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2
제722화. 보이지 않는 적
‘투명인.’
트웰러의 일렁이는 눈동자 속에서 과거가 피어올랐다.
당시, 트웰러는 갓 열여덟을 넘긴 말단 병사였다. 가난으로 가족이 찢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나이를 속여 입대한 지 딱 3년째. 그는 북부의 작은 영지를 순찰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평화라 이를 것이다. 하지만 트웰러에게는 지루하여 견딜 수 없는 시간의 감옥이었다. 대체 자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산다는 건 다 이런 것인가?
가슴 답답해도 그저 외면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던 나날, 트웰러는 당시를 그리 회상했다.
“트웰러. 교대 시간이다.”
“알겠습니다.”
“또 책 같은 걸 읽고 있네. 그런 걸 배우면 우리 같은 놈들은 인생이 피곤해진다니까?”
우리 같은 놈? 그게 뭔데? 네놈이 한심한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트웰러는 생각만으로 그리 대답한 다음 책을 덮었다. 곧 있으면 일과가 마무리된다. 괜한 시비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얼 그리 말하는가. 배움은 언제나 옳다. 세상을 바로 보는 법은 오로지 그것으로만 익힐 수 있다. 트웰러는 잘 하고 있으니, 그대들도 본받아 노력하라.”
영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기사였다. 그는 어린 말단 병사들에게도 존중을 다하였으며, 배움을 나누고 격려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트웰러가 처음 책을 접했던 것도 그의 덕이었다.
“너에게는 아무도 없지. 항시 배우고 읽어라.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두렵다면 더더욱 붙들어라. 좋은 가문의 자식들은 주위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로 가득하다. 하지만 너는? 누구에게 배울 것이냐?”
“…꼭 배워야 합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삶에 만족한다면 그것 자체가 완전한 축복이다. 하나 내가 본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그는 트웰러에게 종종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럴 적마다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져 댔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트웰러가 완독할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경험을 온전히 배우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시대를 넘어선 현자들이란다.”
아아, 그래. 그는 스승이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고 그저 ‘감사한 사람’ 정도로만 여겼으나, 훗날의 트웰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으며, 갈피 없이 흘러내리던 인생을 가지런히 모아준 은인이었다고.
그러니 그처럼 대단한 무인이 되겠노라 결심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
“트웰러, 더 크게 검을 휘둘러라! 힘은 강하나 검 끝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예, 죄송합니다.”
“다시!”
여느 때와 다름없던 날. 트웰러는 기사의 가르침 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지는 평화로웠고, 그의 헛헛한 마음 어딘가에도 볕이 들었다.
갑작스레 기별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타닥타닥!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영지 뒷산에 올랐던 정찰병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침입자가 있는 듯합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사는 검을 챙겨 들고서 병사들을 소집했다. 하나 그들은 현장에 다다를 때까지 그리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
“재수 없게 곰을 만난 것 아닐까?”
“그런 것치고는 목덜미만 예리하게 베였다 했어.”
“참 나. 어쩌다 거길 혼자 올라갔대?”
“모르지. 애인이랑 밀회라도 즐겼나.”
“그놈이 애인이 있어? 말도 안 돼!”
병사들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렸으나, 트웰러는 무거운 침묵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기사의 자세를 본받은 것이다.
이내 그들은 시체를 발견했고, 보고와 틀림없음을 확인했다.
“이런…….”
정면에서 베인지라 목젖이 갈라졌다. 무방비 상태였나? 저항흔과 같은 특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기사가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와중, 딴짓하던 병사들 틈에서 갑작스러운 괴성이 터졌다.
촤아아악!
“아아아악!”
“뭐, 뭐야!”
“헉! 이봐! 무슨 일이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날아와 목을 베었다. 병사들은 시체와 같은 모양새로 벌어진 상처를 붙든 채로 고꾸라졌고, 기사는 재빨리 검을 빼 들었다.
“경계하라! 적이다!”
“커헉, 컥!”
“젠장! 이게 대체-!”
하지만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기사는 온 감각을 모아 집중했지만, 기척은 어지러웠고 부하들은 계속 죽어 갔다.
“두려워하지 마라! 정신 똑바로 차려!”
기합을 다잡았으나, 병사들은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벤다는 게, 과연 범인(凡人)에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의 공격은 곧이어 기사에게도 이어졌다.
촤아악! 촤악!
몇 번 기적적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기사의 살점이 여기저기 찢기며 피가 튀어 올랐다.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언제나 우직하게 서 있던 그가 무릎 꿇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쿠웅!
이윽고 그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때, 트웰러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죽었고, 적은 보이지 않았다. 트웰러는 본능적으로 엎드려서는 상대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제발 그만!”
조용했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숲속. 트웰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계속 몸을 떨어 댔다.
갔나? 아직 있나? 상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지? 보이지 않았기에 트웰러는 끝없이 엎드려 두려워했다.
“트…웰러.”
그리고 이내, 어렴풋이 들려오는 마른 목소리. 트웰러가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죽은 기사의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의 긍지를 버리지 말라 그리 일렀는데, 아둔하구나. 어찌 적에게 엎드린 것인가. 책망이 가득해 보였다.
“아.”
트웰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모두가 죽은 와중, 자신은 살아 있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하였고, 상대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게다. 지금도 놈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창피하다.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여 견딜 수가 없다.
트웰러는 몸을 덜덜 떨며 허공을 살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검사로서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타앗!
그는 재빨리 일어나 도망쳤다.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영주가 모든 병사들을 결집시켜 숲으로 보냈다. 다행히 시신들은 무사히 수습하였고, 의문의 공격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사라진 것이다.
“대체 뭐였을까?”
“그러게. 왜 죽였는지도 모른다는 거지?”
“상대가 안 보였다며. 있는지도 모르는데 공격을 먼저 했다는 게 의아해. 안 그래, 트웰러?”
“어허, 그런 거 묻지 마.”
“하긴. 모두가 죽는 걸 눈앞에서 봤을 건데, 참 속이 아팠겠다.”
다들 죽는 걸 눈앞에서 본, 살아남은 한 명.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트웰러 본인만이 알았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더는 여기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떠나기 전 기사의 무덤에서 맹세했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중얼거렸다.
“사죄합니다. 그리고 뉘우칩니다. 저는 앞으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인의 긍지를 지킬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아 지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아둔하여 알지 못했습니다.”
가슴속 답답했던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트웰러는 그 뒤로 한참이나 엎드려 있다가 마을을 떠났다.
그는 곧장 중앙으로 올라가 재입대했고, 검을 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쌓아 올렸다. 단조로웠던 지난 나날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상은 넓었고, 어지러웠다.
타앗!
피비린내가 가득한 그곳을, 트웰러는 기꺼이 밟고 내달렸다. 장장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무덤 앞의 맹세를 길잡이 삼아.
* * *
“예전, 그러니까 제가 스무 살이 안 되던 때입니다. 누군가에게 목숨을 빚졌는데, 그게 누구인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트웰러의 시선은 란다린 마을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빛은 서늘하지만 음성은 묘하게 들떠 있는 듯 보였다.
“아주 오래 묵은 빚이로군.”
“그렇습니다, 폐하. 너무 오래 묵어 이제는 저와 한 몸이 되었지요. 아무튼,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투명인’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흥미가 가더군요. 그자인 것 같아서.”
트웰러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봤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손끝이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콰직!
황궁친위대원이 그녀의 손등에 검을 박아 넣었다. 감히 황제를 해하려 한 불경을 징벌하기 위해.
“아아아악!”
진은 한쪽 턱을 괸 채로 여자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몸이 투명해지는 것 외 다른 능력은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들리는 말로는, 어느 왕국의 살수 가문 출신이 모종의 연유로 가이아까지 숨어들었다 합니다. 신뢰 가는 소문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목격된 존재이기에 참작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수 가문 출신이라면?”
“암살의 대가들이라 합니다.”
“암살 가문 출신이라. 그런 것치고는 보법이 엉성하다 하였다. 게다가 토올룬의 토착민이라 하지 않았던가?”
바르사베의 공격 한 번에 바로 나가떨어지기도 했고.
이에 장교 중 하나가 여자의 머리채를 붙들고서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혼혈의 흔적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제이럿이 덧붙였다.
“토착 부족민이 사는 란다린 마을에 숨어들어 자리를 텄을 수도 있습니다. 마을 구성원 전체가 투명인은 아닌 듯하니, 그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능력은 전승되었지만, 거기서 그쳤다는 건가?”
흐음. 진이 턱을 매만졌다.
그때, 숨이 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죽어 버린 것이다. 바르사베의 공격이 그녀의 급소를 정확히 베었으니 예정된 결과였다. 물어볼 게 많았건만, 별수 없었다.
“놈들의 능력에는 체력적 부담도, 한계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손에 쥔 물건까지도 전부 동화되어 투명하게 변한다고 하니, 물감을 묻히는 등의 수법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까다로운 작자들이군.”
여자의 단검이 바닥에서 나뒹구는 것을 본 마검사들이 작게 한숨지었다. 이럴 때 마법사들이 있으면 참으로 편할 터인데 말이다. 마법으로 보호막을 세우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지금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황제를 보호해야 했다.
“까다롭지만, 딱 거기까지인 놈들입니다.”
보호막이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놈들의 얄팍한 술수였을 뿐. 트웰러는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앞에서는 폐하의 은혜를 입에 올리고 뒤에서는 바리엘 병사들을 해쳤으니, 그 불손함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하여, 제가 직접 나서서 놈들을 처단하게끔 허락해 주십시오. 어떠한 미련도, 걱정도, 남김없이 정리하겠습니다.”
미련과 걱정. 진은 그 단어에 집중했다. 그것이 트웰러 본인의 것임을 어렴풋이 인지한 게다. 진은 흔쾌히 손짓하며 허락했다.
“경의 뜻대로 하라.”
“감사합니다, 폐하.”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번 전쟁은 트웰러가 나설 수 있는 마지막 전쟁. 무인의 길 끝에서 숙원을 만났으니, 그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보이지 않았던 그놈을 베어야만 마음 편히 죽을 수 있으리라.
저 마을 깊이 들어가면 지난 과거의 끝자락이 아직 남아 있겠지. 매듭지을 시간이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바르사베 역시 검을 챙기며 한 발 나섰고, 트웰러는 그녀를 심히 부러운 눈빛으로 돌아봤다. 보이지 않는 것을 벨 수 있는 용기와 실력이라. 마력을 지닌 자의 깊이는 정말 놀라운 것임을, 다시 한번 눈으로 본 셈이다.
하지만 동경은 동경일 뿐-
“고맙네, 바르사베 대원. 하지만 그대는 황제 폐하의 곁을 지키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 오롯이 해보겠네.”
트웰러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