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39
제739화. 허튼짓
“아. 시장.”
바누사는 이안을 데려갔다는 곳이 시장 측이라는 걸 알고 상당히 난감해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된단 말인가.
그녀가 말끝을 잇지 못하자, 여기저기 뒤져 대던 마법사들이 시선을 모았다,
“왜 그래?”
“그게, 여기 시장은 좀 특별한 자다.”
“특별해 봤자 시장 나부랭-”
“왕의 아버지거든. 생물학적으로.”
“엥!”
다들 놀라서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관계 아닌가.
하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왕에게도 부모는 있을 터. 그 후광을 업고 한자리 차지한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왕이 인형술을 다룬다는 것.
“여,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닙니다. 왕의 아비라면 분명 왕과 연결되어 있을 건데요. 바로 들킬 겁니다.”
“예, 맞습니다. 대장. 개고생하면서 숨어들어 왔더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네요.”
“이안 님 위험한 거 아닐까요?”
“가 봅시다! 당장-!”
마법사들이 뛰어나가려는 걸 바누사가 막아섰다. 헤일과 아코렐라도 마법사들을 진정시키며 가만히 있어 보라 지시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토올룬의 수도, 적진 한복판이다. 왕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니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허공에서 갑자기 날아드는 바늘과 같은 공격을 막아 내느라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것이니.
“이안 님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그래. 이것들아. 이안 님이 어떤 분인데.”
“그,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몸을 돌려 나오셨을 게다. 늦는다면 오히려 접근할 만한 가치가 있다 판단하신 거겠지. 뭐가 되었든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거거든.”
“호옥시. 호오옥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신 것이라면요? 그래서 저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상황 보고, 그때 가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누차 말했지? 이안 님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가도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 거라고.”
현실을 깨우친 마법사들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위험하다면, 사실상 그들이 도울 일은 몇 없다.
바누사는 시선을 모으기 위해 가볍게 박수 치며 일렀다.
“자자. 너무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시장은 인형술에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걸 어찌 확신하십니까?”
“친부이긴 하지만, 왕궁에 들어선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비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누사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녀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뱉어 냈다.
“왕은 아비를 지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자세한 것은 모르고 그저 저의 추측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은 하지 말아 줄래?”
“그 정도로 쓸모없는 정보는 아닐 건데요. 그러니까 이안 경도 저택에 들어서기로 결정한 걸 겁니다.”
흐음. 마법사들은 한데 앉아서 머리를 맞대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저택의 동태를 살필 수 있을까.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택 내의 일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그 정도는 기다리십시오.”
“안 돼!”
마법사들이 그리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누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 보니까 이것들…….
‘이안 경을 걱정하는 게 아니네.’
뭐랄까,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이안에게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걱정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이제는 ‘노예로 팔려 간 이안의 상태’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 망할 리본 같은 거.
바누사는 뭐라고 하려다가 관뒀다.
‘생각해 보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단 말이지. 직속상관이니 그간 감정이 얼마나 많이 쌓였겠어. 이런 식으로 수모를 푸는 것도 뭐… 인간적이군.’
바누사는 의자에 기대앉으며 물었다. 다들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이제 어떤 식으로 나갈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하면 이안 님한테 나중에 혼나지!”
“그럼 어쩌라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거다, 멍청아!”
“누가 누구보고 멍청이래?”
하나같이 목소리만 크게 내고 있다는 게 조금 그렇지만.
하나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바누사 입장에서는 괜찮은 선택지였다. 괜히 밖으로 나가서…….
“밖으로 나가서-”
그때, 가만히 팔짱을 끼고 고심하던 아코렐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까딱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이다.
“우리 여기로 옮긴 노예 상단 놈들 있지? 걔들 찾아서 데리고 와.”
“그다음엔요?”
“우선 존나게 패.”
“헉.”
마법사들이 각자의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했다. 정상적인 방식일 거라곤 기대 안 했지만, 상상 이상이지 않나? 마법사 안 됐으면 분명 어느 뒷골목 건달 노릇 하고 있었으리라.
아코렐라는 뭘 그리 놀라는지 모르겠다며 싱긋 웃었다.
“물건 판 놈이 인사 박으러 가는 건 자연스럽잖아. 하자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차 왔다고 하면 되지.”
“그걸로 되겠습니까?”
“안쪽으로는 그렇게 하고, 바깥쪽으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지. 왕의 친부라곤 해도 우선은 시장이잖아? 영주도 아니고, 시민들의 신임을 먹고 사는 공무원 나으리.”
치익. 아코렐라는 연기를 막힘없이 술술 불어내며, 담배를 앞니로 꽉 깨물었다.
“밖에서는 또 딸랑딸랑 뒤집어 주면 되지.”
“아코렐라 님. 사실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보니까 검문이 아니라 그냥 강탈하던 수준이더만. 이러다 상인들 뚝 끊어지면 잘 먹고 잘사는 놈들 빼곤 전부 다 굶어 죽는 거, 알지?”
“그, 그렇긴 합니다.”
“아래에서는 바리엘이 밀고 들어오는데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뇨.”
쓸데없이 당당한 대답에 아코렐라가 픽 한숨 쉬었다.
“상단들 전부 철수했다고, 앞으로 이쪽으로는 얼씬도 안 할 거라고 소문내.”
오? 마법사들이 마주 보며 입을 헤 벌렸다. 그럴싸한 방법이라면서.
“그런데 누가요?”
“예로부터 떠드는 건 애들이 잘하더라.”
아코렐라가 씨익 웃으며 구석을 쳐다봤다. 바누사 가문 아이들이 멍하니 아코렐라의 말을 듣다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저, 저희가요?”
“그래. 우리 아가들이 좀 가 볼까?”
“왜, 왜요.”
“저희 들키면 큰일 나는데요!”
“맞아요. 꼭꼭 숨어 있으라고 했어요.”
그러자 아코렐라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아잇. 괜찮아요, 괜찮아! 평생 숨어 있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그런 걱정은 아무 의미 없어요. 안 그래, 바누사?”
바누사는 한숨과 함께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묻어 두고 찬성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자 아코렐라는 생각을 뒤집어 보라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왕궁 무너트리는 것만 능사는 아니거든. 네 나라 제대로 엎어서 갈아 버리려면 바깥부터 작업 치는 게 좋아. 특히 시장이 왕 아비라며? 말 다 했지. 안 그래?”
냉정하게 맞는 말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 이런 중대한 상황에 고사리손이라도 보태야 함이 옳았다.
바누사가 반쯤 마음을 먹고 돌아보자, 아이들도 그 의지를 눈치채곤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분홍 머리 여자의 명령 따위는 한 귀로 듣고 흘리겠지만, 가주인 바누사의 명령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따르리라!
“괜찮겠니?”
“…네, 가주님! 맡겨만 주세요!”
“그래. 고맙다.”
아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고, 이에 아코렐라가 마법사들에게 고갯짓했다.
“뭐 해? 너희는 안 가?”
“예?”
“상단 놈들 다시 잡아 오라고. 콱!”
“아! 네네!”
타닥타닥!
아마 지금쯤 마법사들에게서 겨우 벗어난 걸 축하하며 서로를 다독이고 있을 게다. 근데 미안해서 어째? 아직 안 끝났는데? 두 눈에 불 밝힌 듯한 마법사들마저 뛰쳐나가자, 아코렐라는 계단 아래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음. 좋은 거 많네.”
삽, 곡괭이, 빗자루 등. 잡다한 생활 도구들이 가득했다. 아코렐라는 빗자루 하나를 집어 든 채로 높이 손을 뻗었다.
“시위할 시간이다!”
* * *
‘왜들 저러고 있을까.’
마법사들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계속 구호를 외쳐 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금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바리엘에서는 해 볼 수 없는 일이니까.
이안의 한숨을 눈치챈 아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무서워?”
“예. 무섭네요.”
여러모로, 제 부하들이.
아리스는 깔깔 웃으며 이안의 팔을 감싸 잡았다.
“괜찮아! 여긴 안전해! 저런 놈들은 아버지 명령 한마디면 바로 납작 엎드려서 아무것도 못 하거든!”
아이의 반응은 순수했고 그만큼 영악했다. 태어나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저런 것이니 어쩌겠나.
아이의 말을 증명하듯, 저택 앞쪽으로 시장의 병사들이 열 맞추어 몰려나왔다. 그들은 창을 겨누며 경고했고, 시민들은 해칠 의도가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이보십시오! 우리의 말을 들어 달라는 겁니다!”
“그런 놈들이 이딴 식으로 몰려와서 행패를 부려?”
“네놈도 결국에는 우리와 같은 처치면서! 너무하군!”
“이곳은 시장님의 저택이다! 더러운 뒷골목 바닥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오? 나라의 제일 윗분도 가장 어두운 곳에서 태어나셨거늘!”
“닥쳐라!”
퍼억! 퍽!
소란은 결국 충돌로 이어졌다. 어깨를 가볍게 밀치는 게 신호탄이었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모르게 섞여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열을 올려 댔다.
아리스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보며 열심히 발을 굴려 댔다.
“우와! 싸운다! 진짜 싸운다!”
그때, 소란을 피해 저택 뒤쪽으로 돌아 들어오는 마차 한 대.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이안은 거기에 특이한 움직임이 있음을 알아챘다.
힐끔, 아리스를 살폈으나, 창밖으로 작은 장식장 따위를 던지며 소리를 질러 대고 있을 뿐이다.
‘더 알아낼 건 없을까.’
아이를 통해서는 무리일 것 같고, 굳이 턴다면 아비인 시장 쪽을 보는 수밖에.
이안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창문 밖에 시선을 빼앗긴 아리스는 이안이 나가는 것도 모른 채 연신 흥분하여 방방 뛰어 댔다.
우드득.
애를 보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군. 진은 어렸을 때 안 저랬는데 말이다. 참으로 조용하고 의젓한 어린이였건만.
타닥타닥!
그때였다. 복도를 가로질러 가던 한 남자가 되돌아와서는 이안 쪽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동시에 알아봤다.
“그-!”
“자네는?”
마법사들을 도왔던 노예 상단주가 아닌가. 얼굴이 푸르딩딩하여 심하게 부어 있었지만, 이안은 단박에 알아봤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이안에게 속삭였다.
“별일 없으십니까?”
“…없지. 그런데 자네는 별일 있는 것 같군.”
“말도 마십시오. 무슨, 하아.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제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길거리도 제대로 못 걸어 다닐 것 같습니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 별로 관심 있지는 않아.”
“…….”
역시 미친 자들의 대장이로군. 상단주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일렀다.
“마법사들이 대장님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아보라며 저를 보냈습니다. 가능하면 거래를 철회하는 쪽으로 할 것인데, 쉽지는 않겠습니다.”
“거래 철회라…. 그렇겠군. 하자가 없으니.”
“…예예. 뭐. 그렇네요. 전달하실 말씀이 있다면 하십시오. 제가 빠짐없이 이르겠습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틀어 상단주의 귀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댔다.
“오늘 밤중으로 저택을 불태울 것이다. 왕궁 쪽으로 보내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니, 마법사들은 그리 알고 대기하라 전해. 제발 허튼짓하지 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