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3
제723화. 베겠다
촌장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병사들이 눈앞에서 사라진 걸 분명 보았을 테니, 다음은 마검사들의 차례였다. 마법사가 없는 지금, 기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잠잠했다. 마검사들을 진영 바깥으로 유인한 뒤, 그 틈에 황제를 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게다.
“촌장님.”
“기다려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투명인들은 몸을 지워 낸 채 촌장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리엘군 쪽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앞으로!”
“장관님을 따라라!”
타닥타닥!
백발의 노인이 도끼를 들고서 내달렸다. 그 기세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니, 바람의 흐름까지 바꾸는 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대여섯 명의 전사들까지.
장관이란 호칭을 듣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촌장을 돌아봤다.
“초, 촌장님. 장관이라 합니다. 분명히 제국방위부 장관일 것인데요.”
“마검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예상과 다릅니다.”
“뒤에 따라붙은 자들도 비범해 보입니다. 천을 다시 준비할까요?”
“가능할까?”
“그래도 투명인이라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보이지 않는데 무슨 수로 막아 내겠습니까.”
촌장은 망설임 없이 내달리는 트웰러 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알아챘구나.”
“예?”
“투명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보호막 따위는 없다는 걸 확신한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리 망설임 없이 달릴 수 없지.”
확신? 대체 어떻게?
“아!”
바리엘군 진영으로 침입한 투명인이 들키고 말았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저들이 알 도리가 없지 않나.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들켰다는 건,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하니까.
“촌장님.”
촌장은 고민했다. 황제의 곁에는 아마도 투명인을 감지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겠지.
그는 지팡이로 땅을 두어 번 내려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막사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면 개죽음만이 있을 터.
“여기서 저자들을 막아낼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들 준비해! 마을을 지켜라!”
촌장은 흩어지는 사람들 틈에서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여전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자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다.
‘보호막이 허상이라는 게 들켰음은 분명하다. 근데, 왜 저들이 오는 것이지? 정찰병 보낼 것 없이 본대로 밀어붙이면 단숨에 끝날 일. 장관이라는 자가 직접 나설 만한 사안이던가?’
뭔가 있다.
촌장은 희망을 엿보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에는 분명 그 원인이 있는 법. 그리고 그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장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고, 이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촤악!
트웰러가 도끼를 위로 들며 명령했다.
“불을 붙여라!”
“예!”
그에 따라 부하들이 좌우로 흩어지며 마을 입구에 불을 놓았다. 전투를 준비하려던 사람들이 놀라서 멈칫거렸다. 지금 뭣들 하는 짓인가?
“이, 이보십시오!”
“불! 불이 붙는다!”
작은 마을이다. 우물은 얕았고, 집들은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작은 불길에도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타앗!
마을 입구에 도착한 트웰러가 말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부하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불을 피워 댔고, 특히 입구로 이어지는 쪽에 집중하는 듯했다.
‘고립.’
촌장은 저들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했다. 군부대와 이어진 입구를 폐쇄하여, 혹여 투명인을 바깥에 배치해 두었다면 마을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함이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우선 뒤를 보호하는 작전.
트웰러는 촌장을 알아보고서 고갯짓했다.
“그대가 이 마을의 촌장인가?”
“그렇습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저희는 분명히 항복을 선언하였는데, 바리엘의 자비란 이런 것입니까?”
“닥쳐라. 네놈들의 간계는 파악된 지 오래다. 지금이라도 투명인들은 모습을 보이고 무릎 꿇어라. 그렇다면 일말의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 주마.”
감히 황제 폐하를 농락하고 시해하려고 한 죄가 무거웠다. 트웰러는 점점 커지는 불길을 응시하며 날을 세웠다.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곳을 좁혀 들어가는 것, 그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다. 어디 있는지는 단박에 파악 불가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쯤 있겠다’ 정도 선까지는 상황을 만들어 내야 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촌장은 시치미를 떼었다.
힘없는 작은 마을이다. 심지어는 깨끗이 항복까지 했다. 그럼에도 바리엘군은 무자비하게 짓밟고 지나갈 것인가? 그리고 혹 그것이 대외로 알려진다면?
토올룬에게는 분노를 일깨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며, 바리엘이 점령한 다른 나라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리라.
“투명인들의 뿌리를 안다. 다른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들었지. 암살 가문 출신이라지?”
트웰러의 물음에 촌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는지, 트웰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부하들은 주위에 무언가를 뿌려 댔다.
촤악!
“어찌하여 토올룬 토착민들과 섞이게 되었나? 나는 분명히 바리엘에서 투명인을 마주한 적이 있는데.”
바리엘에서? 촌장의 희뿌연 눈동자가 잠깐 반짝였다. 워낙 주위를 집어삼키는 불길이 거센 터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잠들어 있던 그의 기억 어딘가가 급격하게 요동쳤다.
“헉. 저게 뭐람.”
한편, 그제야 주민들은 트웰러의 부하들이 뿌려 대는 게 무엇인지 보았다.
끈적하고 질퍽한 무언가. 여물을 쑨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었으나,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투명인들의 족적을 보려는 게다.’
저들에게 다가선다면 투명인들의 발자국이 흔적을 남길 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대비할 수 있다.
이놈들, 반격이 상당하구나. 주민들은 긴장하여 무기 든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딱 열까지 세겠다. 그때까지 투명인들은 모습을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의 사지를 하나씩 자르겠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
겁박이 아닌, 경고다. 그의 음성은 단호하고 단조로웠다. 긴장감이 극으로 달하자, 촌장이 손을 들며 트웰러의 시선을 가져왔다.
“투명인들이 존재함은 분명합니다.”
“인정하는군.”
“하지만 이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존재, 하지만 동시에 인격 또한 지니고 있지요. 투명인이 모두 몇 명인지 아십니까?”
혹, 꼭꼭 숨어 버린다면? 그래서 훗날 네놈들의 틈을 노려 막사로 흘러 들어가, 황제의 목덜미를 노린다면?
아무리 황제 곁에 ‘보이지 않는 걸 보는 자’가 있다 한들 후환을 남기는 셈인데,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는 위압보단 회유를 해야지.
촌장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두려워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저도 어찌할 방도가 없음이라, 말씀드립니다.”
두려워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자연스러운 발언이었으나, 트웰러는 그 안에 가시가 돋아 있음을 알아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렸고, 뜨거운 열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기백이 만만치 않구나.’
그러니 황제의 곁으로 첩자를 보낼 수 있었겠지. 그러니 고작 수백의 주민들로 바리엘 대군을 막아내고자 머리를 굴릴 수 있었겠지.
트웰러는 도끼로 촌장의 이마를 겨누었다.
“투명인이 몇 명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수백에 달하는 주민 중, 진실을 고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지.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차박!
누군가가 젖은 것을 밟아 뛰는 소리가 들렸다. 투명인이었다. 그가 내달리는 흔적을 따라 족적이 선명하게 찍히고 있었다.
트웰러의 부하들은 검을 다잡으며 그 움직임을 주시했고, 촌장은 애써 그를 말렸다.
“반! 안 된다.”
막사에서 죽임을 당한 네 동생이 아무리 가여워도, 지금은 아니다. 얼른 젖은 바닥을 벗어나 네 몸을 숨겨라.
하지만 이성을 잃은 투명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아압!”
글렀다. 상대에게 접근할 때는 숨소리조차 죽이는 것이 원칙이건만, 분노에 잠식된 그는 거칠게 기합까지 내질렀다.
이에 트웰러의 부하들은 소리를 따라 그의 움직임을 손쉽게 잡아냈다. 그리고 이내-
촤아악!
검을 뻗어 달려드는 사내의 팔을 시원하게 베어 냈다.
피가 쏟아지며 일순 투명인의 모습이 드러났으나 찰나였다. 죽이지 않으면 능력을 풀 수 없다는 뜻.
“둘러라!”
“아악!”
단박에 파악된 위치를 중심으로 부하들이 움직였다. 투명인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사위에서 검이 날아드는데, 별수 있겠는가?
결국, 개중 하나가 투명인의 배를 꿰었다. 주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기함했고, 촌장은 덤덤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계속 오너라. 보이지 않는다고 베이지 않는 건 아니니. 우린 갈 길이 멀다.”
“…장관. 이름이 무엇이오?”
전장에서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게 어떤 의미인가? 죽고 죽이는 운명 속에서 상대를 제 기억에 각인한다는 뜻 아니던가?
하지만 촌장의 물음은 뭔가 의미심장했다.
“트웰러. 맥심 트웰러다.”
“아아. 그렇군. 그랬어…….”
촌장은 킬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임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그 태도가 이질적이다. 부하들은 트웰러의 뒤에서 그와 상관을 연신 힐끔거리기만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인연입니다.”
촌장은 지팡이를 내던지며 두 손을 가볍게 모았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손끝. 트웰러의 눈이 커졌다.
“울고불며 목숨을 구걸하던 자가, 제국의 장관 자리까지 오르셨으니. 이는 그대의 눈부신 발전이오? 아니면, 제국의 몰락인가?”
트웰러는 직감했다. 아니, 확신했다.
‘…그놈.’
그놈이다. 자신의 스승을 베고, 자신의 비겁한 구걸을 들었던.
트웰러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분노, 슬픔, 놀라움… 그리고-
기쁨과 환희.
“하!”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역시나 투명인의 갈래는 그리 많지 않았구나. 트웰러는 눈빛을 반짝이며 반갑게 소리쳤다.
“고맙다!”
살아 있어서. 네놈을 베지 못하고 죽었다면, 내 한이 서려 편히 눈감지 못할 뻔했다.
촌장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주민들이 무언가 각오한 듯 동시에 달려들었다.
“달라붙어라!”
“저놈들을 몰아내!”
수십 명이 달려오자, 바닥이 순식간에 엉망으로 변했다. 투명인이 흔적을 남길 수 없게끔 하려는 방책인지, 아니면 그저 지켜 내겠다는 일념인지 모르겠다.
부하들은 그저 뒤로 물러나며, 사람들을 정신없이 베어 냈다.
촤아악! 촥!
갑옷을 입은 숙련된 전사도, 몰려드는 인파는 버겁다.
“장관님!”
다 죽입니까? 그렇다면 지원을-!
하지만 트웰러는 도끼를 쥔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날을 세웠다.
사삭! 사삭!
귀 끝이 예민해지고,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치달았다. 트웰러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던 바르사베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베는 용기.”
촤아악!
트웰러의 목 쪽으로 무언가 다가왔다. 트웰러는 그것을 쳐내지 않고, 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목젖에 닿아 있는 검. 트웰러의 손바닥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게도 그런 용기가 있다.”
보이지 않아도 잡을 수는 있지.
촌장은 단검을 뒤로 빼내며 다시금 사라졌다. 트웰러는 씨익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와라! 오랫동안 기다렸다! 내 너를 베어 냄으로 과거의 나 또한 베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