어 나오지 않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다 오수 정리도 못 하고 난감해질 수 있습니다. 혹 모를 일이지요. 지하에 다른 길이 있어서 이미 도망갔을지도요. 그런 거라면 당장 쫓는 게 맞습니다.”
이안은 덤덤히 시커먼 입구 쪽을 쳐다보더니,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찰조를 꾸린다.”
“예, 말씀만 내려 주십시오.”
“베릭, 헤일. 그리고 토미, 나키나.”
“준비됐습니다아.”
“나키나, 괜찮아? 마력 회복 덜 된 것 같던데.”
“나를 뭐로 보고.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이안 님, 저 컨디션 최상입니다.”
이안의 부름에 토미와 나키나가 장갑을 끼며 가볍게 몸을 풀어 댔다. 헤일도 마찬가지. 겉옷 주머니에서 궐련갑을 꺼내 바지 뒷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정찰조가 먼저 진입하면, 나머지는 입구에서부터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뒤따른다. 세드릭과 에이린. 두 사람이 제일 마지막, 입구를 담당하라.”
줄을 잇는 것과 같다. 혹여 정찰조에 무슨 일이 생겨도 뒤쪽에 상황을 공유하기 쉽게끔 말이다. 마법사들끼리는 마력을 통한 전언이 가능하니 거리 간격이 넓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가자, 베릭. 앞장서.”
“오케이. 아무래도 내가 반사 신경이 좋긴 하지. 다녀온다잉!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엉? 사주경계 해라.”
베릭은 똑똑히 지켜보겠다며 두 손가락으로 제 눈을 짚은 다음 세드릭을 가리켜 댔다. 이내 서둘러 가기나 하라며, 나키나가 그의 엉덩이에 발길질을 날렸지만.
“첫 갈림길이다.”
“여기는 저희가 서 있겠습니다.”
“좋다. 1층 중앙 복도에는 쟝이랑 사르가 선다.”
“내려갑니다!”
마법사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 이안 일행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앞장서서 걷던 베릭은 점차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연달아 해 댔다.
“우엑! 우에에엑!”
“아이씨, 밥맛 떨어지게. 왜 그래?”
“냄새 안 나?”
“무슨 냄새?”
베릭은 잘 모르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익숙한데, 영 구역질 나는 것이…….
“썩은 내인데.”
무어라 정의할 수 없었다.
베릭이 그리 중얼거리자, 마법사들은 긴장하며 경계를 단단히 세웠다. 성깔은 좀 더러워도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이지 않나.
그게 아니라도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를 곳이다. 지하신과 러더포드가 연관되어 있으니 필시 어쭙잖은 위험은 아닐 터.
“지하 2층, 여기 서 있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타닥타닥!
“지하 3층!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언해 주십시오. 내려가겠습니다!”
탁! 타닥!
“웁! 4… 4층! 저희가 마지막 인원입니다.”
“지금부터는 정찰조만 내려간다.”
“예, 다들 조심하세요! 너무 어둡습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구역감을 느끼는 마법사들이 늘어 갔다. 이안 역시 미간을 좁힌 채로 호흡을 최소화했다.
“어? 저기!”
마지막 지하층이라 이를 수 있을 터다. 눈앞에 내려가는 계단 대신, 텅 빈 공간이 나왔으니까. 게다가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 반쯤 열린 문틈으로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다.
“망할 새끼들. 땅을 어디까지 처판 거람.”
“이안 님. 가 보시지요.”
끼이익.
헤일이 문을 대신 열어젖혔다. 그러자 거대한 벽, 한 면 전체가 물로 가득 찬 수조가 드러났다.
수족관? 유리 벽 너머 물이 있다고? 기이하고 놀라운 광경에 헤일과 토미 나키나는 압도되어 멍하니 이를 올려다봤다.
“하…….”
반면, 이안은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렸는데, 저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광경이 굉장히 낯익었기 때문이다.
‘심연의 바다가 아닌가?’
어찌하여 이곳에 바다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이안이 앞으로 한 발 떼려는 순간-
콰아앙!
그들이 들어왔던 문이 스스로 닫혔다.
그리고 이내, 서서히 모습을 보이는 신관들. 그들은 위층에서 이안 일행을 근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가 이안 히엘로인가?”
누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만, 아마도 대신관이라는 작자이겠지.
“그렇다. 내가 이안 히엘로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내 어미를 기다린 만큼이나?”
이안의 물음에 희미한 웃음이 퍼져 울렸다.
“물론이다. 그런데 네놈이 이리 직접 들어올 줄은 몰랐구나. 10년 전의 그날이 그리웠던 겐가?”
심연의 바다로 잠수했던, 그날을?
대신관의 음성이 귓가 좌우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울려 댔지만, 이안은 담담한 자세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희게 웃으며 정면의 바다를 쳐다볼 뿐. 그리고 이내 말했다.
“그렇네. 그리워. 10년 전, 아르센이 죽어 가던 그날을 내 어찌 잊겠나. 다 그대 덕분이었으니 지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해.”
이어 비웃듯 덧붙이는 이안.
“하니, 모습을 보이지? 짐승처럼 이렇게 지하에 숨어 산다 한들, 그대는 사람 아닌가? 아. 아닌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