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8
제738화. 돌려줘
“아리스, 너는 운이 좋구나.”
아이는 언젠가 아버지가 그리 이르는 걸 들은 적 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빈민굴의 쓰레기를 이불 삼아 덮었을 텐데. 주린 배를 부여잡다 눈물과 함께 썩은 것을 입안에 밀어 넣었을 텐데.
시장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리스, 모두 네 언니 덕이란다.
“고마워하고 있어.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아이는 장난감 의자에 걸터앉아 턱을 괴었다. 도톰한 볼살이 볼록하게 올라오며 움직이는 것이 퍽 귀엽다. 정작 본인은 진지한 말을 하느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지만.
“한 번도요?”
“응. 지금은 왕궁에서 살고 있는데, 그리 보낸 뒤에는 아버지도 본 적이 없대. 원래 왕궁 신하들도 보기 어렵다 하더라고. 귀하신 분이니까.”
“그렇군요.”
멀리서 다가오던 시종이 잠시 멈칫거렸다. 아이가 놀면서 다과를 즐길 수 있게 간식거리를 쟁반에 받쳐 오고 있었는데, 예상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던 게다.
아이는 장난감 의자에, 그리고 노예는 탁자 끄트머리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리스 님!”
“오! 쿠키다!”
“괘. 괜찮으십니까?”
“뭐가?”
“아니, 말놀이를 좋아하시잖아요.”
근데 왜 안 놀고… 뭐랄까, 선생과 제자처럼 이리 앉아 있답니까? 시종이 의아해하자, 아리스는 쿠키를 와그작 깨물며 대답했다.
“가족놀이 중이거든!”
“저기-”
혹여 아이의 설명을 오인해 헛소리를 보고하면 귀찮아진다. 이안은 아리스의 말을 한 손으로 가볍게 끊으며 시종에게 부탁했다.
사라락! 순간 바람이 불며 이안의 머리칼을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반짝거리는 금발 위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지금 놀이에 집중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살다 살다 노예가 저런 말 하는 걸 다 듣고… 어이가 없군. 시종은 분명 그렇게 생각했으나 막상 행동은 따로 놀았다.
“미안합니다. 아가씨,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부르세요. 저쪽에 있겠습니다.”
“그래!”
“그, 그럼. 수고하세요오.”
시종은 이안에게 가벼이 눈짓으로 인사한 다음 뒤쪽으로 총총 달려갔다.
다른 시종들이 무슨 일인지 쑥덕거리며 물었으나, 그녀는 당최 알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저 메르 심사장이 어디서 진짜 물건인 놈을 데리고 왔다며 속삭일 뿐.
“계속해 보시죠.”
“근데 이게 가족놀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더욱 실감 나는 놀이를 위해 구체적인 역할 정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흠. 그런가?”
이러나저러나 시간 보내는 건 마찬가지니까, 뭐. 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아까 하던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언니가 왕이 될 걸 알고 있었대.”
“왕이 될 걸 알고 있었다니요?”
“언니의 친엄마, 그러니까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언니를 가졌을 때 꿈을 꿨다 하더라고.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가 와서는 아이를 잘 기르라고 했다나 뭐라나.”
범상치 않은 태몽이라고, 첫째 부인은 좋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헛소리라 치부하였고 막상 태어난 쿠마샤를 보고서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단다.
백색에 가까운 피부, 그리고 흰 머리칼. 어린것이 어찌 노인의 머리칼을 지니고 태어났단 말인가? 게다가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는 또 어떠하고.
“재수가 없어서 팔아 버리려고 했는데, 첫째 부인이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서다가 넘어져서 죽었대.”
아이의 음성은 단조로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온 구전동화를 이르듯이. 이안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아이는 남은 쿠키를 모조리 입에 넣었다.
“그래서 언니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아버지랑 같이 거리를 떠돌았다 하더라고. 손에 뭔갈 쥘 수 있게 됐을 땐 깡통 들고 구걸하면서 하루를 보냈대. 밤에는 술집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싸구려 사탕 팔았고. 그러다가 딱! 운명의 날이 온 거지.”
바로 차기 쿠마샤를 찾기 위해 빈민굴을 찾았던 대신들 눈에 든 것이었다.
아이는 예언이 이르는 조건에 부합했다. 외적인 것은 물론이었고, 워낙에 험하게 굴렀던 터라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평정심이나 아이답지 않은 기개 따위가 특히 그랬다.
시장은 언제나 그 순간을 모험담처럼 털어놓았다.
“짜릿!”
아리스는 아비의 몸짓을 따라 부르르 떨며 이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해서, 선 채로 기절하는 줄 알았대. 진짜 웃기지?”
“…네. 그렇네요.”
이안은 그리 대답하며 쿠마샤의 생모가 꾸었다는 꿈을 되새겼다. 커다란 물고기라. 마침 마산타르에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보고 온 터인데. 참으로 절묘하지 않나?
이안이 손끝으로 턱을 문지르자, 아이는 눈을 샐쭉하게 떴다.
“왜? 왕궁 구경하고 싶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시장에게 부와 권력을 내어 준 것도, 아르시 곁에서 언제나 웃음과 칭찬을 흘려 대는 것도 모두 결국에는 왕궁에 닿기 위함이다.
아리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그걸 깨달았다. 사실 본능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는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 돼. 넌 이제 내 거니까!”
아리스가 씨익 웃자, 이안도 따라서 희미하게 웃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아마 마법사들이 옆에 있었더라면 아주 뒤집혔을 것이다.
아이는 알지 못하겠지. 지금 자신이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안은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이내 눈높이를 맞췄다.
“바깥은 곧 전쟁이라고 시끌벅적합니다. 왕궁에서 아무 연락도 없었습니까? 귀하신 분의 핏줄이니,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 할 것인데요.”
“음. 글쎄에.”
아이가 눈알을 빙글 돌려 댔다. 누가 보아도 거짓말하는 자의 시선 처리다. 이안은 ‘정말?’이라는 뜻으로 눈썹을 까딱거렸다.
“제가 아리스 님의 것이라면 저도 갈 곳이니, 미리 알아 두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정말?”
“예. 그럼요.”
“…비밀로 해야 해. 아버지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거든.”
아이는 이안의 귀에다 속삭였다. 천금과 같은 비밀을.
“왕궁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대. 그게 북산(北山)으로 이어지는데, 거기에 예로부터 토올룬 왕궁에서 관리하는 비밀 요새가 있다 하더라고. 여차하면 그쪽으로 가긴 할 거래.”
“아하.”
북산에 비밀 요새라. 지하로 이어져 있다면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로다. 왕궁 아래를 타고 올라가 추격하는 길밖에 없다.
이안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태몽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지하신의 점지를 받고 태어난 자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이전의 쿠마샤들도 알게 모르게 지하신의 흔적을 받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의 쿠마샤 대에 이르러서 힘이 완성된 걸까.’
이안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리스는 그런 이안을 두고서 장난감 상자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가발과 앞치마 같은 것을 갖고 나왔다. 이게 뭐지? 이안이 의아히 쳐다보자, 아리스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가족놀이! 네가 엄마해. 내가 아빠할게.”
“…안 됩니다.”
“엥? 그럼 네가 아빠할래?”
“아니요. 가족놀이는 잠시 보류입니다.”
“그런 게 어딨어!”
아리스가 소꿉을 바닥에 팽개치며 울먹였다. 뭔 놈의 노예가 말타기도 안 돼, 가족놀이도 안 돼? 하나… 둘… 셋-!
“으아아앙!”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던 아리스가 우렁차게 울어 젖혔다. 두 다리로 똑 부러지게 서서는 고개는 하늘을 바라본 상태다. 사실상 기합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를 좀 보아 달라는 뜻에서는.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늘 아래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시종들이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놈이 말타기도 안 된다 그러고, 크흑, 가, 가족놀이도 안 된다고 하잖아! 재미없어!”
“이게 미쳤나,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몽둥이 찜질 좀 맞- 아니다. 괜히 얼굴에 상처 나면 혼날 것 같네.”
“이 자식, 이럴 줄 알고 막나가는 거 아냐?”
“뭘 봐? 어서 무릎 꿇고 아리스 님께 잘못했다 빌어! 주인님이 보시면 정말 죽어 나갈 게다!”
시종들이 돌아가며 윽박을 질러 댔지만, 이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직 이것저것 확인할 것이 많은데,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싶었던 게다. 하늘을 막고 있는 것도 없으니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다.
시종들은 어쩐지 꺾이지 않는 이안의 기세에 쉬이 다가가지 못했고, 아리스 또한 당황하여 우는 것도 까먹은 채 말똥거렸다.
“이, 이게 끝까지-!”
보다 못한 시종 한 명이 주춤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얼굴 반지르르한 것만 믿고 건방지게 구는 것들에게는 매질이 약이니.
그가 이안의 볼을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쿵! 쿵쿵!
“다들 모여!”
저택 안쪽의 부름에 시종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 인기척 같기도 하고, 뭔가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때마침 저택 복도를 뛰어가던 다른 시종들이 정원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모이라니까, 뭐 해! 아리스 님은 어서 방으로 모시고!”
“아, 알겠습니다!”
“너 이 자식, 운 좋은 줄 알아.”
“이놈은 어떻게 하지요?”
“아리스 님. 계속 데리고 노실 겁니까?”
시종들의 물음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짜증 나긴 해도, 계속 옆에 두고 싶은가 보다.
시종들은 둘로 나뉘어 한쪽은 아리스를 방으로 데려갔고, 나머지는 복도를 뛰어가 본관 출입문 쪽으로 달려갔다.
타닥타닥!
“그런데 무슨 일이래?”
“모르겠습니다. 꼭 여기 방 안에만 계십시오.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시종은 그리 이른 다음, 아리스와 이안을 방에 남겨두곤 다시 돌아 나갔다.
이안은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성큼성큼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커튼 틈으로 구름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헤엑. 왜들 저렇게 몰려왔어?”
그들이 들고 있는 건 대부분 농기구나 막대기. 도시에 사는 일반 주민들이었다.
전쟁 탓에 물가는 오르고 살기도 팍팍해져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현 상황, 검문소의 횡포가 소문으로 퍼지자, 듣다 못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었다.
“메르 심사장은 나오시오! 세상에, 선수금 걸려 있는 물건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낱낱이 해명하시오!”
“예, 맞습니다! 심사대 오가는 상인들이 없으면 우리는 굶어 죽을 건데,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안 되지요! 시장도 옆에서 그럴 게 아니라 해명하시오!”
“귀족도 아니면서!”
“아니, 그건, 수정하게. 시장은 왕의…….”
“아, 그렇군. 심사장은 귀족도 아니면서!”
“뭐 어떻습니까. 솔직히 시장도 왕의 아버지라 하지만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지 않습니까!”
“옳소! 심사대에서 상인 죽이기, 그만하시오! 이러다 진짜 우리 다 죽습니다!”
선수금 걸린 물건이라 하면, 바로 이안이었다. 대체 어쩌다 소문이 저리 빨리 돌았을까. 이안이 의아해하던 차였다.
“……?”
이안은 무리 속에서 낯익은 자들을 발견했다.
“돌려줘라! 십새끼들아!”
“우리 이안, 아니, 아무튼 돌려줘라!”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꼬우면 나와서 얘기해라!”
로브로 얼굴을 엉성하게 가린 마법부원들이었다. 저런 것들은 또 어디서 구했는지, 하나같이 삽과 낫 따위를 들고서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었다.
“…….”
그 하찮은 광경에 이안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