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1
제731화. 진의 선택
“너는 무엇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가?”
단조로운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누가 물었던 것이더라? 제이럿 대장?
아니.
“대체 뭘 위해 그리 강해지고자 하는 것인가?”
트웰러다. 이것은 트웰러의 물음이었다.
더 강한 상대를 쫓고 쫓으며 훈련장에서 피를 토해 내던 10년 전, 트웰러 장관은 베릭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이리 물었었다.
이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트웰러의 질문에 호기심이 깃들어 있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깨우침을 위한 질문일 뿐.
베릭은 벌러덩 누운 채 질색했다.
“…꺼져.”
안 그래도 마음 같아서는 주먹을 날리고 싶은 영감탱이인데, 저딴 식으로 말을 붙여 대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트웰러는 피투성이가 된 베릭과 그 대련 상대를 보며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모르면 너만 힘들 것인데.”
“꺼지라고!”
검을 드는 것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이 있다.
바로, 지키는 것.
자신을 지키든 소중한 사람을 지키든, 어쨌거나 지키기 위한 것이 바로 근본적인 목적이다. 그 외의 의도를 지니고 검을 휘두른다면, 필시 언젠가 검은 되돌아와 자신의 목을 베고 만다.
트웰러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여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하나 일러 주마.”
“왜. 미안하긴 한가 봐? 하긴, 씨발. 누구 덕에 이안이 그렇게 가 버렸는데.”
“…나는 무인이기에 원망의 대상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작은 친절 정도는 베풀 수 있지. 상대가 너라면 말이다. 베릭, 오히려 이것이 기회일 터다.”
베릭은 누운 채 눈매를 치켜들었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까 버릴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황궁에 계속 있고자 한다면, 이제는 오롯이 황제 폐하만을 위해 검을 잡아라. 이안 경은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새로이 시작해. 힘들다면 일단 너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도 좋다.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는 있으니.”
“뭐라는 건데, 진짜. 안 꺼져?”
“한 가지 명심할 건, 황궁에 몸담은 채로 마음속에 다른 이를 모시지 말라는 게다. 그건 마법사들만으로도 충분해.”
베릭은 멍하니 트웰러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이에 그는 피식 웃더니 할 일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베릭은 그저 영감의 헛소리 같은 것이라 치부했었다. 노인이 이르는 말에는 세월이 담겨 있고, 그것이야말로 역사이며 인간의 생리라는 것을, 베릭이 어찌 알았겠는가.
베릭은 한참이나 그리 누워 있다가 눈매를 벅벅 닦아 댔을 뿐이다. 바람을 타고 벚꽃이 훈련장 안까지 닿았던, 어느 봄날이었다.
* * *
트웰러는 잠시 의아해하며 상황을 살폈다.
베릭이 이상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함께 있는 황궁친위대원과 제이럿 대장의 움직임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마력까지 개방하며 큰 진동을 일으켰으니.
가만히 지켜보던 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베릭이 적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송구합니다, 폐하. 저도 그리 보입니다.”
그들의 대화에, 바르사베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보이지 않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는데, 뭐라고? 베릭이 적을 지키려 든다고? 미친 거 아닌가?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자, 진의 물음이 이어졌다.
“왜 그러지?”
베릭은 거칠고 다루기 힘든 자이긴 하지만, 이해 못 할 자는 아니다. 명령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수행해 낸다는 믿음도 있었다. 한데 베릭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라면, 필시 그만한 사정이 있을 터.
“저, 폐하.”
그때, 귀를 쫑긋거리던 황궁친위대원들이 조심스레 보고했다. 마력 개방을 통해 감각을 최대치로 올렸더니, 아주 놀라운 대화가 토막으로 들려왔던 게다.
“일러라.”
“송구합니다. 어렴풋이 들리는 대화로는 아무래도 저자가 베릭의 누이인 것 같습니다.”
“누구? 저 무뢰한이?”
“예, 폭발음이 너무 커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런 듯 보입니다.”
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트웰러도 마찬가지. 가족이 없다고 들었는데, 누이라니? 그것도 이런 곳에서?
전말을 알게 되자, 트웰러는 안타깝다는 듯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문제군.’
황명을 받들지 않는 황궁친위대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되레 위험인물로 취급하여 제거 대상이 될 것이다.
친위대원과 제이럿 대장은 황명을 받들면서도, 동시에 베릭을 지키기 위해 저것을 죽이려 드는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베릭.’
트웰러의 한숨이 쥐도 새도 모르게 흩어졌다.
그는 언젠가 이런 일이 닥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나의 몸으로 두 명의 주군을 모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되면 언젠가는 몸이 찢어진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특히 황궁에서는 더더욱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갑작스레 누이가 나타나서 이리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예견된 운명이었다.
“폐하.”
진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베릭과 제이럿의 전투를 올려다봤다. 황제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
베릭과 황궁친위대 앞에 갈림길이 나타난 것처럼, 진의 앞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펼쳐졌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여기서 저 누이가 죽어 버린다면 베릭은 황궁친위대원으로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바리엘 자체를 원망하여 떠나리라. 몸은 황궁에 붙어 있는다 한들, 마음만은 분명히 바람처럼 갈피 없이 흩어지리라.
‘…이안 경이 있어도?’
진은 저도 모르게 놀라 흠칫거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물음이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기가 찼다. 이는 자신의 무의식조차 베릭이 이안 경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있음이 아닌가?
진이 이마를 감싸자, 신하들이 다가와 그를 부축해 주려 했다.
툭!
하지만 진은 거칠게 소매를 떨쳐버리고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황궁친위대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베릭을 강등하자니, 그것은 분명히 바리엘의 실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전시에 베릭의 힘은 꼭 필요했다. 자신에게도, 바리엘에게도.
“폐하, 괜찮으십니까?”
“염려 마십시오. 저희가 당장 가서 베릭 놈 때려눕혀 정신 차리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노여워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베, 베릭이 술을 먹고 누이 이름을 부르며 울었던 걸 본 적 있습니다. 꽤 옛날이지만요. 아무래도 사연이 깊어 그런 것 같으니, 폐하. 부디…….”
황궁친위대원들이 다가와 황제에게 읍소했다. 그들은 베릭과 10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동료들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한순간에 내칠 수는 없지 않나. 그의 공로를 잘 알고 또 인정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폐하. 명을 물리시면 안 됩니다.”
그때, 옆에서 트웰러의 직언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는 의연했다. 이런 상황이 올 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사실 그가 예상한 것은 이안 경을 중심으로 한 갈등이었지만, 이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이다.
“황제의 명은 지엄하고 무겁습니다. 하늘과 같이 높아 우러러볼 만큼 말입니다. 한데 황궁친위대원 한 명의 사사로운 개인 사정으로 황명을 거두어야 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바리엘의 병사들은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그제야 진의 눈에 진영 안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당황해하면서도, 놀란 눈길로 앞뒤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황명은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한데 지금, 베릭은 사사로운 정을 앞세워 이를 어기려 합니다. 절대 명을 거두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트웰러 장관,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베릭은 이번 전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폐하. 그는 일개 황궁친위대원입니다. 지금껏 전장에서 얼마나 많은 친위대장들이 전사하였습니까? 그들이 없어도 우리는 승리했고, 지금도 이리 적지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를 과대평가하지 마십시오. 그간 너무 가까이하셨기에 그의 존재가 더욱 크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잃고 싶지 않다. 베릭을 잃고 싶지 않아. 황제의 눈빛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트웰러는 뒤쪽을 향해 살짝 고갯짓했다. 그 끝에는 시아오시가 서 있었다.
“황궁에 폐하의 사람이 아닌 자가 들이차면 어찌 되는지 잊으셨습니까. 고작 10년 전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안 경이 일러 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황제의 몰락이 어찌 이루어졌는지 직접 일러 주었던 이안이다. 그의 곁의 크로니라는 작자로 인하여 바리엘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지, 진은 귀로 직접 들었다. 듣지 않았다면 또 몰라, 알면서도 그 조언을 무시할 수 있는가?
진의 손끝이 가볍게 떨려왔다. 제발, 베릭. 진정하고…….
“감히 한마디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맑고 청아하며, 올곧은 목소리. 진은 어렵지 않게 그 음성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무 자르듯 결단 내릴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여, 송구하지만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에이린이다. 그녀는 마산타르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해 막 들어온 참이었다. 워낙 상황이 시끌시끌하다 보니 다들 그녀를 알아채지 못한 게다.
트웰러가 에이린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금 용서를 구했다.
“송구합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단 병사에 불과한 그녀가 감히 황제와 장관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이러한 불손은 즉시 처벌감이었다.
에이린도 이를 잘 알았으나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황제는 그를 신임하여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하였고, 무엇보다 베릭은 마산타르 신전에서 자신과 함께 목숨 걸고 싸웠던 전우이지 않나. 조금이나마 생각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말을 올릴 것이다.
“성기사 에이린, 말에는 위아래가 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한 것을 후회할까 두려워 이리 감수하였습니다. 폐하, 그리고 장관님. 저는 바리엘을 위해 검을 잡았습니다. 이는 조국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폐하를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제 마음 깊이 존재하는 궁극의 의미는, 바로 신이십니다.”
당돌한 에이린의 말에 트웰러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성기사는 본디 신전에 소속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그렇다고 하여 제가 황제 폐하의 사람이 아닙니까? 저는 황제 폐하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는데요.”
진과 트웰러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방향성에 대해 이르고 있었다. 자신이 신의 의미를 바라보며 달리는 이상, 그 길에는 반드시 황제가 존재할 거라는.
“베릭이 이안 경을 더 깊이 따르는 것이 문제라 하지만, 그 이안 경이란 자의 의미를 따지고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본 이안 경은 그 누구보다 바리엘을 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베릭도 결국에는 그 누구보다 바리엘을 위하는 검사가 될 것입니다.”
“에이린.”
말은 옳으나 헤아림이 부족하다. 트웰러가 그녀의 말을 잘라 내려 했으나,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황궁친위대원 한 명의 목숨은 바리엘 병사 수천 명과 같습니다. 무엇이 더 귀한가를 이르는 게 아닙니다. 베릭이 있으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저기서 목이 베인 몇 명의 백성들도 이리 마음 아파하시는 폐하시온데,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실 수 있겠습니까?”
에이린은 뒤쪽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베릭이 공격을 멈춘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턱 끝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베릭은 거의 쓰러지듯 앞으로 기울어져서는 울부짖었다.
“기회입니다, 폐하. 베릭을 더욱 폐하의 사람으로 만들 기회요. 더하여 병사들의 사기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이린, 황명은 지엄한 것이다!”
“예, 거두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해석만 달리하면 됩니다.”
에이린의 대답에 트웰러가 잠시 멈칫거렸다.
“무슨 말이지?”
병사들이 보기에 어그러짐이 없으면 된다. 흥분한 저자들을 잠시 떼어 내어, 시간을 주기만 하면 베릭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보다 냉정하고, 냉철하게.
“황명의 핵심은, 바리엘 백성들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베릭의 누이라면, 결국 저자 또한 바리엘 백성에 포함되는 것 아닙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