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6
제736화. 리본
바누사는 녹슨 문손잡이를 당기며 건물 안쪽을 살폈다. 가문에서 관리하는 곳이긴 했다만, 워낙에 수도 외곽인지라 손길이 자주 닿지는 않았다.
곳곳에 먼지가 가득하고, 알 수 없는 용도의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관리인이 누구더라? 바누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끼이익.
안쪽 문을 연 바누사가 멈칫거렸다. 흰 먼지 위로 흔적이 나 있다. 그녀 외, 건물에 먼저 들어선 손님이 있다는 뜻이다.
뒤로 이어진 출입구가 있었나? 들어온 자국은 있는데, 나간 자국은 없다. 뒤쪽에 출입구가 없다면 손님은 아직도 이 건물 어딘가에 있다는 뜻.
바누사는 언제든 물로 변할 준비를 하며 복도로 들어섰다. 누군가의 발길을 따라서, 조심히, 또 은밀히…….
벌컥!
“꺄아아악!”
문을 열어젖히자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에 바누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다가 말았다. 공격성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는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떠는 소년 소녀들을 자세히 살폈다. 낯이 익다.
“바, 바, 바누사 님?”
태어날 때부터 가문에 소속되어 함께해 온 시종들이었다.
바누사와 달리, 그들은 주인을 바로 알아보았다. 빛이라고는 낡은 커튼 뒤로 희미하게 비치는 작은 햇살뿐이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바누사 님!”
“너희…….”
아이들은 그녀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마산타르 신전으로 떠난 다음에는 짤막한 소식도 듣지 못하여 걱정이 컸던 차다.
“무사하셨군요!”
“다들 왜 여기 있는가? 저택에 있지 않고?”
아이들은 모두 바누사의 허리에 매달려 눈물을 글썽거렸다. 짧은 침묵 속에 참으로 많은 사정이 담겨 있었다. 개중 키가 제일 큰 아이가 일렀다.
“왕궁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정령술사 가문의 사람이라면 정령을 다루는 것과 관계없이 모두 왕궁의 일을 거들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먼저 왕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뭐?”
바누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인가? 가문에 종속된 인원들은 명백히 가문의 사유재산이었다. 그런데 왕궁의 명으로 차출? 바누사는 황당하여 머릿속이 백지처럼 변했다.
“소가주님께서 정령술사들만큼은 절대 보낼 수 없다 강경 대응했지만 무리였나 봅니다. 하여 가문 대부분 사람들이 왕궁으로 불려 갔습니다. 그나마 저희들은 소가주님의 안배로 이리 외곽으로 숨어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요…….”
소가주라 하면 바누사의 동생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이번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외부에서 충당하려는 왕궁의 계책임이 분명했다. 특히 가주가 마산타르로 떠나 있는 바누사의 가문은 더더욱 먹음직스러웠겠지.
“다른, 다른 가문들은?”
“부, 불의 가문은 저희와 상황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온 뒤로는 소식을 알 길이 없는 터라…….”
“미치겠군.”
바누사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그만큼 왕궁 내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 물자 수급을 빌미로 각 가문들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일까?
이를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대신들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말 왕궁의 사정이 좋지 않다면, 가까운 대신들의 곳간부터 털었을 테니. 내놓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는데, 버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혹, 가문을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라면…….’
아이들을 숨긴 행위만으로도 왕궁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바누사는 한숨을 깊게 삼키며 아이들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뭐라도 좀 먹-”
쿠웅! 쿵쿵!
뭐라도 좀 먹었는지 물으려는 찰나, 바깥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놀란 아이들이 몸을 움츠렸고, 바누사 또한 긴장하여 검을 빼 들었다.
“바, 바누사 님!”
“괜찮다.”
올 손님이 또 있어. 바누사는 문고리를 조심스레 잡고서 숨죽였다. 지금 몇 시더라? 바리엘 마법사들이 심사대를 통과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 아닌가?
그들이 아니라면 빌미를 잡기 위해 왕궁에서 파견한 조사단일 확률이 컸다. 왕궁의 명을 거역하고 인력을 은닉한 죄를 묻기 위한.
‘조사단이라면, 벤다.’
바누사는 그리 결심하곤 물었다.
“…누구시오?”
“그러게 말입니다. 아르토르라는 작자가 누구요?”
“뭐?”
뜻 모를 개소리였다.
바누사는 여기 찾아올 사람 중 헛소리를 지껄일 위인은 마법사밖에 없다고 여겼다. 하여 경계를 풀고는 문을 확 열어젖혔다.
역시나 거지꼴의 마법사들이 반쯤 넋 나간 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르토르가 누군데 시발, 우리 이안 님을…….”
“이안 님이 단돈 은화 3닢에… 아니, 참 나. 금화도 아니고, 이거 분해서 못 살겠습니다.”
“아르토르 딸은 좋겠다. 선물로 이안 님도 받고…. 이게 바로 혈통 차이라는 건가.”
“다들 정신 좀 차리십시오. 이안 님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나 참, 누가 보면 진짜 팔려 간 줄 알겠네.”
“진짜 팔려 갔잖아! 목에 리본까지 맸다고!”
“에이, 아닙니다. 그건 국경수비대원이 대충 한 말이죠.”
“믿어? 그걸 믿어?”
“아니, 그러면 이안 님 돌아오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잠깐-!”
바누사는 제발 좀 닥치고 지금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듯 벽을 가볍게 내려쳤다.
그녀의 행동에 미친 듯이 시끄럽던 마법사들이 일순 동작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여기도 먼지 구덩이네. 마차 안도 장난 아니었는데.”
“바누사. 여기 옷 남는 것 있나? 조금만 있으면 가랑이 뜯어질 것 같아서.”
“뭘 또 달라고 해? 알아서 찾아 입지.”
“어? 웬 애들? 바누사, 네 자식들인가?”
“설마. 바누사, 애 있었어?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아니, 이보십시오들!”
바누사가 문을 걸어 잠그며 다그쳤다.
“그래서, 이안 경이 뭐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설명 좀 해 보세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팔려 갔어.”
* * *
‘기지를 발휘해!’
‘목에 달린 그거, 대가리라면 굴려 보란 말이다!’
‘시발, 왜 하필이면 이안 님을!’
‘꼴에 안목은 있어. 그렇지?’
‘지금 그딴 말 할 때냐?’
‘차라리 아코렐라 대장을 데려가지.’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마법사들은 시선으로 그런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이안을 사겠노라 이르던 심사관은 은화 세 개를 짤랑거리며 상단주를 쳐다봤다.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이.
“왜 그런가?”
“아, 그것이-”
상단주는 마법사들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노예 매매 경력 23년. 그간 별의별 고객을 다 만났다. 물론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 대가리를 터트리려는 마법사들은 처음이었지만, 팔지 않는 것을 사겠노라 이르던 고객은 아주 많았다.
“죄송합니다. 저분, 아니, 그러니까 이놈은 팔 수 없습니다.”
“어째서? 들어가자마자 팔 거라며.”
“그, 이미 선수금이 걸려 있는 놈이라서요.”
“뭐? 이런.”
곱상하니, 선물로 주었다 하면 누구든 좋아할 만한 놈인데. 심사관은 연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이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다! 미련을 떨치지 못한 심사관은 철장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서 이안에게 물었다.
“저 말이 진짜인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이고! 젠장할! 목소리도 좋군!”
심사관이 이마를 쳐 대며 연신 한탄스러워했다. 그에 혹여 다른 놈들 달라고 할까 봐, 상단주는 그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
“제가 배가 좀 아파서 그런데, 그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근데 선수금이 얼만데?”
“그, 금화 한 닢입니다.”
“오? 미색에 비해 너무 싼 것 아닌가?”
“그게, 선수금인지라…….”
“아아. 그렇구만.”
심사관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가 통행증에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누구?”
누군가가 심사관에게 손을 내밀어 저지했다. 그의 상관이자 출입국 심사 총책임자인 메르였다. 심사관은 깜짝 놀라며 경례했다.
“심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교대자가 사정이 생겨서 내가 대신 왔다.”
“헉.”
시발. 퇴근은 글렀네. 심사관은 속으로 절망하며 올라오는 욕설을 삼켜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르는 마차 뒤쪽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누굴 보고 그렇게 얘기한 거… 아아. 쟤구나? 금발에 녹안. 와아, 신기하네. 진짜 예쁘다.”
메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에 심사관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언제나 저기압이 기본인 잔데, 저런 식으로 반응을 보일 때면 늘 귀찮은 일이 생기곤 했으니. 새 위협을 감지한 상단주 또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서, 누가?”
“예?”
“누가 선수금 걸었냐고. 금화를 선수금으로 낼 정도면 지금 도시에 몇 없는데.”
“아, 그것이…….”
누구라 하지? 누구를 말하든 저자와는 이미 아는 사이 아닐까? 상단주가 머리를 굴리자, 메르가 싱긋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러지 말고, 서신 하나만 써 줘. 그 선수금 돌려주겠다고.”
“…예?”
“대신 우리가 낼게. 저 아이 이쪽으로 넘기자. 응? 애가 너무 괜찮네. 안 그래도 요즘 아르토르 님 심기가 참 안 좋아서 걱정이었거든. 선물로 드리면 정말 좋아하실 거야.”
그러고서 상단주의 통행증을 가볍게 흔들어 댔다.
고도의 협박이었다. 저놈을 넘기지 않으면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네놈들은 선수금을 떼어먹고 잠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지고, 더불어 다른 노예들을 처분할 기회도 잃게 될 거라고.
“도시의 어지간한 자들은 모두 내가 알고 있으니까, 후환 걱정할 것 없어.”
“아…….”
저 아이를 내주지 않으면 입국 금지라. 상단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차 안쪽을 힐끗 쳐다봤다. 어찌하면 좋을지 마법사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흐음.’
상황을 지켜보던 이안이 성가시다는 듯 작게 한숨 쉬었다. 여기서 막히면 안으로 들어갈 길을 찾는 데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들어가고 나서 다음을 강구하는 게 맞겠지.
마법사들을 바누사에게 합류시키고, 자신도 ‘일단’ 팔린 다음 도망쳐 오면 될 것이다. 마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문제 될 게 없다.
까딱.
이안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면서 이럴 수는 없다고 눈빛을 쏘아 댔지만, 이안은 꼼짝하지 않았다. 최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 그게, 지, 지금 생각해 보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수금 같은 건 제 선에서 처리하도록 하지요.”
“그래도 되겠어? 너무 미안한데.”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메르는 생글생글 웃으며 상단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상단 하나를 파산시키려 했으면서…….
“…아닙니다. 괜, 괜찮습니다.”
“고마워라. 그럼 보답으로 다음부터는 출입 심사 편의를 봐줄게. 줄 무시하고 바로 앞으로 와. 잔돈 챙길 필요도 없어. 어때? 좋지?”
“가… 감사합니다.”
“자아, 이제 마차 열고 예쁜이 꺼내자.”
“아, 네넵!”
메르의 지시에 심사관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이안은 순순히 심사관의 손을 잡고서 마차에서 내렸다.
마법사들 모두 침묵 속에서 절규하며 이안에게 손을 뻗어 댔으나, 몇몇 정신머리 있는 마법사들이 이를 꽉 깨물며 그들을 제지했다.
“이놈 목에 걸 리본도 준비할까요?”
“그럴까? 그럼 최대한 귀엽고 예쁜 걸로.”
얌전히 따라나서던 이안은 흠칫했다.
“…….”
…리본? 얼핏 스쳐 가는 이안의 옆얼굴에서 짙은 후회가 얼비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