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19
제719화.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다
저것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
그것은 공표이자 다짐이었다.
이안은 두 손을 뻗어 이드갈 검을 쥐었고, 먹구름처럼 몰려드는 마물들을 담담히 응시했다. 보이는 모든 곳이 마물 천지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라주 대신관과 연관 있던 마물과 크기가 비슷했다.
그렇다면, 혹시?
‘저것들은 곧 가이아 위의 무엇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라주 대신관처럼, 아무도 모르게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서 바리엘에 검은 씨앗을 심는 족속들 말이다.
놈들은 시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존재들. 근원이라 이를 수 있는 마물을 없앤다면, 놈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뿌리가 잘린 것들이 대체 무슨 수로 버틴단 말인가? 바리엘의 작은 햇살에도 말라 바스러지겠지.
“이안 님. 준비됐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모자람 없이 따르겠습니다.”
마법사들 또한 비장한 낯으로 이안의 뒤에서 마물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어찌하여 자신들이 신의 힘을 품게 되었고, 왜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났으며, 무슨 까닭으로 이안과 함께 저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는지.
“바리엘을 지키겠습니다.”
현재의 바리엘과 미래의 바리엘을 수호한다.
마법사들은 긴장됨과 동시에 기뻐서 입매를 가볍게 말았다. 영광이었다. 그 어떤 시대의 마법사들보다 영광된 일을 하고 있음이.
마법사들의 결의가 단단해졌음을 느낀 이안이 작게 속삭였다.
“다들 잘 보아라. 이것은 내가 그대들에게 배운 것이고, 그대들이 내게 배운 것이다.”
지이잉! 지잉!
이안 베로시온이 마법부에 들어가서 배웠던 모든 진리는 지금 마법사들의 유산이다. 그리고 더하여, 지금 마법사들이 배우는 것은 이안 베로시온이 전해 주는 미래의 힘.
쳇바퀴처럼 맞물리는 운명 틈에서, 진리를 파헤치는 마법사들의 시각은 더욱 또렷해졌다.
「뇌화(雷火)」.
이곳이 심연의 바다라는 걸 고려한 자연계 마법이었다. 천둥과 번개가 이안의 이드갈 검을 따라 미친 듯이 발하였고, 그 주위로 꺼지지 않는 불길이 치솟았다.
마법사들은 이안이 그려낸 마법진을 재빨리 눈으로 담아 따라 그렸다.
“아-!”
천둥, 번개, 불. 세 가지의 자연을 한데 담는 것이 가능했구나! 마법사들은 저마다의 빛을 만들어 냈고, 그와 동시에 감탄과 환희를 느꼈다.
키이이익!
그러자 이안에 의해 입천장이 뻥 뚫린 마물이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몰려들던 마물들 또한 응답하듯 고음의 괴성을 내질렀다. 파장은 물결을 거칠고 날카롭게 만들어 사위로 뻗어갔다.
“크흣!”
마법사들은 목을 움츠리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안은 휘몰아치는 파장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머리칼이 길게 흐트러졌다.
“이안 베로시온.”
어디선가 들리는 불쾌한 음성.
이안은 고개를 살짝 올렸고, 온몸이 넝마가 된 라주 대신관을 발견했다. 그의 심장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둠을 불러냈던 그것이다.
그는 죽어 있음이 분명했지만, 눈알이 제멋대로 돌아갔고 입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물의 수작질이다.
“두렵지도 않은가? 이미 너의 세상에는 우리가 존재했다. 운명을 거스른다면 우리만이 아니라 너 또한 사라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만 검을 거두고 우리의 조각이 되어라. 그리하면 하나만은 맹세하지. 그날, 너를 그리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마. 신이 준 것처럼 우리도 네게 너의 바리엘을 주겠다.
라주 대신관이 이를 딱딱거리며 중얼거리자, 이안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르센에게는 내 일러 주었는데.”
죽는 것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리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이안은 자세를 낮추더니, 망설임 없이 라주 대신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신의 당부를 들었다.”
모든 것을 바꾸어라, 설령 그것이 존재일지라도.
이안은 윈첸 부족장의 계시가 무엇을 뜻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안 베로시온이 아닌, 이안 히엘로가 됨으로써 헤쳐 나갈 수 있는 게 있다.
설령 지금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완전히 바뀐다 한들…….
‘믿는다.’
나는 나움을 다시 만날 것이고, 나의 바리엘은 싱그럽게 피어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내가 여기 있지 않나.
“이안 님! 피를 조심하십시오!”
이안이 라주에게 가까이 닿는 순간, 헤일이 걱정스레 외쳤다. 그들은 방금 저것으로 인해 어둠에 스며들었다. 심연의 물과 환각을 보이게 하는 라로메디아의 효과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더 거세게 퍼지는 라주 대신관의 검붉은 피.
촤악!
하지만 이안은 이드갈 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으로 그것들을 물려 냈다.
이제 어둠이란 더는 없다. 그의 어둠은 깨졌고, 무너졌으며, 무(無)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그러니 이제 이런 건, 그저 더러운 마물의 피일 뿐.
“다들 두려워 말라!”
이안이 라주 대신관의 몸을 두 쪽으로 베어 버리며 외쳤다. 그의 주위로 피가 몽글몽글 모여들었다. 금방이라도 잠겨 들 것처럼 짙었으나, 이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에 잠긴다 한들 내가 구할 것이다. 하나만 명심하라. 어둠은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아님을.”
촤아악!
이어서 이안은 바로 마물 본체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사들 또한 두 손에 마법을 두르고서 망설임 없이 그를 따랐다.
콰아앙! 쾅!
콰앙!
“나도 간다잇! 십새끼들아아아!”
베릭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바누사가 침묵에 잠겼다. 이것을 대체 무어라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마물 하나하나가 거대한 산과 같거늘, 그것들에게 덤벼드는 저 작은 인간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되레, 맹렬한 기세로 놈들의 숨을 조이고 있었다.
‘장엄하다.’
아아, 그래.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그것이겠구나.
신의 조각들이 마물에 대적하여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성스럽고, 숭고하다. 그 숨 막히는 전투를 바누사는 그저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아.”
바누사를 깨운 것은 뇌 뒤쪽의 서늘한 감각이었다. 토올룬 수도에서 신전 상황을 궁금히 여겨 감각을 연결한 것이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촤아악!
‘토올룬에 정보를 줄 수는 없다.’
마법사들이 모두 신전에 있다는 것, 그들이 따르는 지하신의 마물이 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는 것까지.
토올룬 깊이 스며든 그림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자, 저자가 바리엘을 위하듯 바누사도 토올룬을 위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멀리, 최대한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었다.
* * *
“폐하. 왜 그러십니까?”
트웰러는 진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앞만 바라보던 황제의 고개가 작게 기울자, 트웰러의 시선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황제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싶었나 보다.
“아닐세.”
“혹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바로 일러 주십시오. 갈 길이 멉니다.”
“그저 신전의 일이 걱정되고 궁금하여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일세. 심상치 않은 곳이지 않나.”
다몬, 러더포드와 엮인 의문스러운 장소. 오수가 흘러나오고, 대신관은 놀라운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당연지사, 생각을 거듭할수록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트웰러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되물었다.
“누구를 걱정하시는 것이옵니까?”
“누구긴. 바리엘을 위해 나선 자들 모두지.”
진은 별걸 다 묻는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혹여 에이린에 대한 언급일까 봐 가시를 세운 것도 있다.
하지만 트웰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바리엘을 위해 나선 자들을 걱정하심은 황제의 도리에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하나 지나쳐서는 안 되고, 누군가를 특별히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진심으로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트웰러의 직언에 뭔가 숨은 뜻이 있다 느껴졌거늘.
진의 목청이 살짝 커지자, 가까이 호위하던 장교들이 말 속도를 늦추며 거리를 벌렸다. 트웰러는 잠시 침묵하더니, 겨우 입을 뗐다.
“폐하. 폐하께서는 이번 전쟁의 마지막 관문이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진은 답을 헤아렸다.
버고스? 이미 왕조는 몰락하여 바리엘의 피를 이은 자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준비 중이다. 루스웨나? 변경을 넘었다는 것만으로 왕궁의 문이 뜯겨 나갔고, 왕의 시체가 거리에 걸렸다.
그 외 클리포포드는 우방국이 되었으며, 그와 별개로 바리엘 없이는 균열이 벌어진 수도를 재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인근의 3국? 모두 바리엘의 영향권 아래다.
그러다 문득, 진은 질문이 이상함을 깨달았다.
“…트웰러 경.”
‘어디인가’도 아니고, ‘누구’냐니?
진은 잠시 멈칫거렸다.
“목적지인 토올룬이라 생각하십니까? 깊이 스며든 지하신을 물리치면 끝날 것이라 여기십니까?”
그리하면 분명 가이아에는 평화가 깃들겠지. 하지만 그것이 곧 바리엘 황궁의 평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웰러는 한껏 누그러진 시선으로 황제를 쳐다봤다.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사적이며 부드러운 신의의 눈빛이다. 진은 조금 놀랐다. 트웰러는 언제나 무인의 자세로써 진을 대했으니.
“…송구합니다, 폐하. 늙은이가 걱정이 많습니다.”
“트웰러 경. 무슨 일이 있는가?”
“저는 제국방위부 장관으로서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하여 제 인생의 방점을 온전히 찍을 것이지요. 이안 경도 같습니다. 지하신을 처치하는 것은 그의 소임. 그걸 이루면 그의 방점 또한 또렷해질 것입니다. 한데, 폐하는요?”
폐하께서는 이번 전쟁으로 무엇을 얻을 것 같습니까? 버고스, 클리포포드, 루스웨나. 그들이 모두 어떤 과정을 통해 바리엘 발치로 들어왔습니까?
“부디 생각을 깊이 하십시오.”
늙은것이 경고하건대, 폐하의 마지막 관문은 필시 이안 경이 될 것입니다. 이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명이 그러합니다.
신께서 이안 경을 이쪽 시대로 보낸 것은 마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폐하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황제의 자리란, 그 어느 때에도 홀로 빛나야 하는 법이니까요.”
진은 무어라 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놀라우면서도 당황스럽고, 생각이 넓게 트이는 기분이었다.
진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황제로서 스스로 이룰 역사는 무엇인가?’
지난 10년, 이안 경의 공백은 그가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앞으로는?
진의 생각이 복잡해지며 어지러이 엮이는 순간이었다.
부우우-
부우-
앞서가던 부대에서 깃발을 흔들더니, 물소뿔을 울려 댔다. 마을을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폐하. 도착한 것 같습니다.”
토올룬 수도로 올라가기 위해 꼭 지나가야 하는 관문, 란다린 마을이다. 타오마가 서신에서 당부했던 곳이었다. 토올룬 토착 부족민이 살고 있는데, 음습하여 앞과 뒤가 상당히 다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친절히 덧붙이기도 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멀리서 본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곳곳에서 굴뚝 연기가 피어나고, 말린 고기들을 지붕에 올려 말리는 등 말이다.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고삐를 강하게 쥐며 명령했다.
“진입한다.”
마법부의 도움 없이 지나가야 하는 곳. 진은 결심했다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