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8
제718화. 심연의 주인들
“몰랐다. 지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었어.”
바누사는 물에 얼굴을 반쯤 담근 채 중얼거렸다.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공기 방울. 물 안에서 이르고 있음에도 그녀의 음성은 또렷했다.
마법사들은 아코렐라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서 지켜 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무턱대고 덤벼들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코렐라는 상체를 살짝 세우며 되물었다.
“네가 뭘 몰랐는데.”
“지하에 바다가 있다는 것.”
바누사는 지하로 내려갔을 때, 라주 대신관 뒤로 일렁이던 심연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더하여, 그 안에서 세상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주둥이를 쩌억 벌리던 마물도.
“신전의 믿음이 무얼 뜻하는지도 그때 알았지.”
“토올룬에서 꽤 중책을 맡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럼에도 정말 몰랐던 건가?”
“그렇다. 신께 맹세한다.”
“네놈들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맹세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됐고, 지하의 상황은? 내 상관과 동료들은 무사한가?”
“…글쎄.”
“죽고 싶어?”
콱 씨! 아코렐라가 바누사의 멱살을 붙잡으려 하자, 마법사들이 반사적으로 뜯어말렸다. 그런다고 뭐 달라지겠어요? 괜히 기분만 상할 거, 참으십시오, 좀!
바누사는 난리 난 마법사들을 슬쩍 올려다보더니, 다시금 중얼거렸다.
“정말 모른다. 대신관의 피에 잠겨 어둠 속으로 휩쓸린 뒤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대신관의 피? 그럼 이안 님이 놈을 처치했다는 뜻?”
“전혀. 그자는 스스로 상처를 내었다. 말하길, 죽지 않는 자라 하던데.”
“그게 무슨-”
아코렐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멈칫거렸다. 먼 과거부터 이어진 라주 대신관의 기록. 러더포드가 수많은 빙의를 통하여 생명을 연장했던 것과 달리, 라주는 스스로의 힘으로 긴 시간 존재하였다. 죽지 않는다? 헛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속임수가…….
“심연에 거대한 마물 한 마리가 있었다. 그것이 라주 대신관의 본체인 것 같아.”
역시나.
“확실해?”
“그래.”
이안과 맞서는 모습을 보기 전, 바누사는 그저 심증만으로 의심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마물과 감응하던 그 태도로 보아, 라주 대신관은 분명히 마물과 이어져 있었다.
“아코렐라 님. 심연의 마물이라 하면 분명히 지하신을 따르는 놈일 것입니다.”
“참 나. 시발, 말세다, 진짜. 마물 놈이 신관 행세나 하고 말이지. 베릭은 또 어디 갔어? 먹는 거라면 환장하는 놈인데. 같이 휩쓸린 거냐?”
“그래. 같이 사라졌다.”
“하 씨.”
아코렐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연의 바다와 이어진 공간. 혹시 그쪽으로 완전히 흘러가 버린 것이라면? 시공간의 비틀림은 괜찮을까? 아니, 그 전에 얼마나 강하기에 이안 님의 보호막이 깨진 거지?
“라주 대신관은 이드갈 단검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처럼, 바누사가 대답했다.
“어이가 없네. 마물 놈이 이드갈을 사용한다니.”
“마법사들의 보호막은 깨졌지만, 호흡이나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심연의 바다니까. 보이는 것처럼 순수한 물이 아니라는 거겠지. 라주가 피를 냈다고 하니까 인간의 몸은 버린 걸 수도 있겠다.”
그 말인즉, 보호막을 쳐도 문제없다는 뜻.
하나 이안 일행을 구하기 위해 잠입하되, 잠겨서는 안 되었다. 누군가는 ‘현재’에 머물며 그들과 이어진 끈을 붙잡고 있어야 하니.
“보자.”
아코렐라는 마법사들을 둘러보더니, 고갯짓으로 명령했다.
“너. 너. 그리고 너. 셋만 남고 나머지는 나 따라와.”
“내려갑니까?”
“그럼 올라갈래?”
아코렐라의 썰렁한 농담에 마법사들이 피식 웃었다. 그들은 별말 없이 로브를 벗어댔다.
“혹여라도 죽으면, 마지막 농담치고 너무 별로지 않겠습니까? 끔찍합니다.”
“괜찮아. 우리 다 같이 죽을 거잖아.”
“그러니까요. 저희가 끔찍하다는 겁니다.”
“바누사, 우리 보호막 위로 네 힘을 더해라. 물로 막을 하나 더 만들라는 의미다.”
바누사는 대답 없이 아코렐라를 가만 올려다봤다. 마치 낯선 인간을 대하는 인어의 눈빛 같다.
“내가 그리하면?”
“그리하면이라니?”
이게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마물 숭배라는 무근본 사이비 종교한테서 네 나라를 구해 주잖아. 닥치고 엎드리는 게 맞지 않나?”
“닥치고 엎드리기에는 내게 걸린 게 너무 많아서. 쉽지가 않네.”
예를 들면, 토올룬 왕의 인형술이라든가.
아코렐라는 서늘한 시선으로 바누사를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발을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 건 이안 님께 아뢰라. 난 권한 없어.”
“성의라도 보이지?”
“내 성의가 너에게 필요한가?”
아코렐라는 알고 있었다. 바누사는 자신들을 도울 수밖에 없다는 걸. 인형술에 꿰이고, 가문의 위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맨정신으로 그들의 신앙이 마물이라는 걸 확인하지 않았나? 여기서 바리엘의 마법사들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언제 토올룬 왕이 내 감각을 이용할지 모른다.”
“그럴 것 같으면 알아서 빠져.”
아코렐라는 앞장서라며 눈짓한 다음, 잠수했다.
지이잉! 지잉!
촤아악!
뒤이어 마법사들도 아코렐라의 뒤를 따랐다.
체념한 듯 서서히 모습을 감추려는 바누사. 에이린은 검을 껴안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고, 세드릭은 다시금 바닥에다 귀를 가져다 댔다. 납작 엎드린 채로 그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
“베릭 선배님은 마물도 먹습니까?”
아까 아코렐라 대장의 말이 뭔가 이상했는데…. 아이의 물음에 마법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워낙 편식 안 하는 놈이잖아.”
“아, 그렇군요.”
아, 그렇군요? 마법사는 별말 없이 수긍하는 세드릭의 뒤통수를 힐끔거렸다. 보면 볼수록, 제이럿 대장이 어째서 베릭을 사수로 붙여 줬는지 알겠다.
* * *
한편, 아코렐라와 마법사들은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물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커다란 진동으로 신전 일부분이 무너졌으나, 바누사 덕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리저리 잔해를 피해 가며, 그녀는 맨 아래층으로 마법사들을 인도했다.
“여기부터는 조심해라.”
“어라, 말이 잘 들리네.”
“말했잖아. 이안 일행도 호흡하고 움직이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고. 아무튼 정신 차려. 신전은 이안 경의 몸만이 아니라, 마법사들의 몸도 원하는 듯 보였으니까.”
“뭐? 왜?”
“신성한 것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지. 너희들은 신과 가까운 자들 아닌가?”
모든 것이 위층과 확연히 달랐다. 심연의 바다와 이어진 공간에 가까워질수록 어둠이 짙어졌고, 낯선 기운도 한층 서늘해졌다.
“대장, 저기!”
그리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물체. 바누사가 일렀던 그 마물이다.
사람 수십 명은 거뜬하게 먹어 치울 것 같은 몸집. 비늘 끝은 호흡에 따라 쩍 벌어졌다 오므라지기를 반복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
“이안 님은?”
“안 보입니다.”
“전언 마법 유지하고 있어 봐. 접근한다.”
“대장, 조심하십시오.”
“너나.”
아코렐라가 손짓하자, 마법사들이 간격을 넓게 펼치며 천천히 접근했다.
마물은 몸을 웅크린 채 뭔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눈알이 삭삭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마법사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데,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바누사의 말대로라면, 저놈은 마법사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신성한 뭐 어쩌고저쩌고, 제물을 바치고 싶어 한다며?
하나, 놈은 기다란 몸을 만 채로 미동이 없다. 가운데 뭔가를 품고 있나 살펴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어둠.
‘신성한 몸.’
아코렐라는 문득 이안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는 황제의 영혼과 신의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 저놈들에게 우선순위가 있다면, 마법사들보다는 이안일 터.
하면-
“저기로 빛 날려 봐.”
“예?”
“어둠을 품고 있잖아. 저쪽 좀 밝혀 보라고.”
저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다고 짐작할 수밖에.
아코렐라의 지시에 마법사 한 명이 작은 마력구를 조심스레 튕겼다.
지이잉! 팅!
그러자 놈의 주위가 잠깐 동안 식별 가능할 정도로 희끄무레하게 밝아졌다. 그저 바닥이라 어두운 것이라 여겼는데, 뭔가 연기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어둠이다.
놈의 눈이 아예 뒤로 돌아가 마법사들을 경계했다.
“어쭈.”
저것 봐라?
“대장. 뭔가를 품고 있습니다.”
“어, 그렇네. 다시해 봐. 이번에는 모두가 동시에 밝힌다!”
열댓 명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 내자, 곳곳에서 빛이 밝아왔다. 마치 밤하늘에 별이 뜬 것처럼.
놈은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며 사위를 경계했고, 기다란 몸을 더욱 둥글하게 말았다.
“아!”
그때였다.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어둠 속에서 뭔가 희미한 인영이 떠오른 것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것은 분명-
‘사람.’
“이안 님 아닙니까?”
“옆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헤일 대장! 나키나! 토미!”
“베릭 새끼야아!”
정신을 잃은 채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이안 일행이었다.
마물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몸을 풀고 주둥이를 크게 벌려 그들을 단숨에 삼키고자 했다.
“안 돼!”
“이 새끼가 감히-!”
촤아아악!
마법사들은 반사적으로 놈에게 달려들어 마법을 펼쳤다. 아코렐라 또한 귀 한쪽을 손으로 문지르며 이안 일행에게 전언을 보냈다.
“들리십니까, 이안 님!”
젠장. 왜 저러고 있는 거람.
“헤일, 토미, 나키나, 베릭! 지금 당장 구해 내겠습니다. 정신 단단히 차리십시오!”
지이잉! 지잉!
콰앙! 콰아앙!
마법사들이 마력을 터트리며 마물을 공격해 댔다. 하지만 단단한 비늘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마법 위력 또한 바깥에서보다 덜한 느낌이었다.
키이이익!
마물의 아가미가 벌어지자, 거센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정신 잃은 이안 일행이 힘없이 흔들리며 쓸려 가자, 마법사들은 그들을 붙잡기 위해 저마다 빛줄기를 날렸다.
“잡아! 버텨!”
“어서 죽이란 말이다! 젠장!”
“이안 님! 정신 좀 차리십시오! 베릭, 개새끼야!”
콰앙! 쾅!
계속되는 굉음과 진동. 마법사들은 마물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
이안의 눈을 뜨게 했다. 물속인지라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본인조차.
이안은 꺼끌꺼끌한 마물의 주둥이 천장을 보고서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고-
지잉!
촤아아악!
그대로 입천장에 구멍을 내 버렸다.
강한 폭발과 함께 놈은 뒤로 물러서며 몸부림쳐 댔다.
튕겨 나간 이안은 몸을 가볍게 돌려 착지했고, 정신 차리지 못한 다른 일행들은 바닥에 몇 번 뒹군 다음에야 눈을 떴다.
“아오, 시발.”
“선배, 괜찮습니까?”
“어. 대장. 정신 들어요?”
“베릭은?”
“저기- 거꾸로 고꾸라져 있습니다.”
몸이 뒤집혀서 반쯤 접힌 베릭이 눈을 끔뻑거렸다. 이안의 어둠이 무너지는 걸 눈으로 봤는데, 정신 차리니까 이러고 있네? 베릭은 몸의 탄성을 이용해서 벌떡 일어났고, 곧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안아아아!”
“여기 있다.”
“오. 있네.”
이안이 걱정 말라 이르며 손짓하자, 베릭은 안심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멍청하게 서 있는 마법사들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멍청이들아! 뭐 하냐?”
“아니, 이안 님 모습이…….”
“그, 굉장히 엘레강스해지셨네요.”
“이안 님 맞으십니까?”
이안 히엘로가 아닌 베로시온의 모습을 이리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지 않나. 마법사들은 충격에 빠져 넋 놓고 이안의 얼굴을 구경해 댔다.
스으으윽.
그때, 이안의 공격을 받고 나뒹굴었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놈은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신의 조각들이 있는 이상, 물러설 수 없겠지.
“헉! 저 뒤에!”
무너진 벽 뒤, 끝없이 펼쳐진 심연 속에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거대한 마물들. 이안 베로시온, 그리고 마법사들을 먹어 치우기 위해 몰려든 놈들이었다.
북쪽의 대마물 범람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놈 한 놈의 크기가 마탑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마법사들은 긴장하여 두 손을 불끈 쥐었고, 이안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놈들을 지켜보았다.
“모두들-”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전언하며 일렀다. 그의 목소리는 신전 밖에서 대기 중인 마법사들에게도 똑똑히 전달되었다.
“나를 따라라. 내 저것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