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4
제744화. 토올룬의 정령술사들
“그런데 말입니다. 토올룬에는 마법사가 아예 없습니까?”
어둠을 틈타 수도 중앙 쪽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골목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토미가 땀을 훔쳐 내며 물었다.
생각할수록 희한하지 않은가? 바리엘 인근 나라들은 소수일지라도 전부 마법사를 보유했거늘, 토올룬처럼 거대한 나라가 어찌 마법사 하나 가지지 못했단 말인가?
“마법사의 맥이 끊어졌다는 클리포포드도 예전에는 있었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법사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한데 토올룬에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니… 정말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바누사는 골목 밖으로 경비대의 움직임을 살피며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토올룬의 역사에는 스쳐 지나가듯 기록된 마법사조차 없다.
예전에는 아예 의문을 품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왜인지 알 것도 같다. 신에 반하는 지하신의 거점이니, 신의 자식들이라 이르는 마법사들이 자연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 왕궁이 이리도 가문을 쥐 잡듯 짜내는 것이겠지요. 용병 마법사를 구하려고.”
“구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를 확인하려면 저택과 접촉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안 경은 바로 왕궁으로 가길 바라는 것 아닙니까?”
이안은 그저 고개를 까딱거렸다. 반대쪽에서 경비대들이 달려오고 있으니, 소리를 죽이라는 듯.
“알아도 상관없고, 몰라도 상관없다. 이미 우리는 루스웨나에서 인형술에 당한 마법사를 상대해 보았으니까.”
적진 깊이 침투한 마당인지라 더더욱 그러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으니 상대가 어떠한 준비를 해 두었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경비대가 골목길을 꺾어 사라지자, 바누사가 다시 앞장서며 내달렸다.
“왕궁에서는 이미 마법사의 침입을 알았을 것입니다. 용병 마법사는 차치하고, 아마 아르도 가문에 비상이 떨어졌겠네요.”
“아르도라 하면?”
“불을 다루는 정령술사 가문입니다. 토올룬의 국방을 맡고 있습니다.”
“수는 얼마나 되지?”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백에 가까울 것입니다.”
“잠깐만, 백? 숫자 100을 말하는 것입니까?”
토미가 놀라서 되물었다. 전시에 투입 가능한 가문 일원이 뭐 그리 많단 말인가? 다복한가?
“피를 이은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정령을 갖습니다. 격차가 크긴 하지만 어쨌거나 명령에 응할 수 있는 전력은 그 정도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아르도의 가문에 한해서요.”
자연 원소를 다루는 가문은 총 다섯 개였다. 바누사의 가문을 제하고도 400명에 달하는 술사가 대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헤일은 마른 궐련을 질겅거리며 중얼거렸다.
“우리들의 위치를 들키지 않고 놈들을 제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 까다롭겠어.”
이곳은 토올룬 왕의 손바닥 위였다.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러했다. 대상자와 위치만 확인되면 얼마든지 모종의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이안 일행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왕궁에 들어서는 게 목적이었다. 아마 시선은 성벽을 도는 다른 마법사들이 맡아서 끌어 줄 터.
쿠웅!
“어디서 진동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동쪽인 것 같은데요, 선배.”
“그치? 나도 그쪽인 것 같다.”
나키나는 문득 무언가를 감지하곤 멈칫거렸다. 동쪽 성벽이라 하면, 바리엘 본대가 들어설 관문 아닌가. 혹여 문제라도 생긴 걸까? 심상치 않은 진동인데.
“이안 님. 폐하가 계신 쪽에서 난 울림입니다. 괜찮을까요?”
“무엇이 걱정인가. 마법사들이 폐하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릭과 친위대원들도 함께하고 있지.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해내면 된다.”
“예,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누사. 얼마나 더 들어가면 되지?”
“다 왔습니다. 이 정도 속도면 10분 정도.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제 저택이 나오는데-”
순간, 바누사의 등골이 뜨겁게 일렁거렸다. 놀란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이안과 헤일, 토미, 나키나가 자세를 낮추며 눈을 번쩍거렸다.
촤아악!
착각이 아니었다. 바누사는 자신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르도.”
“바누사. 올라왔으면 올라왔다고 얘기를 하지.”
불의 정령을 다루는 가문의 가주, 아르도다. 바누사와는 오랜 친우이자, 왕궁에서는 서로를 의지하는 전우이기도 했다.
아르도는 로브를 뒤집어쓴 이안 일행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뭐가?”
“소문이 파다했어. 마산타르 신전으로 간 네가 가문과 연락 두절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거든. 근데 얼마 전에는 바리엘 놈들이 마산타르 신전을 무너트렸다지. 한데도 너에 관한 소식이 없으니 둘 중 하나라 생각했지.”
촤아악!
아르도의 손짓에 따라 바닥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바누사와 이안 일행을 휘감더니 거대한 돔을 만들어 냈다.
“아르도!”
“바누사. 더는 말하지 마. 더는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적군, 그것도 바리엘의 마법사들과 함께 왕궁 근처까지 올라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바누사는 그의 오랜 친우. 당장 처단하지 않겠다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감내한 일이었다.
“아르도!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이안 님, 이렇게 되면 위치가 바로 들통나겠습니다.”
“예, 서둘러 죽이고-”
“안 된다!”
바누사가 팔을 들어 나키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곤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무너트리고 싶은 것은 왕궁이지, 자신의 친우가 아니었으니까.
“…아르도를 설득할 수 있으니, 그에게 해를 가하지 마시오. 혹 그리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대들을 안내할 수 없어. 진실로.”
“참 나.”
이안 님, 어떻게 할까요? 나키나가 혀를 쯧 차며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은 빈틈없이 단단히 서 있는 불의 장벽을 올려다보며 제안했다.
“설득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시게. 하나, 우리는 가야겠어.”
“이보게, 바리엘의 마법사! 네놈이 어찌 바누사를 구슬렸는지는 몰라도 자만하지 마시게! 이곳은 토올룬이다!”
촤아악!
아르도의 분노를 담아내기라도 하듯 장벽이 더욱 두터워졌다. 바누사는 초조해하며 그에게 한 발 다가섰다.
“아르도. 내 말을 들어 봐. 너희도 왕궁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들었어.”
“고작 그것 때문에 나라를 배신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다! 배신하려는 게 아니라 바로 세우려는 것이지! 마산타르 신전에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 너는 몰라.”
“바누사! 제발 정신 차려라! 우리는 토올룬의 수호자란 말이다!”
“그림자!”
바누사는 계속해서 이안 일행의 눈치를 보며 질러 댔다. 믿음을 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르도는 분명히 이 자리에서 죽는다.
“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마물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었어. 그놈은 왕궁 깊이 자리 잡아 토올룬을 자양분 삼고 있으니, 이는 곧 토올룬의 몰락과 다를 바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
“마법사들이 환각술도 사용할 줄 안다는 건 처음 알았군.”
“아니라니까!”
바누사가 답답해하며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누군가 불의 장벽을 넘어 천천히 다가왔다. 아르도의 가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안 일행을 둥글게 포위한 채로 공격 태세를 취했다.
“아르도 님! 왕궁에서 신호 받았습니다. 곧 있으면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이런.”
이안은 바누사를 바라보며 웃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선택지가 없다. 왕이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아르도! 너는 이리 사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는가!”
제길! 바누사는 하는 수 없이 물의 정령을 불러냈다. 이내 사방으로 쏘아지는 물줄기가 아르도의 불길을 막아섰다.
“왕이 우리의 심장을 한 손에 쥐고 장난감처럼 다루는데, 그것이 옳다고 여겨지는가 말이다! 나는 눈과 귀를 빼앗겼다! 아르도! 네놈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어!”
아르도가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그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무너트리는 일과 연관 지을 수는 없었다.
지이잉! 지잉!
“이안 님. 길을 열겠습니다.”
“저희 먼저 가는 게 좋겠습니다.”
“바누사!”
토미와 나키나가 마력을 개방하며 바누사를 불렀다. 그녀는 이안 일행 뒤쪽으로 물길을 틀었고, 이내 작은 틈을 만들어 냈다.
토미와 나키나가 아르도에게 손을 흔들며 먼저 빠져나갔다.
“이안 님! 이쪽입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 그는 잠시 아르도와 바누사를 돌아보더니 넌지시 말을 남겼다.
“바누사. 내가 아는 자 중에 왕의 인형술에서 벗어난 자가 있다. 아르도라 하였지? 그대도 흥미로워할 내용일 테니, 잘 들으시게.”
“뭐?”
황당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선조들 중에서도 인형술에서 자력으로 벗어났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인형술이란 그들에게는 일종의 신의 낙인 같은 것이었다. 한번 엮인 후에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그러한데, 벗어나는 방법이라니?
“믿음일세.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뇌가 녹아내릴 것 같아도 죽음을 불사하고 맞선다면, 그대는 살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게 다군.”
이안은 짤막한 말을 남기고서 망설임 없이 틈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아르도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아르도 님. 저놈들을 쫓겠습니다!”
“아니! 다들 내 말을 들어 주시오! 쫓으면 분명히 죽을 것이오. 저자는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니까!”
아르도 가문의 사람들이 돌아 나가려다 멈칫거렸다. 마법사 중에서도 신과 제일 가깝다는 그자. 왕궁에서 그의 어미를 납치하려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그 어린 마법사를 말하는 것인가?
“아르도, 나는-!”
바누사가 그들을 막아선 채로 호소하려는 순간이었다.
두근!
그녀의 심장이 다시금 크게 뛰었다. 왕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 전 보냈던 신호와는 느낌이 달랐다.
이번에도 응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수도…….
-바누사.
“예, 전하.”
전하란 말에 아르도가 멈칫거렸다.
바누사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아르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것 보아, 너와 나의 상황이 지금 어떤지.
-너, 지금 이안 놈이랑 같이 있지?
“아니요, 아르도와 함께 있습니다.”
-아르도?
“이안 경은 지금…….”
‘경’이라는 호칭에 왕의 침묵이 길어졌다. 바누사는 심장 부근을 쥔 채로 웃었다.
“왕궁으로 가고 있답니다, 전하. 부디 조심하십시오. 가는 길이 어렵지 않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누사!”
죽으려고 작정한 자의 작태. 그에 아르도가 절규하며 그녀에게 한 발짝 떼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바누사가 가슴팍을 쥔 채로 고꾸라졌다. 온몸이 덜덜 떨리며 입가로는 침이 흘러나왔다. 분노한 왕이 그녀의 심장에 바늘을 찔러 넣은 게 분명했다.
아르도는 바누사의 어깨를 쥐고서 그녀를 부축했다.
“바누사! 바누사!”
“전하!”
하지만 바누사는 보란 듯이 허공을 보며 웃었다. 아마 왕의 눈에 비치는 것이라고는, 아르도의 불길밖에 없으리라. 아아. 참으로 적절한 시기가 아닌가.
바누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어 중얼거렸다. 이는 고통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마산타르 신전에서 지하신을 보았습니다. 마물과 하등 다를 것이 없던데, 전하의 몸에도 그것이 들어 있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