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0
제740화. 공평
“시장님. 왕궁에서는 따로 연락이 없습니까?”
메르 심사장은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시장은 언제나 왕에 대해 떠벌리기를 즐겨 했으나, 막상 왕궁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떠보아 물어보는 것은, 지금이 전시이기 때문이다.
바리엘의 대군이 수도 가까이 밀려 올라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그걸 증명하듯 왕궁 내 정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자신들 또한 선택해야 했다.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기회를 잡을 것인지 말이다.
“음. 공사가 다망하시니 바쁘신가 보더군.”
“그렇습니까.”
메르는 겉으로 웃었지만, 속으로는 연신 혀를 차 대고 있었다.
아무리 교류가 없어도 왕은 이자가 시장직에 오르는 것을 묵인했다. 그 말인즉, 마음속 얼마간 아비의 정을 두고 있다는 것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언질을 세심하게 주어 아비의 안전을 위하는 게 마땅할 터인데, 아직도 특별한 반응이 없다라.
‘텄나?’
공들여 갈고닦았는데, 허사가 되는 것인가.
메르 심사장은 다과를 집어 먹으며 잠시 눈을 굴렸다. 아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긍정적인 신호일 수도 있다.
‘안전하니까 별말이 없는 걸까.’
“안 그래도 내 조만간 왕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네.”
“왕궁으로요?”
“자네처럼 충심 깊은 자들이 왕의 안위를 걱정하니, 내가 직접 이것을 전하고 왕께서 무사하다는 걸 보고 오려는 게지.”
“아아.”
메르처럼 하도 옆에서 짹짹거리는 놈들이 많으니 이참에 보여 주겠다, 하는 마음일 터다. 가서 수확이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환영받지 못해도 문제없으리라. 중요한 것은, 왕궁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 그 자체.
메르가 싱긋 웃으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예, 시장님. 꼭 말씀 좀 전해 주십시오. 나라가 뒤숭숭하니, 전하의 의지가 곳곳에 필요합니다.”
“그럼 그럼. 걱정하지 마시게.”
“시간이 늦어졌는데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
“아. 괜찮습니다. 어쩐지 바깥에 소란도 이는 듯하고-”
볼일 다 봤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뭐 하나? 메르가 일어나려고 하자, 복도에서 인기척이 크게 들렸다. 몰려온 시위대를 보고하고자 달려온 시종들이었다.
벌컥!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시장은 시종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서 안색이 희게 질렸다. 이 미천한 것들이 드디어 머리가 돌았나!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무기를 들고 몰려와? 시장은 벌떡 일어나 명령했다.
“불손한 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들이라고 해라! 당장 경비대에 연락해!”
“안 그래도 지금 진압 중인데, 이상하게 시위대가 쉽게 밀리질 않습니다.”
“어째서? 그래 봤자 농기구 든 어중이떠중이들일 것인데.”
사람들 사이사이 마법사들이 숨어들어 힘을 보태고 있다는 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종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렸고, 메르에게 제안했다.
“하여, 밖으로 나가는 게 조금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메르 심사장님은 더더욱이요.”
심사대의 횡포를 그만두라며 외치고 있었으니, 당연지사 그들의 목적은 메르였다.
메르는 난감하다며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곤 웃었다.
“이거, 원. 다들 배가 불렀군. 밖에서는 적들이 쳐들어온다고 난리인데, 안에서 서로 잡아먹으려 드니.”
“그러니까! 어허, 쯧쯧.”
“시장님. 괜찮으시다면 신세 좀 져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빈방이 많다네.”
“감사합니다. 새벽에 잠잠해지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메르는 고개를 까딱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만하면 대충 전달이 끝난 것 같은데 시종은 나갈 기미가 없어 보였다. 시장이 턱짓하자, 우물쭈물하던 시종이 실토했다.
“…그리고, 노예를 팔았다는 상단 놈이 찾아왔습니다.”
“그놈이? 어째서?”
“혹여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하고, 마음에는 드시는지 여쭙고자 한답니다.”
“웃기는 놈이로군!”
의도가 눈에 훤했다. 시장에게 줄 노예라고 했으니, 이참에 자신도 숟가락 좀 얹어 보겠다는 심보다. 시장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되었다. 필요 없으니 돌려보내라. 이래서 날파리들은 안 된다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심사장도 쉬시오.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시장은 그리 말하며 근엄하게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겉에 적힌 글자가 거꾸로 된 것도 모르고서.
메르는 그걸 힐끔 보고서, 이내 공손하게 인사하며 물러났다. 분명히 자신이 나가면 카드 성 쌓기를 계속할 것이다.
끼이익.
메르는 저택을 나와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를 지났다. 손님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띈 인영. 저 멀리, 노예가 홀로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우아하게, 창틀에 상체를 기댄 채로.
‘……?’
저게 어딜 봐서 낯선 곳에 팔려 온 노예 놈의 태도란 말인가. 누가 보면 저놈을 저택의 주인이라 생각할 것이다. 메르는 말이라도 붙여 볼 요량으로 노예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어딜 갔었어!”
“찾으셨습니까.”
“당연하지! 그러고 보니까 아직 네 이름도 안 정한 것 같은데. 세바스찬, 어때?”
“…별로입니다만.”
“그럼 해피는?”
“…….”
갑자기 나타난 아리스가 노예의 팔을 잡아끌며 모퉁이를 꺾어 돌아갔다.
“…….”
메르는 그들이 사라진 곳을 가만 지켜보다가 다시 시종을 따라 손님방으로 들어섰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아리스가 저렇게 마음에 들어 하니 제값은 톡톡히 해 냈다 싶었다.
‘나중에 부탁할 것이 있을 때 슬쩍 아리스 쪽을 이용해 봐도 괜찮겠군.’
* * *
“글자 읽을 줄 알아?”
밤이 되었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리스는 침대에 누워 이안을 불렀다.
아이의 옆에는 동화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딱 보아하니 잠들 때까지 읽어 달라 하려는 듯싶다. 하여, 이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읽습니다.”
귀찮은 일은 애초에 못 한다고 선을…….
…아! 이래서 마법사들이 가끔 그랬던 거군.
“거참, 세바스찬은 예쁜 것 외에 쓸모가 없구나? 어쩔 수 없지. 그럼 내가 읽어 줄게.”
아리스는 그리 말하며 동화책을 혼자 쫑알쫑알 읽어 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이 넌지시 물었다.
“아버지께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아버지에게?”
아리스에게는 감정이 없지만 꼭 해야 할 일이란 게 있다. 마지막으로 아비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안은 그리 제안했다.
아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됐어.”
“어째서요?”
“아버지는 이런 거 싫어하시거든.”
“이런 거라면?”
“귀찮게 하는 거.”
놀이와 보살핌은 언제나 시종들의 몫이었다. 아비는 그저 시간 날 때, 혹은 오가며 마주할 때만 아리스의 이름을 불러 대며 안아주었다.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언젠가 아리스가 함께하자며 조른 적이 있었지만, 아비는 단칼에 거절했다. 공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아버지 없어도 잘 지내.”
“대견하시네요.”
“그럼. 당연하지.”
아리스는 싱긋 웃더니, 그대로 눈을 꿈뻑이기 시작했다. 벌써 밤 10시가 지나가고 있다. 바깥은 완전히 조용해졌고,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얻었던지라 아이는 알게 모르게 진이 빠져 있었다.
색색, 숨소리가 조금씩 커지자, 이안은 문을 열어 둔 채로 방을 빠져나왔다.
“이봐. 아가씨는? 벌써 주무셔?”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램프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책 읽어 달라고 두어 시간은 찡찡거렸을 것인데, 그놈 참 용하다.
시종이 열쇠 꾸러미를 짤랑거리며 이안에게 고갯짓했다. 이제 노예는 노예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바람이 좀 새긴 하는데, 부족한 건 없을 거다. 며칠 지나도 아가씨 흥미가 떨어지지 않으면 더 좋은 방으로-”
지이잉! 지잉!
이안은 고개를 돌리며 시종을 쳐다봤다. 어두컴컴한 복도, 그의 녹안이 순식간에 금안으로 물들더니 빛을 발했다.
놀란 시종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몇 걸음 가지 못했다. 그의 발치에서부터 호박색 물질이 솟아오르며 온몸을 꽉 붙들어 맨 것이다.
“커, 커헉! 헉!”
“쉬잇.”
이안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램프를 가져와 가볍게 입바람을 불었다. 달빛 외, 주위를 비추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게 됐다.
이안은 입을 벌리라는 듯 사내의 턱을 가볍게 잡아당겼고, 이내 이드갈로 재갈을 물렸다.
“소란을 일으키면 죽을 것이다.”
“…읍! 읍읍!”
“불길이 치솟으면 내 힘을 풀 것이니, 아리스를 데리고 밖으로 도망쳐라. 알겠나?”
시종은 공포에 질린 낯으로 이안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데, 콧구멍을 제외한 온몸이 이드갈에 꽉 잠겨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다음 위층으로 향했다. 시장이 묵고 있는 방이 그곳에 있다.
끼이익.
이안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세 명의 시종을 더 만났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둠은 짙었고, 이안의 금안이 빛나는 건 찰나였기에, 그들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으니까.
시장의 방문 앞, 이안은 문틈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을 살폈다.
‘아직 깨어 있군.’
상관없다. 이안은 인기척을 내지 않은 채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러자 낯선 여인과 술을 나누고 있던 시장이 놀라며 잔을 엎어 버렸다.
“헉!”
“어머!”
“이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괜찮으세요, 시장님?”
“어어. 그래그래.”
이안은 주위를 둘러봤다. 특별히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왕의 권세에 빌붙어 겨우 시장직을 차지한 자다. 그림자 속에 숨을 만한 실력자가 목숨을 내놓고 지키지는 않을 게다.
“뭐, 가진 것이 없으니.”
“뭐라는 거야? 죽고 싶은 겐가!”
지이잉! 지잉!
이안은 대답 대신 이드갈로 시장의 몸을 붙들었다. 놀란 여인이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도망쳤고, 이안은 굳이 잡지 않았다.
시장이 꼼짝 못 하며 몸을 비틀자, 이안은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 침대로 넘어트렸다.
“뭐, 뭐, 뭔!”
“볼일이 있어서.”
“너, 정체가 뭐야! 괴물 같은 놈! 밖에! 밖에 아무도 없어?!”
마법사가 무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로구나. 이안은 벽에 걸린 장식용 검을 빼 들어 그의 목을 겨누었다.
그럼에도 시장은 진짜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왕의 친부라 해도 자신은 정치적 입지랄 것이 하나도 없지 않나? 적도 없고, 있더라도 죽일 가치가 없었으니.
“왜, 왜 이러는가? 응? 우선 말로 하자고.”
“내가 누군지 궁금해하였지. 여기 왜 왔는지도.”
“잠깐만! 잠깐!”
“사실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나갈 수 있었어.”
이안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시장과 얼굴을 가까이 하며 웃었다.
“네놈의 자식이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였거든.”
“…어? 어어?”
시장은 숨이 턱 하고 막히는지, 연신 어버버거리며 몸을 비틀어 댔다. 그럴수록 이드갈은 더욱 깊이, 그를 강하게 감쌌다.
“그래서 나도 너를 죽이려 한다. 그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채앵!
이안은 검을 휘둘러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램프를 쳐 냈다. 촤아악!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기름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이안의 검이 허공으로 크게 치솟았다.
“왕궁까지 들리려면 최대한 크게 울부짖어야 할 게다. 네놈 비명이 왕궁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테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