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4
제734화. 팝니다
“이안 님. 걱정되십니까?”
촤악!
단검으로 나뭇가지를 꺾던 마법사가 넌지시 물어 왔다.
이안의 침묵은 평소와 같은 것이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랐다. 길도 나 있지 않은 숲속을 헤치는 동안, 피로에 지친 마법사들이 꿍얼대는 소리에도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피식 웃거나, 한심하게 쳐다보는 등의. 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이는 필시 머릿속이 어지럽다는 뜻이다.
“무엇이.”
“뭐. 성기사인 에이린이 황제 폐하를 염려하였으니 그것을 생각하고 계셨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베릭 그 망아지 같은 것이 이안 님 없이 명령을 잘 따르려나 걱정하셨을 수도 있지요.”
“베릭은 황궁친위대 소속이다. 나 없이도 응당 제 몫을 해내는 것이 당연하지.”
“그렇긴 합니다, 하하. 아이고, 힘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력 훈련이라도 해둘걸 그랬네요. 설마 말도 없이 이 먼 거리를 걸어서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안 님은 괜찮으십니까?”
토올룬의 심장부에 가까워질수록 은밀히 움직여야 했다. 하여 마법사들은 하늘길이 아닌 숲속의 거친 길을 택해야 했고, 특히 비전투 직군의 마법사들은 거의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여 댔다.
대표적으로, 아코렐라.
“으어어, 누가 나 좀 업어라!”
“양심 없으십니까. 다들 힘들어서 죽으려고 하는데.”
“난 다리도 다쳤잖아!”
“참 나. 아이고, 우리 대장님. 말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이쪽 잡으십시오.”
“안 돼. 도와주지 마. 버릇 잘못 들어.”
“그래도 바로 앞까지는 포탈로 이동했는데 엄살이 너무 심하십니다!”
“이, 이, 매정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포탈로 앞까지 오면 뭐 해? 지금 몇 시간째 걷고 있는지 알아?!”
“다섯 시간, 아니다. 여섯 시간인가?”
마법사들은 투덜대면서도 아코렐라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부축했다.
바누사는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하는 마법사들을 돌아보고는 이안에게 물었다.
“몇 시입니까?”
“정오.”
“음. 아슬아슬하군요. 본래 저 혼자 이동했을 시간보다 늦어지면 토올룬 왕궁에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포탈로 시간을 벌었어도 이런 숲길에 발이 묶이면 의미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엄살 피우지 말고 서둘러서 움직이자는 재촉이다.
그러자 아코렐라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이에 부축하던 마법사들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혹시 가운뎃손가락이 올라갈까 막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이 속도로 가면 두어 시간 내에 관문이 보일 것입니다. 수도로 들어가기 전 거치는 출입국 심사대가 있는 곳이지요. 저는 그쪽을 통해 들어갈 것인데, 바리엘 마법사들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습니까?”
“예, 교역이 활성화된 소도시가 인접해 있습니다. 투명인이 아니고서야 하늘길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대들이 토올룬 수도에 다다랐다는 정보가 곧바로 왕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리 개고생하며 은밀히 접근하는 것도 아무 의미 없어진다.
이안은 품에서 수도 인근 지도를 꺼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바누사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중요 지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방법은?”
“남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경비가 허술한 지대가 있을 것이긴 한데, 지금은 모르겠군요. 전시니까.”
모든 병력이 수도를 지키기 위해 경계 쪽으로 몰려들고 있을 터. 이전과 같은 상황이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이안은 잠시 쉬자는 뜻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바누사는 마땅찮아 하는 눈치였으나, 아코렐라가 거의 실신할 것처럼 숨을 거칠게 내쉬자,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시발…….”
“괜찮으십니까? 대장?”
“나만 이래? 진짜?”
“아니요. 뭐, 다 비슷합니다.”
전투에 특화된 마법사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안은 지도를 펼치며 연신 고민했다. 바리엘 본대가 올라가는 길목과 그걸 알고 있는 적의 반응. 그들이 어떤 식으로 수비 병력을 배치했을지 등을 가늠하고 또 가늠했다.
‘마법사들의 체력도 고려해야 한다.’
체력은 육체의 힘이고 마력은 정신의 힘이라지만, 둘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법. 그저 몸을 혹사하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을 저하시킬 수 있음이다.
바누사가 가까이 다가와 한 지점을 손끝으로 툭, 짚었다.
“입국 심사만 거치고 나면 숨 돌릴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이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 가문 소속 영지가 나오니, 저택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상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저택으로 바로 가도 되겠나?”
마산타르의 함락으로 인해 복귀하는 길이었다.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 보고하는 게 순리이지 않나.
하지만 바누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문이 박살 났다고 하는데 어찌 왕궁으로 먼저 가겠습니까. 오히려 왕이 보았을 때는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가문 먼저 살핀 뒤 왕궁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왕궁에 들어가면 나올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들어가기 전, 그녀 다름대로 최선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동안, 헤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님. 주위에서 물소리가 들립니다. 물을 좀 떠 올까 하는데요.”
안 그래도 지도에는 강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안은 지친 마법사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다녀오라.”
“예. 나키나, 토미.”
“갑니다아!”
“선배, 물통 챙겨요. 다들 빈 통 있으면 줘. 다녀올게.”
아코렐라는 대자로 뻗어서는 안주머니를 뒤적였고, 이내 뽀옹! 정체 모를 물약을 바닥에 버려 빈 병을 만들고는 건네주었다.
“방금 뭘 버린 거예요?”
“아. 있어. 별 쓸모없는 거. 시원한 물이나 가득 담아 와라. 간에 기별도 안 가겠지만.”
“예, 쉬고 계십시오.”
“하아, 망할 나라 같으니라고. 왜 이렇게 더워.”
헤일 일행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물소리를 따라갔다. 어디든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지금의 자신들처럼 목마른 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내 그들은 낮은 절벽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강줄기를 확인했다.
솨아아-
“시원해 보이네요. 몸 좀 적시고 갈까요?”
“선배. 혼나고 싶어요?”
“그렇지? 좀 오바지?”
“쉿. 저기 사람.”
헤일이 두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며 손짓했다. 강 반대편 바위틈으로 마차 서너 대가 서 있었다. 워낙 큰 바위인지라 끄트머리만 조금 보였다.
“마차가 꽤 많네요.”
“토울룬 왕궁 소속인가?”
“국기가 없잖아. 대열도 저 맘대로고. 뭐. 근본 없는 나라니 그럴 수도 있겠네.”
“쉿! 사람이 보입니다. 이쪽으로 돌아 나와요.”
세 사람은 납작 엎드려 눈을 가늘게 떴다. 옷차림새로 보아 고위직은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커다란 통에 물을 가득 담더니, 이내 뒤쪽을 돌아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
그리고 줄줄이 끌려 나오는 사람들. 거의 헐벗은 채로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
“인신매매단인가 봅니다.”
“아아, 그렇네. 토올룬이 그런 걸로 유명하다며.”
“규모가 꽤 큰 걸로 봐서는 상단인 것 같은데.”
그들은 노예들의 머리채를 잡아 강물에 억지로 집어넣고는 몸을 씻겨 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도에 들어가자마자 매매가 이루어질 모양인가 보다. 안에서는 저만한 사람들을 한 번에 씻기기 어려우니, 강에서 볼일을 다 보고 들어갈 작정인 듯했다.
세 사람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동시에 눈을 번쩍였다.
“……!”
그러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나 왔던 길을 내달렸다. 더 이상 기척을 숨길 필요도 없다.
타닥타닥!
거친 발소리가 들리자 가장 먼저 이안이 알아챘고, 뒤이어 마법사들도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이안 님!”
“아이, 깜짝이야!”
하지만 수풀에서 짜잔, 나타난 것은 헤일 일행. 마법사들이 야유해 댔지만, 헤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헤일 대장! 기척 좀 죽이고 다녀요! 우리 귀에도 다 들리는구만.”
“물은? 왜 이렇게 금방 왔어?”
“아, 나 목말라 죽는다아아!”
“아코렐라 대장 미쳐 돌아갑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손에는 물통은커녕 빈 통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갈 때는 가득 들고 갔으면서, 어찌?
헤일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지막이 일렀다.
“이안 님. 굳이 먼 길 안 돌아가도 관문을 통과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마! 내 물!”
“강가에 마차 서너 대 규모의 인신매매단이 있습니다.”
물을 갖고 오라며 항의하던 아코렐라와 마법사들의 원성이 뚝 하고 멈췄다. 이안 역시 천천히 지도를 접어 품에 넣었고, 바누사는 어쩔 방도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지금으로서는 제일 가능성 있네요.”
“다들 로브를 벗어라.”
투툭. 이안은 단추를 풀며 명령했다. 하나둘씩 웃옷을 벗어 던졌고, 한데 모인 옷가지 위로 작은 불씨가 일었다.
이안은 앞장서라는 듯, 헤일 대장에게 고갯짓했다.
“가 볼까? 마차 빌리러.”
* * *
“웬 연기?”
노예 상단원 하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숲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까닭이었다.
저쪽엔 길이 없는데? 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정신을 놓고 있자, 다른 상단원이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며 다그쳤다.
“뭘 정신 놓고 있어? 애들 땟국물 씻기라니까.”
“앗! 이 씨벌. 사지 멀쩡한 새끼들이 알아서 하겠지.”
“야! 빨리빨리 움직여! 해 지겠다!”
“상판대기! 상판대기를 특히 뽀득뽀득하게 씻어야 돼. 알겠어?”
그들은 검을 거칠게 휘두르며 노예들을 겁박했다.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그들은 거적때기를 대충 걷은 채 몸을 씻었다.
무더운 날씨와 달리 물은 차가웠다. 긴장한 몸에는 닭살이 오소소 돋고, 축축해진 옷 탓에 오한이 일었지만, 어쩌겠는가. 매질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근데 들어가도 거래가 될까? 얘기 들어 보니까 수도 외곽에 몰려 있던 애들 다 남쪽으로 몰려갔다던데. 왕궁이 시장을 닫았다잖아.”
“그건 왕궁이랑 가까운 노예시장이고. 여기는 아직 괜찮아. 수도에서 나가는 놈들이 많아서. 분위기 안 좋으니까 애들 대충 다 정리하고 당분간 몸 피해 있자고.”
“어디로 갈까?”
“어딜 가나 개판이긴 한데, 그나마 나은 곳은 바리엘이지. 안전하잖아.”
“아이고, 아깝다. 저것들 다 모은다고 쇠 빠지게 고생했는데.”
상단원들은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잡담을 나눴다. 그때, 사사삭거리며 움직이는 수풀. 산짐승인가 싶어서 몇몇이 검을 다잡았다.
“요즘 짐승들이 왜 이렇게 많…….”
“아이고오! 선생님들!”
“……?”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건 분홍빛 머리칼의 여성. 그녀는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환히 웃었다. 절뚝절뚝, 다가오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아니, 시발. 제가 인근에서 길을 잃었지 뭡니까? 참 나, 사람이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 안 그래요? 물 좀 마시고 싶은데 그 목욕하는 사람들 좀 치워 주심 안 되나?”
“뭐야, 이 미친년은.”
“저리 썩 꺼져.”
절뚝절뚝 걸어가던 아코렐라가 걸음을 멈추곤 사아악,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혹시 여기 주인이?”
“주인?”
“상단인 것 같은데, 상단주가 누구시냐고.”
“그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아. 그게-”
아코렐라는 돌덩이 하나를 집어 들더니, 자신에게 미친년이라고 했던 자에게 다가갔다.
멈칫, 사내가 위험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제 손에 검이 들려 있는 것도 까맣게 잊고서.
“저희 좀 팔려고요.”
“뭐?”
“사실래요? 좀 비싸긴 한데!”
빠아아악!
아코렐라는 돌 든 손 대신 반대쪽 주먹으로 사내의 턱을 돌려 버렸다.
놀란 상단원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발치에서, 황금빛 마법진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