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2
제712화. 어둠을 물리는 법
크로니는 항상 황제의 집무실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습관이 있었다. 뭣 모르는 시종들은 그저 긴장하여 숨을 고르시는가 보다, 혹은 경건히 옷매무시를 고르시나 보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크로니는 언제나 주머니 속 특수 제작한 마력봉인석을 만지작거렸다. 펜과 비슷한 모양새였는데, 그 끄트머리가 날카로운 마력봉인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폐하, 제국방위부 부장관 크로니 경이 들었습니다.”
“들라 하라.”
황제를 시해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황제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그 둘 다일 수도 있겠지.
크로니는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이안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어서오시오, 크로니 경. 급히 불렀음에도 와 주었군. 요즘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날이 서 있다. 크로니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이안을 오랜 세월 봐 온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였다. 이럴 때는 낯을 최대한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폐하의 부름보다 중요한 일이 또 무엇 있다고요. 그리 이르시면 제가 서운합니다.”
이안은 크로니를 잠시 살펴보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황궁에 불손한 말이 돕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리라. 이전 마법부 장관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마력봉인석 권한을 타 부서에 넘겼을 때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중앙 귀족들이 크로니의 저택을 방문해 올 때부터, 회의장에서 신하들이 이안보다 크로니의 발언에 더 귀를 기울였을 때부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직접 이안의 귀로 들어온 이상, 더는 좌시할 수 없었다.
“크로니 경. 조심하십시오. 황궁에서는 아주 작은 것도 날카로운 검이 되어 상대를 베곤 합니다. 이는 그대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예, 그럼요. 자중하겠습니다. 하여 그 불손한 소문을 즉각 조사하여-”
“북쪽으로 가십시오.”
이안은 서류를 강하게 덮으며 크로니의 말을 잘랐다. 더는 들을 것 없다는 듯.
“북쪽 지대에 전력 보충이 시급하다 하셨지요. 마침 잘되었습니다. 크로니 경께서 가시어 국경을 잘 살펴보시고 보고서를 올려 주십시오. 다른 자들은 내 믿을 수가 없으니, 특별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폐하.”
“겸사겸사 자리를 비우면 헛되고 삿된 소문들도 자연스레 사그라질 터. 날이 좀 춥겠지만 나들이한다 여기고 다녀오십시오. 제가 가 봐서 아는데, 아주 절경이더이다.”
황제가 된 이후, 크로니의 압박 탓에 날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그러니 이제는 그대가 가시라. 이안은 결심했다는 듯 크로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하…….”
제일 먼저 새어 나온 건, 그의 한탄. 크로니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이나 그리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황제의 명에 사족을 달겠는가? 크로니는 고개를 천천히 숙여 예를 다했고, 이내 답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잘 알겠다, 이안. 네놈이 나를 북쪽으로 보내려는 그 의중을 아주 잘 알겠다. 자신의 자리를 앗아내고, 살점을 도려내어 완전히 지워 버리고자 함이지. 내가 너를 어찌 길렀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것의 눈동자가 아직도 이리 선명한데, 네놈이 어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크로니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을 애써 누르며 집무실을 떠났다.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그는 주머니 속 마력봉인석을 끝도 없이 문질러댔다. 스스로를 타이르기 위함인 동시에, 봉인석의 힘을 간절히 원하는 손짓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부하에게 속삭였다.
“지금 당장 중앙 귀족들에게 전언해라. 모두 내 저택으로 모이라고.”
“예, 크로니 님.”
“그리고-”
크로니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으나 결단을 내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대로 북쪽으로 가면,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니.
“병사들을 결집해 놓아라.”
“……!”
“전 마법부 장관에게도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심상치 않구나. 부하는 입매를 딱딱하게 굳힌 채로 경례하곤 황급히 사라졌다.
크로니는 마차에 올랐다. 이내 들이닥쳤던 때처럼 재빠르게 황궁 밖으로 나아갔다. 그가 몰고 들어왔던 바람은 여전히 황궁에 머물며 휘몰아쳤다.
* * *
“황궁친위대 맞아?”
“맞는데, 정직 상태라 본관 출입 금지래.”
“왜? 뭐 했다고?”
“난들 어찌 알아?”
황궁 중앙자료실로 숨어든 네 사람은 구석에 콕 박혀 속닥거렸다.
세 마법사는 심연과 관련된 자료를 손에 쥔 채였고, 베릭은 어디서 갖고 온 건지 모를 육포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하여간, 너는 여기 와서도 그 모양 그 꼴이지.”
“내 탓임? 이안이 어둠이라며. 그럼 이안이 탓이지.”
“입 다물어. 누가 황제 폐하 이름을 함부로!”
나키나가 주위를 경계하며 이르자, 베릭은 ‘눼눼’ 비꼬며 육포를 한입에 다 넣어 버렸다. 부르긴 누가 불러? 내가 부르지!
“근데 아까 왜 말렸어? 크로니가 이안의 어둠인데, 바로 죽이면 끝나는 거 아녀? 아, 면상 진짜 밥맛 떨어지게 생겼더라.”
“그래. 네가 밥맛 떨어질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래도 안 돼. 섣불리 건드리거나 개입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여기’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니까 너도 자료 좀 찾아. 이제 글 읽을 수 있잖아.”
“글은 읽을 수 있는데 문서는 못 읽어.”
“그게 뭔…….”
개소리를 정성스럽게 해 대? 나키나가 눈매를 가늘게 뜨며 노려보던 그때였다. 토미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 주목할 만한 게 있어요. 심연의 바다에 ‘잠기려면’, ‘금기의 마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데요.”
“기본 아님? 나도 안다, 그런 건.”
“아닌 사례도 있었잖아. 멜라니아와 클라크 같은. 아무튼, 내가 중요하게 본 건 ‘잠긴다’의 정의다. 여기서 잠긴다는 게 뭘까? 말 그대로 물속에 잠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금기의 마법 없이 그게 가능한 걸까?”
“뭘 말하고 싶은 건데?”
“잠긴다는 건 곧 어둠이라고. 그렇게 가정하면 들어맞지. 어째서 우리가 이안 님의 어둠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베릭이 턱을 괸 채 미간을 찌푸렸다. 못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
“우리 중에 금기의 마법과 직접 엮인 사람은 이안 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안 님만 어둠이 있는 거다.”
“으흠. 대충 알 것 같기도.”
“멜라니아랑 클라크가 어둠을 보았다고 말한 적 있던가?”
없지. 그들은 그저 이안을 목격했고, 비밀 먹는 집시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돌아왔노라 일렀다.
러더포드는 자신과 함께 심연으로 떨어졌던 마법사들이 끝없는 죽음을 겪었노라 하였지만, 그건 지하신의 간계.
그렇다. 금기의 마법과 엮이지 않은 멜라니아와 클라크는 온전히 돌아왔다.
“그래서, 나갈 방법은?”
“모르겠어. 이전에 이안 님은 어찌 나오셨던 건지.”
“이전에?”
알 수 없었다. 심연 속에서 신을 만났노라고, 그리하여 자신을 돠찾아 돌아올 수 있었노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잠깐 침묵하며 애꿎은 문서만 노려봤다.
“그거 야린다고 답이 나오나. 크로니 목 베면 쉽게 쉽게 끝날 일. 그렇게 하자고, 응? 알았-”
“음?”
토미는 베릭의 말을 무시하며 문서 안 어떤 문장에 집중했다.
하나는 반도르의 기록, ‘심연에는 시공간이 없다’라는 문장이었고, 나머지는 자이라가 마법사의 숲에서 가져온 기록이었다.
“균열 아래, 그들만의 세상도 움직인다. 서로를 미지의 세계라 칭한다면, 그들의 별은 곧 우리일 터.”
토미는 음절 하나하나 음미하듯 중얼거렸다.
“…여기는 어둠이자, 하나의 세계.”
“토미?”
“맞는 것 같습니다. 베릭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엥. 갑자기? 뭐가? 왜?”
본인 말이 맞는다고 하니 기쁘기는 한데, 대체 문장 뭘 보고 그리 생각한 거지?
토미는 펜을 휘익 돌리며 모두에게 물었다.
“자. 여기 계속 돌아가는 펜이 있습니다. 이건 멈추지 않고 끝도 없이 제자리에서 돕니다. 이걸 멈추기 위해서는 어찌하면 될까요?”
“뭘 어째? 손으로 잡으면 되지.”
“예. 바로 ‘외부의 개입’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안 님이 처음 심연에 들어섰을 때도, 분명히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도움을 받으셨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왔다면, 심연의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을 때 우리에게 파훼법을 알려주셨을 겁니다.”
그건 그렇다.
헤일과 나키나 그리고 베릭이 거리를 좁히며 더 가까이 모여들었다. 뭔가 답이 나올 듯, 말 듯…….
“그럼 지금도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거네. 네 가정이 옳다면.”
“그렇죠!”
“그럼 그 외부라는 게 설마…….”
“우리입니다.”
금기의 마법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면서 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 바로 자신들이었다.
“응. 바로 가자.”
“잠깐! 너 감당할 수 있어?”
베릭이 당장이라도 크로니를 벨 기세로 벌떡 일어나자, 나키나가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무리 어둠이라지만 이곳도 엄연히 현실이야. 너, 지금 여기 있는 황궁마법사들이랑 황궁친위대 전부 감당할 수 있을지 똑바로 생각해. 반역이란 건 모든 이들이 이안 님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뜻이잖아. 안 그래?”
“저택 찾아가서 대가리를 콱-”
“안 돼. 크로니가 죽는 게 근본적인, 궁극적인 해결책이라 확신할 수 없어. 크로니가 죽었다 한들 그의 뜻을 잇는 자가 자리를 대신한다면?”
“그놈도 콱-”
“적시적지가 분명히 있을 거다. 내 생각에는 나움이 금기의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일 것 같은데.”
“근거는?”
헤일의 물음에, 나키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이안 님의 어둠에는 나움에 대한 죄책감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 이후의 시간선은 이안 님도 모르는 터라 이 망할 어둠이 끊어지는 순간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반란을 극복하는 것이 이안 님의 과제 아니겠어요?”
헤일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듯 말이다.
“좋다. 그럼 움직이자. 황궁 분위기로 보아 반란 개시까지 얼마 안 남았다.”
“어디서부터 작업 칠까요?”
“100년 전부터 이어오는 중앙 귀족들 명단 좀 봐 봐.”
“기억해 뒀다가 돌아가면 조지자.”
“…100년 전 선조를 조진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헤일이 궐련에 불을 붙였다. 마법사 셋과 미친개 하나가 모였으니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니, 해낼 수밖에 없다.
베릭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더니, 의아한 투로 물었다.
“그럼 지금 답 나온 거네?”
“무슨 답.”
“‘심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법’에 대한.”
금기의 마법과 관련 없는 자가, 어둠에 녹아들어, 개입하고, 사건을 뒤트는 것.
뭐야,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잖아? 자이라 그 자식이 알면 바로 균열로 뛰어들겠네.
“간단하다고?”
나키나는 피식 웃으며 헤일의 궐련을 나눠 피웠다.
“금기의 마법과 아무 상관 없는 자가 상대를 구하기 위해 심연으로 뛰어드는 게, 진심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들도 어쩌다 보니 바닷물에 잠겨 이리 온 것이지, 생각해 보아라. 지난 10년, 그 누구도 이안을 구하겠노라 심연으로 뛰어든 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자이라조차도 할머니를 구하겠노라 덤벼들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의 방식대로 대지 위에서 연구를 계속했지만, 아무튼.
“나움은 이안 님을 구하기 위해 금기의 마법을 사용했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자를 위하여 다시 자신을 내버리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라고 봐.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떨까?”
조건 없는 희생.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상대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하여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이를 어찌 쉬운 일이라 이를 수 있겠나?
“신의 자비 같은 거라 생각해. 사랑하는 자를 위해, 희생하는 인간이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자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