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0
제730화. 갈림길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에 맞춰, 철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세졌다가 흐려지길 반복했다. 아마 숲 어딘가를 지나는 중인가 보다. 흙냄새가 물씬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비아는 둥글게 몸을 만 채 기절한 메리아를 힐끔거렸다. 집에서 낯선 자들에게 머리채가 잡혀 납치된 이후, 해가 뜬 것이 일곱 번. 그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베릭은 살아 있을까? 엄마는?
…아빠는?
‘…죽었으면 좋겠고.’
대체 이 사람들은 나랑 동생한테 뭘 원하기에 이리 끌고 가는 걸까? 혹 북쪽이나 동쪽으로 가는 거라면 곧 국경선을 지날 텐데. 거기엔 분명 국경수비대가 있겠지? 살려 달라고 하자. 살려 달라고…….
“죽었나?”
이비아가 힘없이 생각을 잇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철창 안을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비아는 놀라서 움찔거렸지만, 동생 메리아는 꼼짝하지 않았다.
“죽었어?”
“모르겠네. 반응이 없어.”
“일단 국경만 넘고 다시 보자고. 죽었으면 버리고 가는 게 편해.”
국경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북쪽이나 동쪽 혹은 그 가운데 어딘가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돌부리가 많아지는지, 마차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히이잉!
“어이, 이봐. 멈춰. 검문이다.”
그리고 한참 후, 이비아는 기적과 마주했다. 국경수비대원이 그들을 막아 세운 것이다. 사내들이 뭐라 뭐라 대화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고, 이비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철창 밖으로 팔을 내놓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제발 구해 달라고 애원하는 몸짓이다.
“참 나, 그런 말 해 봤자, 득 될 거 없어.”
“알지. 아니까 이리 부탁하는 것 아닌가. 손해가 막심하다고.”
촤악!
철창 위에 대충 덮어져 있던 천이 걷혔다. 이비아의 눈동자가 커지고, 이내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 진짜 국경수비대였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다행이다. 진실로 다행이다. 이제는 살았…….
“이게 다라고?”
“그래.”
하지만 국경수비대는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에 따라 스르륵, 다시금 천이 내려앉았고 이비아의 심장 또한 거칠게 뛰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알겠어?”
“알겠다니까. 고마워.”
“자, 잠깐만요! 저, 저 바리엘 사람이에요! 저기 벤톨프 마을 언덕 위에 사는데요, 이 사람들이 부모님을 죽이고 저랑 동생을 납치했어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허. 보기와 달리 기력이 있네.”
“그러게. 아까까지만 해도 죽어 가는 듯싶었는데.”
“잘 가라고.”
“어, 그쪽도.”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그들은 이비아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듯 행동했다. 처절하게 외치는 애원에도 국경수비대원은 마차 문 쪽을 쿵쿵 쳐 대며 출발 신호만 주었다.
이비아는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쥐어 짜내며 철창을 크게 흔들었다. 제발, 자신 좀 도와달라고!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이다.
“시끄러워-!”
퍼억!
하지만 천이 다시 걷혔을 때는 허허벌판의 사막 한가운데였다. 이비아의 울음에 시달린 사내들은 무자비하게 아이를 밟아 댔으며, 아이는 사람의 치아가 그리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네년 동생을 좀 봐! 가만히 있으니 두들겨 맞는 일도 없잖아! 멍청하긴!”
…죽은 걸까? 메리아는 무서울 정도로 기척이 없었다. 사내들 말만 들으면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은데, 왜 저리도 시체 같을까?
콰악!
사내가 이비아의 손목을 거칠게 짓이겼다. 이로 인해 아이는 몇 년 동안 왼쪽 손목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됐지만, 이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 덕에 족쇄에 이음이 벌어졌으니.
이비아는 사내들의 코 고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어느 새벽, 족쇄를 풀고 도망쳤다. 죽은 듯 꼼짝없는 동생을 남겨 둔 채.
타닥타닥!
타앗!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은 경이로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언제고 뒤에서 놈들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막의 넓이처럼 끝없었다.
벌레를 잡아먹고, 종국에는 모래까지 퍼먹으며 배앓이를 하던 나날. 아이는 드디어 바리엘로 돌아왔다.
“아!”
숲속, 저 멀리 나무 진 사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이는 도움을 요청했고, 남자는 놀란 기색으로 마른 빵 하나를 나눠 주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러니까, 부모는 죽어 버렸고 사채업자한테서 도망치던 중이었다고? 그럼 갈 곳이 없겠네?”
씨익- 누군가의 웃음이 이렇게도 소름 끼칠 수 있나? 방금 막 삼킨 빵이 가슴 한편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남자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다가오자, 이비아는 뒤로 물러서며 바닥을 더듬었다. 나뭇가지 자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묵직한 단검이 손에 잡혔다.
스윽!
누군가의 살을 찢는 그 순간, 이비아는 깨달았다. 자신의 삶 역시 완전히 찢어졌노라고.
아이는 허겁지겁 빵 쪼가리들을 챙겨 도망쳤다. 해와 달이 번갈아 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도망쳤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신을 쫓는 검은 환영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위축될수록, 상대를 경계할수록, 그 검은 족쇄는 끝도 없이 늘어났다.
‘떠나야 해.’
이비아는 결국 결심했다. 자신을 죽이기로. ‘이비아’라는 이름을 죽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이는 새로운 이름을 갖고서 바리엘 북쪽 지대를 넘었고, 그렇게 새로이 시작했다. ‘헬나’로서의 인생을.
* * *
“베릭.”
베릭을 부르는 헬나의 음성이 가볍게 떨렸다. 기회다. 사막에서의 그날처럼 이는 헬나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어렸을 때 헤어진 동생이 황궁친위대원이라니! 게다가 하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베릭 선배!”
이번에는 세드릭의 외침이었다.
채앵!
베릭은 동료의 검을 막아 낸 채로 멈췄다. 자신도 모르게 반격까지 이어질 뻔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검은 위협적으로 동료들의 심장을 찔렀고, 환영처럼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선배, 젠장. 미쳤어요? 내가 아무리 핫바지라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압니다!”
“그래. 베릭, 이 미친놈아!”
“못 베겠으면 물러서 있어! 방해하지 말라고!”
촤아악!
상대가 베릭의 누이라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마음 깊이 안타깝고, 운명의 장난을 탓해 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건 지금 할 일이 아니었다.
명령을 받았다. 백성을 구하라는. 그리고 나아가 제국을 모욕한 저것의 목을 베어 내라는. 상대가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저 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황궁친위대원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자 덕목이었다.
채앵! 챙!
검날과 검날이 부딪칠 때마다 작은 불꽃이 튀었다. 서로가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베릭, 지금 저것들 못 죽이잖아? 그럼 네가 죽어!”
“내가 왜, 인마!”
“몰라서 물어?”
명을 받들지 않는 자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중요치 않다. 황궁친위대원 모두가 베릭을 죽이려 들 것이다.
마법부를 떠났던 마법사들에게 마력제어장치가 심어졌던 것과 같이, 그들은 베릭이 두 번 다시 검을 쥘 수 없게끔 사지를 잘라 내야 했다.
“오, 오해가 있어! 우리 누나도 바리엘 사람이야!”
“바리엘인? 한데 어찌 저리 동향인을 무자비하게 다룬단 말인가? 베릭, 정신을 바로 차려라. 이곳은 토올룬이다. 혹시 모를 속임수에 넘어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
멍하니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헬나가 비식 웃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깔깔대며 목을 젖혀 댔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황궁친위대원들이 멈추어 그녀를 돌아봤다.
“아하하하!”
“미친…….”
“어찌 동향인을 무자비하게 다룰 수 있냐고? 너무도 어리고 한심하구나! 황궁의 축복 속에서 곱게 자란 것들이 무엇을 알겠니.”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들 대부분은, 바리엘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비라 이르던 작자부터 말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왜, 대체 왜 약점이 되는 것일까?
이비아가 무어라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사사삭!
타앗!
갑자기 나타난 인영에 놀라서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이내 기다란 장검이 그녀의 목덜미 가까이 달라붙었다.
바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제이럿이었다.
“고작 이런 것으로 황제 폐하께 근심을 안기다니. 모두 돌아가면 책임을 물을 것이다.”
“대, 대장!”
“베릭! 이제 정신 좀 차려! 대장 앞에서도 그러면-”
“시발, 닥쳐! 대장, 그 여자 우리 누나야!”
“뭐?”
베릭의 외침을 들은 제이럿 또한 황당한 기색이 되어 되물었다. 그래.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었는데, 그런 거였나. 베릭을 닮았던 게로구나.
제이럿은 헬나를 내려다봤고, 그녀 또한 제이럿을 마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검날에 바짝 닿아 있는 목덜미에서 실금 같은 피가 흘러내렸다.
“반갑습니다. 헬나라고 합니다. 예전 이름은 이비아고요. 우리 베릭이 신세 진 분인가 보죠?”
“…….”
제이럿은 입매를 꾹 다문 채 검을 다잡았다. 딱 한마디, 헬나와 나눈 짤막한 대화로 그녀의 성정을 파악한 것이다.
제이럿은 베릭에게 고갯짓했다.
“베릭. 연연치 마라.”
“뭐, 뭐를.”
“네가 기억하는 과거의 누이와는 다른 자다. 눈빛을 봐라.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집어삼킨, 핏빛의 눈동자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헬나는 베릭을 만난 것보다, 베릭을 통하여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음에 더욱 기쁨을 느끼는 게다.
그때, 헬나가 보란 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베릭의 이름을 불렀다.
“베릭! 네가 변했니? 어릴 때의 너와 지금의 네가 많이 변했어? 아니, 넌 그대로야. 네가 그렇듯, 나도 그대로란다.”
“하, 대장. 있잖아, 내가 진짜 이렇게 부탁할게. 우리 잠깐만 시간을 가지면 안 될까? 차라리 막사로 데리고 가자. 가서-”
“…그게 폐하의 명이었던가?”
“그럼 가서 폐하께 말씀 좀 드려, 씨발!”
제이럿이 꼼짝도 안 하자, 베릭이 울컥 소리쳤다. 그의 온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세드릭과 동료들은 한 발 물러섰고, 제이럿은 그 모습을 가만 지켜봤다.
‘…가여운 것.’
차라리 이자가 네 누이임을 알리고 황제 폐하의 앞으로 끌고 와 베려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폐하께서는 응당 결정을 재고했을 것이고, 동료들은 안타까움에 탄식했을 것이다. 감정에 동한 몇몇은 너를 옹호하여 황제께 읍소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나 또한, 이리 좌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베릭. 이미 너는 동료에게 검을 휘둘렀어. 누이를 살리고 싶었더라면, 네 본분을 다했어야 했다.”
시험에 든 것이다. 베릭에게 황궁친위대의 자질이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 차기 대장직을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베릭은 억울하다는 듯 제이럿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분명히! 그만두라고 했어!”
“적을 어찌 그리 조심스레 다루는가! 이것의 머리채라도 끌고 내려왔어야지. 네겐 황제의 명 외에는 중요한 게 없다는 듯 행동했어야지!”
“닥쳐! 닥치란 말이다!”
“베릭! 갈림길이다. 이건 정말 네게 중요해!”
콰아아앙!
파지직!
베릭의 기운과 제이럿의 기운이 한데 휘몰아치며 폭발했다. 거세고 날카로운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거침없이 흔들었다.
“뭐가 중요한데! 이딴 자리-!”
“이안 경은!”
제이럿이 이안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베릭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바리엘 제국에 꼭 필요한 재원이다. 우리 모두가 맡은 소임을 다하여 바리엘을 지키면, 훗날 이안 경의 바리엘도 지킬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