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3
제713화. 반역
“결의합시다.”
“결의합니다.”
“우리의 바리엘을 위하여!”
“크로니 경의 바리엘을 위하여!”
선이 있다. 그리고 이 선을 넘은 자들은 되돌아갈 수 없다. 합창과 함께 목구멍으로 흘러내리는 포도주와 같이, 오로지 정해진 길로만 흘러내려 가는 수밖에.
크로니는 자신의 앞에 모여 의지를 맹세하는 귀족들과 시선을 맞췄다. 그들의 미소는 붉은 피를 머금고 있는 듯 보였다.
“쉿. 드디어 때가 온 것 같아.”
“왜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와 보시게. 자네만 알고 있어. 어제, 제국방위부 장관이 외곽의 병사들을 황궁으로 복귀시키라 명했다네.”
“어쩐 일로요?”
“모르지. 황궁에 ‘보고하지 않았으니까.’”
“……!”
“황궁은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네.”
“…세상에.”
“함께하겠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그들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다. 보이지 않으나 곳곳을 스치며 일깨웠다.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하였지만, 헝클어진 머리칼과 옷매는 어쩌지 못하였다.
황궁 한가운데 선 자들은 하나같이 언제 또 바람이 불까,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끝에는 언제나 바리엘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이참에 마법부를 아예 개편합시다. 참 나, 다들 똑같이 녹봉 먹는 입장이면서 마법부 장관만 저들끼리 내부 선출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황궁 안에서 함께 일하는 처지인 걸 모르나 봅니다.”
“동의합니다. 지금껏 마법부에 대한 특혜가 너무 많았지요. 시대가 변하였으니 그런 것도 고치는 게 맞는다 봅니다.”
“맞아요. 솔직히 마법부의 예산이면 다른 부서 세 곳을 더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피땀 흘려 가며 싸우는 것도 제국방위부인데, 어찌 대우가 이러합니까?”
“크흠. 폐하께서 마법사 출신이라 그런가, 너무 편파적이긴 하셨어요.”
“마법부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더이다. 나움을 마법부 장관으로 앉히면서 그 대가로 마력봉인석 권리도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마법사들이 그에 대한 불만을 끝도 없이 토로합니다.”
“그럼 반대로 해 주면 되겠네요. 마력봉인석을 다시 넘겨주는 대가로, 서로 가까워지면 좋지 않겠습니까?”
“동방에서는 이미 마법사에 대적할 만한 무기들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잠깐 마력봉인석을 넘겨준다 한들, 조만간 다시 견제할 만한 방법이 생겨날 것입니다.”
욕망은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희망은 산자락에 걸린 뭉게구름과 같이 끝없다. 불길은 번지고 번져, 결국에는 황제의 발치까지 닿았다.
“실례합니다, 폐하.”
“카람. 무슨 일인가?”
“삼대장 중 한 명인 메르니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
“송구합니다. 금방 수소문할 터이니, 징계를 내려 주십시오.”
황제가 의아해하며 시선을 앞으로 두고 있을 때, 그의 치장을 담당하는 시종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마력봉인석을 내장한 장신구가 자연스레 보석함 속으로 숨어든 게다.
아무것도 모르는 황제는 깊은 한숨을 애써 참으며 나가 보라 일렀고, 시종은 그의 긴 머리칼을 조심스레 잡아 빗질했다.
철컥!
목덜미를 매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황제가 놀라서 돌아보았지만, 시종들은 두려운 낯으로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그때-
콰앙!
방금까지 연락되지 않는다는 메르니가 카람의 머리통을 들고서 나타났다.
번들거리는 눈동자, 거친 숨결. 그리고 피범벅이 된 살갗. 이안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하여,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으나-
“폐하. 참으로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졌다. 마력이 모두 사라졌다. 이안은 한 손으로 목에 걸린 것을 뜯어내고자 했고, 벽에 등을 붙이며 사위를 둘러봤다. 가까운 곳에 검집이 보였다. 그는 검을 빼 들었다.
촤아악!
“꺄아아악!”
황제는 제일 먼저 구석에 서 있던 시종들의 목을 베어 냈다. 다들 살려 달라며 삼대장 메르니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돕지 않았다. 황제의 마지막을 달랠 수 있다면, 시종 몇의 목숨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채앵! 챙!
이안은 이를 꽉 깨문 채 메르니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력이 봉인된 그는 범부(凡夫)와 다를 바 없으니, 마검사 중에서도 최강자인 메르니에게 상대가 되지 않음은 당연했다.
이안은 집무실 문을 박차며 뛰어나갔고, 메르니는 사냥감 몰 듯 천천히 그 뒤를 쫓았다. 급히 할 것 없다.
“아아아악!”
“폐하! 폐하!”
“몸을 피하십시오! 반역입니다!”
“이 쳐 죽일 것들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투둑. 비인가? 이안은 멍하니 얼굴로 떨어진 것을 훔쳐 냈다. 피다. 2층 난간에서 죽은 자가 흘린 피였다. 이안을 지키고자 하는 자와 밀어내고자 하는 자가 한데 엮여 지옥을 만들어 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세상에, 오, 세상에! 이게 대체-!”
“안 돼에에! 이러지 마시오, 제발! 다들 무엇에 씌인 것이오? 여기는 황궁이란 말이오!”
“폐하! 도망치십시오! 서둘러서 가십시오!”
방금까지 그저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 찼던 이안의 내면이 무너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감각이 사라지고, 오감 또한 무뎌졌다.
천천히 따라 나온 메르니가 그의 뒤에 서서는 일렀다.
“폐하.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면 남은 자들은 목숨을 부지할 것입니다.”
“폐하! 안 됩니다! 몸을 맡기시면 아니 됩니다!”
“누가 폐하를 모셔라! 제발!”
“다 죽습니다. 선택하십시오.”
“폐하!”
“아아아악!”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이안의 심장을 찢었다. 그는 쿵쿵 뛰는 심장박동을 무시하며 그쪽으로 뛰어들었다.
“멈춰라!”
멈추어라. 내 사람들에게서 그만 검을 거두어라.
하지만 제국방위부의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안의 앞에서 사람들을 죽여 갔으며, 메르니는 담배를 문 채 담담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수라장이었다. 황제를 보호하고자 하는 자들은 이안을 뜯어말렸고, 그럴수록 그는 측근의 피를 뒤집어썼다. 하나, 둘, 셋… 모두가 죽어 나갔다.
“그만-!”
이안이 뒤돌며 메르니에게 소리쳤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아아, 그래. 본디 눈물보다는 피가 뜨겁고 끈적한 법이지. 메르니는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고, 그러자 지엄한 황제의 명에도 멈추지 않았던 검들이 일제히 거두어졌다.
“폐하.”
메르니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안은 자신의 옷자락을 잡으며 죽어 가는 신하들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도망가십시오. 사셔야 합니다. 폐하는 바리엘의 중심이십니다. 이는 분명한 반역이니 신께서 심판하여…….
“좀 더 일찍 결심하지 그러셨습니까. 이미 다 죽어 버렸군요.”
이안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메르니를 노려봤다. 한낱 황궁친위대 대장조차도 그의 위에 서 있다. 세상은 이리도 찰나에 뒤바뀌는 게로구나. 당한 자도, 행한 자도 모두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는 폐하의 부덕입니다.”
“네 이놈-!”
“모시어라. 황제를 확보하였으니 투항하는 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죽음만이 남아 있노라 일러. 크로니 경께도 보고하라. 2황궁은?”
“아직 연락 없습니다.”
“마법부 쪽을 특히 신경 써.”
“물론입니다. 염려치 마십시오.”
크로니의 이름을 듣자, 이안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려쳤다. …진정으로 선을 넘어오셨군요, 크로니.
“흐음.”
메르니는 무릎 꿇은 황제를 지켜봤다. 이리 보니 한낱 소년에 불과하지 않나. 하나 하늘이 무너진 것이로다. 그것도 자신의 손에 의해.
묘한 희열감이 피어나는 것도 잠시. 울분에 젖은 황제의 시선과 마주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씌워라.”
“예.”
병사들은 아이의 머리에 포대 같은 것을 씌웠고, 바리엘의 황제는 어둠 속에 잠겨 버렸다. 모든 게 끝났다.
* * *
“하아.”
나키나는 한숨과 함께 궐련 연기를 뱉었다. 저 멀리, 난리 난 1황궁의 불빛이 여기까지 아른거렸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치솟았으며, 희미하게 비명이 들려왔다. 그녀는 궐련을 비벼 끄며 중얼거렸다.
“참 나. 시발. 집안 꼬라지 하고는. 개판 난 걸 눈으로 보려니까 속이 뒤집히네요.”
“속전속결이군.”
“네. 사실상 이미 준비는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움 아저씨는 어디서 뭐 하고 있나 몰라.”
“그러게요. 그 뒤로는 보이질 않아서.”
쪽지를 건넸다. 크로니의 반역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니 대비하는 게 좋겠다는. 나움은 그 쪽지를 한참이나 살펴보더니, 조심스레 일어나 마법부 밖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당연히 이안에게 일렀노라 생각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
‘소식이 끊겼어.’
그리고 결국, 그날은 왔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실례합니다. 크로니 경의 부름이 있습니다. 따라오실 분들은 로브를 벗어 두고 나오십시오.”
“이보시게들!”
“송구합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참 나! 하!”
“이봐! 자네, 로브를 벗으려는 건가?”
“세상이 기울었어. 곧게 서 있으면 넘어지는 법.”
“이런 미친것들 같으니라고!”
“그럼 자네는 여기 계속 붙어 있게나. 하여 황제와 함께 바닥을 구르게. 이전처럼 말이지. 황궁에 들어오기 전 겪었던 그 비참한 인생을.”
그들은 로브를 벗은 채로 마법부 밖으로 나가는 마법사들을 지켜봤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굴복하겠다는 자들이다.
몇몇은 이럴 수 없다며 소란을 피워 댔지만, 현 마법부 장관이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통제될 리 없다.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격렬한 언쟁 끝에 결국 승리하는 건 크로니 편에 선 자들이었다.
“…안 되겠네.”
스윽.
나키나는 천천히 일어나 몸을 풀어 댔다. 온몸의 근육들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깨어났다. 토미와 헤일도 마찬가지. 그들은 로브를 벗는 대신, 단검과 같은 무기를 허리춤에 찼다.
“갑시다. 시간 끌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니까.”
“베릭은?”
“저기 오네.”
저벅저벅,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마법부로 들어선 마검사 한 명. 마법사들이 모두 의아하게 그를 쳐다봤다. 베릭은 눈을 부릅뜬 채로 그들을 노려보다가, 짜증스러운 투로 세 사람을 불렀다.
“이안이 잡혀갔어.”
“미친놈인가? 황제 폐하 이름을 어찌……!”
“아가리! 콱, 씨! 배신자들 주제에 황제 이름 부르는 게 고깝냐? X같은 놈들.”
“무, 무례하다!”
“응. 니 얼굴.”
소란을 뒤로하고 네 사람이 떠나려 하자, 마법사들이 제지했다.
“어디를 가려고?”
“어디긴? 이안 님 구하려고.”
“지금 분위기를 모르겠어? 장관님도 모습이 보이질 않아. 어떻게 된 건지 알 방도가 없단 말이다. 괜히 끼어들면 화만 당해.”
나키나는 자신의 팔을 잡은 마법사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그 따가운 시선에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붙잡았던 것을 풀며 덧붙였다.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게. 다 끝난 다음 움직이는 게 좋아.”
“너나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괜히 마법부 밖으로 기어 나와서 우리 방해하면, 그땐 진짜 너 죽고 나 사는 거니까. 알겠어?”
다른 부서와 달리 마법부의 입장은 관망에 가까웠다. 황제의 명운이 기운 것은 확실하나 그들은 운명을 함께하는 마법사들이었고, 지금의 격변이 어느 쪽으로 해결되든 상관없는 입장이었다.
황제가 재집권하면 마법사 쪽으로 힘이 실릴 것이고, 크로니가 이기면 약조한 대로 아무 탈 없이 마력봉인석을 돌려받게 된다. 섣불리 움직일 이유가 무엇 있단 말인가?
“가자.”
“네, 대장.”
“베릭!”
“간다.”
…대장? 호칭이 왜 저래? 마법사들은 마법부 부지 밖으로 나가려는 그들을 황당하게 지켜봤다.
때마침, 그들을 발견한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마법사님?”
“왜.”
“나오시면 안 됩니다. 마법부에 계십시오.”
“누구 명인데?”
“예? 당연히-”
타압! 나키나는 병사의 목을 손으로 쥐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곧이어-
퍼억!
작은 마력이었으나, 병사의 머리 하나 터뜨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그들은 모두 마력을 개방하여 피바람이 부는 제1황궁 쪽으로 내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