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7
제717화. 무(無)의 공간
루이지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지하 감옥 안쪽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병사들이 몰려왔지만, 그는 거칠게 밀치며 마법부 쪽으로 날아갔다.
타앗!
끝났다. 황제가 마력봉인석을 깨고 살아났다.
크로니는 어떻게 됐는지 알 바 아니고, 지금은 자신의 목숨만을 생각할 때다. 마법사들이 뜻을 합치면 황제를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도 황제가 개처럼 끌려갈 때 보고만 있던 처지들 아닌가.’
검을 휘두른 자만 역모자가 아니다. 보고서도 모른 척 고개를 돌린 자들 또한 죄인이다. 자신이 위험한 것과 같이 응당 그들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마법사들은 똑똑하여 셈이 빠르니, 서로 합심할 필요가 있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리라.
‘흑심 품은 것들은 모두 베어 낸다고 하겠지. 하지만 마법사는 어찌할 것인가? 남김없이 죽일 수 있나? 그렇게는 안 될 터.’
바리엘이 어떤 나라인데! 이 작은 땅덩어리로 가이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데! 루이지는 멀리 보이는 마법부 별채 불빛을 보고서 희망의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촤아아악!
“……!”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움이다. 그는 루이지를 따라잡자마자 피투성이 된 손으로 그를 저지하고자 했다.
“루이지!”
“크헉!”
퍼어엉!
루이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마력을 터트렸다. 거리가 벌어졌으나, 나움의 살기 어린 공격은 틈도 없이 쏟아졌다.
그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루이지는 나움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웃옷 위로 드러나 있는 그의 목, 급소다.
‘분명한 살의.’
퍼엉! 펑!
나움은 루이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 속도가 엄청났다. 심장이 크게 흔들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뒤로 물러서는 그의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말이다.
‘젠장.’
황제가 처음 제위에 올랐을 때, 마법사들 역시 특별한 역사 한순간에 서 있다는 걸 실감했다. 대부분 천민 출신이라는 마법사 중에서 황제가 탄생하다니.
하여, 자연스레 그의 뜻을 따라 나움이 마법부 장관에 추대되었다.
“참 나. 저것이 정치적인 뒷배를 업고서 장관직에 오른 것과 무엇 다른가? 누가 저자를 마법부 장관으로 인정하겠는가?”
루이지는 자신을 따르는 마법사들과 함께, 나움을 두고서 비웃고 떠들기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를 하찮게 여겼다. 장관직은 무슨, 자신보다 한참 아래인 작자가…….
“루이지. 다른 길은 없다. 너의 죽음만이 마법사들을 구하는 길이다.”
나움은 루이지와 시선을 맞추고는 그리 속삭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그의 마법이 아슬아슬하게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자, 루이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진정으로 나를 죽이겠다? 루이지의 얼굴이 굳었다.
하나 나움의 의지는 확고했다. 역모에 가담한 마법사, 즉, 루이지가 마법부로 들어서면 회색 지대에 있던 마법사들까지 검게 물들 터다. 황제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살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테니.
그 상황에서 루이지의 간계에 넘어간 자들은 루이지와 결탁하여 다음 수를 궁리할 것이고, 그런 자들이 분위기를 흐리기 시작하면, 중립을 지키던 자들까지 휩쓸릴 터.
그것은 진정한 바리엘의 몰락이다. 황제는 마법사들을 몰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되면 크로니가 죽어도 죽은 게 아니게 된다. 그 저열하고 사악한 의지가 끝까지 살아남아, 이안을 괴롭히겠지.
“황제 폐하를 어지럽게 하는 건 여기까지다.”
그러므로 루이지의 죽음은 징벌이자 구원이었다.
역모자에 대한 징벌, 바리엘을 위한 구원.
“죽어라. 그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
“닥쳐!”
퍼어엉!
합을 주고받을수록 루이지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는 걸 본능적으로 자각했다. 동시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풍경. 황제가 손을 붙들며 막았지만, 그는 분명히-
“너!”
알겠다.
“금기의 마법을 불렀구나.”
나움은 대답 대신 손아귀에 마력을 응집했다.
작은 우주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어둡고, 밝으며, 온갖 다채롭고 따뜻한 것들이 차갑게 몰아치는 우주. 점점 속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남은 시간이 없다.’
지이잉! 지잉!
나움의 손에서 우주가 확장되었다. 그것은 빠르게, 그리고 분명히 루이지를 옭아맸다.
발끝부터 집어삼키던 것이 점점 번져서 그의 심장까지 올라갔다. 루이지가 파훼하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는 경보음만 머릿속에서 울려댔다.
“아-!”
퍼어어엉! 펑!
폭발과 함께 루이지가 온전히 사라졌다. 동시에 나움의 온몸이 뜨거워지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알 수 없는 불꽃이 몸 안의 내장을 파먹는 고통이다.
“크흑!”
나움 역시 추락하여 몸을 웅크렸다. 마법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 몇몇이 조심스레 날아와 주위를 둘러봤다.
“나, 나움 장관님?”
“…떨어져라. 마법사들에게 전해.”
“괜찮으십니까? 루이지는 어찌 되었습니까?”
“지금 당장 다들 마법부로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숨죽이고 있어라. 폐하께서 너희들을 덮어 두고 용서하실 수 있게. 대신, 너희들은 온전히 속죄하여 모든 걸 폐하께 내어드려.”
“나움 님. 모, 몸이-”
화아아악!
나움의 손끝이 다시 타들어 갔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앓으며 몸을 웅크렸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안을 떠올렸다.
놀라웠다. 아니, 경이로웠다. 다 죽어 가던 그의 눈빛이 금안으로 물드는 그 순간은… 그래. 저 심연 깊은 곳으로 가도 잊지 않으리.
“나움.”
그때, 누군가 자신의 손을 붙잡았다. 나지막한 저 음성은 너무도 익숙한 자의 것이다.
“폐하.”
…고맙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하 감옥이 아닌 바깥에서 황제를 뵙고 갈 수 있는지라,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있노라, 이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에게도-
“나움. 정신 차려. 너는 금기의 마법에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안은 나움의 사념을 잘라냈다.
그 말에 나움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요. 피로 맺은 마법인데, 그것이 저를 잡아먹지 않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있잖아. 내가 생각을 해 보았거든.”
“예, 폐하. 이르십시오.”
“이전의 심연에서는 깨어나는 순간 모든 게 사라졌어. 하지만 지금 보아. 아직도 세상이 선명하지.”
함께 보는 밤하늘, 아른거리는 불빛, 차가운 바람, 아릿한 고통. 모든 게 존재했다. 이안이 보는 것은 나움도 볼 수 있고, 나움이 느끼는 건 이안도 느낄 수 있다.
“왜 그런지 의아했거늘,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폐하.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너의 어둠도 여기 녹아 있단다.”
심연의 바다 어딘가에 잠겨 있던 나의 친우, 나움아. 우리 이리 다시 만났는데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하니. 너의 죽음과, 이전의 만남과, 앞으로의 희망을,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해?
나움의 눈동자가 커지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예?”
“나움아, 제대로 보렴. 모든 건 허상이다. 너를 잡아먹는 금기의 불꽃까지.”
나움은 맞잡은 이안의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은 뜨거워 죽을 맛인데, 이안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온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움 역시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으며 침착해졌다.
“저기, 이안 님. 하면 말입니다.”
나움은 이안의 뒤에 서 있는 네 사람을 쳐다봤다. 세 사람은 익숙하고 한 사람은 낯설다.
아니, 잠깐만. 익숙하다니? 자신은 저들의 이름을 알고 있나? 어디서 보았지? 아까 인근에서 마법사들과 전투하고 있었던 것 외에…….
‘아아. 별채.’
하지만 그전에는? 그전에도 보았던가? 나움의 시선이 뒤로 가 있자, 이안이 작게 속삭였다.
“그래. 나의 친우들이다.”
함께 어둠을 헤친 나의 친우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나움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그러고는 모든 게 기억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랬던 거였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폐하. 그대가 혼자가 아니라서.
이안은 나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나움. 나와 함께 가자. 심연에 잠긴 자들을 구할 수 있어. 이제는 모두 되었다. 더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겪지 말고, 나와 함께-”
쿠웅! 쿠궁!
이안은 말을 맺지 못했다.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온 탓이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과 함께.
“왜, 왜 이래? 무섭게.”
“이안아, 왜 이런지 알아?”
쿠구구구! 쿠궁!
어리둥절해하는 네 사람과 달리, 이안과 나움은 단박에 직감했다. 세상이, 어둠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게다. 허상으로 자리했던 모든 것이, 다시 심연의 바다에 잠기리라.
“이안 님.”
나움이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안 된다는 걸 그대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나. 되었더라면 저번에 만났을 때 함께할 수 있었을 터.
이안은 금기의 마법의 산물. 하여, 조건 없는 희생을 이룰 수 없었으니, 나움 역시 데리고 갈 수 없다.
“괜찮습니다.”
“나움.”
“정말 괜찮습니다. 이전과 다른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는 금기의 마법을 겪지 않은 베로시온이다. 시간과 공간, 모든 게 어지러이 얽혀 있는 터라 그는 나움을 ‘깨울 수’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대지에 어둠이 가득 찼다.
-들리십니까, 이안 님!
“……!”
-헤일, 토미, 나키나! 베릭!
동시에 아코렐라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다른 일행들도 들었다는 듯 멈칫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당장 구해 내겠습니다. 정신 단단히 차리십시오!
본 세계와 연결이 짙어질수록, 이곳은 흐려진다. 하나씩 건물이 지워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내 빛도, 소리도, 공기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 도래하리라.
이안은 나움의 손을 계속 붙들었으나, 자신 또한 지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움.”
“고맙습니다. 이안 님. 제 죽음은 끝났습니다.”
“나움아, 나움아…….”
스윽.
불가항력이다. 결국 손아귀가 풀리고, 이안과 그 일행들이 흐릿해지며 완전히 사라졌다.
나움은 희게 웃으며 그에게 예를 올렸다.
“다시 뵐 것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고개를 들자, 나움은 온전히 혼자였다. 외부에서 온 그들은 모두 떠났다. 스스로 빛나는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군. 딱 하나-’
남아 있는 게 있다. 세상은 지워졌지만,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건물. 마법부 별채였다.
스윽.
누가 일러준 것도 아니건만, 나움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음 했다.
-이안 베로시온에게 마법부의 별채로 가라 전하라. 그리 가게 되면, 기회가 있으리라.
…기회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움. 너에게도.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 이안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나움은 조심스럽게 별채 문을 밀었고, 이내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문이 닫힌 마법부 별채 역시, 곧이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대지의 밑, 심연의 해저, 어둠만이 존재하는 진정한 무(無)의 세계. 죽음도, 미련도, 고통도 없다. 아무것도 없음이, 바로 나움에게는 구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