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6
제726화. 물 밖의 평화
이안은 너절해진 라주 대신관의 시체를 서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두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응시하는 놈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 같았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존재했던 그림자의 부하.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라주 대신관과 연결되어 있던 마물 또한 너덜너덜해진 채로 주위에서 떠돌고 있었으니.
이안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하아, 하아…….”
“젠자아앙! 끝도 없네!”
“거의 다 했어, 베릭. 배고프면 거기 있는 것 좀 주워 먹지 그래?”
“너나 처먹어!”
“다들 말 그만해! 힘 빠진다!”
촤아악! 촤악!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니, 며칠이나 지났을까.
심연의 바다 깊은 곳에서 몰려왔던 수백, 수천의 마물들이 하나둘씩 찢겨 나뒹굴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마물 사체 조각들로 가득했다.
“아…….”
“정신 차려!”
“예, 예엣! 죄송합니다!”
그들을 위험하게 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극심한 피로. 이안을 제외한 모두가 밀려오는 피로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마법사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고, 위력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은 베릭이었다.
“야! 정신 차려어! 잠들면 다 죽는다!”
선두에서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붉은 마력 대검. 그 덕에 그나마 정신 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스윽.
이제 남은 것은 다섯 마리 정도. 그 뒤로 밀려오는 것들은 더 없었다. 끝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끝은 있구나.
이안은 앞으로 나서며 모두에게 지시했다.
“되었다. 모두 뒤로 물러서.”
“예? 하지만 아직-”
“괜찮다. 정신 잃은 자가 여럿이니 몸을 가눌 수 있는 자들은 돕도록 하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그 후 함께 나간다.”
함께 나간다는 말이 이토록 안도가 되는 말이었구나…. 지친 마법사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었고, 동시에 몇몇은 고개를 뒤로 꺾으며 기절해 버렸다.
헤일이 쓰러진 마법사들을 잡아채어 옆구리에 끼고는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님. 전투 불능인 애들 먼저 위로 올려보내 놓겠습니다. 금방 다시 내려올 것이니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래. 정리하자.”
지이잉, 지잉!
“이안아아아! 난 아직 팔팔하다잉!”
“글쎄. 그런 것치고는 눈 밑이 어두운데.”
“엥? 아니거든! 간다아아아!”
고작 다섯 마리, 지금껏 베어 낸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릭의 신형이 전방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마법사들은 동료를 옮기면서도 이안과 베릭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았나.
‘저것들은 일반적인 마물이 아니다.’
크기로 보나, 나타난 시점으로 보나, 위험도로 보나, 이것들은 라주 대신관과 연결되어 있던 마물과 비슷한 것들이다. 널브러진 수천의 마물들도 마찬가지.
그 말인즉, 가이아 대지 위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검은 씨앗의 근원을 뿌리째 잘라 냈다는 뜻이다. 이제 저들은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고, 나아가 후대의 바리엘에도 존재할 수 없으리라.
꽈악.
이안 역시 그리 생각한바, 마물을 죽이는 것이 어찌 힘들겠는가? 기껍다. 오히려 기꺼워 그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베릭은 그런 이안을 보고서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나지만, 이안, 쟤는…….
‘미친.’
목적이 있는 나아감은 멈추는 법이 없다더니,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이안의 공격엔 아직도 힘이 충만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베릭은 지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서걱!
이전과 같았다.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놈들은 이안과 베릭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잘려 나갔다.
한데-
“……?”
마법을 시전하던 이안이 멈칫거리며 어느 한 곳을 가만 응시했다.
심연의 바다 깊은 곳. 신전과 이어진 입구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마물들이 몰려들던 바로 그곳이었다.
베릭은 마물의 피를 대충 닦아 내며 이안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저 멀리, 무언가가 서 있었다.
마탑처럼 거대한 무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 인간의 사지 형태를 띤 모습이었다.
남아 있던 마법사들도 그것을 알아채고는 중얼거렸다.
“저, 저게 뭐지?”
“사람 아닌가?”
“그것치고는 너무 시커먼데. 이안 님. 뭔지 아십니까?”
이안은 마물의 아가미에 박아 넣었던 이드갈을 망설임 없이 빼내며 대답했다.
“…그림자.”
“예?”
이것들의 주인이며, 심연의 바다에서 웅크리고 있는 신의 그림자. 그들이 궁극적으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전에 보았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외관이로군. 이안은 담담하게 그쪽을 주시하였고, 마법사들은 희게 질린 채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 이안 님! 가시면 안 됩니다.”
한 마법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에 베릭과 다른 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그를 돌아보았으나 이내 수긍했다. 하긴, 모두 지치긴 지쳤지. 이안도 겉으로는 티 안 나지만 어떤 내상을 입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더 깊은 곳으로 잠겼다가는 또다시 시간의 간극을 겪을 수도…….
“저놈, 웃고 있습니다.”
“……!”
누군가의 경고에 베릭은 놀라서 눈을 찌푸렸다.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놈은 그 자리에 서서 이안을 정면으로 보고 있다는 것. 마치 자신에게 덤벼들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보인다. 아주 역겹군.”
이안은 이드갈 검에 묻은 마물의 피를 대충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탄 시체처럼 모든 것이 검은 존재. 다만, 귀까지 찢어진 미소만큼은 똑똑히 보였다.
자연스레 한 존재가 떠올랐다.
‘지하신.’
하나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 보았던 지하신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지 않나.
이에 이안은 확신했다.
‘함정이다.’
저것의 정체가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안이 가까이 오길 원한다는 것.
“안 돼.”
위험을 직감한 베릭이 완강한 투로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안이 가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놈으로부터 이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가면 안 돼.”
평소와 달리 심각한 얼굴.
물론 이안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지하신은 라주 대신관과 다르다. 눈에 보이는 함정에 굳이 들어설 필요는 없지. 지하신은 사라지지 않는 존재니까.”
“사라지지 않아?”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
신의 그림자다. 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림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할 일은, 저것이 짙어지고 길어지지 않게끔 강한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들이 그 과정 중 하나이고.”
이안은 이드갈 검으로 갈가리 찢긴 마물 사체를 가리켰다. 가이아 밖, 지하신을 대신하여 움직이는 것들이 죽어 없어지는 것은 놈의 사지가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이안은 자신을 보며 이죽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재수 없게 뭘 쪼개! 시발롬아아!”
“그래, 잘한다, 베릭! 더 쪼아!”
“꺼져라아! 패 버리기 전에!”
“마! 우리 베릭이 성질 더러운 거 알지? 꺼져!”
의아하고, 꺼림칙하다는 걸 인지하려는 순간, 베릭과 마법사들이 입 모아 그림자에게 욕설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림자는 미동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함정 맞네. 쯧쯧. 창의력 없는 새끼.”
“이안 님. 기절한 마법사들은 위로 올라갔습니다. 별말 없는 거 보니까 시간선도 문제없는 것 같은데요. 바로 올라가시죠.”
“신전 쪽으로 넘어온 마물 사체 조각도 정리하고, 일단은 구멍을 메우는 게 좋겠습니다. 마산타르 신전 자체를 봉쇄한다고 해도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이리 있으면 안 되니까요.”
이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에, 마법사들은 집채만 한 마물 사체를 최대한 심연의 바다 쪽으로 밀어 넣으며 빠르게 정리했고, 베릭은 주위를 둘러봤다.
“근데 걔는? 너희들 데리고 왔다던.”
“누구?”
“바누사.”
“아! 그러게. 어디 갔지?”
전투에 전념하느라 바누사가 사라진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모두가 두리번거리는 사이, 아코렐라는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마물 사체 표본을 뜯어내는 데 열중했다. 주머니가 금방 두둑해졌다.
“중간에 토올룬 쪽이랑 연결될 것 같으면 알아서 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했겠지. 튀었다고 해도 솔직히 상관없고. 야, 이거 주머니에 넣어.”
“제 주머니에요?”
“나 꽉 찼잖아. 안 보여?”
“아니, 대장. 그런 건 대체 왜 챙기십니까?”
“왜긴. 너 심연의 바다에 사는 마물 본 적 있어?”
“아니요. 지금까지는 본 적 없었죠.”
“그러니까. 연구할 가치로는 상급 중의 상급, 최상급이다, 이 말이야. 다들 주머니 열어! 이것들 꽉꽉 채워 넣어!”
그러고서 뽀옹! 항상 갖고 다니는 유리병을 열어 심연의 바닷물까지 야무지게 담아냈다. 마물의 피, 신전 지하수까지 죄다 섞인 것이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 어느 시대에도 ‘심연’의 흔적을 연구한 마법사는 없다!
“으흐, 흐흐으, 흐…….”
“미친. 대장 또 저렇게 웃는다.”
“눈 마주치지 마라. 다음 실험 대상은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저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주머니 비었잖아! 들고 가라고, 새꺄!”
마법사들이 뒷정리를 했으니, 마무리는 이안의 몫이었다. 이안은 신전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서 이드갈을 생성했다. 호박색의 투명한 이드갈이 솟아올라 구멍을 메웠다.
사아악!
차마 치우지 못한 마물의 사체도, 부서진 신전의 파편도 모두 이드갈에 갇혀 굳어 버렸다.
이안은 두 번 다시 이것이 무너지는 일이 없길 바라며, 계속해서 그 위를 덮고, 덮어 냈다. 저 멀리, 자신의 보며 웃는 검은 그림자가 이드갈에 가려져 일그러질 때까지.
‘단단히, 더 단단히.’
구멍만이 아니라, 신전 자체를 완전히 집어삼킬 만큼의 이드갈이 필요했다.
마법사들은 혹 방해될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지켜봤고, 이안은 마산타르 신전 전체를 이드갈로 굳건히 묶어 냈다.
“이안 님. 그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이드갈 벽으로 여러 겹 덮었으니 마물 놈들, 가까이 오지도 못하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여기 고인 물은 모두 사라지려나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코렐라 대장, 그만 챙기세요. 여차하면 다시 들러서 얻으면 되니까요.”
“쯧쯧. 멍청한 놈. 심연이랑 통하던 물이랑 고인 물이랑 성분이 같겠어? 이런 놈들을 데리고 내가 연구를 한다. 너! 벌로 귀국하면 내 연구실 옆으로 책상 옮겨.”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아코렐라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한 소리 해 대더니, 이안을 돌아봤다.
“이제 가면 되겠습니까, 이안 님?”
“그래. 나가지.”
“아, 너무 오래 있었나. 피부가 불어 터진 것 같네.”
그들은 아코렐라를 선두로 신전 위쪽으로 헤엄쳤다. 온 사위가 고요했다. 심연과 이어진 구멍만 막았을 뿐인데, 평화로움마저 느껴졌다.
촤아악!
“파하!”
“뭐지? 왜 숨이 막히지?”
“아오, 코로 물 먹었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마법사들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물이 평범해졌다는 의미였고, 그건 곧 심연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걸 뜻했다.
그들은 컥컥거리며 신전 위쪽으로 기어올랐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던 다른 마법사들과 세드릭, 에이린이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하아, 모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우리, 우리 아래에서 얼마나 있었어요?”
“이틀 꼬박 채웠습니다. 해는 세 번 떴고요.”
“와,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졸리네요.”
마법사들은 흠뻑 젖은 몸으로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세드릭도 베릭에게 손을 건네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얼씨구. 인사는.”
“예의상, 뭐.”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안. 이안 베로시온의 모습은 사라지고, 녹안의 히엘로만이 남았다. 마법사들은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다행이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불쑥, 이안을 향해 베릭이 손을 내밀었다.
“역시 나는 이 모습이 좋네.”
“그래?”
이안 역시 웃으며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로 숨을 골랐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아, 한바탕 전투 후 찾아오는 평화라.
“아아아악! 귀, 귀신!”
“엥? 쌉소리.”
하지만 그때, 그 평화를 깨는 누군가의 비명. 한 마법사가 사색이 된 채로 물 쪽을 가리켰다.
은밀하게 얼굴을 드러낸 바누사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 다 끝났냐는 듯.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