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5
제715화. 나의 어둠아
‘무너졌구나, 완전히.’
황궁 안으로 진입한 나움은 문드러지는 가슴 한쪽을 애써 무시하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여기저기서 울음과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황제를 신의하는 자들이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다 남긴 흔적이다.
“살려 주시오! 아아악!”
“닥쳐라!”
“목숨을 구걸하지 마라! 황제 폐하께서 들으신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죽이자. 소란 피울 놈들은 초장에 정리해 두는 것이 낫다. 시체는 모두 저쪽으로 올리고.”
“신의 심판이 두렵지도 않소? 어찌 황궁에서,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신께서 보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리 서 있다. 이쯤 하면 누가 신의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겠나?”
촤아아악!
나움은 어둠 속에서 멈칫거렸다. 지금 나선다면 저들을 구할 수 있겠으나, 크로니 편에 선 마법사들이 몰려오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수포다. 구할 수 있지만, 구하지 않겠노라.
스윽.
죽음이 억울하다면, 황제 폐하를 원망하지 마시고 나를 원망하시오. 그대들의 죽음을 보고도 지나친 이기적인 마법사가 여기 있소…. 나움은 눈물을 삼키며 기도했고, 어둠을 장막 삼아 움직였다.
이내 황제가 있는 곳, 지하 감옥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콰아앙! 쾅!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울림이 느껴졌다.
나움은 그것이 마법사들끼리의 전투임을 알아채고는 주춤했다. 이 형국에 황제를 위해 나선 자가 있단 말인가? 마법부 대부분은 관망하여 시류에 편승하고자 할 터인데, 대체 누가?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 봐-!”
“크흑!”
“살아 있다면!”
퍼어엉! 펑!
일방적인 전투였다. 패색이 확실했다. 마력 차원에서도 압도적이었지만, 마주한 세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합이 완벽했다.
누구인가? 나움이 두 눈을 찌푸릴 찰나. 달빛이 구름 뒤에서 모습을 보이고, 마력 빛이 환해지며, 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
별채에서 보았던 그 세 사람이다.
나움은 문득, 자신에게 덧붙여졌던 신의 음성을 떠올렸다. 황제가 마법부 별채로 간다면 기회가 있다고 했었지. 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나움은 뒷걸음질 치며 그들을 눈에 담은 채 지하 감옥 쪽으로 내달렸다. 저들이 어찌하여 크로니에 대적하여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다행한 일이었다.
‘시간과 틈을 벌어 주어 고맙다.’
지하 감옥 인근, 변절한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황제는 신에 가깝다 부를 정도로 강한 자 아닌가? 아무리 마력봉인석으로 억압했다고 한들, 반역자들은 분명히 안심하지 못했을 터.
하나 별채의 마법사들이 이리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그쪽으로 접근하는 게 쉬워졌다.
‘천치들 같으니.’
황제는 강한 자다. 나움의 개인적인 친밀을 차치하더라도, 황제는 정말이지 바리엘에 내려진 신의 축복과 같은 자였다.
그간 바리엘의 역사에서 마력을 다루는 황제가 있었던가? 이는 신께서 바리엘의 미래를 위해 선물한 것이건만, 어찌 아둔한 자들은 그걸 알아보지 못하고 망가트리려는 걸까.
크로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가 눈과 귀가 멀어 버린 것처럼 이상했다.
타닥타닥!
지하 감옥 입구로 향하던 도중, 나움은 발을 멈추었다. 근처에서 바삐 오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만 귀 기울였다.
“힐론 공작.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크로니 경. 마법사들이랑 얘기가 잘 된 것 맞나?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묻고 싶다네. 웬 천박한 것들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황제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지 않나. 어! 저기, 루이지 오는군. 이봐! 어찌 되었나?”
회동 중인 크로니와 힐론 공작이었다. 이어서 루이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나움은 더더욱 기척을 지워야 했다. 이내 호흡마저 실낱처럼 가늘게 흩어졌다.
“마법사들을 보냈습니다.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괜히 수틀렸다가는 서로 곤란해져서요.”
루이지. 차기 마법부 장관 자리를 제안받자 눈이 멀어 욕망에 온몸을 내던진, 비열한 작자.
나움은 분노에 몸을 떨며 애써 눈 감았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조심스레 어둠을 타고 지하 감옥 아래로 내려갔다.
“정리라…. 음?”
크로니는 지하 감옥으로 들어서는 문 쪽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기척을 느낀 것이다.
“크로니 경?”
“…예예. 알겠습니다. 아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앞뒤 분간 못 하고 날뛰는 것들은 마법사고 짐승이고 처리하는 게 맞지요.”
“그래, 그렇게 하지. 황제는?”
“아. 무사하십니다. 반항이 생각보다 거세서 애먹었지만 말입니다.”
크로니는 큭큭 웃으며 장갑을 벗었다. 가죽 장갑은 황제의 신성한 피를 잔뜩 머금어 뻑뻑해진 상태였다.
‘이안, 이 어리석고 안타까운 치야.’
그러니까 이르지 않았니. 그 자리는 네게 너무 과분하다고. 자신의 말만 들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이리되었구나. 저를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기른 자신을, 어찌 몰라주었던 걸까? 크로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뻣뻣한 장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저, 크로니 경.”
“예. 말씀하십시오.”
“처형식을 잊지 마시게.”
갑작스레 끓어오르는 분노로 황제를 죽여서는 아니 된다, 힐론 공작은 그리 경고하는 것이었다.
이는 작당한 자들 사이에서도 분분했던 의견이다.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터라 생포하는 즉시 죽여서 훗날 문제없게끔 하자는 강경파. 그리고 명분을 중시하여 필히 백성들 앞에서 처형해야 한다는 명분파.
크로니는 강경파였으나, 아무래도 당장은 귀족들의 협조가 필요한지라,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입니다.”
크로니가 씨익 웃자, 힐론 공작은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겉으로는 알겠다고 이르건만, 어찌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크로니는 루이지에게 고갯짓하여 따라오라 일렀다.
“내려가지. 황제께서 깨어나셨는지 볼 겸.”
볼 겸? 볼일이 또 있단 말인가? 루이지는 의아했으나, 크로니가 먼저 계단을 내려가는 바람에 묻지 못했다. 그는 힐론 공작에게 눈인사를 남기고서 지하로 들어섰다.
스윽.
한편, 황제는 살갗이 여기저기 찢긴 채 쓰러져 있었다. 비단같이 고왔던 긴 머리칼은 피에 절어 엉망이었고, 언제나 기품 있던 옷매무새도 망가진 지 오래다.
감옥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연신 황제를 힐끔거렸다. 평소에도 보기 힘든 용안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다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좀 안쓰럽기도 하고…….
‘죽었나?’
‘몰라. 숨은 쉬는데?’
“커헉!”
황제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 뼘 폭으로 난 창문이 보였다. 그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고, 황제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이안은 소년의 나이로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성년이 되기 전 목이 베였다.
어디선가 스쳐 지나가는 음성.
무어라 대꾸하고 싶었으나, 불가했다. 마력이란 마법사의 몸 곳곳에 깃든 힘. 마력봉인석으로 제압당했으니, 기력 또한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황제는 작게 중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황제가 되겠노라 결심했을 때? 아니면 황궁에 크로니와의 관계가 소문으로 떠돌 때? 그것도 아니면, 처음으로 거리에서 나움을 봤을 때일까? 마법사로서의 정체성을 알게 된 그 순간 말이다.
아니지. 그것보다 더, 더 뒤다.
크로니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태어난 게 죄다. 존재한 게 죄다.’
황제는 머릿속에 울리는 문장을 애써 부정하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거기 누구인가? 누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어?
“이안 님.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 보십시오.”
황제가 눈을 떴을 때, 병사들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움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채 족쇄를 풀고 있다.
아.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이 기시감은…….
“…나움.”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서둘러-”
“나움. 뭔가 이상하다. 어디선가 이걸 본 것 같아.”
“농담하실 여력이 있으십니까? 다행입니다.”
나움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대꾸했다. 그의 손끝이 모두 갈라져 있었다. 족쇄를 맨손으로 풀다 보니 생긴 상처였다.
“그만해. 괜찮아.”
“이안 님?”
“그만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안은 나움의 손을 가만히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하나만큼은 알겠다. 자신은 몰락했고, 그 곁에 있는 자들은 모두 다친다는 것. 그리고 나움, 너 또한 여지없이 화를 입으리라.
“이안. 정신 차리십시오. 제 말이 들립니까?”
“…이안?”
“예. 이안.”
황제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멈칫거렸다. 방금까지 죽음만을 기다리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쿵쿵. 자신은 살아 있노라 강렬하게 이르는 것처럼.
정말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이안이라는 그 이름이 대체 무엇이기에?
“뭔가 잊고 있는 것 같다.”
“예?”
“내 이름. 잊고 있다가 다시 깨달은 것 같아.”
“이안 베로시온. 그게 당신의 이름입니다. 어찌 잊으십니까? 제 속이 아픕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나움은 눈물을 닦아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밖에 있던 크로니와 루이지가 곧 들이닥칠 게다.
“마법부 별채가 있습니다. 아시지요?”
쿵쿵. 이안의 심장 고동이 점점 커졌다.
“그쪽으로 가십시오. 가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답이 오기를, 그쪽으로 오면 기회를 열어 준다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곳인지는 모르겠어요. 제 능력 부족인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끼익.
“이럴 줄 알았지.”
나움이 빠르게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크로니가 나타났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시감. 이안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이잉! 지잉!
“나움, 잠깐만!”
“이안 님. 괜찮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언제나 있어요. 신께서는 답 없는 문제를 내려주지 않습니다.”
아. 이거-
금빛으로 일렁이는 주위.
뜨겁게 타오르는 열기.
이안의 눈동자 속에서, 나움이 웃었다.
우우웅! 우웅!
나움의 손바닥에서부터 불길이 피어올랐다. 크로니는 검을 빼 들었고, 이안은 멍하니 그것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느리게 흘러갔다.
아. 이거-
“나움-!”
“이안아아아아!”
콰아앙! 쾅!
“이안 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부름. 이건 머릿속의 환상이 아니다. 저 밖, 감옥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루이지가 뒤를 도는 순간, 크로니가 이안의 목을 겨누어 검을 휘둘렀다. 뭔지 모를 마법으로 일이 틀어지기 전에 당장 목숨을-!
“나 베릭이다!”
“나키나입니다!”
“토미 왔습니다! 헤일 대장도요!”
이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 이거.
‘…어둠이로구나.’
채애애앵!
촤아악!
이안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크로니의 검을 막아 냈다. 튕겨진 검은 족쇄를 내려쳤고, 이내 단번에 산산이 조각나며 파괴되었다.
“이-!”
심연의 바다에서 마주한 어둠. 매번 같은 죽음을 맞이하여, 죽는 순간에나 깨달았던 그 굴레, 지옥, 억겁…. 이안의 푸른 눈동자가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었다.
지이잉! 지잉!
동시에 불꽃에 잡아 먹혀드는 나움의 손목을 잡아챘고, 반대쪽 손으로는 이드갈 검을 생성했다.
루이지가 황급히 보호막을 펼쳐 크로니를 보호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조각난 제 검을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크로니-!”
“아니, 이게 대체-”
나의 어둠.
“내가 누구인가!”
내 이름은 이안 베로시온. 그리고 이안 히엘로.
모든 걸 자각하는 순간, 깊은 분노가 터져 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