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5
제745화. 끊어질 듯한 고통
-…건방진.
꽈악.
꽤 긴 침묵 속에서 들려온 대답이었다.
바누사는 식은땀을 비처럼 흘리며 결국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으니.
아르도가 놀라서 주춤주춤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바누사?”
“허억, 헉, 보아라. 아르도. 지금 내 심장을 누가 쥐고 있는지. 내가 살고, 네가 살고, 하아, 그리고 토올룬이 살기 위해서는-!”
“바누사! 진정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어? 마물이라니?”
“아아악!”
“전하! 아르도입니다! 제가 바누사와 함께 있습니다! 잠시 노여움을 푸시고, 그녀의 말을 듣도록 해 주십시오! 바누사는, 아시지 않습니까! 이자가 토올룬을 위해 어찌 살아왔는지!”
“아니!”
터억!
바누사는 아르도의 팔을 붙잡으며 눈을 부라렸다. 흰자에 핏줄이 벌겋게 터져 있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에게 가해진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를 짐작할 수 있게끔. 바누사는 몸을 벌벌 떨며 잇새로 중얼거렸다.
“찢으십시오. 뭉개고 싶으면 뭉개십시오. X같아서 못 해 먹겠습니다. 누군가의 의지에 내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게.”
바누사는 이안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을 주문처럼 되뇌였다. 믿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아도, 죽음을 불사하여 맞선다면 살 수 있을 거라는.
글자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움직여 저것이 말인가 헛된 소리인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믿음. 피아노 줄처럼 질기고 단단하여 끊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런데도 방법은 있다고 믿고 싶었다.
-…바누사. 내 네놈의 가문을 멸해 토올룬에서 도려내 버릴 것이다. 너를 시작으로 네 모든 핏줄은 너와 같이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고, 시체는 조각내어 황무지에 흩뿌려질 것이다. 배신자에게 어떠한 말로가 존재하는지, 내 전역에 보이리라.
“그러니까! 말을 해 보시란 말입니다! 전하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산타르 신전 아래에 있던 그 거대한 마물과 감응하고 있는 것인지! 참고로 라주 대신관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아악!”
“바누사!”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바누사의 머릿속이 희게 변했다. 왕이 자신의 심장을 꽉 쥐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죽을 듯 말 듯하면서도 숨은 이어졌다.
뭐지? 왜 이런 거지?
화르륵!
바누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르도의 불 장벽이 여전히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안 일행을 잡아 두기 위해 세운 것이지만, 지금은 외부로부터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왕은 지금 바누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형술사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대상자의 위치 파악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이 고통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지?
바누사는 혼란스러운 낯으로 아르도를 올려다봤다. 그 역시 만만치 않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르도.”
“바누사. 말하지 마라.”
“아니, 있잖아. 우리 어릴 때 기억나?”
갑자기 무슨 말이니. 아르도가 한숨과 함께 그녀의 턱에 맺힌 땀을 훔쳐 냈다. 왕께서는 자비를 베푸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북산 호수로 가서 뱃놀이하다가 내 동생이 물에 빠졌을 때. 그때 우리에게는 배를 묶어 놓는 가느다란 줄밖에 없었어.”
“기억난다. 어린것 둘이서 줄을 놓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썼었지.”
“힘을 주면 줄수록 그것이 내 손바닥을 아프게 했어. 팽팽해진 줄을 타고 피가 흐르던 것이 생각나.”
“바누사.”
“…이건 그런 거다.”
“…뭐?”
바누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슬픔이나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때보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누사는 환희가 차올라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쪽 손으로는 계속 심장을 부여잡은 채.
“저항에서 오는 당연한 고통이란 말이다. 이것을 이겨 내면, 나는 벗어날 수 있어.”
“바누사. 너, 피가-”
“이보십시오, 전하! 듣고 계십니까?”
바누사는 키득거리며 악을 질러 댔다. 고통이 두렵지만 감내할 과정이라 생각하니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에 외로이 계신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것은 제 오만이었군요. 그 속에 숨은 마물 놈아, 자각하고 있다면 똑똑히 들으라! 토올룬은 위대한 나라다! 네놈의 삿된 욕심을 위해 발판으로 삼을 나라가 아니다!”
-아르도.
이번에는 아르도의 귓속에서 음성이 맴돌았다. 차분하였지만, 분노가 서린 왕의 전언이다.
-불의 장벽을 걷어라.
“…전하.”
장벽을 걷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단 하나는 확실했다. 바누사가 죽을 것이라는 것. 왕의 징벌을 온몸으로 받아 내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라는 것.
아르도가 망설이자, 곧 그의 심장에도 뜨거운 고통이 치솟았다.
“아아악!”
“다 죽여라! 등신 같은 놈아! 네놈의 뜻에 반하는 것들을 모두 죽여 이 나라에 인형들로만 가득 채워 보아라! 그리하면 네놈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자가 몇이나 남을지-!”
사아아악!
하늘로 치솟았던 아르도의 장벽이 걷히고 말았다. 불가항력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령술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누사는 불길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계속 외쳤다. 어서, 어서, 심장을 맨 채로 잡아당기는 이 줄이 끊어지기를!
“그리하면, 네놈도 결국에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바누사가 울부짖으며 마지막 말을 토해 냈다.
그러자, 그 순간 온몸을 묶고 있던 무언가가 후드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와 해방. 바누사는 숨통이 확 트임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쉬익!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오는 날카로운 공격. 왕이 분노를 담아 처단하고자 찌른 바늘이었다.
이것은 아주 날카롭고, 미세했으며, 파괴적이었다. 아기아르 전투에서 이안의 몸체를 꿰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
‘아.’
바누사는 본능적으로 ‘진짜 죽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인형 줄에 묶인 채 죽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찰나 동안, 바누사의 세상이 느려졌다. 마치 지나온 나날을 깊게 음미하라는 자연의 배려처럼.
“씨발!”
촤아아악!
하지만 그때, 바누사의 앞을 막아선 붉은 머리칼. 산발적으로 휘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짜증스러운 눈동자가 번뜩였다.
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건만, 바누사는 어쩐지 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뭐랄까-
“베릭! 조심해!”
“닥치고 보호막 세워!”
형언할 수 없었다. 얼굴에 그늘이 진 것 같기도 하고, 기세가 한층 커진 것 같기도 하고.
채앵!
지이잉! 지잉!
베릭은 보이지 않는 공격을 단박에 쳐 냈고, 이어서 마법사들이 그들 주위로 보호막을 확장시켰다.
“…베릭?”
“이안이랑 애들은?”
“아쉽군. 방금 왕궁 쪽으로 갔는데.”
“하여간. 이렇게 안 맞아요. 젠장.”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어?”
콰직!
한 마법사의 머리 쪽으로 보호막에 충격이 가해졌다. 왕의 공격을 막아 낸 흔적이었다. 마법사들은 바누사의 팔을 잡아끌었고, 이내 넋 놓고 서 있는 아르도를 돌아봤다.
“가만있으면 뒈집니다. 계속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바누사, 일어날 수 있겠어요? 눈 가리고.”
“…안 가려도 됩니다.”
“네?”
“줄이 끊어졌습니다. 왕은 더 이상 내게 힘을 끼치지 못합니다.”
“오, 시발. 그거 잘 됐네요.”
마법사들은 안대를 꺼내려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고서 아르도를 돌아봤다.
“저쪽은?”
“아르도. 불을 다루는 정령술 가문의 가주입니다.”
“친구? 같이 가실 겁니까?”
“친구이긴 하지만 안 됩니다.”
아르도는 여전히 왕의 지배 아래 있었으니까. 마법사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왕궁 쪽을 돌아봤다.
“그럼, 이동합시다.”
그때, 아르도가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 그들은 바리엘 소속이다. 그런 그들이 토올룬 수도 한가운데 있다는 건 나라의 수비 체계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보아하니 한 명은 마법사도 아니다. 누구인지 똑똑히 기억났다. 저놈은 분명 이전에 왕궁 앞까지 쳐들어왔던 미친개.
“잠깐!”
이리 곱게 보내 줄 수는 없었다. 아르도가 그들을 막아서려고 하자, 바누사가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르도. 제발, 그만해 줘.”
“바누사,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다. 너를 위해 그리고 토올룬을 위해서야. 네가 계속 막아선다면 나는, 나는 너를 벨 수밖에 없다.”
보았잖아. 왕에게 묶인 채로는 그저 하나의 도구밖에 되지 않아.
아르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누사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로… 인형술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르도 님! 아르도 님!”
타닥타닥!
아르도가 잠깐 망설이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부하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바리엘군이 동쪽 성벽을 돌파했습니다! 지원을 요청, 헉!”
부하는 바리엘 마법사가 떡하니 서 있는 걸 보고서 기함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아르도를 비롯하여 불의 가문 정령술사 그 누구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가 뒷걸음질 쳤다.
-…아르도. 되었다.
그때, 왕의 전언이 들려왔다.
-모두 궁으로 들어오라 전해. 내가 친히 맞이해 줄 것이라고. 환대는 원하는 만큼, 부족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아르도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고, 뒤로 물러서며 고갯짓했다.
“…왕께서, 그대들 모두 왕궁으로 들어오라 이르십니다.”
“하, 고맙네!”
“오라고 하면 못 갈 줄 아나? 베릭! 가자!”
“바누사! 명심하십쇼! 보호막을 벗어나면 뒈집니다!”
“가자! 어서! 이안 님 따라잡아!”
마법사들이 왕궁 쪽으로 뛰기 시작하자, 바누사도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시선은 아르도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있는 힘껏 마법사들을 따라 내달렸다.
“아르도 님?”
“…동쪽으로 가자. 우리는 바리엘군을 막는다.”
“아, 예! 알겠습니다!”
아르도의 몸이 불꽃으로 변하더니, 이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동쪽 성벽은 아수라장이었다. 성벽 한 지점이 완전히 박살 난지라 그쪽을 통해 바리엘 병사들이 밀고 올라오려 했고, 토올룬 병사들은 필사의 힘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막아라! 이쪽! 이쪽에 사다리가 걸렸다!”
“죽여! 죽여!”
“으아아악!”
채앵! 챙!
무너진 성벽 위로 기어올라 가기 위해 병사들은 서로를 밀치고, 찌르며, 버티었다.
아르도와 그의 가문 일원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성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둥! 둥둥!
토올룬 병사들이 긴박하게 북을 울려 댔다. 모두 성벽 위에서 내려오라는 신호다.
병사들은 바로 멀찍이 후퇴했고, 그에 바리엘 병사들은 승리했노라 환호성을 내지르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그때-
“됐다! 드디어-!”
촤아아악!
“으아아악!”
아르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성벽 위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선 채로 화마를 맞은 병사들이 몸부림치다 벽 아래로 떨어졌고, 올라가려던 자들도 기함하며 사다리 밑으로 굴렀다.
“헉!”
“불길이!”
평범한 불길이 아님은 일반 병사들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이 도와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고 한들 저것을 잠재울 수는 없으리라.
“…….”
성벽 너머, 그 광경을 지켜보는 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 정도 불장난은 예상했다는 듯이.
진은 가볍게 손을 들었고, 이에 제이럿을 비롯한 황궁친위대원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검을 빼 들었다. 도열한 검날들마다 불꽃이 비쳐 일렁였다.
처억!
이윽고 황제가 명령했다.
“황궁친위대, 출격하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