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7
제727화. 헬나
“황제가-”
바누사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녀의 첫마디에 이안의 미간은 찌푸려졌으며, 물먹은 솜처럼 누워 있던 마법사들도 고개를 까딱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황제가 란다린 마을에 당도했다.”
신전에만 고여 있던 그녀가 그것을 어찌 알았을까? 답은 분명했다. 그녀와 연결된 토올룬 왕궁으로부터 흘러들어 온 정보일 것이다.
왕궁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다시 두 가지를 짐작하게 했다. 란다린 마을에서 수도 쪽으로 지원 요청을 보냈거나, 아니면 그 외의 정보통이 있거나.
무엇이 되었든, 황제의 현 위치를 토올룬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은 흠뻑 젖은 머리칼을 대충 털며 물었다.
“그래서?”
황제 폐하를 불손하게 부르는 것은 차치하고,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그래서, 토올룬 쪽의 움직임이 어떠하다는 거지?’란 의미.
바누사는 미간을 가볍게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수도에서는 당연히 방어를 위해 지원군을 보낼 것이다. 그 지휘관이 나와 함께 치안을 담당했던 불의 정령술사더군. 이름은 아르도.”
아르도. 불의 정령술사 가문 수장이자, 그녀의 동료다.
베릭이 기억을 헤집더니, 이내 알겠다며 턱을 긁적거렸다.
“아르도? 그때 본 기억 있어. 토올룬 왕궁 앞에서, 맞지? 별거 아니던데?”
“이번에는 가문의 전사들 모두가 함께할 것이다. 얕보았다가는 흔적 없이 사라질 거다. 기억해라. 정령들은 살아 있는 존재다.”
마법사들이나 마검사들이 일으키는 자연계 현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령들은 인격체였고, 극한까지 치닫지 않는 이상 생명력이 무한했다. 회복력 또한 믿을 수 없이 굉장하고 말이다.
물과 불, 바람 등 자연에서 제 결과 같은 것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 어디든 정령의 쉼터였다. 그러므로 쉼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베릭, 저놈.’
불길을 주로 사용하는 마검사다. 정령은 그것 또한 자연 일부로 인식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는 데 이용하겠지.
바누사는 경고해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데 알다시피, 토올룬 정령술사 가문의 분위기가 어수선해. 왕궁 내부에도 문제가 있음이 분명해 보이고.”
“정확히, 어떤?”
“내 짐작하기로는, 왕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누사는 보란 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마산타르 신전. 왕궁 신하 대부분이 이곳 출신인 것을 감안한다면, 신전의 몰락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주었는지는 쉬이 짐작 가능했다.
“잠깐.”
그때, 이안은 손을 가볍게 들어 바누사의 말을 저지했다.
“왕궁에서 신전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그대의 눈 때문인가? 전언하는 뉘앙스로 보아 왕궁에서는 이미 신전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날카롭기는. 바누사는 질린다는 듯 잠깐 시선을 돌리더니, 순순히 수긍했다.
“그렇다. 왕의 건강 문제는 그대와의 전투 때부터 생긴 듯하고, 마산타르 신전도 이를 대충 눈치챈 듯 보이더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내 눈만이 그들의 창이라 여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여서.”
이안은 그림자를 떠올렸다. 저 지하 바닥에서 온몸이 그을린 채 웃고 있던 그림자. 아마 놈이 직접적으로 왕궁에 계시를 넣어줬으리라.
“왕께서는 내게 복귀를 명하셨다. 란다린 마을이 아닌 다른 쪽을 통해 수도로 올라갈 것이다. 원한다면 그대들도 함께하라.”
어차피 목적은 수도를 함락시키는 것 아닌가? 바누사와 함께한다면 일정 지점까지는 수월하게 당도할 수 있을 터였다.
“이안 님. 저자, 믿어도 되겠습니까?”
“예, 너무 쉽게 도와주는 것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토올룬 왕의 간계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마법사들이 꾸물꾸물 이안 곁으로 다가오더니 몸을 착 붙이고서 속삭였다. 그러자 물속에 잠긴 바누사의 입에서 물방울이 피어올랐다. 자기들끼리 속내를 주고받았음을 눈치챈 것이다.
이에 이안은 단언했다.
“괜찮다. 날 세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누사가 토올룬 왕과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려 했다면 신전 지하에 내려갔을 때 자리를 피하지 않았겠지. 우리는 그녀가 왕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알 수 없음에도 바누사는 스스로 경계하여 시각을 차단했고, 왕에게 선택적인 정보만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바누사가 제 나라를 생각하는 게 진심이라면, 더더욱 믿어도 된다. 바누사의 입장에서는 토올룬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왕궁만 무너지는 게 제일이니까. 모두에게 합리적이다.”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토올룬 것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마법사들은 한편으로는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아코렐라. 그녀는 재킷 안쪽을 확 펼치더니, 안주머니 쪽을 보여주며 외쳤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게 여기 있지!”
두둥! 대체 어디에 공간이 남아서 저리 많은 물약을 안주머니에 달고 다니는 걸까?
이내 마법사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름하여- 실. 담. 물. 약.”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법 아닌가!
아코렐라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은 약병을 흔들며 바누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 이게 뭔데-”
“이안 님.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만이 아니지. 신뢰도 함께할 것이다.”
“예예, 바로 그거지요. 바누사, 이거 입에 털어 넣어 봐. 네가 거짓을 이르는지 진실을 이르는지 우리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거란다.”
어서, 괜찮으니까.
바누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코렐라를 쳐다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바리엘, 정확히는 마법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아가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 왕궁을 무너트리고 싶었다.
타앗!
바누사가 물약을 채어 한입에 털어 넣자, 아코렐라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예, 정령술사한테는 먹여 본 적 없는데!
“윽. 맛이 왜 이래?”
“자자, 질문 들어갑니다. 바누사, 우릴 수도로 안내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토올룬 왕궁을 무너트리고 싶은 마음도 진실이고?”
바누사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함정 따위는 없고, 나는 진정 토올룬을 구하고 싶다.”
그와 동시에 주륵 흘러내리는 피. 이에 바누사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고, 지켜보던 마법사들도 당황스레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이거 왜 이래요? 실담물약, 예전 거예요?”
“예쓰! 돈 아깝잖아. 전쟁터에서는 대충 있는 걸로 섞어 만드는 수밖에 없거든.”
“아니…….”
미안합니다, 이거 참. 우리 대장이 미치긴 했어도 착한 줄 알았는데…. 마법사들은 연신 입가만 문질러 대는 바누사에게 사과하며, 분위기를 풀려 애썼다.
“자, 그럼 된 거지? 바누사 따라가면 되겠네.”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며, 베릭이 다시금 벌러덩 누우며 일렀다. 가기 전에 좀 쉬면 제일 좋겠다. 가능하면 고기도 한 덩이 뜯고.
“아, 저기. 잠시만요.”
그때, 뒤에서 가만히 침묵하던 에이린이 손을 들었다. 식은땀이 멎지 않는지 잔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런 말, 어떻게 여기실지는 모르겠는데요. 뭔가 좀 불길합니다.”
“불길하다니, 무슨?”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아까부터 심장이 계속 뛰고 뒷골이 서늘한 것이 불쾌하여 참을 수 없습니다. 바누사를 따라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황제 폐하 쪽과 합류하는 건 어떨까요?”
이안은 잠시 팔짱을 낀 채로 고민했다. 바누사를 따라 들어가면 토올룬 수도까지 바로 진입 가능했고, 보다 빠르게 왕궁으로 침투할 수 있다. 그리되면 북진하는 바리엘 본대를 막아선 토올룬 병사들 또한 쉬이 처리할 수 있지 않겠나?
마법사들도 각기 의견을 내놓았다.
“이안 님. 정령술사라고 한들 마검사 선에서 정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들 인형술사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니 조심도 할 것이고요. 이만한 기회를 놓치기 아쉽습니다.”
“예. 황제 폐하 쪽으로 합류하게 되면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야 하는데,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바누사 쪽도 그걸 원하는 것 같진 않네요.”
“원래 전쟁이라는 게 왕만 사로잡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바로 모가지 꺾으러 가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편히 올라오실 수 있게끔요.”
바누사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이안 일행이 자신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에이린의 직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성기사는 징조를 읽는다. 물론 늘 정답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나, 가벼이 여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다. 에이린은 진에게 어떤 의미로든지 중요한 사람. 또한 앞서 말했듯 신의 뜻을 함께 받는 성기사이기에, 그녀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에이린과 베릭.”
“네?”
“그리고 마법사들 절반은 황제 폐하께 합류하여 상황을 보고하고 본대와 함께하라. 나와 다른 마법사들은 바누사를 따라가겠다.”
“아니이! 저기요?”
“베릭, 너는 황궁친위대 소속임을 항상 명심하라.”
수도로 조속히 진입하는 것만큼, 마산타르 신전 상황을 본대와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수였다.
에이린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베릭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연신 시끄럽게 굴었다. 제이럿과 트웰러 영감탱 사이에서 밥 한 번 처먹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면서 말이다.
“이안 님.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해가 뜨면. 그때까지 신전 아래 이상 신호가 없는지 면밀히 확인할 것이다. 바누사.”
이안은 아래쪽을 가리키며 바누사에게 청했다.
“혹 신전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문서나 서류 따위가 있다면 뭐든 건져 와 주게. 젖어서 훼손되었어도 괜찮네. 혹시 모를 일이니, 눈으로 확인해 두는 게 좋겠어.”
“알았다.”
바누사는 스르륵, 물속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다시금 뒤로 널브러졌다. 해가 뜰 때까지 고작 몇 시간.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휴식임을 직감한 것이었다.
* * *
“보입니까?”
“어. 보이네.”
“참 나, 새끼들. 대체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거람.”
바리엘 본대와 맞서는 자들. 토올룬 정규군은 아니나, 그들은 모두 수도 쪽을 등진 채 싸우기로 했다. 이는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보다는 후에 주어질 이득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은 수도 외곽에서 활동하던 도적 떼, 떠돌이 용병, 인신매매업자 등등이었다.
“근데 나라 사정이 아주 개 같긴 한가 봐? 우리까지 다 동원하고.”
“난들. 언제는 나라가 잘 돌아갔나? 그랬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았지.”
“그것도 그래. 크흐흐. 그럼 누가 먼저 나가 볼래? 너. 네가 가 보는 건 어때?”
“꺼져. 제일 어린놈이 가지 그래?”
천막 안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무리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서로를 뜯어 대고 있었다.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다. 지휘관이 없으니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를 떠들어 대며 누가 먼저 나설지조차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폐급 인간들로 세운 방어선. 몸뚱어리로 막든 어찌하든, 정규군이 올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되는 게 이들 역할이었다.
콰앙!
“다들 진짜 뭐 하냐? 내가 갈게.”
그때, 짜증스럽게 소리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한 여자. 그녀는 토올룬 인신매매 시장에서 이름 날리던 헬나였다.
“쟨 뭔데?”
“저기, 노예 시장에서 굴러먹던 여자네. 마법부 장관 있지? 걔 어밀 시장에서 발견해 놓고도 놓쳐서 ‘개 발’이라고 불리던데.”
“바리엘 출신이라 했나?”
“아무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어릴 때 강도당해서 노예상에 팔렸던 적이 있다곤 들었는데, 얼마나 독한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지. 왜, 그런 말 있잖냐. 이 구역의 미친개는 나야.”
킬킬거리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헬나는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렸다.
등신들. 이럴 때일수록 먼저 나서는 게 이득이라는 걸 어찌 모를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