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29
제729화. 자질
베릭과 세드릭이 능숙한 몸짓으로 비탈길을 타고 내려왔다. 그 뒤를 따르는 에이린도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그들이 지나온 길을 따라 풀이 누워 흔적이 길게 남았다.
촤아악!
바리엘 진영 쪽에 다다른 베릭이 앞으로 한 바퀴 굴러 완벽하게 착지했고, 세드릭도 자세를 낮춰 속도를 줄였다. 따란-! 베릭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벌린 채 인사했다.
“다녀왔음.”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하는 세드릭까지.
마산타르 신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저렇게 물들지는 않았었는데, 어쩌다 저런 짓까지 닮게 됐나? 제이럿이 미간을 찌푸리며 까칠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세드릭을 성장시키고자 베릭 밑으로 딸려 보낸 것인데, 이거 잘못했다간 물 잘못 들이는 거 아닌가 싶다.
“으앗!”
쿠웅!
두 사람과 달리 착지가 어설픈 에이린은 나무통에 머리를 박고야 말았다.
그러곤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에이린. 하늘 높이 떠 있는 포탈을 보니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실감 나서 심장이 철렁거렸다.
“에이린?”
“아, 나 좀 일으켜 줘.”
“미치겠네. 무슨 일인데?”
병사 한 명이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건넸고, 이어서 시아오시가 앞으로 나와 세 사람을 반겼다.
“베릭, 이안 경은?”
“아아. 마산타르 개박살 내고 토올룬 수도로 들어가는 중. 나는 애들 데리고 황궁친위대로 복귀. 저기 저- 성기사가 자꾸 뭔가 기운이 안 좋다는 둥 뭐라는 둥 해 대서 말이지.”
“기운이 안 좋다니?”
“몰라. 여긴 문제없지?”
“문제…….”
“있어?”
웃옷을 탁탁 털며 물은 베릭이 고개를 돌렸다. 시아오시의 시선을 따라, 언덕 위로 줄지어 서 있는 자들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베릭 일행에 놀랐는지, 하나같이 단검을 쥔 채로 굳어 있었다.
보자, 개터진 면상에 온몸엔 피 칠갑. 그리고 목에 겨누어진 무기…….
“뭐야, 협박 중?”
“비슷하다. 바리엘에서 납치된 사람들인 것 같더군.”
“아아. 노예 시장으로?”
“일주일만 기다려 주면 인질들 풀어주고 길을 내어 주겠다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 사이 토올룬 정규군이 당도할 테니까. 하지만 폐하께서는 고민이 깊으셔. 백성을 외면할 수 없으신 게지.”
“그러시겠지.”
바리엘을 사랑하는 분이시니까.
베릭은 어깨를 대충 돌리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인질만 구해 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제이럿 대장! 뭐 해? 이럴 때 움직이지 않고.”
베릭이 제이럿 쪽을 바라보며 소리치자, 그는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하라 신호했다. 이제 막 여기 떨어진 놈이, 참 나.
“안 그래도 그것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이 망아지 같은 놈아. 마산타르 쪽은?”
“라주 대신관 죽였어. 신전도 완전히 무너트렸고. 거기 지하가 심연이랑 이어져 있더라고? 이드갈로 메웠으니까 특별한 일 아님 문제없을 듯.”
“문제없다니?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이가 그리 말했으니까 맞겠지.”
아하, 그렇다면야.
그때, 하늘을 날던 마법사들이 막사 쪽으로 내려와 가볍게 착지했다. 혹여라도 있을 수도 있는 인질 구출 작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라면 누구보다도 쉽고 안전하게 구할 수 있으리라.
제이럿은 이제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 쪽으로 몸을 숙였다.
“폐하. 시기가 적절합니다. 마법사들로 하여금 상대를 결박하도록 하고, 그 틈에 저희가 나서 바리엘 백성을 구해 오겠습니다. 인질들이 안전하다 판단되면, 가차 없이 적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진은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지나왔던 적들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벌하여, 감히 자신의 백성을 앞세워 협박한 한 죄를 물으리라.
“자비 두지 말고 죽여라.”
“예. 폐하.”
황제께서 이런 명을 내린 적이 있던가? 제이럿은 그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황궁친위대원들에게 고갯짓했다. 황제 곁을 전담하여 지키는 바르사베를 제외하고, 총 세 명이 선택되었다.
“마법사들도 있으니, 셋으로도 충분하다.”
“저, 베릭도 따라오려는 거 같은데요.”
“마음대로 하라지.”
베릭은 세드릭에게 뭔가를 일러 주며 상대 쪽 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도 선배랍시고 이것저것 알려 주고 있나 보다.
“아니, 등신아. 저쪽으로 올라가는 게 더 빠르지.”
“아니라니까요. 저래 보여도 경사가 있잖아요.”
“건방진 새끼가. 나는 눈 없어?”
“그럼 직접 해 볼까요?”
실상은 영양가 없는 것을 토론하며 내가 옳네, 네가 틀리네를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베릭을 찬찬히 보던 제이럿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적진의 헬나란 자를 보았을 때 느꼈던 기시감.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에, 적안 하며,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무엇보다, 영 재수 없는 말투까지.
누굴 닮았나 싶었는데, 바로 저놈, 베릭 아닌가?
“대장님. 다녀오겠습니다.”
황궁친위대원들은 그에게 고개를 까딱거리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움직임을 알아챈 베릭도 세드릭을 밀어내곤 언덕으로 뛰어올랐다.
타앗!
타닥타닥!
앞서 상황을 전달받은 마법사들이 손끝으로 마법진을 그려 적진 쪽으로 좌표를 고정했고, 이를 본 헬나와 그 부하들은 사색이 된 채 굳어 버렸다.
“어, 어찌합니까? 두목.”
“제기랄…. 이보십시오! 현명하게 선택하십시오! 여기 있는 게 다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뒤에 데리고 있는 자들까지 합하면 이보다 두세 배는 많습니다! 내 딴에는 최대한 정중하게 제안한 것이거늘, 그게 바리엘의 대답입니까!”
촤아악!
헬나는 다급하게 노예 한 명의 머리채를 잡아 목을 그어 버렸다. 더 다가온다면 기꺼이 이자들을 죽여 주겠다는 경고다.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 몸뚱이에, 노예들이 기겁하며 애원했다.
“살려 주십시오! 오지 마세요! 제발!”
“아아악! 죽습니다! 저희, 죽습니다!”
“이자들이 바리엘 백성이라는 건 얼마든지 증명 가능합니다! 폐하께서는 진정으로 자식들을 죽이시려는 겁니까!”
촤아악!
푸욱!
“이자들이 죽는 것은 모두, 폐하의 선택이옵니다! 폐하께서 죽이는 거란 말입니다!”
헬나의 거센 외침이 황제에게 와 닿았다. 진의 턱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 눈매엔 서늘한 분노가 들어찼다. 저토록 방자하고 못된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한편, 베릭과 세드릭 그리고 황궁친위대원들은 바람과 같은 속도로 언덕 위에 당도했다.
지이잉! 지잉!
마법사들의 결박도 알맞게 채워졌다. 순식간에 나타난 불투명한 끈이 헬나와 그 부하들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그들은 당황해하며 끊어 내려 발버둥 쳤지만, 어찌 범인의 능력으로 마력을 파훼하겠는가?
타앗!
제일 먼저 당도한 세드릭이 검을 휘둘러 헬나와 가까이 서 있던 부하의 목을 베어 냈다.
순식간이었다. 머리통이 가볍게 날아가 바닥에 곤두박질쳤고, 잘린 단면에선 피 분수가 솟구쳤다.
“어쭈. 제법-”
베릭도 씨익 웃으며 헬나의 목 부분을 노렸다.
그때였다. 베릭을 눈에 담은 헬나의 눈동자가 커졌고, 순간 베릭도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똑 닮은 적안.
적안이 희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마치 고장 났던 자석이 한순간에 움직여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말이다.
사아악!
베릭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헬나의 목 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검을 뒤로 물린 채 의아한 눈으로 헬나를 쳐다봤고, 헬나 또한 숨을 헐떡이며 그를 주시했다.
의미심장한 침묵.
그걸 깬 것은 영문을 모르는 세드릭이다.
“선배. 검을 어찌 그리 휘두르십니까?”
“…….”
“거의 뭐, 긁어 주는 수준이네.”
“…….”
“선배? 이봐요, 베릭 선배?”
세드릭의 부름에도 베릭은 꼼짝하지 않았다. ‘베릭’이라는 이름을 들은 헬나의 입이 살짝 떨어진 것과 대조되게끔.
“…베릭이라고?”
“너, 뭐야.”
“세상에.”
베릭이 검을 다잡고서 헬나의 목을 겨누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분명히 느꼈다. 검 끝 어디에도 살기가 담기지 않았음을.
헬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내 그녀의 코끝이 붉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베릭은 보았다.
“베릭 맞아? 정말?”
“너 뭐냐고. 물었잖아.”
“나, 나, 이비아.”
이비아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베릭은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 이름.
“누나?”
베릭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헬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는 현 상황을 비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말도 안 돼! 너 살아 있었구나! 세상에, 세상에!”
“누나 맞아?”
“그래! 우리, 토요일 오전만 되면 콩 볶아 먹었잖아? 메리아가 토끼 잡아 와서 뒤뜰에 집도 같이 만들었고. 어, 엄마는 나무 도마 닦는 걸 좋아했어. 기억나지?”
방언 터지듯 술술 흘러나오는 말은 무의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목멘 소리.
“…왜, 왜 그날 밤 나는…….”
그날 밤, 비 오던 날.
누이들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사라졌고, 베릭은 홀로 남았다. 베릭에게 많은 일이 있었듯, 그의 누이들에게도 말 못 할 일들이 많았을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겠지.
베릭은 당황하여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과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는 툭, 검을 아예 내려놓았다.
“…아니.”
자신의 기억 속 누이는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닭 모가지 하나 제대로 비틀지 못하여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는데.
“베릭. 잘 됐다. 나 좀 살려 줘. 응? 보니까 황제의 호위대인 것 같은데, 황제께 말 좀 잘해 줘. 나 좀 살려 주라. 우리 나눌 얘기가 너무 많잖아. 응?”
“누나. 잠깐만.”
“맙소사, 네가 마검사라니. 말도 안 돼. 대체 왜, 왜 그날 밤에는 아무런 힘도 못 썼던 거니?”
베릭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갑작스레 마주한 그의 가족이 너무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었다.
세드릭도 아예 검 끝을 내린 채 바리엘 진영 쪽을 돌아봤다.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나? 새로운 명령을 받는 것이…….
“베릭! 뭐 하냐?”
타닥타닥!
그때였다. 황궁친위대원들이 어느새 당도하여 훌쩍 도약했다. 마법에 구속당한 잡것 하나 베지 못하고 뭐 하느냔 뜻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런 건 정말이지 간단한 일인데.
채앵! 챙!
콰아아앙!
황궁친위대원들이 헬나를 베려고 하자, 베릭이 반사적으로 이를 쳐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대원들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촤아악!
“……?”
이를 지켜보던 제이럿과 진 그리고 시아오시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크게 일었던 먼지가 점점 희미해지자, 반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베릭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오, 시발. 아파라.”
“베릭 이 미친 새끼가, 너 뭐 해?!”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어?”
그들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바보라 하더라도 적과 동료 구분할 줄은 아는 놈인데.
“베릭?”
“아, 미, 미안한데. 잠깐만.”
“뭐?”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뭐라는 거야…? 폐하가 보고 계신데. 방금 와서 상황 파악 안 되지?”
대원들이 뒤쪽을 힐끔거리며 속닥거렸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황제의 격분을 앞에 두고, 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하려는 거야?
하지만 베릭은 반격 자세를 풀지 않았고, 그의 검 끝은 여전히 동료들에게 향해 있었다.
“…우리 누나라서 그래.”
그 말에, 황궁친위대원들이 일시에 뚝 멈추었다. 그 한마디로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된 게다. 그들은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뒤쪽을 바라보다가, 제이럿 대장의 차가운 눈빛을 확인하곤 다시 자세를 잡았다.
“베릭. 너, 이러면 안 돼.”
“아니, 시발.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황궁친위대원은 그저 상관의 명에 따른다.”
“아는데! 우리 누나라니까?!”
찰나 빈틈을 발견한 동료가 파고들려 하자, 베릭이 마력을 터트리며 다시금 막아섰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럿 대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베릭은 분명 인재다. 황궁친위대에서도 압도적인 무위를 갖췄음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장의 자격은 부족했다. 대장이라면 무릇 지니고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기에.
“무슨 일인가, 제이럿 대장.”
황제의 물음이었다. 제이럿은 즉시 검을 빼 들었고, 진에게 고개 숙였다.
“송구합니다, 폐하. 제 모자란 제자 놈이 가르침을 덜 받았나 봅니다. 제가 일러 주고 오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