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6
제746화. 날카로운 실
“이안 님!”
앞서 날아가던 이안이 나키나의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아르도의 불길이 어느새 성벽 쪽으로 번져 있었다.
‘바누사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나?’
그러나 추측은 금세 지워졌다. 그의 움직임은 명백히 바리엘 대군을 막아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바누사와 함께하기로 했다면, 다른 행보를 보였을 터.
그 의미를 알고 있기에, 나키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바누사, 죽었을까요?”
“…글쎄. 단정할 수 없다.”
바누사가 살아 있다면 정세를 파악하는 게 조금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아르도는 어째서 자신들의 뒤를 쫓지 않고 성벽으로 돌아간 것일까? 토올룬에는 마법사가 없는지라 술사들이 힘을 한데 모아 대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지 않나?
“이안 님. 전방을 보십시오. 병사들이 몰려나오고 있습니다.”
헤일의 고갯짓에 이안의 시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왕궁과 그 옆의 병영에서 수천의 병사들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바리엘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출전하는 자들이다. 줄 맞추어 달려 가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저지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대들은 기력을 아껴라. 내가 하지.”
저들로 인하여 공성전이 길어지면 그만큼 바리엘의 전력에는 부담이다. 안 그래도 지금 아르도를 비롯한 불의 정령술사들이 성벽을 수비하고 있지 않나.
제아무리 아군 측에 마검사들이 있다 한들, 전투는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과정이 길어지면 일반 병사의 희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뒤따르니.
이안이 고도를 낮추자, 헤일과 나키나, 토미가 그 뒤를 따랐다.
촤아악!
“헉!”
“마, 마, 마법사다!”
“뭐? 어디?”
“저쪽! 하늘에!”
마법사들의 접근을 알아챈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무수히 많은 고개가 동시에 위로 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콰아아앙!
이안이 대열 한가운데로 뚝 떨어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의 주위로 먼지구름이 일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산산조각 난 전우의 시체 파편 틈바구니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끈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을 적셨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틈이 없다.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폭발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사아악-!
“……!”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착지한 소년이다.
그가 고개를 들자, 금안이 번뜩거렸다. 짐승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모를 살기(殺氣)가 넘실대고 있었다.
“마, 마-!”
“마법사다! 도망쳐!”
“도망치는 놈, 참수할 것이다! 다들 자리를 지켜라!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졌다. 사방이 혼란했다.
이안은 무릎 굽힌 채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콰직!
이안이 손으로 짚은 부분이 속절없이 갈라지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끝도 없이 솟구치는 호박색의 이드갈. 그것은 채찍처럼 길게 그리고 끝도 없이 뻗어나서 병사들의 주위를 포박했다.
“워.”
“넋 놓고 구경하지 말고, 보호막이나 세워.”
콰지지직! 콰앙!
이드갈에서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수도 없이 돋아났다. 그것은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의 몸이 완전히 꿰었고, 이드갈 안에 갇힌 자들은 당황하여 이도 저도 못 한 채 굳어 버렸다. 이안 주위로 넘실대는 기운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번뜩이는 금안이 말하는 듯했다. 살려 달라 울부짖어도 왕궁 앞인지라 멈출 수가 없구나. 그저 운명이라 여기고 모두 죽어라.
“이안아아아아!”
“이안 님!”
“아이고, 세상에나!”
촤아아악!
병사들의 시체가 거리에 널브러지는 순간, 낯익은 부름이 들려왔다. 베릭, 그리고 그와 함께 바리엘로 넘어갔던 마법사들이다.
그들은 피가 낭자한 거리에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는 의미라기보단 계속하라는 신호였다.
“이안 님! 서 계시지 말고 계속 이동하십시오! 왕궁에서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습니다. 날카롭고 가는 공격도 있지만, 대지를 부수는 위력적인 공격도 있습니다!”
“그 새끼가 우리보고 왕궁 들어오래! 아무래도 마산타르 신전처럼 안에 뭐 있겠지?”
“베릭, 왕궁으로 들어오라니? 누가 전했는데?”
“바누사 친구.”
“아르도? 그자가? 바누사는 죽었나?”
“아니, 저기 오잖아.”
타닥타닥!
바누사는 엉망이 된 거리를 살펴보느라고 뒤처져 있었다. 보다 못한 베릭이 검을 어깨에 걸치고서 경고했다.
“보호막 밖으로 나가면 뭐다?”
“알겠어! 알겠다고! 아니, 근데 이건 너무하잖아!”
“너무한 게 어딨어?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그녀는 울상이 된 채로 다가와 숨을 헐떡였다. 물길로의 이동이 아닌 이상, 그녀는 마법사와 마검사의 기동력을 따라올 수 없었다.
이안은 손등으로 피 묻은 턱을 대충 닦아 내며 바누사를 쳐다봤다.
“살았군.”
“그래, 덕분이라고 해 두지.”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왕궁만 무너트리면 될 것을, 어찌 죄 없는 병사들까지 이리 죽인단 말인가!
이안은 그녀의 소리 없는 원망을 들었으나, 모른 척 등을 돌렸다. 이것을 막아 내고 싶었더라면, 아르도를 설득하거나 잡아 두었어야지. 성벽이 빠르게 무너질 수 있게.
“가지.”
이안이 한 걸음 걷다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기에, 헤일과 마법사들이 그를 지나쳤다. 베릭은 이안의 어깨를 툭 치며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
“괜찮아?”
“…그래.”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대답했으나, 한편으로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속이 울렁거리며 심장 한 부분이 긁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통증인지라, 그래. 아프기보다 당황스러웠다.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르며 통증을 씻어냈고, 이내 그것은 잠잠해졌다.
“이안 님?”
“되었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되었다. 고통이 가라앉은 것이다. 이안은 다시 걸음을 옮겨 마법사들을 앞서 걸었다.
“거리가 조용하네.”
병사들마저 속절없이 바스러지는데 주민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각자의 집에 숨어 기도하거나 혹은 몰래 수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외곽지로 몰려드는 중이었다.
이안은 텅 빈 대로변을 지나, 멀리 보이는 왕궁을 눈에 담았다. 시일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다시 왔네.”
베릭도 그렇게 느꼈나 보다. 필리아를 찾기 위해 왔던 그때가 머릿속에서 선명히 떠올랐다.
상앗빛의 왕궁은 변함이 없는데, 그들은 너무도 많은 게 변했다.
“손님 환대 거하게 해 준다면서, 이건 뭐 들어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끼이익.
베릭이 검 끝으로 성문을 가볍게 밀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수상쩍은지라, 베릭이 웃으며 이안을 돌아봤다.
“이안아. 어째?”
마산타르 신전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인형술사의 본거지로 들어서는 것이라, 지금부터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생과 사가 걸려 있었다.
“이안 님. 아무래도 들어가는 건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지 말고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은 어떠십니까.”
“나도 동의. 나 잘 할 자신 있어.”
“…굳이 적의 도발에 넘어갈 필요는 없지요. 밀어 버리면 제깟 것이 어찌 버티겠습니까?”
“맞습니다! 숨어 봤자 방법이 없다는 걸 알려 줍시다! 이건 밀어도 되겠지, 바누사? 역사적 전통 어쩌고저쩌고하면 지금이라도 우리 딴 길 가자.”
“…그런 건 상관없어. 건물 따위는 수천 번 무너져도 된다. 특히나 그게 얼룩진 역사의 잔재라면.”
“그럼 됐네! 이안 님!”
“밀즈아아아!”
콰아앙!
베릭이 결정했다는 듯 발로 문을 박찼다. 그러자 사람 몸통보다 두꺼운 것이 나무판자처럼 날아갔다. 이어서 마법사들은 좌우로 간격을 넓히며 제 발치에 마법진을 일으켰다.
지이잉! 지잉!
“이안 님, 이번에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예! 지켜봐 주십시오!”
그들의 마법진이 한데 모이며 힘을 합쳤다. 마법사들은 자신만만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동시에 외치는 진언.
「최쇄(摧碎)」.
거대한 구를 이룬 금빛 진언들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이내 왕궁 쪽으로 호를 그리며 떨어졌다.
쳐서 깨 버려라! 아무리 날고 기는 작자라 하여도 이것을 막아 낼 수는 없을…….
퍼엉!
하지만 그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구를 정확히 꿰었다.
무리 중 절반은 처음 보는 것이고, 또 절반은 이미 보았던 그것이었다. 바로 성벽 밖에서 이루어졌던 무차별적인 공격. 대지를 짓이기고, 하늘까지 가 닿는 거대한 힘 말이다.
“헉!”
“이-!”
촤아악!
정확히 가운데가 짓이겨진 마법진은 타오르듯 재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 여파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으나, 마법사들은 당황하여 그것을 그대로 맞았다. 아니, 이안 님이 보고 있는데 이런 개망신을…….
“방금 뭐지? 토올룬 주술인가?”
“아까 우리가 말했던 그 공격이다! 수도 밖에서는 눈먼 공격이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노리고 떨어트렸네. 아무래도 왕궁이라 다르다, 이건가?”
“다시! 다시해!”
“어, 어어! 좋다! 어차피 저거, 너댓 번밖에 못 하거든.”
“가자아아!”
베릭이 다시 힘을 내라며 열심히 몸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아까처럼 마법진을 모을 수 없었다.
“또 온다아아!”
공격이 제대로 떨어졌다는 건, 왕의 시야 안에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움직이면서 마법진을 그리고 합친다는 건 고도의 숙련자가 아닌 이상 불가했다. 여기서는 이안을 제외하고 셋 중 하나가 겨우 될까 말까 싶다.
“보호막!”
“……!”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최쇄를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보호막을 세울 것인지.
반짝!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걸 보았다는 건, 곧 그의 머리 위로 공격이……!
콰아아앙!
이안은 공격이 떨어지는 지점에 정확히 이드갈을 날려 파훼했다. 찰나의 순간에 서너 개가 연달아 쏟아져 내렸으나, 이안은 차분하고 재빠르게 모두 명중시켰다.
날카롭게 깨진 이드갈 조각이 날아들자 마법사들이 소매를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타앗!
이드갈 가루가 눈꽃처럼 흩날렸다. 광경만 보면 성대한 축제 속 한 장면 같다.
“…….”
잠시 후, 모든 게 잠잠해지자 마법사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안과 베릭을 제외한 모두가 상체를 숙인 채 굳어 있었다.
“끝, 끝났나?”
“투명하네. 진짜. 너댓 번 하면 잠깐 쉬고.”
“다친 사람 없지, 다들? 이안 님, 가, 감사합니다.”
“에구. 이, 이번에는 저희가 해 보려고 했는데. 크흠. 지금이라도 다시 박살 내겠습니다. 마법진, 준비!”
“아니, 되었다.”
이안은 가벼운 손짓으로 그들을 저지했다.
“이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예?”
“황제께서 입성 중이시지 않나.”
적국의 상징이자 심장인 왕궁을 부수는 건 황제의 뜻에 달린 것이다. 전쟁의 종식과 연관 있는 것이기에 더더욱.
이안은 소매를 우아하게 걷으며 남은 문짝을 톡, 하고 건드렸다. 그것은 힘없이 밀려나며 삐거덕거렸다.
“이미 왕의 힘이 제한되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왕궁에 들어가도 이전과 같이 위험하지는 않을 터. 성벽 밖에서 공격을 보았던 게 언제인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해가 뜨기 전이니까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지만, 충분했다.
이안이 들어가려고 하자, 베릭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이안이 말고 바누사, 네가 앞장서.”
왕궁의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이안이 앞서가다가 다치면 어떡해?
베릭의 고갯짓에 바누사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수긍했다. 뭐,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래. 이 젠장할 놈아, 알겠다. 모두 바짝 따라오십시오. 왕의 거처로 이동할 것이니.”
바누사는 그리 이르며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은 터를 지나 본관에 다다를 때까지,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누사가 본관 홀을 밟고서 뒤를 돌아봤다. 제일 먼저 투덜대는 베릭이 보였다.
“시발, 텅 비었네. 왕도 알고 보면 도망친 거 아님?”
“베릭, 쉿! 조용히 입 좀 다물어.”
“…여기가 본관 로비입니다. 왕궁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
그때, 눈앞에서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실. 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실 가닥들이 중앙 홀 전체에 팽팽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쩌억-!
그것에 닿아 스친 바누사의 얼굴과 몸이, 고통도 모른 채 스르륵 베이며 천천히 조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