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0
제710화. 심연과 가이아의 경계
이안은 바다를 본 적 없었다. 사실 바리엘에서 나고 자란 자들이라면 대부분이 그러할 터였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물길을 보며 이안은 잠시 감탄했다. 심연의 바다에서 눈떴을 때는 이미 온몸이 잠겨 있는 상태였다. 밀려드는 물길이 얼마나 웅장한지 인지하지 못했던 게다.
“이안아아!”
“이안 님!”
촤아아악!
물길이 그들을 덮쳤다.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베릭과 헤일 그리고 토미와 나키나까지. 전부 본능적으로 숨을 참으며 몸을 웅크렸고,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살에 몸을 맡겼다.
“……!”
젠장! 보호막 안에 공기라도 채워둘걸. 나키나와 토미가 서로의 팔을 붙든 채 벽에 붙었고, 헤일 또한 기둥을 잡고서 버텼다.
쿠우웅! 쿵!
계속되는 진동. 그들은 작게 실눈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 저편으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를 계속해서 맴도는 거대한 마물도.
“아.”
나키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마물은 빛을 삼키고자 탐욕스럽게 지느러미를 놀리며 유영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빛 한가운데, 익숙하면서도 낯선 자가 담담히 서 있었다.
‘이안 님?’
백금발의 긴 머리칼, 소년의 티를 벗어 낸 청년, 그리고 날카로운 벽안의 눈동자….
이는 분명-
‘이안 베로시온.’
황가의 그것이었다.
이안은 익숙하다는 듯 머리칼을 넘기며 마물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세상에. 이안 님!”
“헉, 뭐여. 말할 수 있네.”
“숨도 쉴 수 있습니다.”
“헤일 대장. 숨 쉬어요, 숨! 괜찮아!”
자신도 모르게 기함한 나키나가 호흡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일반적인 물이 아니다, 이거지? 물살로 인해 몸을 가누기 어려운 것 외에 모든 것이 자연스레 가능했다.
“이, 이안 님 모습이…….”
“그때 제대로 못 봤는데, 이렇게 보니 놀랍네요.”
이안 베로시온.
비밀 먹는 집시로 인하여 그 모습이 천하에 드러나긴 했으나 찰나였고, 대부분은 어둠과 빛 사이에서 뜨문뜨문 비쳤을 뿐이다. 한데 이토록 온전한 베로시온의 모습이라니…. 그들은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못한 채 이안을 지켜봤다.
캬아아악!
기회만 엿보던 마물이 이안의 뒤로 돌아서 틈을 노렸다. 크기로 본다면 한 입 거리라 하기에도 모자랄 터였다.
이안은 부드럽게 몸을 돌렸고, 그의 움직임을 따라 긴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촤아악!
“시발거! 생선 대가리!”
베릭이다.
깊은 물속, 비록 그의 마력 대검은 불길을 내지 못했지만, 놈의 아가미께를 베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곧장 놈의 숨구멍 틈으로 검을 집어 넣으려고 하자, 마물이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내 거리를 벌렸다.
“…아이씨, 적응 안 되네.”
베릭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투덜대자, 이안이 희게 웃었다.
“답답한가?”
“어. 누구세요?”
“이안이다.”
“엥? 내가 아는 이안이랑은 좀 다르네!”
“어떻게?”
“…뭐…. 좀 더 샌님 같아졌어.”
촤아악!
그때, 물길을 헤치며 날아드는 날카로운 파장. 이안이 손을 들어 마법진을 그려 내려 했으나, 그보다 헤일과 나키나, 토미가 빨랐다.
지이잉! 퍼어엉!
마력을 파장으로 치환하여 정면으로 맞부딪치게 한 것이다.
이안이 그들을 돌아보자, 세 사람은 넋을 조금 놓은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런 황홀한 외모가 또 있나.
“다들-”
이안이 무어라 이르려고 하자, 퍼득 정신 차린 나키나가 와다다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라는 말은 마십시오! 이미 늦었습니다.”
“예, 가실 거면 같이 가시고, 아니라면 볼일 다 볼 때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죽음이 목전인데 이안 님 꾸중이 두려울까요? 안 그런가, 베릭?!”
“어. 마침 잘됐어. 군량 떨어진다고 지랄지랄하더만. 저거 회 치면 한 달 내내 먹고 놀겠어.”
“……?”
마법사 세 사람이 정색하며 베릭을 쳐다보았다.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 눈빛 뭔데. 맛 좋아 보이지 않아?”
“…너나 실컷 먹어라. 누가 아탄족 아니랄까 봐.”
부하들의 티격태격에 이안은 웃었다. 그러곤 파장이 날아온 쪽을 주시하며 일렀다.
“돌아가라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니, 이르마.”
“예, 무엇이든 이르십시오. 돌아가라는 것만 빼면 다 듣겠습니다.”
“이것은 심연의 바닷물이다.”
“심연의 바다라면, 균열 아래 그곳 말입니까?”
“그래. 그대들의 10년이자 나의 열흘 동안, 나는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어둠을 보았다. 베릭, 내가 이곳을 무엇이라 정의했었는지 기억하는가?”
이안의 물음에 베릭이 멈칫거리다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있는 곳.”
그래서 여기에 네 어둠을 두고 왔다 하였지.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서 그걸 다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위하는 마음은 진정으로 고마우나, 그대들에게 함께하라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힘들면, 이안 님도 힘듭니다.”
나키나는 그에 관한 얘기는 그만하자며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오른쪽 귀에 손을 올려 위층의 마법사들에게 전언을 울렸다.
“다들 무사한가? 지하에 작은 문제가 생겼지만, 우리는 모두 무사하다.”
-예, 갑자기 물이 차올라서 위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신전 안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2층 복도입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물이 차오르지 않았지만, 점차 올라오는 듯 소리가 들립니다.
-다들 정말 괜찮으신 것 맞지요?
-밖에서 포탈이라도 열어 드릴까요?
-세드릭!
-세드릭, 에이린과 합류했습니다.
-어찌 혼자 올라오십니까. 진동이 울리던데, 선배님 죽었습니까?
-세드릭, 모두가 듣고 있다. 그리고 베릭은 죽지 않았어. 전언에 따르면.
-아, 그렇군요.
“어찌 아쉬워하는 목소리다?”
베릭이 어이없어하며 대꾸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안은 웅웅, 계속 울리는 마법사들의 음성을 들으며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왜 그러십니까?”
헤일의 물음에 이안이 오른쪽 귀에서 손을 뗐다.
“의아해서.”
“무엇이요?”
“바깥의 시간선과 똑같지 않나.”
심연의 바다에서의 하루는 지상의 1년. 이는 이안과 마법사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언 마법으로 바깥과 상황을 공유한 지금, 시간의 비틀림이 없음을 확인했다.
“아. 그렇네요.”
“어찌된 일일까요?”
“흠. 심연의 바다가 쏟아져도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은 가이아이기 때문 아닐까요? 저쪽과 이쪽 세계의 경계선이나 마찬가지니, 시간의 흐름에 변화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토미의 말을 들은 나키나가 추리를 덧붙였다.
“그것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나는 마법 전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결’된 거지. 위쪽과 이곳의 우리가. 줄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제아무리 깊은 곳에 잠수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실시간으로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니 틀어질 틈이 없다는 가설이었다.
정답이 무엇인지 당장 알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상황. 베릭이 씨익 웃으며 검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파장이 날아왔던 쪽이다.
“어이, 숨은 거 맞냐? 다 보이는데.”
라주 대신관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유영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살짝 웃고 있는 미소가 어딘가 서늘해 보였다.
“숨은 게 아니니까.”
“응, 거짓말. 쪽팔리면 쪽팔린다고 말을 하세요.”
“이안 베로시온. 실제로 목도하니 감격스럽군.”
실제로 목도하니?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는 본 적이 있다는 뜻인가? 이안이 이드갈 검을 쥐며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대체 뭐 하는 놈일까. 마물과 감응하는 건 확실한데.
“크로니란 이름을 입에 올렸으니, 내 기대에 부응해야 할 거다.”
그리 경고하면서도, 이안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신의 능력으로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여기는 놈을 모시는 신전이고, 심연의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니.
라주 대신관은 베릭에게 잘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미 시작되었는데?”
피가 서서히 퍼지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뭔가 이상합니다, 이안 님.”
일반적이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라주 대신관을 중심으로 주위가 벌겋게 물들었고, 이내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사이 번뜩이는 마물의 눈동자. 베릭은 반사적으로 놈에게 날아들었다. 솔직히 심연의 바다니 뭐니, 아무 상관 없었다. 숨 쉬는 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뒤져라아아!”
촤아아악!
헤일과 나키나, 토미 역시 라주 대신관에게 공격을 퍼부으려는 순간이었다. 라주는 단검을 꺼내더니, 그대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 버렸다.
“아.”
푸욱!
그러자 그의 심장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치며 순식간에 주위로 퍼져 갔다.
그리고 이는 마법사들에게도 닿았으니,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비릿한 비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이상했다. 여기는 대체…….
“엥? 이것들아! 정신 차려!”
마물에게 검을 휘두르던 베릭은 어둠 속으로 점차 사라지는 마법사들을 보며 황망히 소리쳤다. 뭐라도 좀 해볼 것이지, 손 놓고들 있네! 등신들!
“이안아!”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마법사들처럼, 이안 역시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는 걸. 베릭은 우뚝 멈추었고, 이내 핏물 가득한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 * *
“세드릭. 뭐가 좀 들립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에이린은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하게 신전 입구 쪽을 쳐다봤다. 신전 곳곳에 배치되었던 마법사들은 모두 위로 올라왔지만, 이안을 비롯한 전력의 중심들은 아직 소식이 없다.
일반인보다 감각이 예민한 마검사 세드릭도 대지에 귀를 대 봤지만, 몇 번의 진동만 있었을 뿐 고요했다.
“전언은요? 계속 이어집니까?”
“네. 방금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답이 없습니다.”
마법사들도 걱정스러운 낯으로 귓바퀴만 문질러 댔다. 제발 답이라도 해 주십시오, 제발! 그러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아코렐라가 손끝을 튕기며 지시했다.
“전언 마법 끊지 마. 자그마한 것이라도 듣는 사람 있으면 바로 공유해.”
“예, 알겠습니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객관적으로 이안 님이 당했다면, 우리가 나선다고 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 헤일과 토미, 나키나도 모두 마법부의 핵심 전력이니까.”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마법사들이 덧붙이려는 순간이었다.
훌러덩, 아코렐라가 웃옷을 벗어 던지며 신전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미 물은 제일 위쪽까지 차오른 상태다. 계단 하나만 내려가도 저 불길한 물에 온몸이 젖게 될 터다.
“뭐 하시려고요, 아코렐라 님?”
“다리도 성치 않으시면서 무리하지 마십시오!”
“미쳤나 봐. 누가 뭐 수영이라도 하겠대?”
“그럼요?”
아코렐라는 물 표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 다음, 속삭였다.
“바누사. 거기 있나?”
토올룬의 정령술사, 바누사를 부른 게다.
하지만 대답이 없자, 그녀는 다시금 속삭였다.
“있는 거 다 아니까 반응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리도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심연의 바다랑 네가 다루는 물, 서로 섞여 있지 않니?”
“대, 대장.”
“안 나오면 네놈들이 흘렸던 오수보다 더 강력한 독극물을 토올룬 수도 우물에 풀어 버리겠다. 거짓말 같으면 어디 한번 버텨보렴.”
토옥.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코렐라는 담담하고 서늘한 눈빛으로 계속 물을 노려봤고, 이내 그 속에서 일렁이는 인영을 발견했다.
솨아악.
바누사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물속에서 얼굴을 보였다. 노려보는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아코렐라에게는 별 소용 없는 것이다. 상관과 동료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건만, 뭐 어쩌라고?
“당장 나와. 나와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