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7
제747화. 둘둘
“이런, 미친!”
“바누사!”
베릭과 마법사들이 기함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살다 살다 사람 몸이 저렇게 스르륵 조각나는 건 또 처음 본다. ‘그’ 이안마저도 놀라서 입술이 살짝 떨어졌으니 말 다 한 것 아니겠나.
바누사의 몸은 균형을 잃고 뒤로 천천히 넘어졌다. 그렇게 그녀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촤아악!
그녀의 몸 조각이 액체로 변하여 바닥에 흩어졌다. 놀란 베릭과 마법사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아아악!”
“시발, 시발!”
이게 뭔데! 다르시 할멈 재림인가? 지금껏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것도 분명히 존재했다.
액체는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다시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바누사의 신체로 돌아왔다. 그녀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무릎을 털썩 꿇었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 하아. 씨, 죽을 뻔.”
“주,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난 건 아니지?”
“진짜 저승길에 발 걸쳤다가 돌아왔다.”
바누사는 덜덜 떨리는 제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날카로운 실에 닿는 그 순간, 반사적으로 방어기제가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말 죽었으리라. 신체가 조각나서 허무히 인생의 방점을 찍었겠지.
바누사는 힘이 다 풀렸는지, 아예 엎드려서 숨만 쌕쌕 내쉬었다. 그 곁으로 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정신 차려, 인마.”
“…정신 차렸어. 차렸으니까 이러지.”
“살벌하네. 왕궁 전체가 다 이러려나?”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보호막 유지에 힘쓰는 게 좋겠어. 나처럼 신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면.”
“어어. 안 그래도 지금 정신 바짝 차리고 보호막에 인생 걸려고. 이안 님. 들어가서 끊어 내거나 태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생각처럼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러는 수밖에 없겠군.
이안은 손끝을 가볍게 튕기며 불길을 일으켰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실들이 허공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타들어 갔다. 생각보다 촘촘하고, 복잡하게 엮여 있다.
“와우. 장난 아닌데.”
농담이 아니라, 바누사 아니었으면 진짜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을지도.
거미줄이 힘없이 툭툭 떨어지듯, 잔해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특수한 줄인지라 유리 파편처럼 으스러지며 흩어졌다.
“인형술사의 짓일까?”
“뭘 물어? 당연하지.”
“아닌 것 같아서. 인형술사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지금껏 만났던 놈들이 진즉 보여 줬겠지. 특히 다르시 할망구는 죽네 사네 했던 마당에.”
“왕이잖아, 왕.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다.”
“맞아. 성벽 밖에 찍어 내렸던 힘도 처음 보는거였는데 뭐.”
“이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끼이익.
이안은 문을 천천히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왕이 짓이든 아니면 다른 자의 짓이든, 여기까지 온 이상 그것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은, 이안이 나아갈 길에 나 있는 작은 돌멩이들이다.
그는 문이 완전히 닫힌 걸 보고서 몸을 돌렸다. 또각또각, 주위가 적막하여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그대로 울렸다. 경계하던 베릭이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이 다 어디로 갔데?”
“그러게.”
“잡아먹었나?”
“뭐? 뭐를?”
“여기 왕, 마물이잖아. 잡아먹을 만도 하지.”
“그거 너무 우엑인데…….”
이안이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 긴장을 풀었나? 베릭과 마법사들이 바로 입을 다물고 이안의 눈치를 살폈으나, 정작 이안은 그것에 대하여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이의 시선은 바누사에게 가 있었다.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다 하던데.”
“아.”
“알고 있나?”
“소문으로만요. 누가 일러 주었습니까?”
“왕의 이복동생이 그러더군. 왕궁에 북산으로 이어진 지하 길이 있다고. 왕을 버려두고 저들끼리 이동했으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열어두는 것이-”
타닥타닥!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재빨리 손짓하여 신호했고, 모두들 숨죽이며 기척을 감지했다.
어디서 오는 거지? 저쪽? 아니면 이쪽? 그들의 시선이 동서남북으로 돌아갔고, 베릭은 킁킁,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저쪽이다.”
복도 좌측으로 이어진 문이었다.
베릭이 그리 이르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며 시종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엉망이 된 모습. 철퍼덕 넘어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마법사들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그녀를 경계했다.
“뭐야?”
“헉! 마, 마법사들?”
“인간 맞아? 지하신 개새끼, 해 봐.”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다들 미쳤습니다!”
“어허,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서 얘기해.”
시종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으나, 마법사들은 칼같이 자르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는 자신이 달려온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이내 모두가 저 먼 곳에 우뚝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베릭이 검을 다잡았다.
“누군데?”
“다들 미쳐서, 미쳐서 서로를 잡아먹고-”
“뭐?”
그때,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기이한 각도로.
그렇게 귀가 어깨에 닿는가 싶더니, 그대로 더 내려가 아예 한 바퀴를 도는 것 아닌가.
“밥맛 떨어지네, 진짜. 이놈의 동네.”
스릉.
베릭이 검을 다잡자, 놈이 주둥이를 쩌억 벌렸다. 길게 늘어진 혀가 빠르게 날아들어 여자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아악! 살려 줘!”
그대로 질질 끌려가는 여자가 울부짖었고, 뭔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저었다.
바누사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붙들어 준 다음, 검으로 혀를 잘라 냈다.
촤아악!
“어? 도망친다.”
“이안 님! 어찌할까요?”
이안은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수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물은 마물인데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라니.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다. 그저 모습을 보이고 도망치기에 급급한 것은, 하급 중의 하급임을.
‘왕궁의 신하들 대부분은 마산타르 신전 출신이라 하였다. 마물의 근거지에서 나온 자들이니,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것들이 다수 섞여 있을 터. 그것이 아까 저것인가?’
“쫓되 멀리 가지는 말라.”
이안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놈을 쫓아 달려갔다.
베릭도 슬쩍 따라가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내달리는 마법사들의 뒷모습 외에는 특별히 보이는 게 없다.
“이안아 내 생각에는… 응?”
베릭이 이안을 바라보다가 멈칫거렸다. 그의 시선은 이안이 아닌 뒤쪽, 바누사를 향해 있었다.
이안 역시 의아하여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바누사가 둘이다.
두 사람 모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선을 읽은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놀라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헉!”
“이게 무슨-!”
외형, 목소리, 행동, 심지어는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똑같다.
오른쪽 바누사가 왼쪽 바누사에게 손가락질하며 경악했다.
“마물이었군!”
“닥쳐라! 이럴 줄 알았으면 너를 구해주지 않았지!”
“이안 경, 혼란스러워 마십시오. 저것이 마물입니다!”
“아니, 제대로 보세요! 속지 말란 말입니다!”
두 명의 바누사는 서로에게 검을 겨누며 이를 꽉 물어 댔다.
베릭은 검을 내리곤 털레털레 이안에게 다가갔다. 진짜 별별 걸 다 보는 하루다.
“이안아. 마물이면 뭔가 느껴지지 않아?”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건데.”
베릭, 너는 아탄족이잖아. 마물을 주식으로 삼는.
하지만 베릭은 머쓱하게 코끝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내가 더 잘 알 건데 모르겠어서 말이지.”
“…나도다.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어.”
아까 여자가 그랬지. 미쳐서 서로를 잡아먹는다고. 이것이 단서인지 아니면 함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 보면…….
‘인간의 몸을 취하고 있나.’
왕궁의 신하들 자체가 인간의 탈을 쓴 마물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놈들로 인해 왕궁으로 흘러 들어온 마물이 시종들의 몸을 빌려 숨어든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혼종이 나타난 것이다. 인간과 마물의 경계에 선 그 무언가가.
두 명의 바누사는 황당해하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해 보십시오!”
“두 사람 다 보고만 있지 말고!”
“아아, 시끄러워. 기다려 보라고. 지금 머리 쓰는 중이니까.”
누가? 이안이가. 베릭은 그저 두 사람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검으로 거리를 가를 뿐이다.
타닥타닥!
그때, 마물을 쫓았던 마법사들이 돌아왔다.
“이안 님. 놈이 모퉁이를 돌자마자 사라졌습니다.”
“기척 없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확실히-”
“헉! 뭐, 뭐, 뭡니까?”
“바누사가 둘? 어쩌다가요?”
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두 바누사만 번갈아 쳐다봤다. 베릭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서둘러 머리 좀 맞대어 보라고 타박했다.
“진짜가 누군지 얼른 찾아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아니, 뭐, 그렇게 말해도 대체 어찌…….”
타닥타닥!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또 다른 인기척. 이안과 베릭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마법사들이 왔던 쪽에서 들려오는 발걸음이다. 불길했다.
“이안 님! 아오, 놈이 얼마나 빠르던지 바로 앞에서 놓쳤습니다.”
“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베릭, 너 인마. 다리도 멀쩡한 놈이 같이 쫓을 것이지, 뭐 한다고…….”
“앵?”
마법사들이다. 먼저 돌아왔던 마법사들과 똑같이 생긴 자들이 황당한 낯으로 입을 벌렸다.
그들도 두 명의 바누사와 같이 경악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시발! 너, 너 이 새끼들!”
“마물입니다! 이안 님, 마물이에요!”
“와, 진짜 황당하네. 가죽 안 벗어?”
“이안 님! 속지 마십시오! 제가 진짜입니다!”
“내가 진짜다! 너 인적 사항 외워 봐!”
“제 이름은 칸치입니다. 메릴로드 2번가에 살고요!”
“환장하겠네! 이안 님, 제가 칸치입니다! 너 이 새끼, 내 주소 어떻게 알았어?”
순식간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마법사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거칠게 흔들어 댔고, 몇몇은 아예 마력을 개방했다.
그걸 보며 베릭이 손가락질해 댔다.
“오, 마법! 그래. 마법사는 마법 써 보면 알지!”
지이잉! 지잉!
하지만 두 그룹 모두가 마법을 개방하자 베릭의 손가락이 맥없이 꺾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물 따위가 어찌?
“아르센 때도 이러했다, 베릭.”
“아. 맞다.”
아르센도 마물이었지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며 나대고 다녔었지. 당시에는 마법사들도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고, 신탁의 빛 아래에서만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여기는 그런 거 없나.”
“있겠냐? 마물 소굴인데. 생각 좀.”
“아니, 근데 저 새끼 너무 띠꺼운데? 쟤는 진짜 맞는 듯.”
이안은 한숨을 삼키며 미간을 꾹꾹 눌러 댔다. 이런 하찮은 수작질에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게 너무도 어이없었다.
‘기억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능력도 베낀 걸까? 그건 쉽지 않을 건데. 혹 그게 가능하다면 분명 모습을 유지하는 시간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제풀에 지쳐 모습을 보일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이안 님! 이놈들이 마물이라니까요! 서운합니다!”
“서운이고 자시고, 이안이 말 안 들어?”
“넌 빠져, 멍청아!”
“아이씨, 이 새끼도 띠껍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장은 누구에게도 해칠 의도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삽시에 아수라장이 되었을 터.
이안은 모두에게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그 사이 그들은 이리저리 섞여 들어, 본래 어느 무리였는지도 분명치 않게 되었다.
“일단 각자 처음 무리끼리 갈라져라.”
“예, 알겠- 어?”
“…아오, 젠장할!”
마법사 한 명이 이마를 탁 짚으며 이안의 뒤를 가리켰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조졌네. 저놈이 둘이라니.”
“뭐가?”
“네 옆을 봐. 인간아.”
베릭이 화들짝 놀라며 옆을 쳐다봤다. 그러자 베릭과 똑같이 생긴 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법사들 무리 중 한 놈이 베릭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
“개-!”
빠아아악!
베릭들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로에게 박치기를 시전했다.