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2
제742화. 반격
깊은 밤.
토올룬 왕궁은 잠들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든 것처럼 조용했다. 가끔가다 경비병들이 교대하며 조용히 인사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타닥타닥!
하여, 쿠마샤는 잠결임에도 복도를 내달리는 발걸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소란스러웠다. 일상적이지 않다는 건 언제나 문제가 되는 법. 아이는 눈을 슬쩍 떴고, 어둠 속에서 흰 눈동자를 돌려 댔다.
찰나 동안 아이와 연결된 수많은 시야가 휙휙 돌아갔다. 어딜까.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또…….
“전하!”
“큰일 났습니다!”
한둘이 아니다. 대신들이 우르르 몰려와 왕의 처소에서 무례하게 일러 댔다.
쿠마샤는 누운 채로 고개만 슬쩍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들은 다급하게 다시금 인기척을 내었다.
시종들을 물리고 직접 이를 정도라니.
‘대체 무슨 일이기에.’
“바, 바리엘의 마법사들이 수도 안까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일어나 보십시오, 전하! 제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기척이 없으시다. 안에 계신 것이 맞나?”
“예, 무, 물론입니다.”
“한데 어찌 답이 없으셔!”
“전하! 듣고 계십니까! 마산타르 신전에 있던 마법사들이 어느새 여기까지 올라왔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선을 천장 쪽으로 돌려 작게 인상을 찌푸릴 뿐이다.
루스웨나 전쟁에서의 열상이 아직도 온몸에 존재했다. 금기의 마법이 어째서 금기라 불리는지, 아이는 마법사가 아니어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르토르 시장이 죽은 것 같습니다.”
“……!”
무관심하게 흘려듣던 쿠마샤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켰고, 침구의 바스락거림을 들은 신하들이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역시 다 듣고 계셨구나! 그래도 아비라고, 마음이 쓰이긴 하는가 보지?
“…그게 무슨 말인가?”
“시장의 저택이 불에 탔다는 정보입니다. 그쪽 심사장인 메르가 직접 이른 것이니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상황을 들어 보니, 아무래도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직접 일을 벌인 것 같은데-”
픽! 아이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처음 일어났을 때와 다른 속도로, 수십, 수백, 수천의 풍경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불타는 저택과 아비의 시체 따위가 말이다. 분명히 큰일이니 시민 중 누군가는 보고 있을 터인데.
아르토르, 그러니까, 자신의 아버지 근처에 인형이 이렇게나 없었나? 어째서?
“……!”
다른 것이 보였다. 이는 왕궁 기준, 동쪽의 성벽이다. 어둠 속에서 길게 움직이는 불빛.
이를 보고 있는 것은 성벽 수비대 총책임자인 것 같은데, 꼿꼿하게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잖이 충격받은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적진이었다. 토올룬의 수도 앞인지라 지형 파악도 안 될 터인데, 야간에 행군을 감행했다니. 그것만으로 바리엘의 자신감이 얼마나 큰지, 느낀 것이다.
“…왕궁 기준 동쪽 성벽. 바리엘군이 당도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바리엘군이 수도 앞까지 왔다고!”
쿠마샤는 짜증스럽게 버럭 소리쳤고, 밖에서는 끙끙대는 신하들의 한숨이 연달아 들렸다.
어찌할 것인지는 왕의 선택에 달려 있건만, 아이는 계속해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찾아야 했다. 불타고 있는 저택을…….
“아.”
보인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활활 불타고 있는 저택이 정면으로 보였다. 그 누구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가 없다. 무슨 연유로 저리 손 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쿠마샤는 그것이 거슬리지 않았다.
고개를 휙 돌리니, 다섯 살 남짓한 작은 것이 주저앉은 채 울고 있다.
‘아리스.’
배다른 동생이다. 어미는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언제였지?
시장직에 올랐지만 천박한 천성이 어딜 가겠는가. 아비의 폭력성과 잦은 외도로 인하여 두 번째 부인은 병을 앓다 말라 죽었다.
‘뭐라고 하는 걸까…….’
쿠마샤는 엉엉 우는 아이를 계속해서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묘한 희열감이 치솟는 걸 느꼈다.
같은 아비를 두었으면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이복동생. 자신의 이름으로 저것까지 배불리 먹인다고 생각하면 가끔은 욕지기가 올라올 정도였는데.
그래! 너도 그래야지! 못난 아비 때문에 내 옛 시절이 얼마나 불행했는데! 너도, 너도 이래야 공평하지!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시선을 돌려 저택의 불길을 살폈다. 아마 아비는 저 안에 있을 게다. 불이 꺼지면, 그자의 흔적 또한 하나도 남지 않겠지.
참으로 잘 되었다, 망할 그놈, 죽어도 싸! 쿠마샤는 애써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침대 옆에 놓인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전하. 송구하지만, 들어가겠습니다.”
“시종들은 어서 들어가 전하의 옷매무새를 다듬거라!”
“시, 실례합니다. 전하.”
시종들의 인기척 탓이었다.
그들은 왕과 시선을 맞추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하여 그 누구도 왕의 기이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 복잡한 낯을.
아이는 웃는 동시에 울고 있었다. 그것은 아비에 대한 원망과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리움, 그리고 끊을 수 없는 천륜에 대한 원망 따위가 복잡하게 섞여 든 감정이었다.
“…내가 입겠다.”
쿠마샤는 잠시 심호흡한 다음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걸쳤다. 밖으로 나가면 능구렁이 같은 대신들을 바로 마주할 것이다. 그 전에 태도를 갈무리하여 책잡힐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이제는 아비도 죽고 없는지라… 잡힌다 한들 저 스스로만 다치면 될 일이지만, 아무튼.
끼이익.
옷을 갈아입은 쿠마샤가 문을 손수 열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대신들이 넙죽 허리를 숙였고, 아이는 재빠르게 그들을 지나치며 지시했다.
“마법사들은 곧장 왕궁으로 올 것이다.”
“와, 왕께 말입니까?”
“이것들이 기어코 토올룬을 짓밟으려고-!”
“마산타르 신전 사건 이후부터 행보가 빠릅니다.”
“어떻게 들어왔지? 출입국 심사대에 마력을 감지하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노예 상단에 잡힌 노예들인 척하고 들어왔답니다.”
“애들 쓰셨군.”
행보가 빠르다는 말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쿠마샤는 제 머리를 툭툭 쳐 대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왕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 대신들이 의아하게 쳐다봤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바누사. 대답해라.”
아, 바누사에게 연락을 하려는 거로군.
그러고 보니 바누사는 지금 어디 있지? 마산타르 신전에 마법사들이 당도한 것을 보고 먼저 올라오겠다 하지 않았나?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보고가 없다니.
“바누사.”
“연결이 안 되십니까?”
“좀, 조용히 하시오.”
보다 못한 대신 한 명이 슬쩍 끼어들자, 쿠마샤가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곤 바누사와의 연결을 뒤로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수십의 대신들이 아이를 뒤따랐다.
타닥타닥!
지하에는 토올룬 수도를 작게 축소한 모형이 제작되어 있었다. 말이 모형이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다행히 수도 안쪽은 거의 완성된 상태. 문제는 바깥쪽이었다.
“바리엘군이 올라오는 길목은 파악이 됩니다만, 그쪽 지형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하면 놈들이 수도 안까지 들어오는 것을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그랬다가는 다 죽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정말 돌이킬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법사들까지 있으니… 최대한 길목을 틀어막으며 진격을 저지하여야 합니다.”
“지금쯤 성벽 수비대가 적절히 대응 중일 것입니다. 금방 보고해 오겠지요!”
“전하?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쿠마샤는 성큼성큼 걸어 왕궁의 동쪽 성벽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성벽 바깥, 미완성 지형을 손끝으로 짚으며 길을 가늠했다.
‘이 정도쯤이야, 모형 없이도 문제없지.’
버고스나 루스웨나와 달리, 이곳은 그녀의 터전이다. 어떤 식으로 길이 나 있고 놈들이 어떤 모양새로 올라올 수밖에 없는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는 뜻이다.
“바늘.”
쿠마샤는 소매를 걷고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시종들이 재빨리 다가와 붉은색 바늘통을 내어 주었다.
가느다란 일반 바늘이 아니다. 대나무로 만든 바늘대다. 쿠마샤는 그것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두 손을 모아 정신을 집중했다.
사아악!
어두컴컴한 시야. 밤중인지라 모든 것이 어둡다. 심지어 적은 잠행 중이었고, 시야 또한 바늘구멍만큼 작아 쉬이 대상을 식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인다.’
아무리 꼭꼭 숨어도 어쩔 수 없이 피울 수밖에 없는 불빛은 있는 법. 쿠마샤는 망설임 없이 바늘대를 그곳에 꽂아 넣었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희미한 진동이 울려왔다. 대신들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곧 쿠마샤의 턱 밑으로 핏방울이 흐르고 있는 걸 알아챘다. 격한 술법에 와락 코피가 쏟아진 것이다.
“저-!”
“쉿!”
피 좀 흘린 게 대수인가? 평소와는 다른 술법을 부리느라 몸이 안 받은 것뿐이다. 어찌 됐든 바깥에서 진동이 울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푸욱!
쿠마샤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대나무 바늘을 모래에 꽂으며 몸을 떨어 댔다. 그럴수록 바깥에서 들리는 진동은 더욱 커져 갔다.
이에 대신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군대를 움직이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고, 시종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왕의 주위만 맴돌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괜찮고말고.”
이안 히엘로, 여기까지 들이닥쳐 제일 먼저 저지른 짓이 제 아비를 죽이는 일이었다. 이는 해보자, 이거였다. 서로에게 소중한 것을 앗아 가면서, 누가 더 고통스러울지를 말이다.
아이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솟음을 느끼며 다시금 바늘을 찔러 댔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보았던 아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 *
“폐하. 저기, 수도가 보입니다.”
“이쯤 진을 치도록. 이안 경의 신호는?”
“아직 없습니다. 성벽 위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한 걸 보면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진은 망원경으로 수도 쪽을 살폈다. 확실히 성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적은 착실하게 바리엘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수성을 위해 훈련한 대로 이동하는 듯 보였으니.
진이 망원경을 내리며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전언 마법이나, 그런 것은?”
“송구합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연결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력을 느끼기도 힘들고요. 창공에서 정찰하여 살피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밤이다. 진군은 여기까지 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였다가 해가 뜨면 바로 공성전에 돌입하리라.
“기습은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방어 병력이 견고하지 않은 지금 공격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안 된다. 토올룬이 어떤 장치를 해 두었을지 알 수 없으니, 마법사들과 마검사들은 뒤로 물러서 있어라. 제국방위부가 선두에 설 것이다.”
안쪽에 이안이 있다면, 필시 공격 적기를 어떤 식으로든 알려 주겠지.
황제의 명령에 병사들이 진을 치기 위해 대열을 흩트리려는 순간이었다.
쉬이익!
“……?!”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마검사들이 반사적으로 검을 다잡았다. 하지만 곧 검으로 쳐 낼 만한 공격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이잉! 지잉!
마법사들이 최대한 넓게 보호막을 펼쳤으나 미처 그 수호를 받지 못한 곳으로 강한 충격이 내려앉았다.
쿠웅! 쿵!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주먹으로 내려치는 듯한 진동.
어둠 속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진은 깨달았다.
“……!”
진영 한가운데, 병사들의 시체가 뭉개져 있음을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