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5
제735화. 삽니다
“복명복창 실시.”
아코렐라의 나지막한 명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상단원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속수무책으로 얻어터진다는 게 무엇인지 몸으로 배운 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퉁퉁 부은 얼굴로 침을 튀기며 열심히 복창했다.
“그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옳지!”
“마차를 수도 안까지 무사히 진입시킬 것!”
“좋다! 더 크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법사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할 것! 그것이 설령 죽음일지라도!”
“비장하다! 멋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아코렐라가 싱긋 웃으며 내려왔다. 그에 단원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덜덜 떨며 아코렐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저런 식으로 뒤로 가서 뒤통수를 후리던 게 수십 차례다. 거기에 더해 황금빛 마법진은 그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끔 온몸을 꽁꽁 옭아맸으며, 나아가 진짜 사지가 터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강한 충격을 주었다.
빠아악!
아니나 다를까, 아코렐라가 한 사내의 머리를 시원하게 내려치며 일렀다. 아까 그녀에게 ‘미친년’이라고 불렀던 사내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세 배는 더 얼굴이 부어 있었다.
“다시 한번 이르겠지만, 네놈들의 몸에 우리가 아주 강력한 저주를 걸어 놨다. 혹여 허튼 짓거리를 하거나, 임무를 실패할 시 맞이하게 될 최후에 대해서는 내 설명하지 않겠어. 하지만 딱 하나! 무엇을 상상하든, 네놈들의 상상 이상이라는 걸 알아 둬.”
차라리 죽음을 애원할 정도의 절망적인 고통! 단원들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웬 악마 같은 것에게 걸려서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노예 놈들 씻기지 말고 바로 수도로 들어갈걸…….
그들이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 콧물을 쏟아 내자, 아코렐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연구 외에도 이렇게 즐거운 대외 활동이 있다니! 상당히 재밌…….
“대장. 잠깐 이쪽으로.”
음하하하! 아코렐라가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려는 순간이었다. 토미가 그녀를 불렀다.
마법사 대부분은 이미 노예들과 옷을 바꿔 입은 상태였다. 바리엘 표식이 새겨진 로브와 겉옷은 모두 태우고 왔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여자 옷은 몇 벌 없어서요. 둘 중 하나 입어보실래요? 그나마 이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잇, 나도 입어?”
“그럼요.”
“짬이 있는데.”
“이안 님도 입으셨습니다.”
“…큰 거로 줘.”
아코렐라는 축축한 옷을 들고서 코를 킁킁거렸다. 이거, 명예로운 제국 마법사가 온갖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하는구만. 그녀는 땟국물에 찌든 노예 복장의 마법사들을 보며 한숨 쉬었다.
“웬 한숨이세요? 방금까지 잘 놀다 오신 거 봤습니다.”
“놀기는 인마. 내가 너희들 손에 더러운 거 안 묻히려고 혼자 얼마나 애썼는데?”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즐기셨습니다. 대장.”
“뭐든지 일은 즐기면서 하는 거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지? 이런 일은 아코렐라 대장이 제격이라니까.”
마법사들이 보란 듯이 속닥거리자, 아코렐라가 돌덩이를 주워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저것은 경고였다.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냅다 던져 버리겠다는.
마법사들은 입을 합 다물었고, 슬금슬금 이안 쪽으로 이동했다. 가능하다면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게 좋겠다.
“……?”
쪼그려 앉아 상단주의 신분증을 살펴보던 이안은 의아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있는가?”
“아, 아닙니다. 신분증에는 문제없습니까?”
“정확히는 통행증에 가깝다. 왕궁에서 유상으로 발급한 것 같은데, 발급 시일이 꽤 예전이라 의아하군. 바누사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그럼 걱정 놓으십시오, 이안 님. 별일 있겠습니까.”
“예, 이런 외곽의 입국 심사는 푼돈 좀 쥐여 주면 다 해결됩니다. 미리 자금을 빼 두도록 하겠습니다.”
어디서? 상단 놈들 주머니에서.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이도 저도 못 한 채 서 있는 노예들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운이 좋다.”
“아…….”
“원하는 곳으로 떠나라. 어디로 가든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수도를 등지는 것이 좋아. 꼭 수도로 들어가겠다 하면, 보름 정도는 기다렸다 움직여라.”
조언 같기도 했고, 경고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노예들은 굳이 그걸 구분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준 자들이자, 자신같이 아무 힘 없는 일반인으로선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 않나. 무조건적 복종만이 그들의 살길이었다.
“차례로 줄 서서 먹을 것과 돈을 조금 가져가라.”
“가, 감사합니다!”
눈치만 보고 있던 한 남자가 먼저 후다닥 달려와 인사했다. 그러고는 마른고기 조금과 빵, 포도주, 그리고 은화 한 닢을 챙겨 들고는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다. 혹여 이안의 마음이 바뀔세라, 혹여 상단 놈들이 반격하여 상황이 바뀔까 봐 우려하는 발걸음이었다.
“고맙습니다…. 근데 저희 다 주셔도 되는 건가요?”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그대에게 사치다. 토미, 적당히 배분하여 모두 해산시켜라.”
“예, 이안 님.”
“교대 시간이 17시라고 하니, 16시 30분쯤 진입할 것이다. 맞춰서 준비하도록.”
교대를 앞둔 심사관들은 언제나 일 처리가 부실하기 마련이다. 이안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이용할 생각이었다.
마차에 몸을 기댄 채 서 있던 바누사가 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도를 달라는 뜻이었다.
“수도 안으로 들어서면, 곧장 소도시로 이어지는 길을 찾으십시오. 광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푸른 간판을 사용하는 건물이 있을 것입니다. 가문에서 관리하는 곳이니, 그 안에서는 경비대의 눈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만나는 것으로 하지요.”
“좋다. 16시 30분 진입이니, 20시 전까지 도착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지원하도록.”
“예, 무사히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모두들 무사히 통과하시길.”
“엉. 너나.”
“아코렐라 대장은 상단원들 좀 그만 패시고요. 심사대가 애들 얼굴 상태 보고 의심하면 어쩌시렵니까?”
아코렐라는 혀를 베- 내밀며 능청스레 대꾸했다.
“노예 관리 못 해서 상단주가 팼다고 하면 되지, 별걸 갖고 걱정이시네. 얼른 들어가서 자리나 잡고 있으시지?”
하여간, 정상 아니라니까. 바누사는 못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강물로 뛰어들었다.
첨버엉!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진 바누사. 강물을 거슬러 출입 심사대까지 빠르게 이동할 생각인가 보다.
“근데 바누사는 물길 따라 이동하면 심사할 필요 없이 바로 수도로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한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아주 좋은 지적이었다. 이안은 모두에게 일렀다.
“관문에 주술 감별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군. 수문도 마찬가지겠지.”
“엇, 그럼 마력 감별 장치는요?”
한 마법사가 번쩍 손을 들며 물었다. ‘주술’ 감별 장치는 알겠다. 하나 ‘마력’은 또 다른 개념이지 않나?
“바누사가 아는 바로는 마력에 대해서는 딱히 대비책이 없다고 하였으나, 모를 일이지.”
타당한 추측이었다. 바리엘 대군이 마법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다. 생각이 있다면 당연지사, 왕궁의 창고를 탈탈 털어서라도 마력에 대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설치해 두지 않았겠나?
이안은 손바닥에서 작은 이드갈을 만들어 내어 마법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력은 절대 사용하지 말고 최대한 기척을 죽여라. 심사대만 통과하면 왕궁까지 닿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알겠는가?”
처억! 마법사들이 이드갈을 품에 넣으며 경례했다. 여차하면 마력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지워 내는 한이 있더라도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뜻이다.
“예, 이안 님. 분부 따르겠습니다!”
* * *
“다음!”
끼이익!
출입국 심사대의 줄은 길었다. 그것도 상당히. 전시라서 다들 수도를 떠나겠다고 지랄들인데, 이것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어들어 오는 걸까?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심사관이 시계를 두어 번 힐끔거리며 입을 비죽거렸다. 아직 퇴근까지 30분이나 남았다. 하필이면 교대자가 꼭 10분씩 늦게 오는 놈인지라-
“다음이라고! 귀 먹었어!?”
잔뜩 날이 설 수밖에 없다.
그는 통행증을 확인하곤 짐칸을 살폈다. 온통 짚단밖에 없다. 그는 긴 꼬챙이를 들어 힘차게 꾹꾹 쑤셔 댔다. 사람이 숨어 있다면 죽을 수도 있는 힘이었다.
마차 주인은 걱정스레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못 참겠다며 슬쩍 다가와 그의 손에 동전을 쥐여 줬다.
“그, 일도 고되실 텐데 그만 찌르시지요.”
“어허? 이것 보소?”
“밀이 조금 있습니다. 저번에 수확이 잘 되어서 남는 게 있었거든요. 전시다 보니, 예.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려면, 아시잖습니까.”
수도에는 돈 많고 겁 많은 자들이 넘쳐났다. 음식이며 보석이며 전쟁을 대비하여 죄다 끌어모으고 있었으니. 그런 자들에게 비싼 값을 불러 팔려는 속셈이다.
쯧! 심사관은 혀를 대놓고 차 대면서도 꼬챙이를 거두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썩 꺼져. 다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식의 용돈 벌이가 없었으면 진작에 때려치웠을 일. 심사관은 심드렁하게 깃발을 들어 올리며 다음 마차를 앞으로 불렀다.
끼이익.
“통행증.”
“여기 있습니다.”
“상단이시네? 그쪽이 상단주?”
“예예…….”
몇 번 이름 들어 본 적 있는 상단이었다. 통행증에도 별문제 없…….
“어허.”
심사관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용돈 벌이 한 번 더 하게 생겼군!
“통행증 직인 날짜가 개정법에 걸리는데. 이때 발급받은 사람들은 자국신분증서를 같이 내야 하거든. 있나?”
“자, 자국신분증서요?”
“있냐고.”
돈, 있냐고, 인마! 한두 번 하는 짓도 아닌데 어설프게 왜 이래? 바로 있다고 능청 부리며 돈을 건네줘야 할 거 아니야?
심사관은 짜증스럽게 그를 쳐다봤고, 이내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근데 얘들 얼굴 왜 이래?”
마부고 옆에 탄 상단원들이고, 하나같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노예 관리가 좀 소, 소홀해서 매질 좀 했습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그, 자국신분증서는 없는데, 대신 이걸 좀…….”
“어허! 아잇!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크흠.”
그는 동전 꾸러미를 잽싸게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마차 뒤쪽을 가리켰다.
“확인 좀 해 보겠네.”
“그러십시오. 노예 놈들밖에 없지만요.”
“그건 두고 볼 일이지.”
노예 상단 놈들은 노예 몸에다가 밀수품을 반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돈주머니 묵직한 걸 보아 거기까지 계산해서 쳐준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크흠.”
그는 마차 뒤쪽 창문을 통해 안을 살폈다. 하나같이 축 처진 몸으로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노예들. 하나, 둘, 셋, 넷…. 그는 머릿수를 세며 중얼거렸다.
“저어기- 분홍 머리는 눈깔이 맛 갔군. 저런 걸 팔면 문제 생길걸? 크하핫!”
“…이 쉬벌 색…….”
“음?”
잘못 들었나? 심사관이 웃음을 뚝 멈추며 안을 꼼꼼히 살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이놈의 과로 때문에 헛것을 들었나.
그는 목을 긁적거리더니, 몸을 돌리려고 했다. 통과시켜도 되겠다 싶었던 게다. 우연히 한 남자아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오호.”
남루한 차림새에 먼지투성이였지만 미모가 상당했다. 금발에 반짝거리는 녹안이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았다.
그는 상단주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놈들, 다 들어가자마자 팔 건가?”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니, 문제는 아니고. 시장님 따님께서 요즘 많이 적적해하신다는 말을 들었거든. 괜찮은 놈이 있는 것 같아서.”
“아, 저기-”
상단주가 당황하여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에 심사관은 뇌물로 받았던 동전 꾸러미를 다시금 꺼내며 제안했다.
“이걸로 사면 안 되려나?”
“그…….”
심사관이 싱글싱글 웃으며 제안했으나, 상단주는 난처한 낯으로 굳어 버렸다.
그는 모를 것이다. 그의 뒤쪽, 마차에 들어선 자들이 모두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이고 있다는 걸.
‘…젠장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