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6
제716화. 사라진
나움은 자신을 붙든 이안을 올려다봤다.
방금까지 죽음을 갈망하던 주군은 사라지고 없었다. 꺼져 가던 생명력은 불길처럼 일어나 주위를 가득 채웠고, 그 열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이는 비단 나움만이 감지한 것이 아니었다. 크로니와 루이지, 두 사람의 낯빛에도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촤아아악!
채앵!
이안이 자세를 낮춘 채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훈련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그 몸놀림 그대로다. 황제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칼이 흔들렸고, 그의 안광이 지나온 자리에는 희미한 빛이 흔적으로 감돌았다.
이안,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입니까?
“크흑!”
이안의 이드갈 검이 루이지의 보호막을 정면으로 내려쳤다. 마법사의 마법을 물리적으로 파훼하기란 어려운 법. 당연히 알고 있고, 의심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나-
‘뭐지?’
온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드갈 검과 맞닿은 보호막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루이지는 놀라서 마력을 더 덧붙였지만-
콰직-!
채앵!
보호막은 산산이 조각나 주위로 흩어졌다. 힘없이 떨어진 보호막 조각을, 루이지는 믿기 어렵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크로니.”
하아, 하아. 이안은 거친 숨을 들이쉬며 이드갈 검을 크로니에게 겨누었다. 그 날카로운 끄트머리가 크로니의 목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물었다. 내가 누구인가.”
나움은 이안의 음성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걸 알아챘다. 겉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그 속에는 불길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다. 모든 걸 태우고, 녹이며, 처절히 짓밟아 버릴.
“…이안.”
“그렇다. 내가 이안이다.”
작디작은 손으로 그대를 붙들었고, 진정 가족이라 여겨 마음 깊이 고마움을 품었으며, 그대와 나의 세상이 그릇된 것임을 알았을 때도 모질게 대하지 못했던, 그 이안이란 말이다.
모두 나의 잘못이다. 조금 더 일찍이 그대와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함이 옳았는데…….
“깊이 생각해 보았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되짚고 되짚어, 자신의 존재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 이리 마주하니 알겠다. 헤치면 아무것도 아닐 나의 어둠아. 베어 내면 쉬이 거두어질 지난날의 미련아.
“내가 아닌, 너의 존재가 잘못되었다.”
햇살 아래 살고자 한 그림자의 욕심, 그로부터 비롯된 오랜 나날의 검은 씨앗이 뿌리를 깊게 내렸던 게지.
하여, 너무도 굵고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 탓에 어린 나는 숨도 못 쉬고 죽었다…. 이를 어찌 내 잘못이라 이르겠나?
“…이안.”
크로니가 입매를 비틀며 중얼거리자, 이안의 눈빛이 단번에 매서워졌다.
“어디 감히 황제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가.”
“이안! 너무하십니다!”
크로니는 루이지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서 소리쳤다. 그의 손이 조심스레 허리춤으로 움직였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마력봉인석을 몸에 박아 넣자 한 것인데, 갖가지 연유로 인하여 미루었더니 이 사달이 났다.
크로니가 반대쪽 손으로 루이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기회를 엿봐라.’
마력봉인석으로 만든 단검이 있다. 이걸로 저놈 몸 어딘가를 벨 수만 있다면…….
“너무하다?”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습니까? 나를 가족으로 여겨 따랐다고요? 하! 그런 분이 어찌하여 제 걱정을 모두 묵살하였습니까? 마력을 숨겨라, 궁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황제의 자리는 옳지 않다! 내 누누이 경고하며 그대를 위하지 않았습니까!”
이안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손등으로 핏물을 닦아내고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어둠이라 하지만, 역겹군.”
“무어라고요?”
“되었다. 나는 너무도 긴 시간선을 건너왔어. 더는 그대의 의미 없는 변명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이안의 온몸에서 위압적인 마력이 흘러나왔다.
루이지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백에 당황하여 마른침을 삼켰다. 황제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적나라하게 마주할 기회는 없었으니까.
이안이 이드갈 검을 잡고서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의미가 없다고? 이안, 너의 부모가 죽은 것도 모두 너의 탓이다! 그럼에도 의미가 없을까?”
크로니의 고함에 이안의 검 끝이 멈칫했다.
그 틈이었다. 루이지는 두 손 가득 마력을 끌어모았고, 이내 마법을 시전했다.
「만도(晩到)」.
작은 시계가 그의 손아귀에서 일렁거렸다.
이곳은 좁고 어두워 힘의 격차로는 이안을 제압할 수 없었다. 그러니, 상대의 시간을 묶어 두는 마법이 제격일 터. 시간을 벌어 두면 다른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이자를 처리할 수 있다.
지이잉!
짤깍.
시곗바늘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빛이 주위로 쏟아졌다. 저것과 마주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리라.
그에 이안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손끝으로 마력을 모으려는 때였다.
“우아아아아-!”
지하 감옥 위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자의 비명.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저 높다란 곳에서 베릭이 추락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안아아아!”
“이안 님!”
이어서 토미, 나키나, 헤일까지. 세 사람은 추락이라기보다는 ‘낙하’에 가까워 보였지만 말이다.
그들은 이안을 향해 낙하하면서 손끝으로 작은 마법진을 그려 냈다.
“이안 님에게서 떨어져라-!”
촤아아악!
이내 그의 앞에 사뿐히 착지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마법을 일으켰다.
「체경(體鏡)」.
솨아아악!
쿠웅! 쿵! 쿵!
순식간에 주위가 거울 천지로 변했다.
빛이 이리저리 궤를 가늠할 수 없게끔 반사되자, 루이지는 시계를 거두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자신들의 발목이 잡히면, 그때는 진짜 끝이었으니까.
“크로니 님.”
루이지가 크로니를 돌아봤다. 수세로도 그렇고 전력으로도 모자라니, 우선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루이지!”
“크, 크로니 님?”
크로니가 여럿이었다. 그걸 보는 루이지 또한 마찬가지. 거울 벽 수십 개가 만들어 낸 미로 속에, 그들은 갇히고 만 게다.
“대체, 이 무슨……!”
저기 있나 싶어 한 걸음 다가가면 거울이었고, 직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상대는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지, 진정하자.’
이는 정신 계열의 마법이 아니다. 그저 시각적인 눈속임일 뿐…….
루이지는 한자리에서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력으로 모조리 깨 버릴 수는 있겠다만, 그리되면 크로니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서 보호막을 치고…….
“크로니.”
스윽.
그때였다. 거울 속 이안의 모습이 반사되었다. 반사되고 반사되어, 수십 명이 고개를 튼 기이한 광경. 그것들이 중얼거렸다.
“나로 인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건, 어찌 된 말인지 이르거라.”
“말 그대로외다, 이안!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대의 존재는 아주 예전부터 정해졌던 것이니, 불행을 부르는 시작점이라. 그대의 어미가 어찌하여 그대에게 손길을 주지 않았는지, 아직도 모르시지요?”
크로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쳐 댔다. 여기서 이안을 흔들지 않으면 자신이 흔들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혼신을 다한 발악이었다.
거울 속, 크로니가 도망치듯 스쳐 지나가고, 그 뒤를 이안이 뒤따랐다.
“예전부터?”
“그렇소. 신전에서 내려 준 경고지!”
“아.”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한쪽 고개를 까딱거렸다.
지금, 그러니까 100년 전부터 이어 온 지하신의 간계가 정확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노라 고백하는 건가? 아주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군.
“마산타르?”
“우리가 거기서 왔다, 시발 놈아!”
어디선가 베릭과 나키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들도 거울 속 어딘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크로니는 손으로 앞을 더듬거렸다. 거울이 아닌 곳을 찾고자 필사적이었다.
“……!”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온 이안의 형상. 거울인가? 아닌가? 모호했다. 살짝 비스듬하게 선 채로 뒤를 돌아보고 있었으니.
크로니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조심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정말로, 너를 위해서 그리했어. 네가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그날 밖으로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이리될 일 따위 없었잖아.”
크로니는 작게 중얼거리며 형상을 살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저것은 진짜라고 확신했다. 죽음을 앞둔 자의 기민한 감각 덕분이다. 이윽고 크로니는 등 돌린 이안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채앵!
챙!
“아저씨.”
그걸 가볍게 막아내는 베릭. 그의 마력 대검은 마력봉인석에 반응하여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번뜩였다.
“시발, 더러운 입 좀 닥치고, 그만 고통스럽게 죽으세요.”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베릭이 몸을 비켜 줬다. 그 후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푸욱!
이안의 이드갈 검이 크로니의 복부를 꿰었다.
“……!”
“어찌하나 보고 있었는데, 역시나군.”
“…이안!”
“네가 나를 알 듯, 나도 너를 안다. 너는 어두운 곳에 숨어 빈틈을 노리고 기어오르는 작자다. 제 것이 아닌 걸 탐내고, 인간의 존엄과 의로움 따위는 존재조차 하지 않으며, 비열함을 고등한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치지.”
크로니는 손을 부들대며 이드갈 검을 꽉 쥐었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죽음이 성큼 다가온 것이. 이리 갑자기, 그것도 ‘그’ 이안으로 인하여.
“주제를 알라. 크로니.”
“이, 이아아안!”
콰직!
이안은 검을 더욱 깊게 밀어 넣으며 크로니의 귀에 속삭였다. 그의 음성은 단호했다.
“불경하군.”
“이안! 이안!”
“…황제의 이름이라니까.”
이안은 고개를 들어 크로니와 마주했다. 이안의 눈동자에 크로니가 있었고, 크로니의 눈동자엔 이안이 있었다. 둘 다 눈시울이 붉었지만, 기인한 감정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크로니.”
이리할 수 있음에 내 진정으로 감사하다. 너를 죽임으로 인해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내 진정으로 감사한다.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말거라.”
이안은 그대로 검을 빼냈고, 동시에 그의 복부에서 피가 터졌다. 크로니의 시선이 검 끝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아. 이런, 젠장.
촤아아악!
후드득!
사방의 거울로 피가 진득하게 튀었다. 그의 머리통이 옆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떨어져 굴렀다. 동시에 깨지는 거울들.
채앵! 챙!
크로니의 죽음을 담은 유리 조각들이 수도 없이 흩날렸다.
이안은 검을 사라지게 했고, 한참이나 그 시체를 내려다봤다. 아아. 그래.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작자…….
“이안 님.”
“괘, 괜찮으시지요? 이안 히엘로, 맞으시지요?”
나키나와 토미, 헤일이 조심스레 다가오며 그를 살폈다. 이안의 어둠 속인지라, 혹여 자아가 다르면 어쩌나 싶었던 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안은 희게 웃었다.
“하면, 이안 히엘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이고, 심장 떨어져.”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다들 내 어둠 속에 엮였나 보군.”
“정신 차리고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에도 계속 이런 세계를 겪으셨던 겁니까?”
“그래. 그때는 항상 죽는 순간 깨달았다. 전부 어둠 속이었다는 걸.”
그리고 후회했지. 아, 어둠 속이란 걸 알았더라면 그리하지 말걸. 나움을 보내지 말고 좀 더 끝까지 삶의 의지를 붙들어 볼걸.
하지만 막상 어둠이 재생되면, 기억을 잃은 채 꼭두각시처럼 그 현상에서 살아가다 죽곤 했다. 몇 번이나, 센다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무수히.
“그럼 이제 나갈 수 있을까요?”
“아마…….”
처음 깨어났을 때는 서자 이안의 모습을 한 신이 일깨워 주었지, 이안이 그리 이르려는 때였다.
문득, 뭔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움?”
나움이 사라졌다.
자신을 위해 금기의 마법을 불렀던 그 자리에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