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8
제728화. 바리엘의 백성
나라가 개판이다.
노예 시장에서 상인으로 굴러먹던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실상이 그러했다. 바리엘 마법부 장관 어미를 찾는다고 시장 뒤엎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러나 뭐 어쩌겠나? 보아하니 하완이나 다른 나라들도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게 분명했다. 헬나는 단검을 허리춤에 챙기며 뒤를 힐끔거렸다.
“뭘 꼬나봐.”
머리가 안 돌아가면 몸이라도 움직일 생각을 해야지. 헬나는 짜증스럽게 침을 뱉어 댔고, 탁자에 모여 있던 자들은 어이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이 땍땍거리는 게 우습기만 했다.
“버르장머리하고는.”
“내버려둬. 괜히 힘 빼지 말고.”
“헬나라고 했지? 먼저 나선다고 했으니 그 말은 꼭 지키라고. 응?”
헬나는 웃옷을 챙겨 든 다음 천막을 걷었다.
밖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각자의 부하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헬나가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본 사내들이 ‘그러면 그렇지!’ 싶은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누구보고 지키라, 마라. 지랄.”
“뭐?”
촤악!
그녀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고, 그 뒤를 부하들이 걱정스러운 낯으로 따라붙었다.
“두목. 쟤들 반응 왜 저럽니까?”
“우리가 제일 먼저 나설 거다. 준비시켜.”
“…예? 안 됩니다!”
기겁한 부하가 헬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펄쩍 뛰었다. 지금 미쳤는가? 상대는 대제국 바리엘의 본대다. 황제가 이끌고, 그 옆에는 천지를 뒤엎는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다.
아니지. 마법사까지 갈 것도 없다. 한 번에 적 수백을 베어 버린다는 마검사들이 황제의 명을 받아 나서리라. 한데 볼품없는 노예들로 꾸려진 자신들이 어찌 맞서겠나?
“안 되긴 뭐가 안 돼? 놀러 왔어?”
“소, 솔직히 반쯤 시간 때우러 온 건 맞잖습니까.”
토올룬 왕궁의 명이자 제안이었다. 지금 남쪽에서 바리엘군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일정 시간 수비를 맡아준다면 그 공로를 섭섭지 않게 인정하겠노라 말이다.
‘대부분 음지에서 살아왔으니 새 삶에 대한 갈망이 깊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왕궁은 왕궁대로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고, 우리는 우리대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헬나는 혀를 끌끌 차며 단검 날을 확인했고, 그 모습에 부하들은 진심인가 싶었다. 적들은 기다란 장검이나 창을 들고서 덤벼들 것인데, 이따위 단검으로 대체 무얼 한단 말인가?
부하들의 의아한 시선에도 헬나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너네들 말대로 시간 때운다고 치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인데 그런 것도 잘 때워야 살아남을 거 아니야? 잔말 말고, 바리엘 출신 놈들 줄줄이 엮어서 데리고 와.”
“뭐, 뭐를 하시려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 알지? 왕궁은 우리에게 수비를 맡겼다. 그 말은, 뒤에 남아있을수록 수비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는 뜻.”
그리 설명했음에도 부하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낯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두목이 까라면 까야지. 그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헬나가 이른 대로 바리엘 출신 노예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손목과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터라,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어이, 다들 정신 차리고.”
헬나는 능숙하게 바리엘어를 구사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가 바리엘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고, 작게나마 희망을 품었다.
“바, 바리엘 사람입니까? 저, 살려 주십시오. 제 부모 빚 때문에 이리된 것이지, 저는 노예가 아닙니다.”
“노예 대부분이 그 돈이라는 것 때문에 그리된 거거든. 됐고. 음.”
그녀는 잘 벼린 단검을 까딱거리더니, 이내 사내의 볼을 가볍게 베어 냈다.
사악!
“아아악! 아악!”
“움직이면 아프다. 크게 다쳐요.”
“이,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지- 제발!”
“어허. 너희 바리엘로 돌아가게끔 해 주려는 거니까, 닥치고 가만히 있어.”
바리엘로 돌아가게 해 준다는 말이 왜 이리 무섭게 들리는 것일까? 다정한 내용과 달리 말투는 차가워 그리 느껴지는 것일까?
노예들이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 헬나는 무자비하게 그들의 살을 베어 냈다.
촤아악!
피범벅이다. 그녀는 단검을 웃옷에 대충 문지르고는, 노예들을 슥 살펴보며 웃었다.
“그래. 그렇게 울상 짓고 있으렴. 그래야 황제께서 안타까워하시지. 안 그래?”
* * *
“시아.”
“예, 폐하.”
“적들의 움직임은?”
“아직 특별한 반응은 없습니다. 확인해 보니, 왕궁에서 보낸 지원군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자경단에 가까워 보이는데…….”
“그런 것치고는 수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생긴 게 험악해.”
진이 장난스레 일렀다. 그도 그럴 것이, 간간이 보이는 놈들의 모습을 보면 저게 자경단인지 도적 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시아오시 또한 동의한다는 뜻으로 가벼이 웃음을 짓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옵니다!”
병사의 외침. 혹여 선제공격인가 싶어 날카롭게 노려본 것이 무색하게, 상대는 고작 수십에 불과했다.
저들이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진이 미간을 찌푸렸고, 시아오시와 다른 장교들 또한 상황이 희한하다는 걸 바로 인지했다. 말 탄 자들 외, 대부분이 줄에 묶인 채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하!”
“…주십시오! 제발! 제발!”
그리고 어렴풋이 들리는 희미한 외침. 거리가 먼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부르짖는 자들의 목이 성치 않아 보였다. 쇳소리가 가득 섞인 울부짖음에 막사에 주둔하던 병사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망원경으로 전면을 살펴보던 시아오시의 눈이 조금 커졌다.
“……!”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폐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피로 물든 누더기를 걸친 채, 그들은 그리 절규하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아?”
이걸 황제께 보여드려야 하나? 시아오시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진에게 망원경을 넘겨주었다. 진 역시 시아오시와 같은 것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두웅! 두웅-!
토올룬에서 쓰는 북과 같은 것이었다. 헬나는 힘차게 서너 번 북을 울려, 바리엘 본대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게끔 했다.
“아! 들리시는가! 대제국 바리엘에서 온 손님들이여!”
헬나 역시 피투성이이다. 하나 이는 그녀의 것이 아니라, 바리엘 출신 노예들이 낸 것이었으니. 검붉은 얼룩 사이의 환한 미소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제이럿 대장은 그 모습을 보고서 뭔가 희미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누군가와 닮았는데 말이다.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제이럿 대장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닌지, 황궁친위대원들 모두 시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나는 토올룬 노예 시장의 미친개, 헬나다! 수도에서 활동했지만 나라 사정이 좋지 못하여 시장이 폐쇄된 이후로 이쪽 외곽지로 와 기회를 보고 있었지! 그 세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내가 이르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녀의 외침에 한 장교가 속닥거리며 물었다.
“나라 사정이 좋지 못한 게 노예 시장 폐쇄랑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불경기일수록 활기를 띠는 게 노예 시장인데.”
“지금 그런 단순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닌 듯싶은데. 아마, 필리아 님을 이르는 것 아니겠나?”
“아!”
필리아가 납치되어 노예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던 그 사건을 이르는 게다.
토올룬 왕궁에서는 그녀를 찾기 위해 노예 시장 폐쇄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그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바리엘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치안 유지한답시고 안 그래도 부족한 병사를 빼 노예 시장에다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장을 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뭐. 전쟁이 끝나면 그때는 본 적 없던 호황을 이루겠지만.’
전쟁고아, 불구자, 적지의 포로, 주민 등등.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금 천국과 지옥을 생생하게 맛볼 것이다.
헬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크게 외쳤다.
“이자들은 모두 바리엘 출신이다. 삶 대부분을 바리엘 시민권자로 살았다가, 재수 없게 이리된 자들이지. 이들은 황제 폐하의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시아오시는 헬나가 무엇을 이르려고 하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조국에서도 뵙지 못하는 황제 폐하를 낯선 이국땅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이들의 복이 아닐까! 신께서 굽어살피는 것이 틀림없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 대제국 바리엘은 들어라!”
헬나는 노예 한 명의 등을 거칠게 내려치며 그를 엎드리게 했다. 그러고는 단검을 꺼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일주일. 딱 일주일 동안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이자들을 모두 살려 보내 주겠다. 하지만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 이쪽으로 올라온다면, 내 이놈들의 머리를 잘라 굴려 보내 주마.”
“저, 저, 발칙한-!”
“지금 감히 협박을 하는 것인가!”
“시아오시 경, 들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에 화살을 날려 저것의 주둥아리를 꿰어 버리겠습니다.”
열이 뻗친 장교들이 무기를 집어 들며 외쳤으나, 시아오시는 손짓으로 제지했다. 저자들을 지켜보는 황제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눈동자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숨결은 날카로웠다.
퍼억!
헬나가 노예의 등을 발로 걷어차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울부짖었다.
“저, 저는 바리엘 북동부 하핌 마을의 산드로입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노예가 아닙니다! 살려 주십시오, 폐하!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비, 빚 때문에 아비 손에 팔아넘겨졌습니다. 저는 군사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아이였습니다. 아비는 손가락을 자른 것으로 값을 치렀지만, 저는, 저는 인생이 도려졌습니다! 폐하!”
“제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폐하, 바리엘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족쇄 묶인 팔까지 크게 흔들며 애원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장교들은 물론 병사들도 고개를 돌리며 애써 눈에 담지 않으려 했다.
“하.”
하지만 진은 달랐다. 그는 일렬로 쭉 늘어선 바리엘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고갯짓 하나에 저들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일주일입니다! 더도 말고, 딱 일주일 후에는 이자들을 무사히 보내 주고 물러나겠습니다. 사실 수도를 꼭 지키겠다는 의지는 없습니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는지라 이러는 것이니, 유하게 생각하십시오.”
헬나와 그 부하들은 노예의 목에 검을 바짝 붙였다. 갑자기 화살이나 다른 공격이 날아든다면, 이들도 함께 죽을 거란 듯이.
“폐하.”
시아오시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지금까지 수백의 병사가 다치고 죽었지만,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미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노라 각오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은?
‘저들은, 우리가 지키려는 나라 그 자체다.’
제이럿이 황제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황제의 고충이 느껴졌다.
제이럿은 그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먼저 제안하고자 했다.
“폐하-”
구해 내겠습니다. 무고한 백성의 죽음이 아리신다면, 기꺼이.
“폐하!”
반면 다른 장교들은 채근했다. 고작 수십에 불과한 목숨입니다. 저들이 바리엘인이라는 증거도 없고, 설사 그렇다 한들 이리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적국의 수도가 목전입니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선 대국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다들 그만!”
진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짚었다. 그럼에도 피투성이가 된 제 백성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찌하면 좋나. 대체 어찌하면…….
촤아악!
그때, 창공에 열리는 시커먼 달.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것은 분명-
“어이야-!”
마법사의 검은 달, 이안 측에서 보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원 속에서 세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릭과 세드릭 그리고 에이린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