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5
제725화. 징조
자신이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단언하건대, 대부분은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를 것이다.
하물며 부모의 부모 세대까지 올라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사내가 고통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는 것도 어쩌면 이와 같은 이치 아닐까?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게다. 시아오시는 그를 바라보며 그리 생각했다.
“…신음을 삼키는 것으로 보아 말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짜악!
시아오시의 눈짓에 부하가 다시금 채찍을 휘둘렀다. 놈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던 탓이다.
그들은 이제 저것이 일종의 도피라는 걸 알았다.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몸을 지워 내는 게 분명했다.
“감히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 한 죄가 크다. 네놈의 누이 시신이라도 보고 가려면, 적당히 말을 털어 내는 게 좋을 터.”
“…어찌하여-”
“뭐?”
“우리가 황제를 죽이려는 것은 죽을죄고, 네놈들이 우릴 죽이려는 것은 정당한가?”
“아주 어리석은 질문이로군. 우리는 토올룬의 수도로 가고자 하였지, 네놈들의 작은 마을에는 관심도 없었다. 애써 불을 피운 것은 그쪽인데.”
보호막이 어쩌고, 뭐? 참으로 하찮은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놀아나 황제 폐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자신이 참으로 한스럽다.
시아오시는 천천히 일어나 그의 앞에 무릎 꿇어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눈빛은 위압적이기 그지없다.
“그리고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 함은 죽어 마땅한 죄가 맞다. 토올룬에도 왕이 있다 알고 있는데, 이해를 못 하겠다니 의아하군.”
아무리 동떨어진 외지에 살고 있어도 말이다.
문득 시아오시는, 이들이 오랫동안 왕궁과 연이 닿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저런 발언을 한단 말인가?
“저자들에게는 촌장이 왕이어서 그렇다.”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트웰러가 덧붙였다. 그는 술병을 까더니, 몇 모금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일곱 명. 촌장의 피를 이은 놈들이겠지. 나이 대를 보아서는 두 세대 정도 흐른 것 같은데. 네놈들은 촌장을 할애비라 부르지 않는 것 같더군?”
“…우리는 모두 가족이다. 누구와 누가 피를 이었는지는 상관없는 일.”
“흐음, 그래. 아무튼, 입 연 김에 네 할애비에 대해 일러 보아라. 내가 목을 벤 바람에 말하지 못할 테니, 그 후손이 대신 해 주면 저승에서도 고마워할 게다.”
“모욕 그만하고 닥치시오!”
“하하하! 모욕이라.”
트웰러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네놈의 할애비에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겠는가? 바리엘에서 나는 그자를 만난 적 있다. 분명히.”
“바, 바리엘에서?”
“그래. 한데, 몸을 숨길 터전으로 토올룬을 선택했지. 이상하단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보다는 바리엘이 여러모로 살기 좋았을 것인데.”
제국 변방에서 신분을 세탁해 사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바리엘에도 오지는 분명히 있었고, 심지어 트웰러가 그자를 마주쳤던 곳에서 토올룬까지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북쪽 지대를 지나 굳이 여기 자리 잡았다는 것은, 저들에게 ‘토올룬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게다.
“…나는 정말 모른다. 촌장님은 아무런 언질도 없으셨어. 피를 잇긴 했지만, 그 전에 마을을 돌보는 촌장님이셨으니까. 그저, 동쪽 어딘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는 느낌 외에는…….”
“동쪽?”
시아오시가 나지막이 되물었다. 여기서 동쪽이라 하면, 바리엘의 북단 혹은 대사막 너머다.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닿는 즉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물기. 시아오시는 트웰러를 돌아보며 어찌하면 좋을지 살폈다.
“선택하거라. 좀 더 실토하면 인간 된 도리 내에서 네 요구는 뭐든 들어주지. 하나 없다면, 넌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트웰러의 서늘한 경고에도 사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도가 없지. 트웰러의 고갯짓에 병사가 검을 들었고, 시아오시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촤아악!
투명해지던 몸이 완연한 형체를 갖췄다. 사내의 목에서 피가 쏟아졌고, 족쇄에 묶인 몸은 편히 쓰러지지 못했다.
트웰러는 못 박듯 엄포했다.
“다른 자도 아니고, 투명인이다. 관리가 어렵고, 혹 소홀하여 놓치기라도 한다면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 후환은 남기지 않는다.”
트웰러는 시선을 돌린 시아오시를 쳐다보며 일렀다.
“폐하께 보고할 것이니 준비하라. 이자들이 토올룬을 선택한 이유는, 수도로 올라가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맨 처음, 거짓 보호막과 함께 왕궁을 운운한 것이 의심스럽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왕궁을 끌어와 엮었다.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있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시 수도 쪽으로 빠져 나간 주민이 있을 터.”
바리엘군이 북진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을 게 분명했다. 투명인 외, 촌장의 명령을 품고 수도로 올라간 자다. 어린 이것보다는 아는 것이 많겠지.
“시체를 치워라.”
“예, 장관님.”
“끗차, 하루하루 몸이 예전 같지 않군.”
트웰러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을 두르며, 시아오시를 쳐다봤다.
“그리고 시아오시.”
“예, 하명하십시오.”
“다음 전투에서는 네가 선두를 맡아라.”
그 말에, 시아오시의 부하들이 눈을 반짝였다. 선두를 맡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과 가장 격렬히 맞부딪치는 자리. 공을 단단히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것은 조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 어떤 것보다 큰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니.
조금 비약하자면, 시아오시로선 차기 장관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정작 시아오시의 대답은 덤덤했지만.
“예, 장관님. 잘 해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 보게.”
“아.”
시아오시가 멈칫거리자, 트웰러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시아오시는 머뭇머뭇 한참 고민하다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클로이가 챙겨준 영약이었다.
“클로이 영애가 트웰러 장관님을 걱정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기꺼이 받아주십시오.”
“하하!”
하필 상황이 이상했다. 마치 선두를 맡겨주어 고맙다는 답례도 아니고, 그렇다 하여 연인이 신경 써 준 것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트웰러는 호탕하게 웃으며 시아오시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일렀다.
“혼인할 것인가?”
“예.”
망설임 없는 대답. 좋군. 트웰러는 수염을 매만지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고, 부하들도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와 귀를 쫑긋거렸다.
“클로이 영애의 집안을 생각하면 둘의 만남은 의미가 깊다. 다비온가는 황궁에서 입김이 세고, 그대는 황제 폐하의 심복이니까. 긍정적으로 이르자면 군자와 신하의 화합이요, 다르게 이르자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잡아 삼킬 기회다.”
“제가 폐하께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알고 있지. 알고 있네만, 그냥 늙은이의 걱정 같은 것이라네. 혹 말일세. 다비온 백작이 그대에게 허튼수작을 부리거나 자네의 뜻과 반대되는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이리 이르거라.”
트웰러는 손끝을 까딱거리며 귀를 가져오라 신호했다. 시아오시가 슬쩍 상체를 기울였고, 부하들도 목을 쭉 빼며 트웰러가 무어라 이르려는지 궁금해했다.
속닥속닥.
“……!”
시아오시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 귀를 떼며 되물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사실이지. 이는 폐하께서도 모르시지 않을까 싶어. 내 그래도 황궁 저 밑바닥에서 구른 것이 반평생이니 보고 들은 게 많아. 이럴 때는 참 좋지. 안 그런가?”
트웰러가 인자한 낯으로 시아오시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예 출신의 자작. 황제의 총애만으로는 다비온가의 환대를 받을 수 없다. 물론 전쟁이 끝나면 폐하께서 새로운 직위를 하사하시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안 통한다면 내게 슬쩍 와서 일러라.”
“…예, 감사합니다.”
“클로이 양의 호의에 답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대충 보아도 아주 고급 약재다. 시아오시, 너에게 주는 것을 내가 앗아 버렸으니 이만한 답례는 해야지.”
이제 되었다는 듯 트웰러가 고갯짓하자, 시아오시는 경례를 올리곤 나갔다. 그 뒤를 쪼르르 따라가는 부하들. 심히 궁금해하며 한마디씩 붙여 댔다.
“장관님이 무어라 하셨습니까?”
“다비온가랑 장관님이랑 연이 깊었나 봅니다.”
“자중들 해. 밖으로 떠들 일이었으면 장관님이 그렇게 은밀히 말씀하셨겠어?”
시아오시가 희미하게 웃으며 그만하라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막사 앞쪽의 깃발이 크게 흔들리는 것 아닌가.
부우우-
부우-
낮고 짧게 울리는 물소뿔. 적군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시아오시와 부하들은 바로 앞으로 내달렸고, 이내 바깥을 살피고 있는 병사들에게 보고받을 수 있었다.
“토올룬의 병사들인가?”
“아, 그게, 모르겠습니다. 아직 파악되지 않습니다.”
“파악되지 않는다니?”
“규모는 상당한데, 토올룬 왕궁 깃발이 걸려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병사들의 옷차림이 제각기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시아오시는 망원경을 들어 지평선 쪽을 살펴봤다.
타닥타닥!
말을 타고 이쪽으로 내달리는 자들의 수가 상당했다. 어림잡아 수백. 하지만 병사의 말대로 왕궁을 상징하는 깃발은 보이지 않았고, 옷차림 역시 정규군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것은…….
“도적 떼 아닙니까?”
“설마.”
누군가 황당하단 듯 중얼거렸으나,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시아오시는 문득, 이안 경이 토올룬에 다녀와 전해 주었더 정보를 떠올렸다.
“토올룬에는 노예 시장이 크게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수도 인근에는 도적 떼가 기승인데, 필리아의 납치와 관련된 자들도 개중 하나였지요. 왕궁에서 특별히 관리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준비하라.”
“규모가 상당하다는 건 확실합니다. 모르겠습니다. 토올룬 왕궁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요. 정규군 편성이 늦어지고 바리엘군의 북진이 예상보다 빠르면, 그들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면이야말로 아마 범법자들이 제일 바라는 것일 터이니. 나라에서 자유를 주겠다 하면 한데 뭉칠 여지는 충분하지요.”
“전투를 준비하라!”
시아오시의 외침에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북을 치고, 물소뿔을 불어 댔다. 천막 안에서 보고서를 읽던 진도 그 신호를 듣고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적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이번에는 황궁친위대원들도 참전하라. 제국방위부의 기세에 밀리면 안 될 것 아닌가.”
시기상 정규군이 밀고 내려오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렇다면 다른 세력이라고 보면 되겠지. 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종자들이 무구를 준비했다.
“수도에 가까워지긴 했나 보군.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끝도 없이 밀려오겠지. 기회를 보아 나도 직접 검을 휘두르겠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마법사나 다른 자들의 힘으로만 이곳에 온 게 아니라, 황제의 의지가 단단히 서 있다는 걸 바리엘 병사들에게 보여줄 시점 말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는 기회다. 마법사들이 없는 지금, 그의 위엄을 모두에게 각인시킬.
스릉!
진은 검을 빼 들었고, 바르사베는 명을 받들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 * *
한편,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에이린은 무언가 기척을 느껴 눈을 떴다.
계속 바닥에 엎드려 있던 세드릭이 그녀를 힐끔 올려다봤다. 마법사는 이안의 음성을 듣고서 감격했는지, 연신 기둥을 잡고 뭐라 뭐라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듣지 못할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닙니다.”
가슴 아래를 파르르 찌르는 불길한 기운. 다른 것도 아니고, 기도하는 와중에 느껴진 고통이라 의아하고 꺼림칙했다.
‘기분 탓이겠지.’
에이린은 고개를 털어 내고는, 다시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